글: 이치코

 

며칠 전 송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대체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상징적인 인물이라 뉴스와 방송, SNS에까지 추모의 마음과 목소리가 넘치며 마치 온 나라의 이목이 쏠린 듯했어요.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하셨다고 하니 일요일마다 방송을 보며 웃고 즐겼던 분들이라면 그 상실감이 무척 컸을 것 같아요. 저는 지난 34년 동안 TV를 거의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끼는 음악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돌아가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평온히 안식하시기를 바랍니다.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이름 뒤에 ‘씨’나 ‘선생(님)’이나 직함이 아닌 다른 호칭을 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평소라면 송해 선생님이라고 했겠지만 오늘은 할아버지란 말이 좀 필요해서 송해 할아버지라고 불러보았어요. 어느 때부턴가 누군가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를 일이 사라졌어요. 관습적인 호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실제 나이 차이를 따져 보면 아무래도 아주머니, 아저씨에 가까운 때가 훨씬 많죠. 인간의 기대 수명이 아무리 늘어났다고 해도 그걸로 상쇄하기에는 제 나이가 이미, 조선시대 같았으면 할아버지..가 된 상황이다 보니까요. 송해 할아버지는 올해 95세로 1927년생이셨다고 해요.

 

저희 할머니는 1918년에 태어나셨어요. 한국 현대사의 굴국을 온몸으로 겪으셨고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돌아가셨어요. 벌써 20년도 더 되었네요. 그래서인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이 희미해졌어요. 여섯 살에 부모님과 함께 도시로 나온 이후로는 1년에 서너 번 명절이나 방학 때나 얼굴을 뵈었던 터라 가족공동체로서의 에피소드나 기억 같은 게 거의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할머니에 관한 어떤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 적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그때까진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전화라는 물건과 결코 친숙해지지 못하셨어요. 흐릿한 기억이긴 하지만 분명 그랬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혼인과 함께 시집살이를 시작한 뒤 평생을 사셨던 곳은 시골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시골인 동네고요. 하지만 완전히 깡촌이거나 두메산골은 아니었어요. 불과 1.5km 남짓한 거리에 근방에서는 제일 번화한 축에 속하는 읍내가 있었고, 전기나 도로 등의 문물도 (다른 지방에 비하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보급된 (경상도의) 무난한 촌락이었어요. 전화만 해도, 시골이니까 아무래도 도시에 비해 늦게 보급되긴 했겠지만 8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결국은 집마다 한 대씩 있는 물건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십수 년 이상 전화를 사용하셨던 셈이고요. 그런데도 할머니는 전화라는 기계를 끝내 어색하게 대하셨어요.

 

할머니에게 전화는 용건을 전달하는 수단이었어요. 하지만 그걸 응용해 누군가와 (용건 없이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며 때론 함께 슬퍼하고 침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는 못하셨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듯 상대방의 용건을 확인하고 딱 필요한 만큼의 말을 마친 뒤, 상대가 더 할 말이 있거나 궁금한 것이 남았거나 하는 정황은 상관하지 않은 채 다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으시곤 했어요. 마치 그걸 오래 붙들고 있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할머니는 왜 그렇게 전화를 어색해하셨을까요? 기계에다 대고 말을 하는 게 익숙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가난한 살림에 전화요금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고, 그렇게 말을 나눌 만한 상대방이 없었을 수도 있고.. 직접 여쭤본 적이 없으니 영원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네요. 할머니와 전화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혹시 나도 나중에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 새로운 문명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불화를 겪으며 거부하게 될까? 그렇다면 그 대상은 무엇이 될까?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이미 유튜브라는 신문명과 심각하게 불화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 * *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꾸는 것 같아요.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나 물건이 삶의 기능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결국엔 사회의 근본적 구조에도 변화를 초래하게 되죠. 물론 똑같은 기술이나 개념이라도 어떤 조건이냐에 따라 사회별로 나타나는 현상은 다를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대개의 사람은 새로운 것에 주목하기 마련이에요. 그것을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간에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는 일에 모두가 열심이죠. 이때 새로움에 밀려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 것에 주목하는 이들은 드문 것 같아요. 낡은 것이니까요.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잊힌 과거가 되어버리곤 하니까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세월의 뒤로 밀려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낡아지도록 지속됐던 시간만큼 그 속엔 사람들이 살아왔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 있을 거예요. 많은 이야기와 지혜가 함께 녹아 있을 거예요. 사라지게 두는 게 맞는지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 해도 그 정도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 [사진=국가기록원]

 

SNS에서 우연히 흥미로운 사진을 보았어요. 10여 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지하철 안내판 사진이었어요. 관심이 생겨 조금 더 검색해 봤더니 2006년, 2008년 이렇게 날짜가 적힌 블로그 글과 사진도 검색되었어요. 서울 지하철 기준으로는 2호선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지하철 플랫폼의 모든 행선지 안내판이 디지털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아날로그 방식이었어요. 상하로 나눠 잘린 글자가 각각 촤르르르 넘어가다가 서로 짝을 맞춰 멈추는, 메가박스에서 보여주는 극장 광고에 등장하는 플랩식 화면(split flap display)을 통해 열차의 행선지를 알려주었죠. 그 위에는 열차가 플랫폼에 진입할 때 역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고음에 맞춰 배경 조명이 켜지며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라는 붉은색 글자가 드러나는 화면이 있었고요.

 

그런데 진짜 흥미로웠던 건 열차의 행선지와 플랫폼 진입 상황을 알려주는 텍스트 영역의 좌측(혹은 우측)에 커다랗게 자리한 동그란(실제로는 모서리를 둥글린 사각형) 시계였어요. 아날로그 안내판이라고 해도 전기로 작동을 했을 테니 숫자로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를 넣었어도 될 텐데 왜 굳이 시침과 분침을 가진 마치 시계탑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 예스러운 시계를 넣었을까요? 디자인의 기원을 추적할 수는 없지만 그걸 보면서 한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요즘의 안내판보다 동그란 시계가 있던 플랩식 안내판이 훨씬 근사했다는 걸요. 지금 우리 일상 속의 안내판들은 너무 볼품없어요. 더 많은 정보를 보여줄지는 몰라도 모양은 왜 그렇게 조잡해 보이는지. 예전의 명쾌하고 강단 있어 보였던, 그래서 몇 글자 되지 않는 정보가 더 믿음직해 보였던 안내판은 어쩌다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그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을 고작 이렇게밖에 못 써먹는지..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어요.

 

굳이 또 말씀드려야 하나 싶지만, 조선시대였다면 이미 할아버지..라고 불렸을 나이가 되다 보니까 살아오는 동안 사라져버린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중엔 지하철 행선지 안내판처럼 그걸 되살린다면 참 좋을 텐데 싶은(심지어 되살릴 가능성도 있는)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예전엔 그랬었지..’라는 추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에요. 되살릴 방법이 없거나 되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과거의 유물들이죠.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이미 훌륭한 대체재가 자리를 잡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편지처럼 말이에요.(가볍게 주고받는 쪽지는 말고요. 편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로 보면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어요.)

 

편지의 매력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아, 편지를 써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그럴 수도 있죠. 있고 말고요. 편지란 자고로 연애의 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통신매체인지라 90년대 이후에 태어나셨다면 연애를 시작할 즈음 이미 휴대폰이라는 첨단 기술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편지를 연락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죠. 그래도 편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 매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거예요. 편지의 매력은 뭘까요? 꾹꾹 눌러 쓴 손글씨, 사각거리는 종이의 감촉, 가지각색인 우표의 아름다움,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놓은 편지 뭉치들.. 이렇게 보니 편지는 물성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게 편지의 중요한 매력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편지의 진짜 매력은 순차적 통신 방식에서 드러나는 시차, 그러니까 기다림이 아닐까 싶어요.

 

Photo by Carol Jeng on Unsplash

 

편지는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다림의 과정을 생략할 수 없는 매체란 점에서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때의 기다림은 단순히 편지가 전달되는 이동 시간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보낸 편지를 잘 받았을까? 답장은 언제 올까? 하는 구체적인 기다림부터 ‘편지할게’라는 말에 따르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기다림까지도 포함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메일까지도 연락의 주고받음이 실시간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강박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그 기준으로 보자면 편지는 연락 매체로서 낙제예요. 하지만 메시지를 받은 뒤 몇 번이나 곱씹어 볼 수 있는 데다 한참을 묵혔다가 회신을 해도 되는 편지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물건인 것 같아요.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가 다시 활성화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개인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에 개인의 집 주소가 공유되어 돌아다닌다는 게 얼토당토않으니까요. 방대한 사서함 시스템으로 그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뭐 굳이 그렇게까지.. 편지를 쓰자는 말은 역시나 좀 시대착오적으로 들리네요. 다만 편지를 주고받을 때 가졌던 기다림의 마음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이 즉각적이고 명쾌한 방식으로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 모두가 그렇게 빽빽한 관계의 밀도를 견뎌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면 텅 빈 공간이 사람 사이를 더 강하게 연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지금의 이 속도가 과연, 적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들 말이에요.

 

* * *

 

이번 산-책은 북새통문고를 다녀왔어요. 2004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불과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북새통문고는 만화전문서점으로 수많은 매니아들이 찾던 곳이었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북새통문고의 길 건너에 있던 한양문고(툰크)와 함께요. 홍대라는 공간의 문화와 역사에 얽힌 이야기가 많고 만화 관계자들의 추억에 더 깊게 자리한 공간은 아마도 한양문고(툰크)일 테지만, 일반인에게 더 유명한 곳은 북새통문고일 거예요. 매장이 훨씬 넓었고 보유한 장서의 수도 방대했고 손님으로 늘 북적였고 결정적으로 한양문고가 2018년에 문을 닫은 뒤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만화 매니아의 성지라 불릴 정도로 독보적이었던 북새통문고도 세월의 흐름에 밀려 운영난에 맞닥뜨리게 되었고 결국 2020년의 끝자락에 영업을 종료한다는 발표를 하게 되었죠. 그렇게 국내에서 가장 컸던 만화전문서점이 사라지나 싶었지만 다행히 다른 공간을 찾아서 아직도 운영되고 있어요.

 

작년 5월에 북새통문고가 홍대입구 AK& 쇼핑몰의 5층으로 이전해 에니메이트와 공동으로 재오픈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소식을 듣자마자 가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코로나 웨이브가 출렁이는 동안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를 넘겨서까지도 못 가보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버섯 소녀>의 북펀드와 전시 등으로 인해 소소한 산-책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을 맞게 되었고, 그 위기를 돌파하고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북새통문고를 잽싸게 다녀왔어요. 그런데 도심 번화가에 번듯하게 솟은 쇼핑몰의 5층엔 아쉽게도 제가 알던 북새통문고가 없었어요. 여전히 만화책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의 기능을 하고 있었고 매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한쪽 벽에 커다랗게 북새통문고라는 간판도 있었지만 그 공간을 차마 북새통문고라고 부를 수는 없었어요. 단지 애니메이트의 일부일 뿐이었어요.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매우 아쉬웠어요.

 

결국 만화책을 한 권도 사지 못하고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채 발걸음을 돌렸어요.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데 문득 무언가 중요한 게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킬 것 같았던 지하철 안내판처럼 젊음의 열정을 쏟아 밤새 써 내려갔던 연애편지처럼.. 만약 사라지게 된다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거란 예감과 함께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어요.
‘어쩌면 만화책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To be continued..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한 굿즈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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