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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흐리고 추운, 정말이지 이상한 유월의 첫날이었지만 마침내 도착한 동아서점은 밝고 따뜻했습니다. 하얀 외관에 나무로 포인트를 주었는데 내부도 꼭 같은 느낌으로 이어졌어요. 처음 들어선 곳인데도 몇 번이고 왔던 곳처럼 편안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릴 적 다니던 서점 생각이 나기도 하고요.

문을 열면 오른편에 옹기종기 모인 식물들 옆으로 특별한 자리가 눈에 듭니다. 책이 빽빽이 꽂힌 책장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과 서점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전경 사진들, 옛 서점에 꽂혀 있었을 오래된 책, 그리고 동아서점에서 펴낸 새 책들과 굿즈가 먼저 손님을 맞아주어요. 젠체 없이 소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 같습니다.

1956년 동아문구사로 시작해 1966년 상호를 동아서점으로 바꾸면서 삼대가 이어온 속초 최초의 서점. 햇수로 65년입니다. 오후의 소묘는 이제 2년인데 65년이라니, 아득하지요. 그렇지만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저절로 특별해지지는 않을 텐데요. 낡아가기만 한다면 쌓아온 시간도 스러질지 모르고요. 동아서점도 내리막길의 끝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으나 계속하는 쪽을 택했다고 합니다. 2014년 경영에 참여하며 동아서점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킨 김영건 대표는 직접 쓴 책에서 이렇게 고백했어요.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둔 건 바로 ‘책을 바꾸는 일’이었다. 학습참고서 위주로 판매해 오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단행본, 그러니까 진짜 ‘책’에 집중하는 서점으로 탈바꿈하고자 했다. 매장에 들여놓는 모든 책을 손수 고르고 주문하면서 다시 천천히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가자가는 마음이었다.”

-김영건, <속초>

 

그의 이야기를 담고 몸을 돌리면 손수 고른 책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신간, 분야로 나뉜 서가와 평대들. 다른 서점과 다를 것 없는 풍경이지만 구석구석 손글씨로 적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나의 몸’, ‘나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기로 했다’ 같은 큐레이션 타이틀이 서점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출간 1년이 지난 무루님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가 여전히 올라 있고요 :) 신간 평대에도 제가 좋아하는 저자, 편집자, 출판사가 한데 모여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그림책 코너도 서점 중앙에 아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큐레이션은 일곱 가지의 주제에 각각 그림책 한 권과 교양서 한 권을 함께 권하는 코너였어요. <산딸기 크림봉봉>과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가 한 자리에 묶이다니요! ‘성역할의 고정관념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남자도 요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68년 동안 남학생만 다니던 예일대학교에 처음 입학한 여학생들의 이야기는 어떨까요?’라는 코멘트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하나의 제안이었고요. 이 밖에도 ‘관찰하고 얻은 단서와 신호로 세상을 이해하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 바라보기’, ‘인간의 본성 탐구하기’,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 함께 익히기’, ‘사회문제(빈곤, 차별)에 대해 이야기해보기’ 같은 주제들로 책들이 묶여 있었어요. 어른과 아이가 다른 책을 읽고 하나의 주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도록 구성한 시도가 신선했습니다. 이런 시도를 비롯해, 특정 주제나 분야를 다루는 독립서점이 아닌 한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서점이 갖춰야 할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그 세심함이 어쩐지 지역성과 역사성, 서점의 정체성을 모두 담아낸 로고에서부터 느껴져요. 산 같기도 책 같기도 한 심볼에 단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드는 서체의 상호, 그리고 한자로 조그맣게 쓰인 개업년도 1956. 동아서점과 달실이 지은 <오래된 서점, 오래가는 디자인>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달실이 동아서점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속초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머금은 호수, 저 멀리 설악산의 울산바위까지 보이는 청명한 하늘을 닮은 푸른빛이 떠올랐다. 그와 더불어 동아서점 식구들의 꾸밈없는 모습과 서점 유리창으로 들어오던 포근한 햇살도 함께 담고 싶었다. 그렇게 맑은 푸른빛에 따뜻한 채도까지 포함되어 동아서점만의 따뜻한 색이 만들어졌다…

매니저님의 손글씨와 아내의 손그림으로써 완성된 월간 베스트셀러 차트, 속초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챙겨왔을 작은 조개 껍질들로 꾸며놓은 독서대, 서점 뒤편에 오순도순 앉아서 떠들 수 있는 작은 벤치들, 눈길 가는 요소마다 동아서점은 이미 그들만의 아날로그적인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그런 동아서점 고유의 ‘사람 손길이 닿은 따뜻함’을 이번 디자인 작업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두었다. … 사소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디자인으로 인하여 모두가 동아서점의 온기를 오래오래 기억하기를 바랐다.”

-<오래된 서점, 오래가는 디자인>, 달실 김기란 실장의 글 중에서

 

동아서점의 환한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온기를 품은 채 서점을 나섰습니다. 서점의 정면을 다시 마주하니 통창으로, 책들의 나란한 배가 나란합니다. 보통은 표지가 전면으로 보이도록 할 텐데요. 저는 책등보다 책배 보는 걸 좋아해서 거꾸로 꽂아두기도 하는 터라 그 장면이 더욱 오래 남아 있습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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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또 다녀오려고 합니다. 박혜미 작가가 그린 바다에서의 서핑 장면이 무척 아름다운 <빛이 사라지기 전에>(구, 독립출판물 <동경>)를 7월 중순 출간할 예정인데요. 동아서점에서 여름 동안 전시를 하게 되었거든요. 이번 휴가 계획은 속초로 세워보시면 어떠실까요?

 

속초 여행은 제가 이번에 동아서점에서 산 책 <속초>(김영건), 그리고 김영건 대표와 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아내 이수현 매니저가 쓰고 그린 지도책자 <아주 사적인 속초 여행지도>라면 충분하겠습니다. 동아서점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오래된 서점, 오래가는 디자인>(동아서점과 달실)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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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에는 또 다른 오래된 서점인 문우당서림과 그림책을 주력으로 하는 완벽한 날들이 있습니다. 칠성조선소에 있는 편집숍 안에 꾸려진 북숍도 좋았어요.

각 서점에서는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소설 <속초에서의 겨울>과 ‘지역의 사생활 99’ 시리즈 만화 중 정원이 그린 <고성> 편을 샀습니다. 완벽한 날들에서 제작한 속초 편선지가 아름다워요.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한 굿즈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소한 산-책’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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