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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시회

나는 고양이 화가예요. 그림을 그리는 고양이 화가. 책상 위에 그림들이 쌓여갑니다. 나는 못 본 척 그것들을 구석에 밀어두었어요. 어쩔 수 없어요. 누군가 좋아해주길 기다릴 수 밖에 없어요. 꿀벌은 나가서 그림을 팔아보는 건 어떠냐고 조심스레 얘기했지만 그러면 그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는걸요. 그림 그리지 않는 것과 파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건 힘을 채워넣는 일이지만 그림을 파는 건 또 힘을 내야 하는 일이거든요.

똑똑

누군가 작업실 문을 두드렸어요. 누구세요?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옆집 어린이가 장난을 쳤겠거니 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아래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봐요, 나 여기 있어요. 꿀벌만큼 작은 목소리였어요. 그곳에는 더듬이를 꼿꼿이 세운 남자가 있었어요.

 

 

고양이 화가십니까? 그는 정중히 물었어요. 나는 당황스러웠어요. 모르는 동물이 작업실에 오자 내 공간이 낯설어지고 기분이 침침해졌어요. 그는 해맑은 얼굴로 내 발등 위를 뛰어올라 어깨까지 올라왔어요. 내 털이 잔뜩 곤두서자 그제야 사과를 했어요.

미안합니다. 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

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난 도시에서 그림을 팔고 있어요. 갤러리 뚤의 대표죠. 잠깐 이곳을 지나가다가 다리 건너 잡화점에서 당신의 그림을 봤답니다. 그림이 참 좋더군요. 당신만 괜찮다면 그림을 몇 점 사고 전시도 함께 해보면 좋겠는데요.

나는 또 털이 곤두섰어요. 혹시 그때 그림을 모두 사 간 손님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았어요. 나는 네, 네. 대답만 했고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대해 신난 목소리로 떠들었어요.

얘기만 들으니 꽤나 멋진 곳인 거 같았어요. 나는 예전에 꿀벌과 자주 가던 시내의 전시장을 떠올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구름처럼 부드러워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내 그림을 본다면!

빈약한 상상력은 이런 곳에서 빛을 발하는 듯 합니다. 그는 곧 만나자며 명함을 주었고 나는 그날 이후로 계속 전시를 꾸리는 일에 대해 생각했어요. 팔이 아파도 참고 그리고 그날 받은 그림 값으로 평소에 사보지 못했던 비싼 물감과 종이도 사고요. 전시의 제목과 초대할 친구들의 이름도 적어보았어요. 서랍장 속에서 선보일 그림을 추려두기도 했죠.

일주일이 지나도 전화가 없었습니다. 달이 바뀌고 날이 더워질 무렵이 되어도 연락이 없었어요. 꺼내둔 그림에 먼지도 쌓여갔습니다. 남자의 명함을 몇번이나 꺼냈다가 다시 넣어두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초조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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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고양이 화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들었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무사히 전시를 마쳤습니다. 갤러리 뚤은 내 상상 속에 지어진 넓고 근사한 전시장이 아니었어요. 긴 여름의 끝에서야 그는 자신의 갤러리에 초대했고 자전거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도시의 어느 골목 지하에 전시장이 있었습니다. 계단을 두 바퀴 돌아 내려간 나무 문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섰어요. 갑자기 남자가 열쇠구멍에 들어가버려서 나는 또 털이 곤두섰습니다.

 

 

구멍 속에서 옴짝달싹거리며 잠긴 문을 여는 것을 보며 내가 상상한 미래가 사실은 근거 없는 공상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이곳에서 전시를 하겠다고? 흥…. 나는 수염을 꼬면서 한참을 기다렸어요. 잠시만요! 금방이면 됩니다! 열쇠구멍 속에서 그가 소리쳤어요. 직접 잠금장치를 누르고 다니며 문을 연다고 했어요. 아무래도 자기보다 큰 열쇠를 들고 다니기는 버거울 테니까요.

그에게는 아주 아주 큰 공간이었겠지만 다섯 걸음을 걷자 벽이 나오고 손을 양 손으로 펼치자 양쪽의 벽에 손이 닿았습니다. 머리 위 천장에는 전등이 여러 개 달려 있어서 어둡지는 않았어요. 그는 또 내 어깨로 올라와 벽에 걸 그림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 그림들을 다 걸긴 어렵겠는데요? 그렇죠, 그래도 알차게 여러 번 전시를 했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한참을 혼자 궁시렁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며 보았던 싱그러웠던 초록잎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왜 그리 빡빡하고 답답해 보였는지, 갤러리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자 꿀벌은 의아한 얼굴이었어요. 작은 데서 전시하면 안 돼? 어차피 네 그림들이 크지 않잖아.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건 맞아.

그날 밤 아주 오래전 참가했던 첫 번째 전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비슷합니다. 그때도 머릿속엔 하얗고 반짝이는 전시장이 있었고 그림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나는 다만 어린 고양이 화가였어요. 처음 입선으로 당선된 공모전에서 전시를 한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었지요. 지금과 다른 것은 그때 전시했던 공간이 정말 상상 속 전시장처럼 새하얀 페인트로 칠해졌다는 거에요. 햇살이 잘 드는 도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어쩌면 금세 유명해질지도 몰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크고 넓고 멋진 공간에서 했던 전시에서 아무도 나의 그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화가여서 그랬을까요. 나중에서야 그 그림대회에 참가한 모든 동물들에게 입선을 준다는 것을 알았어요. 높은 천장 아래 걸린 몇 점의 그림들은 더 작아 보이고 그 앞에서 나는 무척 초라해졌습니다. 어쩌면 금세 유명해질지도 몰라, 같은 마음이요.

꿀벌의 질문에 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내가 풀죽었던 일이 의아하게 느껴졌어요. 고개를 누르는 바위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걸까요. 그 뒤로 여러 번 전시장을 꾸미러 도시에 가는 길에 길가의 풀들은 끊임없이 꽃을 피웠습니다. 그는 내 그림에 대해 물어보고 나는 그림의 제목과 가격을 정했습니다. 미리 생각해둔 제목으로 포스터를 만들고 친구들에게 초대장도 나누어주었어요.

그림 앞을 쉽게 지나쳐 가던 이들이 이 전시에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단 갤러리 뚤이 너무 좁기도 했지만요, 골목 지하의 계단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아저씨, 꿀벌, 옆집의 어린이네와 낯선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가끔 내 주제를 잊어먹어요. 화가는 그림을 그립니다. 다른 일들은 화가의 몫이라기보다는 나의 생활과 바람인 것 같습니다. 알려지는 일도 그림을 파는 일도. 꿀벌이 들려준 어떤 시인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시인은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등교를 시키고 슈퍼에 가서 캔을 정열하고 이름표를 붙이고 계산을 합니다. 일이 끝나면 다시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먹으며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고요. 밥을 먹고 아이들은 밖에 나가 놀고 시인은 아내와 난롯불 앞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합니다.

시인은 이때 손톱을 다듬거나 내일 할 일을 계획표에 적거나 시를 씁니다. 그제서야 시를 씁니다. 시인은 그가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시인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릅니다. 그의 생활에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떤 시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요. 그저 시를 쓰기 때문에 그는 시인이에요.

상상하고 욕망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그릇이 작게 태어난 것 같아요. 다행히 예민한 성질이 그릇에서 넘치는 오만한 순간을 쉽게 알아채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알아채는 순간 나는 아직도 덜 자란 고양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시가 모두 끝나고, 그림을 보여주는 일은 어쩌면 남자의 기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가님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요. 그리다 보면 쌓이는 것들이 화가가 하고 싶은 얘기들인 거예요.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저의 몫인 거죠. 날개를 문지르며 그가 말했습니다.

 

*시인의 이야기- 친구가 들려준 영화 <패터슨>의 줄거리를 고쳐 썼습니다.

 

 

 

‘고양이 화가’는 2021년 6월부터 10월까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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