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리

 

2018년에 독립출판물로 만들었던 <허락 없는 외출>. 좋은 기회를 만나 2020년 출판사를 통해 다시 나오게 됐다. 혼자 책을 만들 때는 대량인쇄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인쇄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해왔다. 역시 이 책도 재고가 두려워 소량인쇄로 만든 책 중 하나였기 때문에, 단가가 부담되어 서서히 그만 만들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2020년 늦봄, 오후의 소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장문의 메일로 정성스레 소개하시기를, 2016년 <위로의 정원, 숨>을 시작으로 내가 그간 만들었던 책들을 모두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허락 없는 외출>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출판사를 통한 재출간을 제안하셨다. 내 그림에 대한 큰 애정이 있고 깊은 이해를 하고 계신 출판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운 여름,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계약을 했다. 10월 말부터 약 한 달의 북펀드 기간을 거쳐 2020년 11월 25일 <허락 없는 외출>이 출간됐다.

 

 

2016년 이후로 출판사를 통한 기성출판으로는 4년 만이고, 두 번째 책이다. 첫 시작이었던 <위로의 정원, 숨>도 참 애써서 만든 책이었는데, 출판사 사정으로 빨리 절판이 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희귀본이 되어버렸다. 그간 혼자 만든 책으로는 <천천히 부는 바람(2016)> <잠을 위한 여정(2017)> <허락 없는 외출(2018)> <연필로 그리는 초록(2019)> <저녁(2019)>까지. 매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책으로 엮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나는 모두 다른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분께서는 내 작업이 가진 큰 아이덴티티에서 하나씩 톡톡 튀어나와 책이 되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만든 독립출판물은 대부분 ‘화집’에 가까웠는데, 그 중 유일하게 <허락 없는 외출>이 주인공과 서사가 있는 책이었다.

 

어쩌다 책이라는 매체가 내 삶에 들어왔는지 가끔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그림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책이라는 ‘형식’을 빌리면서 시작된 서툰 발걸음이다. 매번 어렵고 서툴고 어설펐지만 매년 뭔가를 만들어 왔다. 이번 <허락 없는 외출>의 재출간은 그간의 고민과 아쉬움을 덜어주는, 아주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난 사소한 일에 불필요하게 몰두할 때가 있다.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많은 사람인 것이다. 지나간 일을 자주 후회하고 곱씹었다. 마음이 유난히 불안하던 어느 날, 미완성된 내 마음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건의 결과일까? 왜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허락이 없으면 불안하고야 말까. 문득 떠오른 제목 <허락 없는 외출>을 벽에 적어놓고서는, 그려지는 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나의 시작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아 두근거렸다.

문밖으로 나가는 주인공을 그려놓고, 떠오르는 대로 그림들을 차례로 그려나갔다. 주인공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진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보았을 때, “왜 보호자 없이 혼자 다니지?”하는 의문과 걱정이 드는 정도의 나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안한 기분으로 문을 나선 주인공에게는 동료를 만들어주었다. 아주 전형적이면서도 성별에 구애되지 않는 것, 바로 공룡 인형 친구였다. 그림책을 펼쳐보면 하나의 화면 속에서 장면이 둘로 나뉘기도 하고, 시선이 바뀌기도 한다. 두 공간이 유사해 보이면서도 이어지지 않으면, 그 사이에 있는 사건이나 장면을 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무언가 찾아가는 이야기가 되리라 기대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림을 채워나갈수록 내가 어디서 왔는지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이 마음을 가지고 어디로 향할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일단 문밖으로 나온 주인공은 다시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채 비 맞아도, 큰바람에 두려워도, 숨 한 번 내쉬고 천천히 간다. 이 ‘어린 마음’은 책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삶, 단 하나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세상에서 흔들리며 나아가는 이야기 <허락 없는 외출>.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지만, 부디 읽는 이들에게 다양한 위안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의 끝에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와 함께, 잘 살아갈 의지와 용기를 다짐하는 책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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