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 화가예요. 작업실에 나가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매일 그려요. 매일매일 그려요.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어요. 그림만 그려대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고양이화가가 될 거예요. 누군가는 알아줄 거예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성을 살 거예요. 나만의 성에서 나는 발가벗고 그림을 그릴 거예요.

아직 그만큼의 돈은 못 벌지만요. 나는 가끔 그림을 팔아 꽃 한 송이를 살 만큼의 돈만 벌고 있어요. 같이 살고 있는 내 친구 꿀벌이 매일 나가서 꿀을 나르고 돈을 벌어 와요. 우리는 그 돈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 내 그림 재료를 사죠. 꿀벌은 매일 밤 코를 골아요.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나고 재밌어요.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의 근육이 풀려서 마치 산속에 세워진 불상 같은 얼굴이 됩니다. 그때의 모습이 제일 좋아하는 내 얼굴이에요.

어제는 꿀벌과 심하게 싸웠어요. 별일은 아니었어요. 꿀벌이 요새 그리는 그림에 대해 물어봐서 내가 화를 냈어요. 그림이 너무 안 풀리고 있는데 그림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꿀벌에게 그걸 얘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그림이 안 풀린다는 건 누구나 감탄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다가서지 못했다는 이야기예요. 그림의 언어가 뒤엉켜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잘 못 보여주는 거죠. 그건 색깔이 너무 다양하게 쓰여서일 수도 있고 너무 쓰이지 않아서일 수도 모양의 문제일 수도 있고 너무 많이 그려서일 수도 너무 똑같이 그려서일 수도 내가 그걸 너무 자주 그려서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사실은 그걸 그리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죠. 누군가 내 그림을 본다는 것에 너무 신경을 써서일수도 있어요. 아무튼 그림이 안된다는 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에요.

꿀벌은 화가 나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러 갔어요. 금세 코를 골았습니다. 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나는 꿀벌 덕분에 먹고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이렇게 화까지 내서 속상하게 만들다니. 그렇지만 그림에 대해 얘기한다고 그림이 좋아지진 않는다구요.

 

 

다음 날도 그림을 그리러 작업실에 갔습니다. 햇살이 동그란 아름다운 날이었어요. 나는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요. 여전히 그날도 그림이 잘되지 않았어요. 그런 날에 나는 비구름이 잔뜩 낀 바다에 서 있습니다.

그래도 그림을 안 그릴 수는 없어요.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날에는 온몸의 털이 잔뜩 섭니다. 불안한 기운의 구름이 몰려와요. 보이지 않는 돌과 같죠. 그건 무거워서 내 머리에 닿으면 목이 툭 꺾입니다. 나는 움직일 수도 없는 듯해요. 차라리 이럴 바에는 그림이라도 그리는 게 나아요. 그림이 되든 안되든, 어쨌든 그림을 그리면 그런 무거운 공기는 몰려오지 않거든요. 축축하고 기분이 별로 안 좋긴 하지만요.

그래서 그림을 매일 그렸어요. 동네 고양이들과 운동회를 하거나 꿀벌이 일하는 곳에 심부름을 가야 할 때는 다음 날 무엇을 그릴지 촘촘한 계획을 세웠어요.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 편안해지고 그림이 안되는 날이면 불행해지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날에는 완벽히 불안해지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하루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만약 내가 그림을 못 그리게 된다면? 꿀벌이 다쳐서 일을 하지 못한다면? 내 오른팔이 다친다면?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로 그림을 아예 그리지 못하게 된다면? 꽤 멋진 그림을 그렸지만 영원히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는다면? 구름 속에서 목이 꺾인 채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나는 무서워졌어요. 무당벌레 두 마리가 나와서 코미디를 하는 것을 봐도 나는 목이 꺾인 상태로 웃겠죠. 꿀벌과 장을 보러가도 나는 목이 꺾인 채로 양파를 집어들 테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목이 꺾여서 우물우물 씹다가 삼키겠죠. 그런 상상을 하니 나는 너무 무서워졌어요. 그건 모두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일어날 일들이었어요.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 화가니까요.

요새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꿀벌에겐 조금 미안해요. 내가 매일 작업실에 나가서 열심히 그리는 줄 알고 있겠죠. 나는 열심히 노는 중이에요.

무거운 구름이 여전히 내 주변에 있어요.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연기덩어리예요. 불안을 향해 열심히 부채질을 하는 중입니다. 힘이 없을 때는 입으로 불고 맛있는 생선 한 마리를 얻거나 비둘기를 잡았을 때는 내가 그려둔 제일 큰 그림 한 장을 꺼내 부채질을 합니다.

그림은 또 그리고 싶어질 거예요. 그래도 이제는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사랑하는 꿀벌이 앵앵대며 날개를 바삐 놀리는 모습이나 늘어진 일몰의 흔적을 살피는 일을 더 자주, 쉽게 떠올려보려고 해요.

 

 

 

‘고양이 화가’는 2021년 6월부터 10월까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었습니다.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