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소묘: 레터] 6월의 편지, 사라진다는 것
‘저걸 보라’고 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가리키고, 빛을 밝히는 것. 하지만 우리의 주목을 요하는 건 이미 밝게 빛나며 손짓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목격하기 위해, 감성—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는 법’—을 발전시킨다. 나긋나긋한 희망과 꿈, 기쁨, 취약함, 슬픔, 두려움, 갈망, 욕망을—인간은 저마다 하나의 풍경이다. … ‘저걸 봐.’ 인간의 위기를, 누적된 평범한 축복을, 혹은 견딜 수 없는 상실을. 그리고 여전한 한 줄기 햇살을, 빨래하는 여자를, 도살된 ...
[소소한 산-책] 서울, (북새통문고) ②
글: 이치코 ※이전 글 읽기 : [소소한 산-책] 서울, (북새통문고) ① 1907년부터 1927년까지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간사(스티븐 제이 굴드에 의하면 ‘보스를 뜻하는 그들의 직함’)를 지냈던 찰스 두리틀 월컷은 1909년에 캐나다 로키산맥 고지대에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석 중 하나인 버제스 셰일 동물상을 발견했어요. 이 사건을 스티븐 제이 굴드는 <여덟 마리 새끼 돼지>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어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결정 ...
[소소한 산-책] 서울, (북새통문고) ①
글: 이치코 며칠 전 송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대체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상징적인 인물이라 뉴스와 방송, SNS에까지 추모의 마음과 목소리가 넘치며 마치 온 나라의 이목이 쏠린 듯했어요.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하셨다고 하니 일요일마다 방송을 보며 웃고 즐겼던 분들이라면 그 상실감이 무척 컸을 것 같아요. 저는 지난 34년 동안 TV를 거의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끼는 음악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돌아가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
[월간소묘: 레터] 5월의 편지, 비화
소설이나 시를 예술작품이라 할 때 그것은 책이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나, 그림책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된다. 이 육면체의 예술품은 물론 창작자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창작자에게 반한 이들이 공동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첫눈에 반한 창작자의 세계를 품고 펼쳐내며 풍성해질, 작고 아름다운 거주지를 만드는 일. 나의 일이다. [‘한눈에 반하다’] 주간지 <한겨레21>의 5월 2일자 발행호에 글을 실었습니다. ‘책의 일’ 코너로 총 4회 연재인데요. 첫회는 ...
[이치코의 코스묘스] 앙시앵 레짐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된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기존의 절대군주정을 일컫는 단어. 역사적으로는 그러하나 보통은 옛체제, 구체제라는 의미로 사용. 봉산아랫집 육묘의 정치체제는 영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되는 의회가 있지만 동시에 군주가 존재하는 나라들이죠. 이때 군주는 과거의 절대군주와 달리 헌법에 의해 엄격한 제한을 받기 때문에 정치적 실권은 거의 없고 다만 외교 등 일부에서만 상징성을 갖는 존재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