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이치코의 코스묘스] ⑧ 혼돈의 카오스

“고양이란 대체 뭘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말이에요. 한둘이라면, 고양이란 저런가 보다 하며 무심히 넘겼을 것도 같아요. 그런데 매일 다섯 고양이와 부대끼며 살다 보니 날이 갈수록 고양이의 정체를 모르겠어요. 이놈과 저놈의 차이가 너무 커서 얘네들이 같은 종이란 말인가 싶을 때가 많아요. 공통점이라고 부를 만한 건 잠을 자는 시간이 많다, 내가 부를 땐 절대로 오지 않고 지가 필요할 때만 다가온다, 정도나 될까요? 그것 말곤 다섯 아이가 정말 제각각이에요. 엉덩이를 두들겨 주면 좋아하는 아이, 박치기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 높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⑦ 빈 책상

살다 보면 빈자리가 생길 때가 있어요. 사소하게는 물건의 빈자리가 있겠죠. 한 번도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 다들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갑자기 물건이 고장 나 못 쓰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죠. 물건의 빈자리는 대개 금세 채워지기 마련이에요. 똑같은 것 혹은 비슷한 물건을 다시 구하면 되니까요. 손에 익은 물건일수록 허전함이 크긴 하겠지만 곧 새 물건에 익숙해지게 돼요. 잃어버린 것과 새로 얻은 것이 순환하며 일상의 바퀴가 멈추지 않도록 자기 역할을 이어가곤 해요.   사람의 빈자리도 보통은 그래요. 명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⑥ 잃어버린 시간

삼삼이를 위해 열어두었던 현관문이 닫혔어요. 이제 골목을 방황하며 쌓였던 고난의 흔적을 지워야 했죠. 먼저 목욕을 시켰어요. 어딜 어떻게 보아도 예쁜 삼삼이지만 길냥이 생활로 인해 꼬질꼬질해진 상태였거든요. 고양이를 모시는 게 처음인 데다 아깽이가 아닌 성묘를 집에 들이자마자 씻긴다는 건, 아휴,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게다가 삼삼이의 성격은 또 얼마나 까칠한지. 난리, 세상에 그런 난리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혈투를 벌였어요. 돌이켜 보면 삼삼이는 길냥이 생활을 경험한 것치고는 깨끗한 편이었어요. 몸에 흰 부분이 많아서 어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⑤ 굴러온 돌

느닷없지만 운명 같았던 첫 만남 , 서로를 탐색하며 친밀감을 쌓던 시간, 함께 살기로 결정했던 다짐. 얼핏 인간의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저와 삼삼이의 이야기예요. 삼삼이는 제 발로 절 찾아왔어요. 저와 삼삼이는 한참 동안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며 우정을 쌓아갔어요. 삼삼이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을 때,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적 성장을 경험했어요. 길에서 집으로 생활의 공간이 바뀌었던 삼삼이만큼이나 저도 큰 변화를 겪었어요. 그전까진 제가 좀 엉망이었거든요. 자연이나 동물, 환경보호에 관해 생각하며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④ 각자의 자리

우리에겐 누구나 각자의 자리가 있어요. 그렇지만 모두가 똑같은 자리를 가진 건 아니에요. 왜인지, 언제부터인지 알 순 없지만 자리에는 높낮이가 정해져 있었어요. 높은 자리는 더 멀리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겠죠. 아마 낮은 자리의 풍경보단 좋은 풍경일 거예요. 높은 자리의 사람들은 말할 거예요. 각자의 높이까지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때론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어떤 각오를 했는지에 관해서 말이에요. 맞아요. 높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나 좋은 것이라면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주어질 리는 없죠. &n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