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

 

시작

 

2019년 J와 나는 치앙마이에서 여름을 나기로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게스트하우스 1층 로비였다. 눈을 뜨면 대충 짐을 챙겨 로비에 내려왔다. 우기의 치앙마이 날씨는 언제나 극단적이었다.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거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뜨거운 햇빛이 작열하거나. 해가 넘어가기 전까지 로비 중앙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했다. 몇 주가 지나자 스태프들도 우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가끔 처음 온 게스트를 안내하고 밤에는 가장 늦게까지 남아 마지막 정리를 하고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선가 노크 소리가 들렸다. 툭, 툭. 로비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데…? 툭, 툭. 혹시나 하고 다가가 보니 문 너머 커다란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툭, 툭. 앞발로 유리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길 건너 세탁소집에 사는 고양이인 것 같아.” J가 말했다. 설마, 하면서도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커다란 고양이가 도도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단순히 ‘커다란’이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한 고양이. 고등어를 닮은 무늬에 부풀어 오른 몸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림잡아 10킬로그램은 될 것 같았다. 느긋한 걸음으로 J의 발치에 다가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이 정도면 고등어가 아니라 참치를 닮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 자주 놀러 오나 봐.” J가 고양이를 긁어주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고양이를 본 건 처음이었다. 고양이는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우완이라고 해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스태프가 고양이를 보자마자 말했다. 앞집에 사는 아이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찾아온다고. ‘우완’은 태국어로 뚱뚱하다는 뜻이란다. “한국어로 하면 ‘뚱뚱이’ 같은 건가?” 지나치게 직관적인 이름이 귀여웠다. 우와안. 왠지 길게 늘여 부르게 되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우와안- 처음부터 뚱뚱하지는 않았을 텐데, 언제부터 너는 우완이었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른함을 가득 담아 느릿느릿 나의 두 발 아래를 맴돌았다. 그러다 오른발에 기대 벌러덩 드러누워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긁어.’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들은 여기랑 여기를 긁어주는 걸 좋아해.” J가 알려주는 대로 천천히 손을 옮겼다. 우완은 이보다 더 늘어질 수 있을까 싶은 상태에서도 더 늘어졌다. 왼쪽으로 조금, 오른쪽으로 조금, 원하는 방향으로 알아서 돌아누우며 골골대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나 고양이가 좋았다. 개와 고양이를 두고 비교하는 상황이 아니라 어떤 동물 중에서도 좋았다. 고양이는 알면 알수록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비슷한 존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되었다’가 아니라 ‘될 것 같았다’로 끝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양이와 함께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양이뿐만 아니라 어떤 존재와도. 나는 함께하는 것에 서툴렀다.

 

“너만 보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아니?” 가족 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날이 선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런 말을 들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쉬워 보이지 않았구나. 열심히 애를 쓴 보람이 있었구나. 나는 상대방을 경계하고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만, 그 이상은 안 돼.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선 안으로는 어떤 사람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게 편리했다.

 

나는 언제나 고양이가 좋았지만 실은 고양이의 이미지를 좋아한 것일지도 몰랐다. 언제나 발끝으로 걷는 조심스러움. 공기의 흐름을 읽는 예민함. 원하는 것을 명령하듯 요구하는 당돌함. 원하는 것이 아니면 절대로 하지 않는 도도함. 쉽게 다가갈 수 없고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어려운 존재인 것 같은 이미지가 좋았던 걸지도. 실은 그 반대라는 걸 애써 감추고 잘 버텨온 걸지도 몰랐다.

 

느긋하게 누운 우완의 목덜미를 긁으면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다른 존재와 연결되는 것이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나? 고양이는커녕 살아있는 동물을 한 번도 쓰다듬어 본 적 없는 나의 손길도 괜찮다고, 우완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게 맞을까?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원래의 나라면 여러 번 고민하고 조심스러웠어야 했다. J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우완은 갑자기 일어났다. 어슬렁거리며 게스트하우스 로비를 한 바퀴 돌더니 다시 문 앞으로 가 앉았다. ‘문 열어.’ 이번에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원래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왔다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요.”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가 웃으며 말했다. 가만히 다가가 문을 열었다. 모든 것이 들어올 때와 같았다. 우완은 느긋하게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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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2020년 1월 우리는 치앙마이를 다시 찾았다. 지난번과 다른 게스트하우스였지만 1층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여전했다.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이 지나고 1층 로비에 내려가면 숙소 앞 테이블에는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고양이가 있었다. 바로 옆집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키우는 아이라고 했다. “이름이 뭐예요?” “‘머니’예요,” 머니?? 고양이 이름이 ‘돈’이라고요? 친절한 스태프는 나의 표정을 보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에서 키우는 세 마리 고양이의 이름은 ‘럭키’, ‘머니’, 그리고 ‘엥찟(태국어로 ’행복‘을 뜻하는 단어)’이라고. 세 마리의 고양이가 이 집에 함께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로비에 내려가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빠르게 익숙해졌다. 그중에서도 머니는 원래 알던 사이 같았다. 내가 왼쪽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머니는 오른쪽 의자 위로 올라와 쿠션에 기대어 낮잠을 잤다. 책과 공책이 들어 있는 에코백을 올려놓으면 그 가방을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려다 머니가 자고 있으면 그런 머니를 보며 잠시 쉬었다. 따듯한 공기, 적당한 바람, 새근새근 잠든 머니. 언제나 그리운 풍경이다.

 

어느 날, 화분 근처에서 토하는 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처음에는 무얼 하고 있는지 몰랐다. 커다란 화분들 사이로 머니의 뒷모습만 보였다. 어깨가 강하게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했고 그건 인간이 토할 때의 들썩임과 같았다. “방금 머니가 토한 것 같아,” J에게 이야기를 했다. 머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J가 머니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고 오더니 토한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덩어리들이 남아 있다고 했다. 괜찮을까 걱정하면서도 머니를 돌봐줄 주인이 있으니 한편으로는 안심했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옆집 고양이 숙소를 지나쳤다. 우리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와 옆집 사이에는 유리문으로 여닫을 수 있는 공간이 세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머무는 숙소였다. 맥주와 간식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머니가 이상했다. 불이 꺼진 유리문 안을 핸드폰으로 비춰가며 열심히 들여다봤다. 머니는 입 주변에 하얀 점액을 묻히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초점을 잃은 두 눈이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의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머니가 많이 아픈 것 같아,” 우리는 한참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다 주인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옆집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적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두세 번의 시도 끝에 전화를 받았다. 머니의 상태를 설명하고 당장 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잠시 후 주인이 도착할 때까지 머니는 그대로 멍하니 멈춰 있었다. 주인은 오토바이에서 급하게 내려 머니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바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비몽사몽간에 옆집 주인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정말 고맙다고, 머니의 장기에 문제가 생겨 지금 바로 수술에 들어간다고 했다. 문자는 새벽 4시쯤, 수술대 위의 머니 사진과 함께 와 있었다. 차가운 회색 트레이 위에 초점을 잃은 머니가 앉아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조금 뒤척이다 다시 잠든 것 같다. 여행에서는 언제나 늦잠을 자는 편이었으므로. 얼마나 더 잤을까, 먼저 일어나 로비에 내려간 J가 메시지를 보냈다. ‘머니가 하늘나라로 갔대.’

 

새벽 4시에 온 문자와 짝꿍의 메시지를 여러 번 번갈아 읽었다. 창문으로 뜨거운 햇빛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잠시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스케치북을 꺼냈다. 핸드폰에 저장된 머니 사진 중에 하나를 골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나는 항상 서툰 쪽이었다. 해야 할 말을 하려고 하면 로봇이 말하는 것처럼 어색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못한 말들이 마음속에 쌓였다. 그래서 그냥 그렸다. 두 시간을 넘게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1층에 내려갈 수 있었다.

 

J와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날 우리가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뜨거운 공기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1층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J가 들려준 이야기 속 장면들만 기억이 난다. 새벽에 수술을 받은 머니를 데리고 돌아왔던 옆집 주인은 아침 일찍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고 J가 로비에 내려갔을 때쯤 돌아왔다고 한다. 차가운 머니를 안고. 옆집 주인과 게스트하우스 스태프와 J는 머니 이야기를 나눴다. 때론 행복한 웃음을 짓고 때론 눈물을 흘리면서. 머니를 알게 된 시점은 다를지 몰라도 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같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머니 생각을 한다. 2020년 1월의 치앙마이가 그리워질 때면 그날 그렸던 그림을 꺼내본다. 그림 속에서 머니는 프레츨 모양으로 온몸을 둥글게 말고 편안하게 자고 있다. 마지막 인사는 어떻게 하는 걸까? 여전히 그건 모르겠다. 대신 그림을 볼 때마다 말을 걸어본다. 어디선가 이렇게 편안하게 자고 있는 거지, 하고.

 

 

[쓰기살롱 노트]는 오후의 소묘가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쓰기살롱’ 멤버들의 글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