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한테서 시작해 사람 사이에 흘러 다니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 있어요. 미운 말도 있고 고운 말도 있죠. 미운 말은 차갑고 뾰족하고 고운 말은 따뜻하고 도톰해요. 사랑, 우정, 연민, 존경 같은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포근하게 이어주는 고운 말들이죠. 우정은 그중에서도 가장 도톰하면서 조금 독특한 단어예요. 말 안에 공간이 담겨 있거든요.

 

사랑이나 연민, 존경 등은 마음이 향하는 대상만 있으면 생기는 마음이에요. 사랑하는 사람, 무엇에 대한 연민, 누구를 향한 존경처럼 대상을 향한 마음의 에너지를 담은 말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내가 마음의 대상과 무언가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나와 마음의 대상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해도 생길 수 있는 마음이죠. 사랑이나 연민이나 존경은 그래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생겨나기도 하죠. 그래서 어쩌면 일방적인 마음일 수도 있어요.

 

 

우정은 달라요. 마음의 목적지뿐만 아니라 출발지도 함께 있어야만 생길 수 있는 마음이에요. 일방적인 우정이란 있을 수 없어요. 나와 무언가를 공유하지 않는 친구하고는 우정이 생기진 않아요.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든 현재의 삶을 공유하든 미래의 희망을 공유하든, 나와 친구를 함께 설명할 수 있는 배경이 있어야만 해요. 물론 그런 게 없어도 친구일 순 있겠죠. 하지만 우정의 공간에 초대받은 친구는 아니에요. 우정에는 반드시 서로를 연결하는 길이 있어야 해요.

 

내가 가진 우정의 공간을 확인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먼저 친구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그다음에 나를 친구와 나란히 세워 보세요.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세요. 그곳은 어디인가요? 나와 친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학창시절 교실에서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장면이 떠오를 수도 있어요. 늘 함께 가서 군것질하던 조그만 분식집에 있을 수도 있고요. 그곳은 극장일 수도 있고 공연장일 수도 있고 여행지일 수도 있어요. 또는 친구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과 교차로와 동네 이름과 전철 노선의 색깔일 수도 있어요. 어때요? 친구를 생각한다는 건, 우정이란 건 결국 공간과 연결되어 있지 않나요?

 

 

<마음의 지도>는 우정의 공간에 관한 책이에요. 주인공이 학교를 마치고 친구 루시아와 함께 집으로 가는 이야기예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친구들의 집과 동네 이야기예요. 주인공과 친구들은 서로 모르는 게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래요. 아, 성만 빼고요. 그래도 상관없대요. 이름도 가끔 까먹는다는 걸요. 주인공에겐 친구가 어디 있는지, 어느 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해요.

 

친구끼리 이름 같은 건 상관없어요.

어디 있는지만 알면 되니까요.

 

 

<마음의 지도>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그림 작가인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이에요. 주인공이 친구들을 소개하고 친구들이 어디에 사는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림에서는 주인공과 친구가 만나는 일이 없거든요.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책의 구석구석에 꼭꼭 숨어 있어요. 대신에 친구들이 사는 집, 주인공의 다니는 길, 친구들과 함께 노는 곳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보여주죠.

 

주인공이 항상 혼자 있도록 이야기를 계획했다. 친구가 존재하지 않을 때 장소만 남는다. 친구들을 장소로 대체해 결말에 고조될 감정과 대비되도록 긴장을 조성했다.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그렸고 주인공의 친구들을 숨기는 것을 즐겼다. 독자는 이 친구들의 장소에 초대될 것이다.

-비올레타 로피즈

 

 

우정은 사랑의 감정에 비해 구체적인 감정이에요. 사랑의 이유를 설명하는 건 힘들지만 우정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친구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지 어떤 공간에 함께 있는지, 우정의 이유는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이거든요.. 우정의 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지만 결코 그 속에서 길을 잃는 법이 없어요. 친구와 함께 걸었던 길, 친구를 기다리던 광장, 친구가 떠나가 버린 도시… 감정이 켜켜이 쌓이고 사람의 온기가 녹아 있는 공간이 ‘마음의 지도’가 되어 우릴 안내하고 있으니까요. 어떤 내비게이션보다 정확하거든요.

 

아이는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가장 기쁜 장소들이 어디인지. 마음을 나눌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이제 막 자기 세계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우정으로 그린 한 장의 지도를 갖는 것은 세상 전부를 가지는 일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

 

 

<마음의 지도>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어요. 이 책의 작가들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친구는 어디에 있나요? 우정의 공간은 어디인가요? 혹시 길을 잃은 건 아닌가요?

 

 

‘마음의 지도’는 잘 챙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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