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며 계절을 센다. 나무만큼 계절의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존재가 또 있을까. 마른 나뭇가지를 뚫고 연한 새순이 돋아나면 그것은 사월이다. 비와 햇빛을 번갈아 맞으며 기세 좋게 뻗어나가는 진녹색 잎사귀는 칠월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다 찬바람 불어 그 많던 잎사귀들 죄 떨어지고 나면 나는 어느새 십일월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문이영 <우울이라 쓰지 않고>

 

길이 낙엽으로 소복한 십일월의 한가운데입니다. 입동도 지나고 기온도 확연히 떨어졌으니 이제 겨울이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직 가을이라 해도 될까요. 이맘때면 계절의 말은 갈 곳을 잃고 그저 십일월, 달의 이름을 부르게 되네요.

계절 가는 것이 자못 아쉬워 가을을 늘려보고만 싶은데, 문이영 작가는 계절을 ‘간다’라고 쓰지 않고 계절을 ‘센다’라고 씁니다. 그저 나무의, 계절의 변화하는 모양을 가만가만 짚어보는 사람. 그런가 하면 “여름이 다 가기도 전부터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이기도 해요.

 

“겨울은 내가 모르는 것들의 다른 말이고, 내가 모르는 것들이 내 작은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창문을 흔드는 계절이다.”

 

문이영 작가를 처음 만난 것도 겨울이었습니다. 그가 내 집으로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린 그 겨울, 저는 문득 이 사람을 기다려왔구나 알아챘어요. 우리는 한 계절 꼬박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었고요. 계절이 바뀐 후 그가 그 책에 부치는 글 한편을 제게 보내왔습니다. 글줄 사이에서 한 문단이 눈에 들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나를 살린 이야기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 다른 이들이 넘었던 파도와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 나만이 겪어야 했던 파도에 대한 이야기다.”

 

저는 거기에 작은 메모를 남겼습니다. ‘어서 듣고 싶어요 :)’라고. 돌이켜보니 이 책 <우울이라 쓰지 않고>는 그 기나긴 답변일지도 모르겠군요. 마침 책에서 반복해 등장한 한 단어가 떠올라요.

 

나의 이십 대는 연이어 덮쳐오는 집채만 한 파도였고 몸과 마음의 지형을 모두 바꾼 끝에 여러 군데 잔해를 남기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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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따라 빼곡히 꽂힌 책들을 방파제 삼아 덮쳐오는 생각으로부터 겨우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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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뿌리 내린 목련, 발코니에 서 목련을 바라보는 아버지, 아버지 주위를 달처럼 맴도는 나, 나와 아버지 사이에 놓인 바다, 덮쳐오는 파도, 춥고 어둡고 짠맛이 나는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덮쳐오다.

교정을 보면서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땐 ‘덮쳐V오는’이라고 띄어쓰기 부호를 표시했습니다. 각각 본동사로 판단한 것인데요. ‘오다’를 본동사로 보면 ‘저기에서 여기로 위치를 이동하다’라는 뜻이니, ‘파도가 저 멀리에서 와서 나를 덮치다’라는 의미가 될 거예요. 그런데 초교를 마치고 보니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 같았어요. 그래서 재교에서는 다시 둘을 붙여주었습니다. ‘오다’를 보조동사로, 그러니까 ‘앞말이 뜻하는 상태가 계속 진행됨을 나타내는 말’로.

그러나 연이어 덮치는 파도들에 무력하게 잠식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시금 떠오르는 이야기. 이 책은 그만의 ‘고유한 서핑기’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파도를 타며 살아갈 거예요. 매번 모르는 파도를 기다리며 그것을 통과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지극하게 써 내려가는 일.

그때 작가가 태어납니다. 저는 그 순간을 목도하는 사람. 그 발견을 기쁘게 전합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도착한다. 내가 아니라 문장이 데려온 무언가다. 쓰려고 한 적 없는 것, 쓰리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

모르는 문장을 기다리는 일은 막막하고, 그 끝은 언제나 조금 더 어려운 곳, 어렵고 복잡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곳일 거라고. 이 글도 여전히 새로운 문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르게 쓰일 수도 있다.”

 

 

 

 

지난 레터에서는 고수리, 신유진 작가님의 추천글을 띄웠는데요. 이번엔 책방 대표님들의 추천글을 소개합니다. :)

 

서점인들의 추천

 

나는 내 우울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 우울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적지 않은 고민을 하며 지낸다. 주변을 맴돌며 호시탐탐 내게로 스며들 타이밍을 기다리는 우울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울도 내게 관심이 많아 보인다. 솔직히, 이 관계가 싫지 않다. 오랜 시행착오의 시기를 지나 이제 나는 우울감을 제법 능숙하게 다룰 줄 알고 때때로 그런 스스로에게 기이한 만족감마저 느끼곤 하니까. 우울의 입장에서도 제가 머물 곳을 종종 내어주는 인간 하나를 알고 있는 셈이니 이만하면 우울과 나는 서로에게 우호적인 편이라 볼 수 있겠다.

여기, 우울과 기꺼이 동행하는 또 하나의 너그러운 그림자가 있다. 문이영 작가는 우울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로 오는지 알고 있는 사람, 서로 다른 우울 앞에 낯을 가리기보다는 일단 함께 걸으면서 우울에게 안부를 건네는 사람이다. 그래서 문이영의 글엔 우울 대신 우울로 인해 드러난 외로움과 고통의 자리를 쓸어보는 사람이 존재한다.

우울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같은 순간이라도 남들보다 더 오래 그 장면에 사는 것 같다. 나는 우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문이영이 길게 펼쳐 보인 순간을 미행해 본다. 그러다 문득 그의 우울이 내게 스며드는 것 같을 때면 나는 그것과 함께 뒤돌아 나의 자리로 돌아가겠지. 그 길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_윤혜은(《아무튼, 아이돌》 저자, 작업책방 씀 대표)

 

문이영의 글은 옷장에 숨어 있던 나를 꺼낸다. 발견되길 기다리다가 이대로 영영 사라지고 싶었던 오랜 기억 속의 나를 밖으로 꺼내어 나와 같이 발맞춰 걷는다.

‘천을 따라 걷고,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뒷산에 오르고 집 주변을 배회하면서. 허락된 길과 허락되지 않은 길을 가리지 않고, 서로 다른 동네의 경계를 두 번, 세 번 지나는’ 동안 운동화의 뒤꿈치가 닳듯 이야기가 닳는다. 잊으려고 할수록 잊히지 않던 모난 기억들이, 평생 나를 할퀼 것 같던 뾰족한 마음이 산책길에 무심코 차버린 돌멩이처럼 매끈하게 닳는다.

이 산책이 끝나면 조약돌만큼 작아진 기억을 주머니에 넣고 어디든 멀리갈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도 되겠지. 우울이라 쓰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_이미화(《영화관에 가지 않는 날에도》 저자, 작업책방 씀 대표)

 

책에도 옆모습이 있을까. ‘우울이라 쓰지 않고’ 시작하는 이 책은 세상의 정면에서는 알아채지 못할 이야기들이 장소와 계절의 비스듬한 얼굴로 펼쳐진다. 머문 자리마다 온기가 있어 빛을 따라가는 마음으로 문장 사이를 걸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빛은 옆모습을 사랑하여 비스듬히 통과해야만 그림자를 만든다는 것을. 그림자는 테두리에 고인 빛과 경계를 볼 줄 아는 이에게 허락한 시선이라는 것을.그가 거닐며 만든 마음의 지도를 따라 나의 작은방은 그의 장소들로 확장된다. “볼 수 없었던, 설령 있다 하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존재들”을 세심히 살피며 멀리 나아간다. 그렇게 걷다 마주하는 것은 우리 자신, “낯선 존재들과 내가 조금씩 닮아 있고 또 연결되어 있다”라는 사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것은 지극히 ‘나’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읽고 나면 내 안의 비밀스러운 곳에 도착하게 된다. 누구든 갇혀 있던 이야기를 불러내거나, 조금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빛의 지형을 탐구한 독자이므로.

_조순영(서점 책의기분 대표)

 

책방에 앉아 있다 보면 가끔 조심스레 다가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서점원에게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며 어떤 책을 지니고 나가면 좋을는지 물어온다. 그런 이야기는 대체로 어렵고 힘든 사정을 품고 있다. 그들의 눈이 조금 슬퍼 보여서,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일이어서, 짧은 대화로는 그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어서, 대답할 시간을 버느라 나의 말은 평소보다 조금 느릿느릿 입을 벗어난다.

모두가 저마다의 하루를 산다. 하지만 모두가 그 하루 속에서 이야기를 건져 올리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그저 지나쳤을 걸음과 기억 안에서 문이영은 질문과 이야기를 자라게 하고 그것이 목소리가 되어 종이에 내려앉았다. 사랑으로 시작했으나 때로는 미워하고 버거워했던 존재에 대해 나지막하게 전해주기도, 마음속으로만 만지작거리던 동네를 꺼내어 보여주기도 하는 글이 되어서. 그를 걷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숨게 하고 용기 내게 했던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몸을 웅크리고 기다리다, 추워지는 계절에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지금에야 한 권의 책이 되었나 보다.

이제 나는 슬픈 눈과 용기 낸 얼굴로 말을 걸어온 손님들에게 이 책을 권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내 우울의 지형을 걸어볼 것이다. 어떠한 모습이든 피하지 않고 마주할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멀쩡한 무언가에 불을 댕’기고, 그 불은 타올라 다시 이야기가 될 것이다.

_정한샘(《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 저자, 서점 리브레리아Q 대표)

 

페이지를 넘기며 그녀가 무덤덤하게 적어 내려간 우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글들이 가득해 위로를 받는다. 그녀의 글은 유리컵 속 투명한 물과 같아서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남긴 우울의 빛을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희망이 보인다. 막연한 희망이 아닌 무해하고 용감한 작은 희망. 그 희망을 붙잡고 하루를 견뎌내는 모습이 어쩌면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책을 펼쳐보며 귀퉁이에 적어본다. 우울이라는 단어가 아닌 ‘하루’. 잘 살아내고 싶은 하루.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삶 속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괜찮아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건 아닐까.

당신과 나는 ‘우리’가 되어 똑같이 힘든 삶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힘든 순간에 주저앉더라도 조금씩 일어나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말해주는 그녀의 말이 참 따듯해서 이 책을 자꾸만 곁에 두고 싶다.

_한혜숙(서점 한낮의 바다 대표)

 

 

이오덕 할아버지, 평생 교사였던 데다 사회적으로 두루 존경받으셨던 터라 선생(님)이란 호칭이 더 알맞겠지만 이제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셨기에 조금 편안한 호칭을 붙여보았습니다. 실제로 저의 할아버지 연배셨기도 하고요. 아무려나, 이오덕 할아버지가 쓰신 <거꾸로 사는 재미>라는 책에는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가 (제 기억에 남아 있는 바로는) 두 번 등장해요. 한 번은 “고양이가 방에 들어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고양이에 관한 세심한 관찰과 그들의 처지를 다룬, 소제목마저 ‘고양이’인 이야기예요. 다른 한 번은 ‘과자를 먹는 아이들’이란 꼭지에 “고양이는 땅을 발로 파서 똥을 누고는 묻어 버린다.”라며 언급되고 있어요.

 

아이들이 과자를 먹는 것과 고양이가 똥 누는 게 무슨 상관인지 궁금하실 수도 있겠네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주제가 되는 건 아이들이 과자를 먹는 문제가 아니라(물론 그 얘기도 있긴 하지만요) 과자를 먹은 뒤 아무 데나 버리는 비닐 쓰레기예요. “무슨 일로 운동장 한쪽을 파보았더니 온통 비닐 쓰레기가 한도 없이 나왔다. 그것도 과자 봉지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농촌은 온통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인해 추악한 모습이 되어 가고 있고 도시는 대문 밖에 내놓은 쓰레기들이 어디로 실려 가는지 염려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한탄하고 있어요. 무려 1982년 11월이라는 날짜가 적힌 글은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못하더라도 고양이가 제 새끼들에게 똥오줌 처리하는 걸 가르치는 정도의 시범은 아이들에게 해 보여야 할 것인데, 그게 안 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고양이에게 배울 게 똥오줌 덮는 것 말고는 없는가?

당연히 있죠!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고양이한테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 제대로 된 게 인간 사회에 있기나 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는데요.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볼까 합니다.

 

1. 잠

고양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거예요.

잠자기 위해 태어난 존재.

고양이에게 신체활동을 측정하는 장비를 부착해서 지켜봤더니 하루에 스무 시간 넘게 잠을 자는 것으로 관찰되었다,라는 얘길 어디선가 보았습니다. 출처는 불명확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 말이 명백한 사실인걸요. 고양이와 함께 며칠만 살아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이 자는지, 얼마나 잠에 진심인지 말이에요. 뭐 하러 장비까지 동원해 관찰했는지 모르겠네요.

 

잠자는 시간을 너무 좋아해서 오직 이불 속에 파고들 생각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저 같은 사람은 늘 생각합니다. 사람들도 고양이처럼 잠을 많이 잤으면 좋겠다. 간혹 이런 생각도 해요.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오래 깨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이 하루에 열네 시간쯤 잔다면 지구에 평화가 찾아올 텐데… 아니라고요? 그렇게 게으르면 안 된다고요? 인생이 얼마나 짧은데,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열심히 살아야 후회가 없는 법이라고 반박하신다면, 러셀 포스터Russell Foster라는 신경과학자가 TED 강연에서 했던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제 경험상,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것이다.”

 

[계속 읽기]

 

 

 

 

📘 [우울이라 쓰지 않고] 출간

책 소개 보러 가기

‘프롤로그’ 저자 낭독 영상 보기

 

🫶 문이영 작가(X편집자) 북토크 ‘첫 책 쓰(고 만드)는 마음’

– 2022.11.15(화) 저녁 7시 30분~

– 작업책방 씀(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3길 19-17 1층)

– 참가비 10,000원(당일 도서 구입 시 해당 금액 차감)

– 신청: 작업책방 씀 인스타그램 DM (instagram.com/booknwork_sseum/)

 

📕 리사 비기 글, 모니카 바렌고 그림 [마녀의 매듭] 11.15(화) 출간

 

🍵 작가노트 시리즈 [차를 담는 시간](겨울 출간 예정)

저자 토림도예 전시 ‘시간의 틈’ ~11.21 | 갤러리 인사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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