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묘 2019년 십일월의 편지

에이미

“에이미, 네 작은 중심엔 뭐가 있어?”

화면 밖에서 닉이 묻는다. 멋쩍게 답을 피하며 담요 아래로 숨는 소녀의 이마 위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영원의 햇빛이 부서진다.

-김혜리 「Back to Black」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시월엔 강렬한 향으로 코끝부터 사로잡는 커피를 전했어요. 이달엔 입안에서 깊은 밤이 퍼지는 커피를 골랐습니다. 오랜만에 소개해요. 아주 작은 콩이지만 그 안에 짙은 풍미를 품고 있는 케냐의 피베리입니다. 연말의 기분으로 해를 돌아보며 기본을 다시 두드려요. 나의 작은 중심엔 무엇이 있을까. 단단하게 여물고 있을까. 비록 부서진대도 무언가를 품고 있을 땐 빛난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월간 소묘 2019년 십일월의 편지

에이미

“죽음이 삶에게 그러하듯, 쇼트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그 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해의 마지막 쇼트를 남겨둔 십일월의 끝에서, 하루와 하루가 모여 달이 되고 해가 되는 일에 대해 곱씹는, 조금 이른 송년을 시작했습니다. 여느 때보다 로스팅 시간을 길게 잡아 씁쓸한 맛을 끌어낸 것은 연말의 기분이 더해진 탓일 테죠. 쌉싸름한 커피 한 잔을 놓고 열한 달 삶에 묻은 검정들에 이름을 붙여봅니다. 따듯한 검정이 거주하는 잔 속에서, 책 속에서, 우리의 거처를 발견하면서요.

나는 문득 이해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휴식할 수 없는 영혼들이 스크린에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하는 이유를.

-김혜리 「”그렇게 날 보고 있으니 널 꼭 안아주고 싶구나”」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