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치코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는 질문과 종종 만나게 되는데, ‘얼마나’를 가늠하기도 전에 많은 출판인이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아이고,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습니다. 아니, 많이 읽어야만 합니다. 책을 잘 만들기 위해 혹은 많이 팔기 위해 필요한 업무 능력의 밑바닥을 떠받치는 주춧돌이 다독多讀이기 때문이에요. 편집자가 책을 곁에 끼고 살 정도로 많이 읽지 않아도 책 만드는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다독으로 갈고 닦은 이들보다 더 잘 만들기는 힘듭니다. 마케터가 책을 읽지 않아도, 심지어 자신에게 마케팅 미션으로 할당된 책을 읽지 않아도 그걸 홍보하고 판매를 촉진하는 업무를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독자들을 제대로 설득하고 구매를 이끌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출판사에서 관리 업무를 하는 사람들도 책을 많이 읽습니다. 총무, 회계, 제작 담당자들도 대개는 편집자, 마케터만큼이나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분들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굳이 출판사에서 일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형적인 사양산업에 박봉인 데다 대체로 고리타분한 이 업계에서 굳이..

 

그런데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이 한편으론 사실에 가깝기도 합니다. 특히 편집자는 정말로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무슨 책을 읽어도 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늘상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취미로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넋두리를 내뱉곤 합니다. 편집자란 직업이 좀 그래요. 길 가다 무심코 받은 요가센터의 전단마저 직업적으로 읽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에요. 아마도 오탈자를 찾고 사실관계를 의아해하며 주술 호응과 띄어쓰기를 점검하다가 흠칫, 스스로 놀라곤 할 거예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지난주에 동생을 만났을 때 평소 주말에는 뭘 하는지 물었습니다. 한창 호기심이 많고 활동 에너지마저 지구를 흔들어놓을 만큼 충만한 아홉 살짜리 조카가 하나 있어서요. 그 엄청난 존재가 주말에 엄마 아빠와 함께 얌전히 집에 있어 주리라곤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매주 무언가 행사와 사건을 만들어 놀아주는 것도 일이겠다 싶어 물었는데 동생의 답변은 의외로 단촐했습니다.
요샌 주로 도서관에 가. 친구들하고 노느라고, 가더라도 책은 거의 안 보지 뭐.

 

출판사에서 편집자나 마케터로 일하게 되면 서점과 도서관을 주로 일 때문에 다니는 처지가 됩니다. 마케터라면 서점이 곧 영업 활동의 무대이므로 일 때문에 방문하는 게 당연하고요. 편집자 역시 작가들의 홍보 활동이 책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커져서 각종 모임과 행사 때문에 서점과 도서관에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이 없으면 서점과 도서관을 찾지 않겠다 결심하는 출판인도 제법(어쩌면 상당수?) 있습니다.

아휴, 쉬는 날 서점에 왜 가?

그렇지만 이 말은 늘 책을 읽으면서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서점에 안 가겠다고 하면서 (일 없이도) 누구보다 자주 서점에 갑니다. 근처에 새로운 책방이 생겼다고 하면 호기심에 찾아가 보고, 요새 무슨 책들이 나오나 궁금해서 정기적으로 대형서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약속들 사이에 시간이 비게 되면 굳이 근처에 있는 책방을 찾아서 자투리 시간을 보내고 등등. 일인지 아닌지 분간도 못 한 채, 머릿속 목소리는 쉴 때라도 서점 근처에 가지 말라고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늘 책이 있는 곳 주위를 서성이게 되죠. 무슨 지박령도 아니고..

 

소소한 산-책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해 볼 수도 있겠네요. 일인가, 취미인가, 휴식인가, 휴식은 확실히 아닙니다. 저는 눕거나 누움에 준한다고 볼 수 있는 상태만을 휴식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앉아 있는 것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서 있거나 움직이는 건 무조건 노동입니다. 주말에 휴식을 위해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말이 안 됩니다. 산책이 가벼운 운동이거나 기분 전환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절대로 휴식은 아니에요. 저한텐 아닙니다.

그렇다면 취미, 좋아서 즐기는 행위인가? 네, 맞습니다. 마음에 꼭 드는 책방에 들어서는 일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데요. 마치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처럼 때론 황홀한 기분에 빠져 또 오고 싶다 생각하거나, 다음엔 어느 책방을 가볼까 기대하게 되죠. 이런 걸 취미라고 부를 수 있는진 잘 모르겠으나 즐거운 나들이란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매번 그런가, 하면 그건 또 아니란 말이죠.

가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열심히, 때론 먼 곳까지 찾아갔는데 소소한 산-책에 소개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그렇습니다. 책방의 인테리어, 큐레이션 등이 취향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진 않더라도 막상 레터에 쓸 만큼 이야깃거리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땐 거래처 출장 갔다 온 기분이 들기도 해요. 지난달 다녀온 곳이 아쉽게도 그랬습니다. 여러모로 근사하고 매력적인 책방이었지만 쓰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촉박한 마감에 쫓겨 작전을 바꿨습니다.

이번엔 도서관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시 은평구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11개 있습니다. 2022년 10월 5일 기준으로, 회사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렇네요. 특정 지역에 스타벅스 매장이 많다는 것은, 거기가 스타벅스가 많은 동네란 걸 의미합니다..(!?) 해당 지역의 교육, 문화, 소득수준 등과 연관되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이야긴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양보할래요..(!?)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동네도 있을 수 있고 적은 동네도 있을 수 있다고만 해두겠습니다. 참고로 서울시에서 은평구보다 스타벅스 매장이 적은 동네는 네 곳이에요. 강북구, 도봉구, 동대문구, 중랑구입니다.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로 89개의 스타벅스가 있고요. 은평구 옆 동네를 보니까 마포구가 35개, 서대문구가 21개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스타벅스의 많고 적음이 주민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거예요. 충성 고객이라면 곤란할 수도 있긴 하겠네요. 시즌마다 출시하는 MD 상품이나 굿즈를 놓치지 않으려면 남들보다 빨리, 많이 매장을 돌아야 할 테니까요.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조금 아쉬울 순 있으나 동네를 원망할 정도까지는 아닐 거예요. 거기가 아니라도 카페는 이미-충분히-많이-도처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특정 지역에 공공건물이나 서비스가 부족하면 그건 문제가 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해당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그 지역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걸 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고요. 시장이 만능이라고 외치는 자들은 거꾸로 말할지도 모릅니다. 인구가 줄고 (노령화 등으로) 소비 수준이 떨어지니까 그런 것이다. 돈이 안 되는데 어떡하냐. 손해를 보면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지 않으냐.

스타벅스라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병원, 학교,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공간이라면요? 아무리 이용자가 적고 적자가 나더라도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삶이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여기엔 도서관도 포함됩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특히 학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구산동에는 총 11개의 초∙중∙고등학교가 있었지만 문화시설은 하나도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학부모들이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2006년 5월, 11일 만에 2,008명의 주민이 서명하며 도서관 건립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은평구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업을 추진했고 2012년에 서울시의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2015년 11월에 개관했습니다.

도서관의 탄생 배경에서 보듯이 구산동도서관마을의 운영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은평도서관마을사회적협동조합’이 수탁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각종 모임이 활발한 편입니다. 도서관과 관련된 인스타그램 계정만 네 개가 있더라고요. 도서관 공식 계정, 청소년운영위원회 ‘청화’ 계정, 라디오 ‘마침표’ 계정, 청년문화회 ‘청문회’ 계정. 언젠가부터 도서관 운영의 핵심이 된 각종 강연이나 문화행사 역시 풍부하고요. 도서관 홈페이지의 인사말에 나오듯 ‘책으로 누리고 정보로 어우러지는 열린 공동체’로서 충분히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소소한 산-책을 통해 책방(혹은 책과 관련된 공간) 이야기를 쓸 때는, 글을 읽은 분들이 그곳에 흥미를 느끼고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주민 참여가 활발하고 다양한 행사가 있는 공간이라고 해도,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소소한 산-책에 소개할 이유가 되기에는 모자랍니다. 직접 함께할 수 없다면 그 많은 행사는 다 소용없으니까요. 참여의 기준으로 보자면 보통은 가깝고 친근한 우리 동네 도서관이 제일 좋기 마련입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을 택한 이유는 도서관의 공간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도서관에 대해 평가를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많다-책이 많다, 유용하다-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넓다-열람실에 여유가 있어 공부하기 좋다 등이 있을 수 있는데요. 그보다는 아름답다,는 감탄이 도서관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과 함께하는 근린생활시설로서의 동네 도서관이 아닌 이상, 대부분 건축물로서의 가치나 도서관이 자리한 입지적 가치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1938년 스팀난방방식을 도입한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학교 건물로 건립된 뒤 1977년부터 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건물 중 4개 동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정독도서관(서울 종로구 소재)이 대표적인 곳이에요. 거기에 가면 누구라도 세월을 견딘 건축물 특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됩니다. 남산도서관(서울 용산구 소재)도 그런 곳 중 하나일 거예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서 도서관 주변을 산책하며 조금만 걸어도 거대 도시의 풍경을 발아래로 만날 수 있는 그 입지의 절묘함을 사랑하지 않기는 힘들죠.

 

구산동도서관마을 역시 아름다운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정독도서관이나 남산도서관과는 결이 조금 달라요. 건축물이나 주변 풍광 자체로 압도하는 느낌은 없어요. 외양으로만 보자면 오히려 너무 아담하고 편안해서 (커다란 간판이 없다면) 도서관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로 소박합니다. 그런데 도서관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아름다움에 매료됩니다. 눈이 번쩍 뜨이지도 않고 감탄을 내뱉는 일도 없이 조용하게요. 저도 이 동네 이사 와서 처음 갔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저 독특한 곳이네,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이번에 다시 방문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공간이구나.

 

가정식 도서관.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빈터에 건물을 지은 게 아니라 도서관 자리에 원래 있던 다세대, 연립주택을 허물지 않고 일부 남겨서 재활용한 공간입니다. 인상적인 건 각 건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도록 즉, 도서관이 여러 개의 건물로 구성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주택과 도로를 내부로 품어서 하나의 건물이 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에요. 마치 층마다 수평 방향으로 널따란 바닥 판을 찔러넣은 것처럼 각 건물을 연결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 내부에서 빨간색 벽돌 주택의 외벽을 만날 수도 있어요. 수직 방향으로 1층부터 5층까지 뻥 뚫려 있는 공간도 곳곳에 있고요. 그리고 이런 특징 때문에 다른 도서관에서는 만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가지게 됩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설계 변경 과정

 

보통의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책장이 여러 줄로 평행하게 늘어선 서가가 없습니다. 바닥 면적이 좁은 주택의 기둥과 벽을 살렸기 때문에 애초에 그만큼 넓은 공간이 나올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책장이 전부 벽에 붙어 있습니다. 마치 가정집 인테리어처럼 말이에요. 골목을 따라 산책하는 듯한 실내의 꼬불꼬불한 통로 양쪽에는 거의 모두 책장이 설치되어 있어요. 다른 도서관에 비하면 서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는, 이를테면 특정 분야에서 관심 있는 어떤 종류의 책을 집중적으로 찾으려고 할 때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 대신 책의 도시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책장으로 담벼락을 쌓은 미로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건물의 구조적 특징 때문에 구석구석 밀실처럼 숨겨진 (‘만화의 숲’ 같은) 작은 공간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그 공간에서 개인의 서재가 조금씩 증식해 확장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 명의 서재를 레고 블록 조립하듯이 합쳐놓은 것 같기도 했어요. 도서관을 만들자는 목표 아래 지어진 것이 아니라 책장이, 서재가 마치 생명을 가지고 자라난 것처럼 보였어요. 1층과 2층이 다르고, 동쪽에서 볼 때와 서쪽에서 볼 때가 다르고, 왼쪽으로 꺾을 때와 오른쪽으로 꺾을 때가 달랐습니다. 어느 지점에 있어도 독창적이고 고유한 풍경을 만날 수 있어 거대한 고래의 배 속에 있는 것만 같았어요. 도서관을 산책하는 내내 책에 압도당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때론 책이 감싸주는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풍경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이라면 매일 와도 좋겠다. 날마다 눈만 뜨면 달려오고 싶다. 아니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 행복한 책의 도시, 가정식 도서관에서.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한 굿즈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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