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 집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잖아요. 어떤 분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은 후에 친정 동네에 가면 편안하고 좋다는데 저는 오히려 슬퍼요. 슬픔이에요 항상. 폭력과 욕설, 나에게 퍼붓는 저주 가득한 말들이 떠올라서 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곳이에요. 어른이 되고 내 가정을 꾸리고 나면 예전에 일어난 일들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거든요. 왜 우리 부모는 나에게 그랬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었어요. 내가 나를 느꼈을 때부터요. 그 불안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림이 유일한 도피처였어요.

 

김¯ 작가님 그림의 시작은 그때부터였군요.

 

혜영¯ 네. 부모님한테 거의 유일하게 감사한 것 하나가 미술 학원에 보내주신 거예요. 동네에 있는 화실이었는데 아이들 학원이 아니라 언니 오빠들이 있는 화실이라 큰 사람들이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공상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대가족이 다 함께 살아서 크고 작은 싸움들이 많았는데요. 몸은 같은 집 안에 있고 식구지만 저는 그 상황들을 항상 3자의 눈으로 봤어요. 스스로를 다른 곳, 다른 세계로 빼내 도망을 간 거죠. 입시 미술 학원에 갔는데 선생님이 붓에 여러 색을 섞어 화선지에 슥 그리니까 색이 확 퍼지는 거예요. 이런 게 천국이구나 싶으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예술이 사람의 삶을 구원할 수 있구나 느꼈어요. 이 안에 정말 천국이 있구나.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면 평범했던 사람이 시를 알게 되고 못 보던 아름다움을 보잖아요. 저는 정말 그걸 믿어요. 그림뿐만 아니라 예술로 인해서 사람의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거요.

 

김¯ 맞아요. 공감해요. 저도 처음으로 마음을 울리는 일을 찾은 게 그림이었어요. 어릴 때 이야기를 조금 더 해주실 수 있나요?

 

혜영¯ 어릴 때 부모님이 자신들의 불화로 인한 고통에 휩싸여서 정작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 처했는지 무관심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낳아보니 더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제가 만약 그렇게 괴로웠다면 제 아이에게 사랑을 주면서 위로를 받았을 것 같거든요. 왜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죠. 한번은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에서 귀하게 자란 친구네 초대를 받았어요. 예쁜 그릇에 담긴 반찬들, 다정하게 아이를 바라보면서 식사를 하시는 부모님을 그때 처음 봤거든요. 우리 집 식사 시간은 항상 싸우고 욕하고 때리는 게 일이었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부럽기보다는 그냥 궁금해지더라고요. 왜 신은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서는 이렇게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걸까? 저 사람은 무얼 잘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은 뭘 잘못해서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닐 텐데. 그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많이 했어요. 그렇다면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요. 돈이 많은 것을 떠나서 귀한 삶, 아름다운 삶이요.

 

김¯ 지금은 부모님과 관계가 괜찮으세요?

 

혜영¯ 사람마다 덮어둔 채 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동생이 많이 아팠어요. 어릴 때의 상처가 뒤늦게 튀어나온 거죠. 정신질환으로 폐쇄병동에도 가고 경찰서에도 불려가고요. 그런 기간이 10년 정도로 꽤 길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집안의 덮어 놓았던 문제가 발가벗겨지는 거예요.

 

김¯ 동생분이 아프신 원인을 부모님도 알고 계시나요?

 

혜영¯ 네. 병원에 워낙 오래 있었고 가족 상담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이 제게 사과를 했고 그 후에 제 마음이 좀 나아졌어요. 나를 방어하게 된 거죠. ‘그것 봐, 너희들이 잘못한 거야. 내 잘못이 아니야’ 이렇게요. 불안함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가족의 문제가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그 불안함이 평생을 따라다녔는데 조금은 벗어던지게 됐어요.

 

김¯ 부모님을 원망하시나요?

 

혜영¯ 왜 나는 이런 집에서 이런 일을 겪나 원망도 했었죠. 지금 와서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지나간 것을 너무 많이 돌아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런 일들을 겪은 후라 지금의 변화된 삶도 느껴보는구나 생각해요. 동생은 그저 불쌍하고요. 똑같은 환경, 똑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그 아이는 왜 자신의 인생을 망쳤을까. 우리 둘의 기질 차이도 있겠지만 저는 그림이나 공상 같은 벗어날 구멍과 세계가 있었고 그 아이는 그게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림은 제가 괴물같이 살지 않도록, 삶을 도와주는 역할이었거든요.

 

김¯ 그림이 삶을 변화시켰다고 느낀 후에 작가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신 거예요?

 

혜영¯ 아니요. 회사도 다니고 여러 다른 일을 하면서 저만을 위한 작업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방배동에 1층 공간을 작업실로 얻게 되었는데 지나다니는 분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어요. 그림을 그리셨던 분들이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과 대화를 하는데 이제는 제 그림을 세상에 보여줘도 될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혼자만의 그림으로만 갖고 있지 말고 보여주라고요. 저는 전업 작가로 활동한 게 얼마 안 돼서 제 작업 설명을 남에게 잘 못해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같이 울면서 대화를 하기도 하고요. 말하지 않은 제 감정을 상대가 느꼈다는 게 신기하고 위로가 되었다고 하니 이제 세상에 나가보자 마음을 먹었어요.

 

김¯ 정말 귀한 경험이었네요. 그 후에는요?

 

혜영¯ 인사동에 가서 일정을 잡고 이듬해 5월에 처음 개인전을 했어요. 작업실에서 만난 손님과의 대화 후에 어쩌면 내가 그림을 그리려고 태어난 걸까? 생각을 해봤어요. 평소에는 밝은 편이지만 저는 삶과 죽음을 항상 같이 생각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을 보면서 물었어요. 우리 엄마 아빠 말처럼 내가 그토록 쓸모없는 아이라면 저를 왜 만드셨냐고요. 그때부터 항상 모레쯤 죽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김¯ 내일모레요?

 

혜영¯ 네. 내일 죽으면 너무 무섭잖아요. 오늘이나 내일 죽으면 하고 싶은 일을 못 해서 억울하니까. 모레 죽는다고요. 오늘은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고 내일 정리하고 모레 죽어야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지옥 같은 집에서 태어난 게 내 잘못도 아니고요. 사람이 살면서 힘든 일을 겪을 수밖에 없잖아요. 너무 핑크빛으로 살았던 사람이 처음 힘든 일을 겪으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나의 근본은, 내 삶은 너무 거지 같다고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한 거예요. 힘든 일이 생기면 원래 그렇다고, 원래 힘든 건데 그동안 잠깐 좋았던 거야 그렇게 생각했어요.

 

김¯ 음. 마음이 너무 아픈 이야기예요. 잠깐이라도 좋았던 때는 언제였어요? 그림 외에도 좋아하셨던 거요.

 

혜영¯ 음. 뿔테안경이랑 모자를 쓰고 동대문 시장같이 북적북적한 곳에서 사람들 구경하는 걸 좋아했어요.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저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데 나는 그 사람을 보잖아요.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까 생각해 보고요.

 

처음 다녔던 대학교는 너무 나가기가 싫어서 일 년 내내 누워만 있었어요. 가만히 누워서 사람들은 왜 사는 걸까 그런 고민을 했었거든요. 첫 번째 학교를 그만두고 재수 삼수를 해서 다른 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졸업쯤에 보니 전업 작가를 하기에는 그만큼의 깡다구도 없고 실력도 그냥저냥인 것 같더라고요. 조교실 통해 말레이시아에서 하는 일거리가 있다길래 부모님께 여쭤보지도 않고 떠났어요. 3개월 만에 그만두고 한 달 동안 태국 여행도 가고요. 그때는 모레 죽을 거니까 무서운 게 없었어요.

 

삶의 조그만 부분들에서는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 안 죽으면 모레쯤 죽어야지 생각하고 산 거예요. 무조건 낙천적인 것보다는 약간씩 비관적인 것들이 오히려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김¯ 아이를 낳은 후에도 같은 생각을 하셨나요?

 

혜영¯ 사실 아이 낳고 초반까지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현실을 겪으며 책임감이 생겼어요. 모레 죽으면 이 아이는 어쩌지 싶은 거죠. 그 후에는 아이가 커다란 위로가 되기도 했고요. 남편은 제가 생각했을 때 이런 아빠가 나에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났어요.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가 너무 아이에게만 집중을 하면 소외받는 기분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게 너무 치유가 되었어요. 남편이 아이에게 주는 사랑을 바라보면 이게 부모의 사랑이지 생각이 들면서 치유가 돼요. 그래서 큰 비관적인 생각들은 좀 덜 하게 되었어요. 비관적 낙천주의자인 거예요.

 

김¯ 마지막으로 꽃을 자주 그리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비관적 낙천주의자가 그리는 꽃은 무슨 의미를 가졌나요?

 

혜영¯ 제 스스로의 평화를 위해서 붓을 들고 꽃을 그리지만 추상이라고 생각하며 그려요. 형태나 변화하는 모습은 관찰을 하면서 그리지만 색은 제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색이고요. 꽃을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표정과 얼굴이 보여요.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과정 속에 있는데 그림을 보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참 좋겠죠. 그런데 사실 작업할 때 남한테 보이는 건 신경을 많이 안 써요. 제가 거기에 빠져 있으니까요. 상대방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가 그 상대가 되는 걸 상상해 봐요. 길 가던 고양이를 볼 때, 비둘기를 볼 때, 내가 꽃이라면 저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려요.

 

 

<이 안에 사랑이 있구나>, 50x50cm, 광목에 채색, 유화, 2021

 

대가족이 모여 사는 집 한구석에 자꾸만 낙서를 하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 주변은 시끄러운 욕설이 오가고 커다란 몸짓들이 날아든다. 아이는 그런 모습들이 생경하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이들이 북적북적한데 자꾸만 그곳에서 자신을 빼낸다. 도망간다.

 

영화에서만 나올 것 같던 따듯한 오렌지빛 저녁 식사를 친구네 집에서 실제로 보던 날 아이는 부러운 마음보다도 다른 이의 삶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서는 왜이리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거냐고 신에게 묻는 밤이 길다.

 

아이는 자라서 또 다른 북적북적한 장소에 서 있다. 모자와 안경을 눌러쓰고 모르는 사람들을 본다. 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귀한 삶을 살고 싶댔는데 그래서 자꾸만 다른 곳을 봤던 걸까.

 

어린 여자아이는 자라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일 죽는 것은 무서우니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일 정리하고 내일모레쯤 죽어야겠다고 생각해 오던 그에게 책임지고 싶은 사랑스러운 여자아이가 생겼다. 이제는 선을 그린다. 아주 가는 세필로 꼬박 두 달을 긋고 또 그어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킨다. 선을 그을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아 위로를 받는다. 자꾸만 발가벗겨지는 상처들 위에도 선을 긋는다.

 

오늘은 나와 만나 지난한 이야기를 한다. 고되다 못해 애처로운 이야기들을 웃으며 전하기까지는 몇 겹의 마음이 필요했을까. 그를 앞에 두고 도저히 울 수가 없어 참고 또 참은 후에 그 덕분에 알게 된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며 훌쩍인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작은 섬마을 우체부 마리오가 유명한 시인 네루다를 만나 시와 은유에 대해 알 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네루다는 먼 곳에 있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줄 것을 청하고 마리오는 생각 끝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인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짧게 대답한다. 섬마을에서의 망명이 끝난 후 조국으로 돌아간 네루다를 위해 마리오는 섬이 가진 소리들을 모아 녹음한다. 마을의 아름다움을 겨우 베아트리체라고 표현하던 남자는 섬의 또 다른 아름다움들을 발견하고 모은다. 한 겹 더 시인의 눈으로 섬을 보게 된 마리오의 모습과 그를 돕는 우체국장의 귀여운 뒷모습이 마음에 남지만 무엇보다 이 문장들을 잊을 수 없어 옮겨 적어 본다.

 

칼라 디 소토의 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에 부는 바람

덤불에 이는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고통의 성모 교회 종소리와 신부님

별빛이 반짝이는 섬의 밤 하늘

아기 파블리토의 심장 박동 소리

 

이 문장들은 그가 오늘 내게 해준 말들과 흩어졌다 다시 또 겹쳐진다. 마리오가 시를 만나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던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 게 된 것처럼 어린 그도 화선지에 물감이 퍼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려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림이 나의 삶을 변화시켜 줄 것이란걸.

 

나도 나의 그림을 그린다. 더 이상 집에 대한 마음이 서글프게 남지 않기를 바라며 커다란 바위들을 만든다. 슬픔을 막아내기에 이 정도면 충분할지 고민한다. 그럼에도 물기 어린 시련이 분명 올 테다. 그조차도 잘 이겨내기를.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일 정리하고 모레 생을 마감하지 않기를. 오늘은 길 가던 고양이가 되어보고 내일은 꽃이 되어보고 모레에는 또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 그 시선들을 상상해 보기를. 덮으려 해도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지난날들을 버텨준 그 대단한 어린아이를 위해서 오늘도 잘 지내기를 바라본다.

 

 

 

*인터뷰이로 참여해주신  모든 혜영 님께 감사드립니다.

 

 

‘조용함을 듣는 일’은 2021년 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었습니다. (연재명 ‘김혜영의 혜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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