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코의 코스묘스] ⑰ 총체적 난국

2020-08-01T19:49:11+09:002020-08-1|

오즈를 거두어 집으로 왔어요. 어두컴컴한 밖에서는 허피스에 걸려 괴로워하는 작고 깡마른 아깽이라는 것 말고는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어요. 오즈를 안은 품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안도하며 걸음을 재촉하기 바빴어요. 활력이 괜찮아 보였고 몸의 움직임에도 불편함은 없어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허피스만이라면 주사와 약으로 잘 나으니까요. 그렇게 안도를 하며 집에 들어와 조명 아래 밝은 곳에서 오즈를 자세히 보게 ...

[공지] 읽고 쓰기 멤버 모집 (8월~9월)

2020-07-21T15:11:23+09:002020-07-19|

  쓰기살롱 멤버를 모십니다. ​ 이로운 이야기 ​ 5-7월에는 여성서사를 읽고 자기서사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8-9월 총 4차시로 진행될 이번 시즌은 이야기의 끝과 시작에 관해 깊고 넓게 들여다보려고 해요.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이하 '이로운 할머니')를 읽고 그 안에 등장하는 그림책(을 비롯한 다양한 텍스트)들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⑯ 소리치는 일

2020-07-25T15:15:12+09:002020-07-5|

<말투 하나 바꿨을 뿐인데>라는 책이 있어요. 읽어보진 않았지만, 책 소개를 보니 40가지 심리 기술을 활용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투의 심리학’에 관한 책이라고 해요. 사람의 관계에서 말투는 중요하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는 식상한 속담이 의미하는 바도 말의 ‘내용’에 따라 천 냥 빚이 변제될 수 있다는 건 아닐 거예요. 천 냥이 현대의 화폐 단위로 얼마일지 알 수는 없으나 제 ...

[쓰기살롱 노트] 그녀의 꿈

2020-09-06T01:04:46+09:002020-07-5|

글 지혜 (지혜의서재)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 이 책을 덮고 한참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나의 어머니에 관해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어머니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부터 그녀의 근원인 할머니와 유년 시절, 결혼 전과 후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 책에 담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천천히 떠올려보았다. 나의 어머니의 역사를. 그런데 시작부터 막혔다.   ‘엄마를 인터뷰해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⑮ 약자의 마음 (1)

2020-07-05T21:46:33+09:002020-07-5|

봉산아랫집의 오묘는 어떤 기준에 따라 각각의 고양이들이 닮은 꼴로 묶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도 해요. 이를테면 삼삼이와 모카는 높은 장소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어요. 이불 속을 좋아하기론 모카, 미노, 오즈가 서로 닮아 있고요. 그런가 하면 입이 짧아서 간식에 엄청나게 까탈스러운 삼삼이, 모카, 미노, 오즈의 그룹도 있어요. 이상하네요. 치코 이름이 없네요. 치코는 웬만한 기준으로는 나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⑭ 회색의 미궁

2020-07-05T21:45:48+09:002020-06-23|

마치 농담처럼 들렸던 앞집 아주머니의 말, 의정부에서 자동차 엔진룸에 몸을 싣고 서울 은평구 봉산 아래까지 뜻밖의 여행을 나온 고양이가 있다는 기막힌 말은 순식간에 저를 조급하게 만들었어요. 울음소리로 봤을 때 아깽이가 분명한 아이가 먼 길을 오는 동안 다행히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미 없이 낯선 곳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너무 희박했으니까요. 게다가 슬금슬금 해가 떨어지려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초조한 ...

[소소한 산-책] 서울, 북새통문고 / 스틸북스 / 이후북스

2021-09-05T20:25:42+09:002020-05-31|

5월의 산-책   만화책 좋아하실까요? 누군가에게 책은 도피처일 수 있겠으나 제게는 책이 곧 현실이고 현실은 자주 도망가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죠. 그때마다 저는 만화책과 그림책을 펼쳐요. 네? 그것도 책 아니냐고요? 네... 그러니까 “현실로 현실을 수선하기”(로베르 브레송의 문장, 금정연 <담배와 영화>에서 재인용)와 다를 바 없겠지만... 아무려나 저는 책 한 권을 마감한 틈에 ...

[우울이라 쓰지 않고] 유월이 하는 일

2023-05-27T18:39:16+09:002020-05-30|

글 문이영   저녁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안개 낀 유월 저녁이었다. 이곳 평야 지대는 빛이 사라지는 시간에 안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늦은 밤부터 동트기 전까지 자욱하게 깔리지만, 해가 높이 뜨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여기 안개에 익숙해진 지도 어느덧 사 년이 되었다. 잦은 비 소식 끝에 찾아온 맑은 날이어서일까, 밤이 깊어 적막할 줄 알았으나 꼭 그렇지는 않았다. 어둠과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산 ...

[이치코의 코스묘스] ⑬ 뜻밖의 여정

2020-06-01T15:22:30+09:002020-05-30|

일상이란 물과 닮은 것 같아요. 물은 자신을 넉넉히 품어주는 곳에서는 마치 멈춘 것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울퉁불퉁하거나 좁은 길을 만나면 갑자기 요동쳐 아껴두었던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곤 해요. 차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은 물이 고요히 흐르는 모습과 닮은 것 같아요. 최대한 힘을 아끼며 멈춘 듯한 시간을 조용히 밀어내며 흘러가죠. 반면에 다양한 환경에 접촉하며 변화가 잦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깊은 곳에 숨겨 ...

[쓰기살롱 노트] 식사를 합시다

2020-09-06T01:04:52+09:002020-05-29|

글 지혜 (지혜의서재)   소개팅 경력 10년이 되자 가장 쉽고 빠르게 소개팅을 해치워버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저녁 시간 전, 약 4시쯤 만나 차를 마시고 헤어지는 것. 나는 항상 30분 정도 일찍 나가 내가 마실 음료를 시키고 앉아 책을 읽었다. 이런 방법까지 찾게 된 건 모르는 사람(대부분 맘에 들지 않는 사람)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괴롭기 때문이었다. 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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