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이번엔 구미에 있는 삼일문고에 산책을 다녀왔어요. 지난달 속초의 동아서점에 이어 조금 멀리 움직였네요. ‘소소한 산-책’을 나갈 서점을 고르는 기준에 충실히 따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책에 관심이 있고 덩달아 서점에 가는 일까지 좋아하는 분들이시라면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생활권 혹은 인접한 생활권에 작은 서점이 많이 생겼다는 걸 체감하실 거예요. 독립서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네서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소규모 책방들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지역서점의 중요한 수입원인 학습참고서를 과감하게 배제하면서 각자의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라고 불러도 될 만큼 새로운 문화 현상이 되었어요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소수였던 독립서점/동네책방이 이제는 전국 각지에 수백 개가 넘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확한 자료를 구할 수는 없지만 독립서점/동네책방의 수가 500개가 넘는다는 건 확실해요. 그러니까 매달 한 군데씩 ‘소소한 산-책’을 나가며 서점을 소개할라치면 1년에 12개, 10년에 120개, 40년에 480개… 아, 안 되겠네요. 책방이 많기도 하고 책 만드는 일이 바쁘기도 하여 한 가지 원칙을 정해서 서점 산책을 다니고 있어요. 낯선 곳으로 갈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짬을 내서 서점을 방문할 것, 그리고 ‘소소한 산-책’에 소개할 것. 속초의 동아서점이나 구미의 삼일문고는 꼭 가보고 싶었던 서점이에요. 진작 ‘소소한 산-책’에 등장할 서점 목록의 상위권을 꿰차고 있었죠. 하지만 방문 시기가 하필 이번 5월과 6월이 된 건 그 욕망이나 목록보다 그저 5월에 속초를, 6월에 구미를 가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오직 서점을 방문하기 위한 나들이를 간절히 바라고는 있지만 언제 그런 여유가 생길지는….

 

 

어떤 공간/장소이든지 입구에 섰을 때 느끼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입구에 조금 더 머물면서 보이는 전경, 이를테면 창이나 벽의 모습 혹은 공간/장소의 규모나 모양 등을 음미하고 싶게 만드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 그 공간/장소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도 있어요. 미묘한 차이 때문일 거예요. 건물을 예로 들자면 출입문의 색깔이나 재질, 포치의 디자인, 벽의 질감, 창의 모양 혹은 햇빛이 비치는 각도 같은 것들요. 쉽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몸 전체로 느껴지는 이 감각이 어쩌면 공간/장소의 본질적 매력을 설명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구미역에서 1km 남짓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삼일문고는 입구에 서는 순간 얼른 들어가서 책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공간이었어요. 건물의 바깥 테두리에서 현관까지 움푹 들어간 양쪽 외벽이 깔때기처럼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뭔가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느껴졌던 건지, 일반적인 현관과 달리 마치 커다란 창문처럼 통유리로 된 정사각 모양의 회전식 출입문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은 밖이 너무 더웠거나. 아무튼 자연스럽게 서점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었어요.

 

서점 내부의 첫 느낌은 묵직함 그리고 따뜻함이었어요.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단어예요. 묵직하면 왠지 차가울 것 같고 따뜻한 것들은 푹신푹신하고 가벼울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서점 구석구석을 한참 돌아다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만약 누군가 삼일문고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요. 참나무 책장,이라고요. 서점이라는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인테리어에 나무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보통 ‘서가’라고 부르는 공간은 책을 나란히 세워 꽂아서 책등이 보이도록 진열하는 곳인데 이를 위해서는 책장이 되었건 선반이 되었건 책을 층층이 나눠서 꽂을 수 있는 수평한 받침대가 반드시 있어야 해요. 서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말하는 ‘매대’는 책의 표지가 보이도록 펼쳐서 진열하는 곳이고 평평하고 넓은 판때기(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널빤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가 필요하고요. 그런데 이 받침대와 판때기를 나무가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드는 건 쉽지가 않아요. 휘는 힘에 약해서 곤란하거나(플라스틱) 투명한 재질로 인해 인테리어 콘셉트가 제한되거나(유리) 지나치게 무겁거나(금속) 하는 이유로 인해서 말이에요.

 

어떤 나무를 사용하는가는 공간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삼일문고의 책장은 모두 참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철제 구조물이나 벽에 설치된 선반은 다른 나무가 쓰이기도 했지만 가구로 만들어진 책장은 전부 참나무(오크)더라고요. 서점을 한참 구경하다가 이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어요. 원목 오크, 비싸니까요. 물론 비싼 만큼 값을 하긴 하죠. 공간의 내부 인테리어에서 원목의 비중을 높이면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는 건 일종의 상식이에요.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 수 있죠. 그런데 소나무 계열의 소프트 우드(물렁물렁한 나무-상대적인 개념)는 따뜻하면서도 조금 가벼운 느낌이에요. 반면에 참나무나 물푸레나무(애쉬), 호두나무(월넛) 등의 하드 우드(딱딱한 나무)는 공간을 묵직하게 눌러주는 느낌이 있어요. 소프트 우드가 대체로 밝은색이긴 하지만 꼭 나무의 색깔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물푸레나무나 단풍나무(메이플), 자작나무는 소프트 우드보다 훨씬 밝은색을 띠지만 재질의 단단함에서 나오는 미묘한 차이가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요. 참나무나 호두나무처럼 짙은 색의 나무라면 그 밀도가 훨씬 높아질 테고요. 그러니까 서점 내부를 가득 채운 참나무 원목 책장이 제가 느꼈던 삼일문고의 첫인상이었던 것 같아요. 따뜻하면서도 묵직하고 차분한, 어쩌면 삼일문고가 지향하는 바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삼일문고는 2017년에 문을 열었는데 보통의 독립서점/동네책방과는 조금 달라요. 대형서점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에요. 1층과 지하 1층의 서점 공간만 250평이고 카페나 문화공간까지 더하면 400여 평이라고 하니까요. 그러면서도 삼일문고의 시작은 여느 동네책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구미의 가장 큰 서점이 문을 닫았을 때 느꼈던 상실감에 일종의 책임감까지 더해져 서점을 열기로 했다고 해요. 삼일문고 대표님이 여러 인터뷰에서 했던 말인데 결국 책이 좋아서,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점을 해야겠다는 결심 이후 무려 2년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그 기간이 삼일문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삼일문고는 학습참고서를 팔지 않는데 이는 학습참고서가 주 수입원인 구미의 작은 지역서점들과 상생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해요. 또한 베스트셀러 코너를 따로 운영하지도 않고요. 지하에 있는 강연장과 행사장도 각종 기사나 인터뷰에서 삼일문고만의 특색으로 다뤄지고 있어요.

 

 

서점 대표님의 명함에 ‘북 큐레이터’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큐레이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해요. 실제로 서점에는 ‘종이약국 서가’, ‘OOO 시작책’ 등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을 묶어 소개하고 있어요. 어떤 코너는 명사의 추천이기도 하고 어떤 코너는 외부에서 공인된 리스트(이를테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정한 ‘2020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기도 하고 또 어떤 코너는 삼일문고가 가려 뽑은 목록이기도 해요. 그런제 저는 이렇게 다양하게 배치된 큐레이션 목록 말고 다른 특징에 주목을 하게 되었어요. 삼일문고 입구의 벽에는 다양한 행사를 안내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어요. 제가 갔을 땐 여덟 개의 행사가 소개되고 있었는데 그중 다섯 개의 행사가 (출판사의 판촉이 아닌) 서점의 자체적인,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기획 행사였어요. 또한 서점 내부에는 ‘구미’라는 도시에 맞춤한 큐레이션/이벤트가 여럿 있었어요. 구미 지역 작가의 책을 소개하거나 독서모임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된 북모임키트(8권의 책과 독서모임 가이드가 함께 든 상자), 북모임이 사랑한 도서 목록 등이었어요. 그리고 지하에는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목록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청소년 관련 주제로 이렇게 촘촘하고 폭넓게 책을 소개하는 서점은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제 눈을 사로잡았던 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지역’ 그리고 ‘대화’라는 키워드였어요.

 

삼일문고는 취향에 기반한 독립서점은 아니에요. 그럴 수 있는 규모가 아니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상업성만을 지향하는 중대형서점인 것도 아니에요. 서점이 유지될 정도로 매출이 발생해야겠지만 그걸 위해 베스트셀러나 돈 되는 분야의 책들로 매대와 서가를 채울 생각은 없는 곳이니까요. 저는 삼일문고가 구미에 사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는 서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강연을 기획하고 독서모임을 지원하며 (미래세대인) 청소년의 독서 경험을 위해 정성을 쏟는 일이 마치 대화처럼 느껴졌어요. 행사나 큐레이션이란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 대화를 위해 400평이나 되는 규모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지역(Local)이란 말은 특정한 면적이나 인구로 설명되는 단어가 아니에요. 어떨 땐 글로벌의 반대 개념으로 어떨 땐 중앙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는 말이죠. 삼일문고를 구미의 대표적인 지역서점이라고 부를 때는 두 가지 의미 모두를 포함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구미가 삶의 터전인 현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자 지방 도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한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말이에요. 삼일문고가 생긴 뒤 누군가는 더 행복해졌을 것 같아요. 어쩌면 제법 많은 사람의 삶이 풍요로워졌을 것 같고요. 분명히 그랬을 거예요.

 

서점을 나서면서 삼일문고가 구미 시민을 위한 지역서점으로, 문화 공간으로 오래도록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긴 대화를 나눈 기분과 함께 말이에요.

 

“책방을 시작할 때는 구미 시민들과 함께할 즐거운 상상만으로 마냥 들떠 있었다.”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 <동네책방 생존탐구> ‘출간 전 먼저 읽었습니다’ 중에서

 

 

﹅ 삼일문고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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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의 산-책

삼일문고에서 이치코 실장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여름비>와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이자 활동가인 김도현 선생의 <장애학의 도전>을 골랐습니다.

저는 좀처럼 발길을 뗄 수 없었던 청소년 서가에서 주디스 콜과 허버트 콜이 지은 <떡갈나무 바라보기>를 샀어요. 부제는 ‘동물들의 눈으로 본 세상’이며 추천 문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개미가 감각하는 세계, 뱀이 감각하는 세계, 두더지와 벌이 감각하는 세계는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당연하게 믿고 있던 세계의 모습에 균열이 가는 놀라운 경험을 이 책을 통해 할 수 있습니다.”

 

가깝게는 번역가의 서재도 산책해, 바실리 칸딘스키의 <점ㆍ선ㆍ면>을 샀습니다. 무엇도 재현하지 않고 오직 점, 선, 면으로만 구성된 칸딘스키의 그림에서는 음악이 들리는 듯한데요. 그 비밀을 엿볼 수 있을지.

“1. 살아 있는 것을 찾아내고, 2. 그것의 맥박이 들릴 수 있게 하며, 3. 살아 있는 것 속에서 작용하는 법칙적인 것을 확신하는 것.”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한 굿즈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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