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집으로 가는 버스였습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SNS에 올라온 이야기들을 건성으로 훑고 있는 눈은 초점이 흐렸고, 부지런히 화면을 밀어 올리는 손가락만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거나 관심이 가는 소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간혹 있다고 해도 피곤에 지친 몸을 간신히 지탱하기에도 벅한 퇴근길에는 놓치기 십상입니다. 시간을 꼬깃꼬깃 잘 접어서 집에 빨리 도착하는 일이 중요할 뿐이지 접힌 시간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10월 10일 저녁도 그랬습니다. 휴대폰 화면에 익숙한 실루엣이 지나갑니다. 캐리커처로 그린 여성의 얼굴입니다. 누구더라? 영어로 뭐라고 쓰여 있네. 아는 얼굴인데…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그림은 이미 스크롤의 속도에 밀려 시야 밖으로 사라집니다. 화면을 두세 번 밀어올리리기도 전에 이번엔 사진이 등장합니다. 한강 작가님입니다. 출판사 계정을 많이 팔로우하고 있어서 작가님들의 사진이 피드에 올라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새 책을 내셨나? 그러는 와중에도 손가락은 여전히 부지런히 움직이고 화면은 계속 위로 흘러갑니다. 한강 작가님 사진이 또 보입니다. 덩달아 작가님의 책들도 딸려 옵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익숙한 표지들입니다. 이상하네. 무슨 일 있나? 그제야 화면 속 글자들을 읽기 시작합니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 문학, 한강… 단어들이 잘 연결되지 않아 머릿속이 혼란합니다. 노벨문학상, 최초, 수상, 한강… 흐릿하던 정신이 또렷해지며 온몸의 아드레날린이 갑자기 춤추기 시작합니다. 뭐라고! 한강 선생님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세상에 이런 경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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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힙(Text Hip)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검색해 보니 주로 젊은 층(Z세대)의 문화 현상과 연관시켜 텍스트 힙이란 단어를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필사, 일기, 연필, 수첩, 편지 등등 읽기/쓰기와 관련된 것들을 힙하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네요. 여기에 책 읽기, 책 추천, 북페어, 북토크, 독서모임 같은 것들도 슬쩍 껴 있다고 하니 출판계 종사자로서 반가운 마음입니다. 책 많이 사서 쌓아 놓기, 책으로 인테리어 하기, 20대에 책 1000권 사기 등도 있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싶긴 하지만… 뭐 텍스트와 친밀하게 지내다 보면 책 사는 일이 OTT를 구독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문화생활이 되는 날도 언젠간 오겠죠. 오겠..죠? 오면 좋겠네요.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힙’한 문화로 등장한 것 중 남은 것이 얼마나 있을까? 힙하게 와서 힙하게 사라지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다꾸, 필사, 일기, 연필, 수첩, 편지 같은 것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어필하며, 때로는 디지털 디톡스라는 명목으로 한창 유행하다가 어느 순간 낡고 따분한 골동품이 되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일은, 아쉽기는 하지만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책도 그럴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책이란 매체는 ‘힙’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북토크나 독서모임 등으로 책 읽기의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일이 힙하게 유행할 수도 있긴 하지만 독서란 태생적으로 한 개인과 책의 사적인 관계로 귀속되는 고독한 행위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강 선생님 만세!! [이미지: 노벨상 공식 인스타그램]

 

“몇년 더 지나서 책에 대한 책을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를 만들어줬고 저를 살게 해줬던 책들의 기억을 가지고 책을 한권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너무 많죠. 제가 책을 읽지 못할 때도 책을 한권 이상 갖고 다니게 되는데 그것 자체가 저에게 안도감을 준달까요. 책을 읽을 때 필요한 건 연필, 다시 펼쳤을 때 다시 읽고 싶은 곳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써보기도 하고… 그런 것이 우리를 구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그럴 때 우리가 온전히 만나는 거잖아요. 마음만 만나는 게 아니라, 뭔가 만남이 이뤄지는 거죠, 육체적인 만남이. 그런 순간들이 모두 너무 소중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고. 다 거기 사람들이 있는 거죠. 이 속에, 이 직육면체에 커버로 닫힌 세계 속에 어떤 세계들이 있고 인간들이 있고 그런 거잖아요. 그게 언제나 특별한 거 같아요.

[…]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쁘고 해서 책을 많이 못 읽는 시기에는 약간씩 사람이 희미해진달까, 뭔가 좋지 않아요. 나 자신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느끼게 돼요.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허기가 느껴져서 며칠 동안 몰아서 정신없이 읽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 충전됐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나 좀 강해졌어, 씩씩해졌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개인적인 필요, 허기, 갈망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고요. 책을 읽지 않고 살아갈 때는 부스러질 것 같고, 몇줄을 읽더라도 읽어야 부스러지지 않고, 부스러졌더라도 다시 모아지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

책 속에서 계속 만나요.”

— 한강,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주제강연 중에서 [정리: 한겨례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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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서점 대표님의 귀한 초대 덕분에 이미화 작가님의 <엔딩까지 천천히> 북토크를 위해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텍스트 힙!?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에 어떤 이유가 필요할까 싶네요. 책의 본질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요? “직육면체에 커버로 닫힌 세계 속에 어떤 세계가 있고 인간들이 있고 그런” 존재 말이에요. 텍스트가 힙하지 않더라도 텍스트에 매여 사는, 어쩌면 텍스트 그 자체라 불러도 좋을 출판계 종사자이다 보니 여행을 가더라도 보통은 본능적으로 텍스트의 세계를 찾아 나섭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안전하다는 느낌”을,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출판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텍스트 힙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활자중독자들이니까요! :)

 

하지만 이번 부산 나들이는 달랐습니다. 북토크가 열렸던 나락서점을 제외하고는 책방이나 도서관 근처도 못 갔습니다. 1박 2일, 북토크가 끝난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24시간도 안 되는 촉박한 일정 속에 영화를 두 편이나 봤으니까요. 마침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이었습니다. 운 좋게 두 편의 예매를 성공한 덕에 부산국제영화제 동안 부산 여행만 하는 사람의 신세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부대 행사나 이벤트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두 번 다 GV가 있어서 영화제의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 상영작들이 발표되었을 때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 있긴 했습니다만 티케팅 스킬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그 영화들은 모두 놓쳤습니다. 어떻게 보면 밀리고 밀려 선택한 영화들이었지만 역시나 운이 좋게도 두 편의 영화가 모두 좋았습니다. 하나는 티베트 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방글라데시 영화였습니다. 티베트 영화의 제목은 <망향의 노래State of Statelessness>, 방글라데서 영화의 제목은 <사바의 좁은 세상Saba>(이하 <사바>)입니다.

 

 

<망향의 노래>는 ‘무국적 상태’라는 원제가 내용을 더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영화였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보다는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디아스포라/경계적 삶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티베트는 지리적 명칭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국가로서의 티베트는 과거형입니다. 공식적으론 그렇습니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역사를 지워버리기로 결정한 뒤로 티베트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없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외교 관계에 의하면 티베트는 그저 주민의 90%가 티베트인으로 구성된 중국의 자치주일 뿐입니다.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 티베트의 망명 정부가 있고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침공 이후 많은 티베트인이 국경을 접한 인도로 피신했고, 이렇게 무국적자의 삶을 살아가는 티베트인이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망향의 노래>는 네 편의 다른 이야기가 담긴, 티베트어로 된 최초의 옴니버스 영화라고 합니다. (네 편 각각의 영화 제목이 있지만, 충격적이게도 며칠 만에 홀랑 까먹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검색을 해 봐도 제목을 찾을 길이 없네요. 감독님들 죄송합니다…) 첫 번째 영화는 베트남에 살고 있는 아빠가 딸에게 티베트 노래를 들려주는 내용입니다. 메콩강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달리고, 달리고, 날아서” 왔다면서 나지막하게 노래합니다. 두 번째 영화는 인도에 사는 양첸이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프랑스에서 돌아온 언니와 겪는 갈등과 봉합될 수 없는 상처를 보여줍니다. 세 번째 영화는 탱화 화가인 소남이 미국에서 온 옛 친구와 대면하면서 제 초라한 현실을 자각하고 좌절하는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 영화는 미국 위스콘신에서 사는 텐진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낸 다람살라로 아버지의 유골을 가지고 와 고향에 남아 있던 가족의 흔적을 떠나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네 편 모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중간에 걸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각기 다른 처지의 티베트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사바의 좁은 세상>

 

<사바>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멜로/휴먼 영화에 가깝습니다. 멜로 영화라고 하기엔 관객들에게 과도한 눈물 감성을 요구하지 않고, 휴먼 영화치고는 주인공이 엄청난 고난을 극복하거나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결정적으로 해피 (혹은 가슴 따뜻해지는) 엔딩으로 끝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전통적인 멜로와 휴먼 스토리로 느껴졌습니다. 익숙한 전개가 많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사바는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사바의 어머니 시린은 교통사고로 하체를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입니다. 3개월 전에 일하던 식당이 폐업해서 직장을 잃은 사바 혼자 어머니를 돌봅니다. 아버지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습니다. 갑자기 어머니의 심장병이 악화됩니다. 수술이 필요한데 돈이 없습니다. 사바는 직장을 구하려 애쓰고 우여곡절 끝에 일을 시작합니다. 잠깐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나 싶었지만 수술에 필요한 계약금 30만 타카를 모을 새도 없이 어머니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집니다. 사바는 돈을 구하기 위해 삼촌과 친구, 직장에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실패합니다. 난관에 부딪힌 사바는 결국…. (이 뒤에도 각종 스토리가 한참 이어집니다.)

 

정말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중간에 살짝 지루할 뻔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뻔한 스토리로도 절대 지루할 일 없이 몰입하게 만든 희한한 매력의 영화였습니다. 제가 느꼈던 건 두 가지였는데요. 첫 번째는 독특한 전개 방식이었습니다. <사바>는 주인공의 불행과 좌절을 지나칠 정도로 쌓기만 했습니다. 보통은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법입니다. 극한의 상황이 왔다가 평온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또 좌절하지만 극적인 도움으로 극복하고 다시 난관에 부닥치지만 돌파구가 생기고 하지만 본질적 위기는 해소되지 않은 채 긴장을 풀 수 없는.. 이런 공식이란 게 있잖아요. 그런데 사바는 오직 주인공의 계속되는 불행을 목표로 전진 또 전진할 뿐입니다. 아니 이렇게까지 주인공을 괴롭혀야 하나, 라는 생각에 성질이 나서 영화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감독님의 스타일인지.. 두 번째는 사바 역을 맡은 Mehazabien CHOWDHURY 배우의 매력이었습니다. 영화의 특성상 전체 신의 거의 전부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화면을 가득 채운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표정이 정말 풍부하고 표현력이 좋아서 배우의 얼굴에 집중해서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느껴졌을 정도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출연작들도 찾아 보고 싶네요.

 

*

 

<망향의 노래>와 <사바>, 부산국제영화제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들을 과연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매 실패에 밀려 찾게 된 영화를요. 물론 OTT에는 티베트나 방글라데시 영화만큼이나 알려지지 않은, 더 좋은 영화들이 많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그 영화들을 굳이 찾아서 봤을까요? 글쎄요. 아닌 것 같습니다. <흑백요리사> 같은 자극적인 콘텐츠만으로 시간이 부족할 겁니다. 지금은 거의 모두가 휴대폰으로 편리하게 영화를 예매합니다. 영화관을 불쑥 찾아가는 경우가 없진 않겠으나 보고 싶은 영화가 매진돼서 극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예전에는 그럴 때 옆에 있는 극장(같은 영화관의 옆 관 말고요!)에 걸린 다른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었는데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네요. 이제 극장에서 우연히 낯선 영화를 만날 확률은 0이 되었습니다.

 

힙하다는 게 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유행하는 것과 다르다는 건 알겠습니다. 유행을 조금 앞서가는 어떤 현상을 지칭하는 듯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고요. 느낌으로는 이렇습니다. 유명해서 유명한 것들을 남들에게 유명하다고 설명하지 않고 유명한 것으로 소비하는 현상. 어렵네요. 유명한 것들도 잘 모르는데 그 유명함으로 인해 유명한 것까지 알 도리가 없죠. 계속 이렇게 힙하지 못한 채로 살아야겠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듭니다. 힙한 것이 세상을 점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낡고 오래되었을지언정 익숙한 것들이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망향의 노래>

 

힙의 성지라고 하는 성수동에는 매달 수십 개의 팝업 스토어가 새로이 문을 연다고 합니다. 새 팝업 스토어를 꾸미기 위해 이전의 인테리어를 허물어야 할 텐데 이때 10평의 가게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이 약 1t이라고 합니다. 환경부의 통계에 따르면 성동구의 일반폐기물이 2018년 5.25t에서 2022년 518.6t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아찔한 수치입니다. 그 팝업 스토어들 자리에는 원래 무엇이 있었을까요? 폭발하는 유동 인구를 노리고 새로이 들어서는 카페, 식당, 쇼핑몰이 있던 자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수제화 구둣방도 동네 세탁소도 슈퍼도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유튜브와 OTT가 사람들의 시선과 시간을 얼마나 빼앗아 가더라도 영화와 극장이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디바이스가 우리의 신체를 몽땅 감싸는 날이 오더라도 묵은 내 퀴퀴한 종이책이, 책방과 도서관이 자리를 지켜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에 기쁘고 즐겁고 훈훈하며 흐뭇한 장면들이 연달아 뒤따르고 있습니다. 책을 사려고 서점이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SNS에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축하와 감사의 인사, 각자 책에 받은 한강 작가의 사인이나 같이 찍은 사진과 에피소드 인증들, 여성 작가들의 성취에 관한 자부와 응원의 목소리들, 5·18과 광주, 4·3과 제주에 관한 이야기들을 질리지 않고 계속 보게 됩니다. 덩달아 들뜨고 흥분하면서요. 하지만, 여기서 웬 ‘하지만’이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이럴 때 매몰차게 등장하는 게 ‘하지만’의 역할인지라 양해 부탁드리며, 어떤 소식들에는 머리 위로 물음표가 동그랗게 솟아납니다. 책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주말을 반납하고 밤을 새워가며 인쇄기를 돌려야 할 일인지… 한강 작가의 책이 모두 팔렸다고 그 아버지의 책을 진열해야 하는 건지… 물음표가 갑자기 느낌표로 바뀝니다. 아, 이런 게 힙인가?..!!

 

영화 <망향의 노래>의 한 장면 [이미지: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노벨상에 힙을 갖다 붙이다니, 무엄한 발상입니다만 힙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뜨거운 한강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힙의 강렬한 흐름에 깔려 신음도 내지 못하는 약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출판 관계자이다 보니 의식하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대형서점에 한강 작가의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팔려 나갈 때 단골을 위한 재고 몇 권도 구하지 못해 체념해야 하는 동네서점이 있습니다. 모든 인쇄기가 책 하나를 위해 밤새워 비상으로 돌아갈 때, 원래 거기에서 인쇄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던 작은 출판사의 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물론 인쇄가 밀린 출판사들에 양해를 구하긴 했을 것입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위대한 성취가 만약 한국 소설, 문학 더 나아가 출판계의 암울한 상황을 호전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아마 작은 출판사와 작은 서점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축제에서 조용히 소외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누구도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기업의 이윤 추구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 속에 각자 최선의 방법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열광을 지나 고요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책이란 무엇일까? 왜 책을 만드는가? 그리고 읽는가?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야기를 짓고 책을 만들고 읽는 것이라고, 고리타분하고 낡아 보일지라도,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와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건 <망향의 노래> 중 첫 번째 영화입니다. 영화는 짧습니다. 아빠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딸을 마중하러 갑니다. 비를 맞으며 함께 집으로 옵니다. 아빠와 딸을 위해 엄마가 꽃을 볶아 밥을 준비합니다. 스토리도 이게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건 메콩강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는 곳까지 흘러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기약도 없이 살고 있는 아빠가 불렀던 노래 때문입니다. 어쩌면 책에 대한 제 마음이 겹쳐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강물이 위로 흐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98585.html

** <망향의 노래> 제작자이자 감독 중 한 명인 텐진 체탄 초클리Tenzin Tsetan CHOKLAY의 인터뷰 중에서

*** 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참고

 

 

 

‘소소한 리-뷰’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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