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책방] 기다리는 일
글: 정한샘 출근하기 싫은 날이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이 아닌,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삶이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아침이 가끔 찾아온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으로 들어가 내 정신이 수용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선 책들을 상대하는 매일의 삶이 갑자기 버겁게 느껴지는 날. 그런 날이면 책방을 하겠다는 사람은 말리고 싶다던 수많은 책방 선배님들의 글과 말이 손에 손을 잡고 나를 감싸고 돌며 강강술래를 한다.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빙글빙글 도는 그 원을 간신히 끊고 기어 나와 나의 작고 노란 책방의 ...
[소소한 산-책] 순천의 책방들
마감이란 무엇인가? 마감은 우주를 생성하는 에너지입니다. 또한 세계를 구성하는 입자이기도 합니다. 이 절대적 존재의 압박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마감생활자들에겐, 적어도 그렇습니다. 마감이 시작이고 마감이 끝입니다. 마감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마감만이 최종의 확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 마감이 사라진다면 모든 예술 역시 사라질지 모릅니다. 마감생활자들은 마감 없는 일상의 홀가분함에 잠깐 취했다가 서서히 굶어 죽어 갈지도 모릅니다. 마감을 해도 마감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마감은 매번 새로운 얼굴로 영원히 회 ...
[소소한 산-책] 고양, 이랑
글: 이치코 마포구가 아주 ㅈㄹ.. 아니 엉망입니다.[*] 지난해 11월 마포구 관내에 있는 작은도서관에 스터디카페를 추가하려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슬쩍 한발 물러선 일이 있었습니다. 논란이 일자 마포구는 작은도서관을 폐관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재설계하는 것일 뿐이라며 해명했다지만, 글쎄요. 또한 도서관 예산의 30%를 삭감하라는 요구에 반발하며 이를 공론화(22년 11월)한 마포중앙도서관장을 직위해제(23년 4월)하고 파면(23년 5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괄호 안의 날짜를 보면 아주 일사분란하게 초스피드로 ...
[가정식 책방] 여긴 뭐하는 곳인가요?
글: 정한샘 1995년에 만난 그곳은 책방임이 틀림없었다. 루이스 버즈비가 <노란 불빛의 서점>을 펴내기 10년도 전이건만 그곳을 지금 표현해 보라면 딱 ‘노란 불빛의 서점’이다. 노란 불빛과 잔잔한 음악이 감도는 그곳에는 어깨에 숄을 두른 노년의 여성이 몸에 꼭 맞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는 골목은 좁고 길었다. 그 골목에 들어서면 잠시 후 우측에서 새어나올 그 노란빛을 상상하며 마음이 한 걸음 앞서 따뜻해지곤 했다. 등교할 때면 학교가 아니라 그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 ...
[이치코의 코스묘스] 다정한 반복
모처럼 자랑거리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살아오면서 무슨 자랑거리가 있긴 했었나, 싶네요. 가만 보자..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뜻 맞는 동무들과 직장인 밴드를 했습니다. 참 열심히 했더랬어요. 두 종류 악기로 두 밴드를 오가며 합주실에 모여 연주를 하고 가끔은 다른 밴드들과 합동으로 장소를 빌려 공연도 하곤 했습니다. 늘그막(?)에 재미가 붙은 취미라 그런지 초창기에는 이 정도면 직업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했던 것 같아요. 연습도 많이 하고 합주도 많이 하고 공연도 1년에 두 번씩이나 막 하고!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