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하늘은 파랗고 초록들은 저마다의 모양으로 빛나던 날,

초록으로 가득한 책 <섬 위의 주먹>의 첫 북토크가 수원 행궁의 골목책방 브로콜리 숲에서 열렸습니다.

 

작은 골목길 2층에 자리한 책방은 여러 모양으로 난 창들과 가지런하고도 촘촘히 놓인 책들로 숲을 이룬 곳이었어요. 다녀본 서점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좋았답니다. 수원에 사시는 분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네요.

 

 

이 따듯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섬 위의 주먹>은 프랑스 소설가 엘리즈 퐁트나유가 쓰고 스페인 일러스트레이터 비올레타 로피즈가 그렸어요. 그들이 그려낸 세계에 매료된 정원정, 박서영 두 역자가 함께 번역했고, 북토크는 박서영 작가님이 진행을 맡아주셨어요. 박서영 작가님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죠.

 

기울어진 빛이 이쪽 창에서 저쪽 창으로 길게 누울 때, 발 빠른 독자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셨고요. 박서영 작가님의 책 낭독으로 북토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덟 살 난 소년이 놀랍고 신기한 루이 할아버지의 정원을 소개합니다. 풀숲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엄마는 할아버지가 특별한 손을 가졌대.

할아버지가 땅에 씨를 뿌리면 뭐든 쑥쑥 자라거든.

콩은 하늘까지 올라가고 아티초크는 아빠 머리만큼 커져.

파는 꼭 씩씩한 군인들 같지.

정원사들은 언제나 할아버지를 부러워해.

이런 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대.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지.

 

“다 땅이 가르쳐 준 거야.”

<섬 위의 주먹>

 

 

마지막 빛과 함께 어느덧 마지막 글까지 다다랐네요. 낭독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북토크가 이어졌습니다.

오른쪽 페이지는 표지로 쓰인 그림이에요. 사진으로는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푸른 정원을 담은 커다란 할아버지 손과 조그맣고 새하얀 소년의 손, 그들의 손에 작고 노란 구슬이 놓여 있습니다. 이 노란 구슬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눈썰미 좋은 독자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사실 노란 구슬은 이 그림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페이지에 등장해요.

로피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썰미가 무척 좋으시군요!

이 책에서 노란 구슬은 모든 그림을 연결해주는 작은 안내자예요.

글에 전형적으로 진행되는 서사 라인이 없고, 그림은 경험을 불러일으키지만 글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구슬이 페이지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인 동시에 두 주인공의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지요.

(구슬은 할아버지에게서 손자에게로 전달되는 씨앗이고,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비올레타 로피즈

 

 

이렇게 책 출간시 진행한 저자-역자 서면 인터뷰와 더불어 비올레타 로피즈의 작가 노트를 중심으로 작품 속에 담긴 주제와 주제를 표현하는 작가의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여기서는 원서의 표지 시안 작업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섬 위의 주먹> 원서 표지 시안 1

 

<섬 위의 주먹> 원서 표지 시안 2

 

<섬 위의 주먹> 원서 표지 시안 3

 

비올레타 로피즈가 시안으로 작업했던 표지 이미지입니다. 몇 가지 포인트가 있지요.

 

우선,

루이 할아버지가 본문에는 그려지지 않은 모자를 쓰고 있네요. 마치 화가 같죠? 루이 할아버지는 가난한 이민자로 글을 모르고, 자신만의 이상한 말들을 만들어내고, 새와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존 문법에 편입되지 않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어요. 최종적으로 선택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인물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시도했을 이미지였을 거예요.

 

두 번째,

이 표지 시안뿐 아니라 해당 작품의 본문에서도 그렇듯, 할아버지의 몸은 정원으로 소년의 몸은 하얗게 표현되어 있어요. 로피즈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퐁트나유의 글을 아주 여러 번 읽고 나서 제가 감지한 가장 중요한 감정은 충만함(fullness)과 텅 비어 있음(emptiness)이었습니다.
모험, 경험, 사람들, 삶과 죽음으로 가득했던 할아버지의 지난날의 충만한 인생과 아직 텅 비어 있는 어리고 호기심 많은 손자가 살게 될 인생 말입니다. 충만함과 그 깊이는 정원으로 표현했고, 비어 있음은 아이의 하얀 몸으로 표현했습니다.

비올레타 로피즈

 

 

그 밖에도 소년과 할아버지의 캐릭터 설정, 관계, 다양한 본문 시안들을 함께 보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찾았어요.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째 북토크에서 더 자세히 다뤄주실 예정이라 그때 후기 포스트로 다시 찾아뵐게요. 저자-역자 인터뷰도 곧 전문을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기대하며 기다려주세요_!

 

 

이날 그림책 속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최연소 청중으로 함께해주었어요.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이야기 듣고 날카로운 질문까지 던졌죠. :)

 

우리는 책이라는 결과물만 보곤 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는 과정을 봅니다. 하나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완성품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낄 때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숲에 들어가보기를 주저하지 않지요. 나무 사이를 걷고 그들의 일을 관찰합니다. 잎 하나 떨구는 일, 씨앗이 되는 일, 뿌리를 내리는 일, 새와 나비를 부르는 일을 말예요. 경이에 찬 아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겠죠. 그 모습에 덩달아 아이가 되는 건 또 얼마나 신기하고 근사한 일인지요.

이 책을 만나고, 또 이 책의 뒷이야기들을 만나고 난 후에는,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았던 루이 할아버지의 정원을 어디에서나 만나게 됩니다. 좋은 작품이, 좋은 안내자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이겠죠.

 

“Mettons les poings sur les iles”(섬 위에 주먹을 놓자)

 

그리고 작은 자랑. 정원정 역자님이 하사해주신 <섬 위의 주먹> 스탭 티셔츠랍니다. 앞으로도 이 티셔츠를 입고 종종 독자 분들과 만나려고 합니다. ;)

 

자주 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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