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

 

[월간 소묘] 6월호는 ‘식물’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 잔의 커피가 식물에서 비롯된다는 간단한 사실을 커피를 마시기만 할 때는 알아채지 못했어요. 원두 이전의 생두를, 생두 이전의 열매를, 열매를 여물게 한 해와 바람을, 줄기와 뿌리가 내린 땅을, 함께 느꼈으면 합니다.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 『식물 산책』과 식물의 신비로 태어난 작고 동글동글한 피베리peaberry 커피를 전해요. 첫 번째 커피는 쌉싸름한 첫맛 뒤에 기분 좋은 산미가 이어지는 말라위 피베리입니다.

두 번째 커피로 또 인사드릴게요. 싱그러운 유월 되세요 :)


 

 

7월호

 

“Cor cordium. 누군가에게 이렇듯 진실한 말을 하는 건 처음이야.”

[여름의 소묘] 두 번째 ‘코르코르디움’을 전해요. 엘리오의 여름을 닮은 에티오피아 시다마 커피에 이어 이번에는 올리버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엘살바도르에서 탄생한 고급 품종인 파카마라 커피예요. 콩이 굉장히 큰 편이고 다른 종에서는 찾기 어려운 허브향과 감칠맛을 품고 있어요. 아이스로도 좋아요. “얼음에서 햇살로 단번에 바뀌는 그”처럼.

 

El Salvador SHG EP Finca El Barbaro

El Barbaro / Pacamara / SHG / 1,250m / Yellow Honey

Peach, Cranberry, Asparagus, Pear Juice, Sweet, Well Balance


 

 

9월호

 

“여름의 끝에 선 사람들의 아쉬움, 후련하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자락에 올이 풀린 것처럼 허전한 마음. 이번 여름 참 대단했어, 아주 징글징글해! 라고 말하면서 돌아서는 등 뒤로 내려앉는 뭉클함. 여름의 끝에 우연히 보게 된 해 지는 풍경 앞에서 뭔가 아주아주 커다란 것이 지나갔구나, 생각하는 것.” -박연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구월의 소묘] 첫 번째 ‘여름의 끝’을 전합니다. 안개 숲으로 유명한 콜롬비아 국립공원 지역에서 재배된 타타마 커피는 생산의 전 시스템이 이 지역의 자연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해요. 지금 이 계절에 딱 맞는 포도의 산미와 초콜릿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마신 후에는 입안에 달고나의 달콤쌉싸름한 맛이 남아 있는 듯해요. 낮은 온도(90도 / 물이 끓은 포트에서 커피주전자로, 커피주전자에서 포트로, 포트에서 커피주전자로 물을 옮겨주시면 딱 알맞은 온도가 됩니다)에서 천천히 내려주세요. 깊은 부드러움이 여름이 지나간 자리를 메워줄 거예요.

 

Colombia Tatama Finca El Cairo

Caturra / 1,700~1,900m / Washed / Grape, Chocolate, Macadamia, Biscuit, Brown Su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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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지나자 더 웅장해지는 풀벌레 소리가 걸음을 멈춰 세웠습니다. 가까스로 삶을 연장해보려고, 혹은 후세에 유전자를 남기고 스러지는 중이므로 이리도 아우성일까요?” -박연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구월의 소묘] 두 번째 ‘여름의 끝’ 편지를 쓰는 오늘은 처서가 한 달 지난 추분입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에요. 계절을 밤과 낮의 길이로 헤아립니다. 추분, 동지, 춘분, 하지, 이런 절기들이 제게는 더 의미 있어요. 추분에서야 아 이제 밤이 길어지겠구나, 정말 여름이 끝났구나, 따듯한 커피가 절실하겠구나, 합니다. 이번에 보내드리는 커피는 긴 밤을 닮았습니다. 브라질의 파세이오 농장에서 100년 동안 자라고 열리고 이어져온 커피콩이에요. 마카다미아 초콜릿을 입에 머금은 듯합니다. 길어지는 밤도 다정하게 맞이할 수 있겠어요. 이번 커피도 콜롬비아처럼 90도씨의 물로 내려주세요. 진하게 내려 우유를 더해도 좋겠습니다.

 

Brazil Fazenda Passeio Monte Belo

Yellow Catuai / NY2 FC 16 / 1,100~1,280m / Pulped Natural / Blackberry, Almond Chocolate, Macadamia, Mandarin, Maple Syrup


 

 

10월호

 

일에 지치고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엄습할 때면 영국의 농부 피터 글레이즈브룩의 사진을 들여다보았어요. 작물에 대한 애정과 뿌듯함. 그 결과물을 안기까지 얼마나 애를 썼을까. [시월의 소묘] 첫 번째는 과테말라 커피농장의 피터 글레이즈브룩이라 할 수 있는 후안 디에고가 재배한 커피입니다. 4대째 농장주인 후안 디에고는 스페셜티 커피대회인 CoE에서 2007년 1위를 차지한 후 매년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어요. 과테말라 커피는 화려한 향미 없이 무난하게 마시는 데일리 커피, 블렌딩용 커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 보내드리는 커피는 향과 맛이 독특합니다. 그라인딩하면서 ‘바나나킥’ 향에 킥킥 웃었어요. 맛은 ‘새콤달콤’이에요. 전해질까요? 몸이 움츠러드는 계절입니다. 많이 웃고 따뜻하게 보내시길. 약배전이니 95도씨 정도의 뜨거운 물로 내려주세요. :)

 

Guatemala Finca El Socorro Maracaturra

Palencia / Juan Diego de la Cerda / 1,540 ~ 1,860m / Fully Washed / Mango, Grapefruit, Plum, Caramel, Brown sugar, Red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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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없다’에서 ‘먹는다’로 이행할 때마다 다이내믹한 감동이 펼쳐진다. 그래서 나는 식자재와의 만남을 때로는 사람과의 만남처럼 강렬하게 기억하기도 한다.” -가쿠타 미쓰요,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시월의 소묘] 두 번째 편지입니다. 예전엔 산미 강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견과류나 초콜릿 뉘앙스의 커피를 즐겼는데 이제 커피에서 산미는 음식에서 감칠맛과 같다는 것을 압니다. 빠지면 아쉽지요 ;) 이번에 보내드리는 니카라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농장의 마라카투라는 특이하게도 밀크 초콜릿, 군밤, 캐슈넛으로 시작해서 사과, 레몬그라스로 끝나요. 코끼리콩에서 이렇게 가볍고 깔끔한 커피가 만들어진다니 신기한 일이에요. 식후에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들어도 좋겠습니다.

 

Nicaragua ‘Buenos Aires’ Maracaturra

Dipilto, Nueva Segovia / Luis Emilio Valladarez / 1,200 ~ 1,550m / Fully Washed / Prune, Green apple, Milk chocolate, Lemongrass, Orange peel


 

11월호

 

스웨터에 오래 매달리다 보면 동그란 보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김소연 <스웨터의 나날> 중에서

오래 입어 보풀이 잡힌 스웨터의 엉뚱한 생기는 어떤 옷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김현 <스웨터리 스웨터> 중에서

가을 옷장에서 꺼낸 아란 스웨터에는 보풀이 나풀나풀 달려 있었습니다. 함께 맞는 몇 번째 계절일까. 동그란 보풀의 마음으로 블렌딩한 11월의 첫 커피는 재스민과 바질의 아로마, 귤과 무화과잼의 플레이버, 실키한 마우스필이 느껴집니다. ‘오래된 생기’가 전해질까요. 베이스가 된 커피 ‘트리트라 고요’는 ‘부지런한 고요 씨’라는 뜻이라고요. ‘고요’는 이 커피가 생산된 마을의 농부라고요. 얼마나 부지런하셨던 걸까요. 한 해 바지런히 달려온 우리를 응원하는 마음 담습니다. 미세먼지의 날들에 상큼한 한 잔이 되길 바라며-

 

Blending info: Ethiopia, Honduras, Bolivia

Base coffee: Ethiopia Tritra Goyo

Guji Zone, Hambela Wamena / 2,200 ~ 2,300m / Washed / jasmine, cherry, peach,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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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소묘 두 번째 소식을 전합니다. 이달의 블렌딩 커피에 붙인 ‘스웨터리 스웨터’는 전통적인, 기본에 충실한, 스웨터다운 스웨터를 뜻합니다. 기본에 충실한, 커피다운 커피는 무얼까.

이달의 커피 모두 베이스로 쓴 것은 에티오피아 커피입니다. 차의 원류를 중국에서 찾는다면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찾을 수 있지요. 블렌딩 속에서도 자스민, 백합, 사향장미, 다채로운 꽃향기로 자기 존재를 강하지만 은은하게 드러냅니다.

이번 로스팅 날인 11월 20일은 오후의 소묘 비공식 1주년이었어요. 첫 판매 커피를 볶은 날이랍니다. 네 계절을 지나온 길 끝에는 답이 아닌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Blending info: Ethiopia, El Salvador, Honduras

Base coffee: Ethiopia Biloya Natural

Biloya, Yirgacheffe / 1,950 ~ 2,300m / Natural / Floral, Grapefruit, Blueberry, Chocolate


 

 

2019년의 [월간 소묘] 편지는 어디로 가닿게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