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어디 사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거예요. 자기 동네의 생활 반경에서 (근방에 거주할 것이라 예상되는) 누군가를 우연히 만난 경우라면 “아, xxx 2차에 살아요.”, “xxx사거리 아시죠? 거기서 xx동 방향이에요.” 등으로 대답하는 게 맞을 거예요. 동네의 구체적인 장소를 기준으로 위치를 설명해도 상대방이 알아들을 테니까요. 반면 제주도에 여행 가서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를 만났다면 “지금 광주 살아.”, “서울에 있지, 뭐.”, “합천이라고, 해인사 팔만대장경 있는 데. 거기 내려갔어.” 등으로 대답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경우엔 아무래도 시/군으로 나뉘는 행정구역 명칭이 상대방의 질문 의도에 가장 부합할 테니까요. 그리고 두 사례의 중간쯤 되는 광역 생활권(대표적으로 수도권)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 상황에 맞게 통용되는 다양한 기준들이 존재할 거예요. 보통은 구 단위 행정구역이거나 신도시, 아파트 개발 지역의 이름일 테죠. 이런 규칙은 누가 가르쳐주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에티켓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모든 규칙이 그렇듯 여기에도 예외는 있어요. 외국 낯선 도시의 게스트하우스에 우연히 여러 팀의 한국 여행객이 함께 묵게 되었고, 서로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고 했을 때,

“한국분이시죠? 어디서 오셨어요?”

“분당요. 그쪽은 어디 사세요?”

 

한국에서 지역의 자부심이 제일 강할 것 같은 강남, 서초 이런 동네 사람들마저 서울이라고 대답할 법한 상황에서도 왠지 일산과 분당에 사는 사람들은 고양이나 성남이라고 대답할 것 같지 않아 보여요. 일산과 분당은 행정구역상 정식 명칭이 고양시 일산구와 성남시 분당구라는 것과 상관없이 별개의 도시인 것처럼 취급되는 관습(?)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방송 같은 영역에서도 그렇게 다뤄지고 있고요. 왜 그럴까요? 짚이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사회 현상의 원인을 파헤칠 건 아니니까 각자 짐작만 하는 것으로 해요. 그런데 일산과 분당이 똑같은 제1기 신도시여서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신도시 개발과 연관된 지역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분당, 일산, 산본, 중동, 평촌의 5개 지역에 신도시 건설이 발표된 때가 1989년인데요. 그땐 아직 고양시가 생기기 전이었더라고요. 일산이 고양에 속해 있던 건 맞지만 고양시가 아니라 고양군의 일산읍이었어요. 그러니까 먼저 ‘시’의 자격을 얻은 건 일산이었다고 볼 수도 있어요. 1989년에 계획 발표와 동시에 신도시라는 이름을 얻었으니까요. 고양군이 고양시로 승격된 건 일산 신도시의 입주가 완료되던 1992년이었어요. 그렇게 보니 일산 사람들이 고양시에 산다고 안 하고 일산에 산다고 하는 게 (유래로만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반면 성남은 1973년에 시로 승격되었고 분당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던 1989년엔 이미 수정구와 중원구로 나눠질 만큼 규모가 있는 도시였어요. 일산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참, 그리고 최근엔 이런 대답도 종종 들리더라고요.

“어디 사세요?”

“판교요.”

 

* * *

 

이번 달엔 (일산 말고) 고양시에 산-책을 다녀왔어요. 산책자를 위한 책방, 이라는 소개를 내건 ‘플라뇌즈’는 (일산구 말고 덕양구에 있는) 고양시청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어요. 어딘가 우아해 보이고 프랑스적이며 입에 착 달라붙는 어감이 매력적인 플라뇌즈란 단어가 (번듯하게 산책자를 위한 책방이라고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뜻인지 몰랐던 사람이 저만은 아닐 듯해서(그렇..겠죠?) 이름부터 안내를 드릴까 해요.

flâneuse : flâneur의 여성형

flâneur : 산책을 하거나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 Personne qui flâne, ou qui aime à flâner (구글 번역)

이외에도 네이버 사전에는 ‘침대의자’, 구글 번역에서는 ‘유모차’라고 옮기고 있는데 그건 무시하고요. 플라뇌즈란 말은 미국 태생으로 파리와 리버풀을 오가며 살고 있는 작가이자 비평가인 로런 엘킨이 쓴 <도시를 걷는 여자들>이란 책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주 긴 부제(Women Walk the City in Paris, New York, Tokyo, Venice, and London)를 달고 있는 원제가 바로 <Flâneuse>거든요. 어쨌거나 이름의 뜻을 알았으니 책방의 정체가 조금은 밝혀진 셈이에요. 걷기에 관한 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건강! 서점이거나 책방의 대표님이 걷기를 아주 사랑하시거나.

 

 

책방에 들어서자 대표님이 반갑게 나와서 맞아주셨어요. 처음 왔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여기가 처음에 산책자를 위한 책방 콘셉트로 시작을 해서.. 이쪽을 보시면 걷기, 산책, 여행에 관한 책들이 있고요, 그다음에 여기는 소설이 있고요 이쪽은 에세이…’ 책이 진열된 각 구역을 일람하시며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셨어요. 나중에 책방을 나가면서 인사를 드릴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니 지금 인사를 드려야 하나, 잠깐 고민이 될 정도로요. 하지만 소소한 산-책의 원칙대로 인사는 뒤로 미루고 은밀하게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어요. 직사각의 일자형 공간에 중앙 매대가 있는, 그리 넓지 않고 어떻게 보면 단조로운 배치임에도 불구하고 인문서, SF, 그림책, 독립출판물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어요. 그런데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진열된 책이 거의 없었어요. 모든 책이 사람 키보다 낮은 책장이나 벤치에 놓여 있어서 고개를 뒤로 젖히지 않아도 책들의 제목을 살펴볼 수 있었고 팔을 머리 위로 뻗지 않아도 원하는 책을 꺼내 볼 수 있었어요. 별것 아닌 듯했지만 그 배치로 인해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상당히 편안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아마도 플라뇌즈만의 고유한 매력이라고 아닐까 싶어요. 앞 책이 뒤 책을 가리건 말건 무심하게 널브려 놓은 듯 책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었어요.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빽빽한 이중주차처럼 책이 앞뒤로 그렇게 겹쳐서 진열된 책방은, 헌책방 말고는 찾기 힘들 거예요. 아예 책장을 앞뒤 이중으로 해놓는 만화방이 있긴 하지만 거기 책장은 레일이라도 달려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중주차 앞쪽에, 뒤에 있는 책들의 제목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로 누워서 쌓여 있는 책들도 많았어요. 아마 진열될 수 있는 공간에 비해 책의 양이 많다 보니 들어온 순서대로 그렇게 뒤로 밀려나게 된 것이겠죠. 플라뇌즈에서 책을 구경하려면 다른 책방보다는 훨씬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했어요. 뒤쪽에 진열된 책 제목을 보기 위해 고개를 빼꼼 기울이거나 조심조심 책 사이를 헤집으며 숨겨진 책을 찾아야 했어요. 어떨 땐 누운 채 탑처럼 쌓여 있는 한 묶음의 책을 통째로 들어내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건 책방 대표님이 권장하는 책 구경 방법이기도 했어요.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쌓아놓은 게 무너지면 제가 치우면 되니까 편안하게 구경하세요.”

 

세상를 구성하는 모양의 기본이 되는 건 원, 삼각형, 사각형이에요. 아이들의 그림에서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동그라미와 세모와 네모로 환원되어 있는 걸 많이들 보셨을 거예요. 그림을 배우지 않아도 세 도형을 사용해 세계를 추상화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되나 봐요. 그런데 사각형은 사실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기 힘든 모양이란 걸 알고 계셨나요? 해, 달, 물방울, 산, 나뭇잎 등 동그라미와 삼각형의 모습을 자연에서 찾는 건 어렵지 않지만 사각형은 그렇지 않아요. 사각형은 인위적으로 가공된, 인류 문명을 상징하는 도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각형도 아니고 육각형도 아니고 왜 하필 사각형일까요? 저는 목공을 배우며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어요. 작은 물건부터 대형 건축물까지, 사각형으로 만들면 1)재료의 가공을 최소한으로 해서 2)가장 튼튼하게 3)공간의 낭비가 없도록 만들 수 있다는 걸 가구를 만들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책이란 물건도 사각형의 범주에 속해 있을 때가 제일 안정적인 상태예요. 네모난 모양에 사각형으로 된 공간에 직각을 이루며 배치될 때, 그러니까 책장에 가지런하게 꽂혀 있을 때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거죠. 보관도 쉽고 찾기도 쉽고 보기도 좋고. 그런데 플라뇌즈의 책들은 사각형의 배열을 벗어난 채 마치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자연의 모습인 양 진열되어 있었어요. 책방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색다르고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플라뇌즈 스타일?!

 

플라뇌즈는 큐레이션의 명시적 흔적이 거의 없는 서점이기도 했어요. 분명 책방 대표님의 어떤 기준에 의해 선별된 책들일 텐데 그걸 드러내는 요소가 없었어요. 책장과 선반에는 어느 분야의 책인지에 대한 안내 표시가 전혀 없었고(물론 대표님이 책방을 한 바퀴 돌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긴 했지만요) 진열된 책에는 독립책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큐레이션 노트가 거의 붙어 있지 않았어요. 한두 구역에만 최소한으로 메모가 적혀 있을 뿐이었어요. 이런 무심함(?)이 사각형의 틀을 벗어난 책방의 배치와 만나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걸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산책자를 위한 책방’ 이 말은 걷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방을 의미함과 동시에 책 사이를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책방이란 뜻이기도 하다는 걸요. 산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걸을 수 있는 길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특별한 장비와 옷차림이 없어도, 비록 조금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고 해도, 심지어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 같은 처참한 기분일지라도 길만 있다면 언제든 걸어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좋은 길이라면 훨씬 매력적인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걷는 거랑 제주의 사려니숲길을 걷는 걸 비교한다면, 아니 뭐하러 굳이 그런 비교를.. 아무튼 책 사이를 거니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은 하나의 길이 되어 우리를 반겨줄 거예요. 조경이 잘 된 정원 속 길도 있을 테고 하늘로 높게 자란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난 길도 있을 테고 세련된 도시의 밤거리 같은 길도 있을 거예요. 플라뇌즈가 보여준 모습은 낯선 모험의 길이었어요. 정돈되지 않은 듯 보이는 책더미에 푹 파묻히는 느낌, 그 속을 헤치며 책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는 모험, 낯설지만 책에 압도당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아늑함을 주는 길.

 

책방의 안쪽엔 계산대를 겸하는 대표님의 자그마한 작업 공간이 있고 그 뒤편 커튼으로 가려진 곳엔 커다란, 책방의 규모를 고려하자면 거대하다고도 할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어요. 그곳은 책방의 다양한 모임과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어요.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는 모임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최근 공지된 것들로는 ‘클럽 플라뇌즈: 버지니아 울프’, ‘<작별하지 않는다> 독서모임’, ‘#4월의스프S_F: 인간의 피안’ 등이 있었고요. 그리고 SNS에 거의 매일 책방지기의 책 소개가 하나씩 올라오고 있는데요. 그걸 하나씩 따라 읽으면서 어떤 큐레이션 노트보다 더 명징하고 울림이 있는 큐레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도시를 걷는 여자들>의 저자인 로런 엘킨의 다음 문장으로 플라뇌즈의 소개를 대신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말이에요.

 

“내가 이 책에서 그리는 초상은 플라뇌즈가 단순히 플라뇌르의 여성형이 아니고, 플라뇌즈라는 자체의 개념으로 인지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플라뇌즈는 밖으로 여행을 떠나고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간다. 가정이나 소속 같은 단어가 그간 여성에게 불리하게 사용되었음을 의식하게 한다. 플라뇌즈는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다. 플라뇌즈는 존재한다. 우리가 앞에 놓인 길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영역을 밝혀나갈 때마다 존재한다.”

 

플라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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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의 산-책

산책자의 책방이니만큼 걷기에 관한 책들이 소복했고 뺐다 꽂았다 들었다 놨다 오솔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걷는 여자>에 안착했습니다. 영국의 작가 리지 스튜어트가 런던 거리를 걸으며 보고 생각한 것들을 그리고 적은 책이에요. 그림이 좋고요. 도시의 거리를 걸어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난 도시를 걷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 속 장면들을 좋아한다. 나는 그들이 혼자이고, 활기가 있으며, 대개 멋진 코트를 입고 있는 점이 좋다. 비록 그들이 전체 큰 이야기의 일부이더라도 때로는 웅장한 장면 또는 사소한 장면에 속할지라도, 그들이 등장하는 그 몇 초 동안 그들은 줄거리의 얽힘과 매듭에서 빠져나와 그들 삶의 소음을 잠재우고 잠시 사라지게 하면서 도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단순한 존재로 등장한다.

나는 걷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걷는 것이 왜 나를 분명하게 바라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지 알아내려 애쓴다. 나는 그것이 불확실한 사람인 나를 확고하고 능력을 갖추고 전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걷는 것이 나를 머릿속을 떠나 세상으로 나오게 하기에 좋아한다. 걷기는 내가 삶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리지 스튜어트 <걷는 여자>

 

그리고 오솔길 건너편, 독립서점에 들렀다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독립출판물 코너에서 <베지 컬러스>를 골랐습니다. 일단 미색의 표지에 단정한 영문 제목과 출판사 로고, 각 호에 맞는 채소 혹은 과일의 그림이 색박으로 꾹 찍힌 모습이 눈길을 끌었고, 책을 집어들자 천으로 감싸인 장정이 손에 감겨 내려놓기가 어려웠어요. 게다가 내용은 비건 레시피. 걷다 보면 허기가 지기 마련이고 어쩐지 건강한 것들을 제 세포로 삼고 싶어지지 않겠어요?(응?) 4월은 노랑의 달이니 ‘창간호 : Red’와 ‘3호 : Green’을 뒤로하고 ‘2호 : Yellow’를 샀습니다.

이실장은 걷기와 이웃한 여행 코너에서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을 골라 왔어요. 한동안 20분 거리 내 공간에 한정된 생활을 보냈고 플라뇌즈로의 외출이 최근들어 가장 멀리 걸음한 것이었는데요. 좀 더 멀리 가볼 수 있다면 다음은 경주일 것이에요. 소소한 산-책에 소개할 날이 머지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책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발견한 정세랑 소설 <재인, 재욱, 재훈>의 서울국제도서전 특별판! 인터넷서점에 올라온 표지 이미지가 취향이 아니라 책방에서 발견하지 않았다면 영영 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실물은 색감도 후가공도 영롱하네요.

 

 

*책방을 나서며 오후의 소묘에서 왔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대표님께서 진열대에서 무언가를 꺼내오셔서 선물이라며 주셨는데 받아들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마치 <구름의 나날>에서 쏙 끄집어낸 것 같은 구름 모양의 초였어요. 책을 읽고 생각나서 사셨다지 뭐에요.(게다가 그걸 덥석 선물로..!) 그 다정한 마음 너무 감사드려요.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한 굿즈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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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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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 작업책방 ‘ㅆ-ㅁ’ ••• 번역가의 서재 ••• 한낮의 바다 ••• 책의 기분 ••• 리브레리아 Q ••• 책방 모도 ••• 동아서점 ••• 삼일문고 ••• 노말에이 ••• 한낮의 바다 ••• 라바북스 ••• 북스피리언스

2022년 – 동네책방 ••• 책방 시나브로 •••  플라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