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살롱 노트] 그녀의 꿈

2020-09-06T01:04:46+09:002020-07-5|

글 지혜 (지혜의서재)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이 책을 덮고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나의 어머니에 관해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어머니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부터 그녀의 근원인 할머니와 유년 시절, 결혼 전과 후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 책에 담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나의 어머니의 역사를. 그런데 시작부터 막혔다.   ‘엄마를 인터뷰해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⑮ 약자의 마음 (1)

2020-07-05T21:46:33+09:002020-07-5|

봉산아랫집의 오묘는 어떤 기준에 따라 각각의 고양이들이 닮은 꼴로 묶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도 해요. 이를테면 삼삼이와 모카는 높은 장소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어요. 이불 속을 좋아하기론 모카, 미노, 오즈가 서로 닮아 있고요. 그런가 하면 입이 짧아서 간식에 엄청나게 까탈스러운 삼삼이, 모카, 미노, 오즈의 그룹도 있어요. 이상하네요. 치코 이름이 없네요. 치코는 웬만한 기준으로는 나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⑭ 회색의 미궁

2020-07-05T21:45:48+09:002020-06-23|

마치 농담처럼 들렸던 앞집 아주머니의 말, 의정부에서 자동차 엔진룸에 몸을 싣고 서울 은평구 봉산 아래까지 뜻밖의 여행을 나온 고양이가 있다는 기막힌 말은 순식간에 저를 조급하게 만들었어요. 울음소리로 봤을 때 아깽이가 분명한 아이가 먼 길을 오는 동안 다행히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미 없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너무 희박했으니까요. 게다가 슬금슬금 해가 떨어지려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초조한 ...

[소소한 산-책] 서울, 북새통문고 / 스틸북스 / 이후북스

2021-09-05T20:25:42+09:002020-05-31|

5월의 산-책   만화책 좋아하실까요? 누군가에게 책은 도피처일 수 있겠으나 제게는 책이 곧 현실이고 현실은 자주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죠. 그때마다 저는 만화책과 그림책을 펼쳐요. 네? 그것도 책 아니냐고요? 네... 그러니까 “현실로 현실을 수선하기”(로베르 브레송의 문장, 금정연 <담배와 영화>에서 재인용)와 다를 바 없겠지만... 아무려나 저는 책 한 권을 마감한 틈에 ...

[우울이라 쓰지 않고] 유월이 하는 일

2023-05-27T18:39:16+09:002020-05-30|

글 문이영   저녁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안개 낀 유월 저녁이었다. 이곳 평야 지대는 빛이 사라지는 시간에 안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늦은 밤부터 동트기 전까지 자욱하게 깔리지만, 해가 높이 뜨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여기 안개에 익숙해진 지도 어느덧 사 년이 되었다. 잦은 비 소식 끝에 찾아온 맑은 날이어서일까, 밤이 깊어 적막할 줄 알았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어둠과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산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⑬ 뜻밖의 여정

2020-06-01T15:22:30+09:002020-05-30|

일상이란 물과 닮은 것 같아요. 물은 자신을 넉넉히 품어주는 곳에서는 마치 멈춘 것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울퉁불퉁하거나 좁은 길을 만나면 갑자기 요동쳐 아껴두었던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곤 해요. 차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은 물이 고요히 흐르는 모습과 닮은 것 같아요. 최대한 힘을 아끼며 멈춘 듯한 시간을 조용히 밀어내며 흘러가죠. 반면에 다양한 환경에 접촉하며 변화가 잦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깊은 곳에 숨겨 ...

[쓰기살롱 노트] 식사를 합시다

2020-09-06T01:04:52+09:002020-05-29|

글 지혜 (지혜의서재)   소개팅 경력 10년이 되자 가장 쉽고 빠르게 소개팅을 해치워버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저녁 시간 전, 약 4시쯤 만나 차를 마시고 헤어지는 것. 나는 항상 30분 정도 일찍 나가 내가 마실 음료를 시키고 앉아 책을 읽었다. 이런 방법까지 찾게 된 건 모르는 사람(대부분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괴롭기 때문이었다. 싫어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2020-05-31T21:44:16+09:002020-05-26|

치코는 말이에요.   떡잎부터 남달랐던 왕발 이치코 선생   #왕발   꼬맹이 치코는 덩치에 비해 커다란 발이 인상적이었어요. 집에 데려왔을 때, 병원에서 말끔히 치료를 받고 살이 좀 올랐다고는 해도 길에서 아픈 동안 말랐던 흔적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어요. 얼굴은 여전히 갸름했고 이등신 몸매의 아랫쪽 역시 매끈한 편이었어요. 조금은 왜소해 보일 만큼요. 그런데 유독 발이 눈에 띄었어요. 마치 코끼리 발이라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⑪ 보내는 마음

2020-06-01T15:09:44+09:002020-05-24|

아직, 식구가 된 건 아니었어요. 치코의 상태를 보고 앞뒤 가릴 새도 없이 덥석 집어 들었지만 치료를 해서 살려야겠다는(저대로 두면 죽겠다는) 생각이었지 길에서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우선 제가 집에 고양이를 더 들인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던 때였어요. 이미 삼삼이와 모카, 둘이나 있었기에 충분하다고 여겼어요. 한편으론 둘만 해도 많다, 라는 생각마저 간간이 하기도 했고 ...

[소소한 산-책] 서울, B-PLATFORM

2021-09-05T20:26:03+09:002020-05-7|

  지난달 걸음했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서점. 네, 합정에 자리한 아트북 전문서점 ‘B플랫폼’을 산책했어요. 이달의 책의 저자, 무루 님이 애정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 개인적으로는 전달에 있었던 이명애 작가의 <내일은 맑겠습니다> 전시를 놓쳐 무척 아쉬웠는데, 이번엔 최도은 작가의 <무용한 오후> 원화전이 열리고 있어 아주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무용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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