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꿈의 재료로 이루어졌고, 우리의 작은 삶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_윌리엄 셰익스피어
세계는 꿈이 되고, 꿈은 세계가 된다. _노발리스 (<밤을 가로질러>에서 재인용)

긴 하루의 끝에 말갛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큼 위안을 주는 것이 없다. 미동도 없이 곤히 잠들어 있던 아이가 갑자기 잠결에 킥킥하고 익살스럽게 웃는 순간, 마음 한가득 웃음이 번진다. 도대체 아이의 눈앞에 어떤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 꿈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_<세상 모든 밤에> 옮긴이의 말

 

간밤 무슨 꿈을 꾸셨나요? 어떤 꿈을 품고 살아가실까요? 대체 꿈이란 무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꿈’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저는 자는 동안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물을 보고 듣는’ 꿈을 매일매일, 하룻밤에도 여러 번씩 꿉니다. 잔뜩 찡그리고 몸부림치며 깨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그럼에도 꿈속에서 아 이것은 꿈이고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꿈을 연장하려 깨지 않는 편을 택합니다. 악몽이라도 뒷이야기가 궁금하고, 분명 그 안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거든요.

반면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같은 꿈은 그다지 품지 않는 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헛된 생각 쪽은 자신 있는데요. 이를테면 ‘세상 모든 고양이가 지구의 주인이 된다면’ 같은… 쓰고 보니 희망이나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도 하고요 ;)

 

4월에 선보인 그림책 <세상 모든 밤에>는 꿈에 대한 이 세 가지 층위가 아름답게 뒤엉긴 이야기입니다. 글 작가인 세실 엘마 로제는 역자와의 인터뷰에서 ‘꿈꾸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작가님께 꿈이란?’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어요.

 

제게 꿈이란 일종의 도피예요. 한계를 뛰어넘고, 머릿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죠. 제 일상에 약간의 달콤함, 고요함 혹은 경이로움을 되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래나 신념에 자신을 투사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기도, 행복이나 재미나 위안을 주는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기도 하죠. 꿈을 꾼다는 건 내가 가는 길과 내가 믿는 바를 계속 따르도록 고무하는 것이에요.

저는 꿈꾸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그 꿈을 현실화하는 것은 더 좋아합니다.

 

“꿈을 꾼다는 건 내가 가는 길과 내가 믿는 바를 계속 따르도록 고무하는 것.”

<세상 모든 밤에>가 간밤 낯선 고양이를 따라 잠든 도시를 산책하는 한바탕 환상적인 꿈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주인공 소녀는 고양이 파타무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도 페이지마다 자신의 꿈을 계속해서 펼쳐요. 그건 모두 ‘세상 모든’으로 시작하는 상상이죠. “세상 모든 창문을 세어본다면”, “세상 모든 음악가가 세상 모든 음표를 동시에 연주한다면”, “세상 모든 곳을 잎 가득 달린 나무들이 뒤덮는다면”… 이어지는 문장들은 모두 외고 싶을 만큼 아름다워요. 마침내 한밤의 산책은 ‘세상 모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놀라운 해방 작전으로 나아가죠. 아이는 “세상 모든 밤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파타무아를 따라간다면” 모두 더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거라고, 그렇게 된다면 분명 지구도 더 나은 곳이 될 거라고 속삭입니다.

(비록 제 파타무아는 악몽으로 저를 이끌더라도… 저는 또 기꺼이 따라가겠죠. 쫓기고 파헤치고 피 흘리며 한밤의 폭풍우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혹은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 해나갈 거예요. 그것이 저의 낮도 분명 바꿔주리라 믿으므로.)

 

그림자 하나하나가 어떤 기억이라면, 이 길 위에서 분명 많은 일들이 일어났겠지.

세상 모든 길의 모든 그림자가 속삭이기 시작한다면, 지구는 매일 밤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로 진동할 거야.

정말 경이로운 일이겠지?

 

이상과 몽상은 한밤에 환상적인 장면들로 펼쳐지고 그 꿈은 다시 한낮의 현실을 살아가는 힘과 길이 되어요. (그것이 ‘세상 모든 고양이가 지구의…’로 시작하는 망상일지라도…!) 그러니 오늘 밤 모두 자신의 파타무아를 따라가기를, 이 길 위에 우리의 그림자 하나하나 새겨지기를, ‘세상 모든’으로 시작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들로 진동하기를.

 

 

[…]

 

‘어, 여긴 서점 근처에 대학교가 둘이나 있네?’

이번 달 소소한 산-책을 위해 책방을 찾아가느라 지도 앱을 열었을 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존재했던 대학가 서점을 떠올렸던 건 아니에요. 책방의 대략적인 정보와 분위기는 이미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요. 21세기잖아요. 조금 궁금하긴 했습니다. 대학생들의 생활권이라는 지리적 특징이 혹시 동네책방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할까? 그러나 혹시는 역시로. 그날 둘러본 바로는 대학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책방 부비프에 다녀왔습니다.

 

부비프란 이름의 유래는 책방 대표님의 예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책방을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한 일이 항공권 구입이었다고 해요. ‘앞으로 당분간 긴 여행은 못 갈 테니 그전에 다녀오자’라는 마음이 있었고, 책방으로는 겨우 먹고산다는 주변의 말에 그렇다면 ‘가난해지기 전에 다녀오자’라는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다녀온 도시의 앞 글자를 따서 책방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부다페스트, 비엔나(빈), 프라하가 아닐까 해요.

 

그래서일까요? 책방의 인테리어에서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실내는 두 가지 컬러가 묵직하게 대비되고 있었어요. 부비프의 로고 색(#54785B)으로 추정되는 짙은 녹색이 벽과 천장을 둘러 칠해져 있고, 책장과 테이블과 의자는 대부분 마호가니 원목의 색으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공간에 깊이감을 더해주는 이 대비와 함께 책방의 가구들이 모두 엔틱(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바로 그) 스타일이어서 유럽 분위기가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엔틱 가구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목공 유경험자로서 더욱 그러한데요.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뻗은 책상과 의자의 다리, 풍성하게 동글린 문짝과 장식들, 섬세하게 조각된 테두리 마감들.. 이런 것들은 일단,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멋진 자태와 화려한 장식의 엔틱 가구를 잘 배치하기만 한다면 공간을 훨씬 다채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 넓지 않았던 부비프의 실내가 풍성하게 느껴졌던 건 아마 그 가구들 때문이었을 거예요.

 

책방엔 독립출판물도 제법 갖춰져 있었습니다. 전체 책의 대략 30% 정도 되어 보이는 독립출판물들이 한쪽 벽면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방에 들어서고도 한참 동안은 독립출판물이 있는 줄 몰랐어요. 동네책방의 독립출판물 서가는 보통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판형과 장정에서 상업출판물과 조금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등 훨씬 더 큰 판형도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크라운판(176X248mm)이나 46배판(188X257mm) 크기까지는 비교적 다양한 판형으로 출간되는 상업출판물에 비해 독립출판물은 대개 신국판(152X225mm)보다 작게 제작되고, 장정 역시 거의 무선제본이기 때문에 책장에 모아서 꽂아놓으면 대체로 상업출판물과 구분되는 편입니다. 책의 훼손을 막기 위한 래핑도 OPP 봉투를 많이 쓰기 때문에 바로 표가 나고요. 그런데 부비프에서 독립출판물 서가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건 책방의 책들이 너무나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방 안의 모든 것들이 가지런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였어요.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은 선반의 앞쪽 끝 선에 딱 맞춰져 있었고 책등의 높이가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표지가 보이게 진열된 책들 역시 가로세로 격자가 자로 잰 듯이 딱 맞춰져 있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진열된 엽서와 포스터, 소품들 역시 그랬습니다. 어디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책방 한쪽 구석에 책상을 두고 일하고 계시던 두 분의 책방지기님들은 대체 얼마나 단정한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공간을 단정하고 안정적으로 정리해놓은 책방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야, 이건 단정함만으로 되는 일이 아닐 거야.

 

[전체 보기]

 

 

 

 

👏 [세상 모든 밤에] 소묘살롱 X 책방시나브로 감성그림책 모임

소묘살롱 소식이 뜸했지요. 이번엔 오후의 소묘의 이웃 책방 시나브로에서 <세상 모든 밤에>를 비롯해 저희 그림책들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가지려고 합니다. 아늑하고 꿈결같은 곳이어서 이 책과도 무척 어울릴 것 같아요. 벌써 설렙니다. 4월의 봄밤에 뵈어요.

• 일시: 4월 28일(금) 저녁 7시 30분

• 장소: 책방 시나브로 (서울 은평구 응암로25길 11-1)

• 참가비: 30,000원(<세상 모든 밤에> 책 & 다과 포함)

• 자세히 보기 / 신청하기

 

🖼 [조용함을 듣는 일] 김혜영 작가님 지난 전시 놓쳐서 아쉬운 분 계시다면 ‘더프리뷰 성수’ 추천드려요. 53개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3백여 명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아트페어입니다. 김혜영 작가님 작품들은 ‘레지나갤러리’ 부스에서 보실 수 있답니다 :)

• 일시: 4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SFactory D동 (서울 성동구 연무장15길 11)

• 더프리뷰

• 레지나갤러리

 

 

오후의 소묘 사랑해요!

 

무명의 외침, 감사합니다. 크게 웃었고 기뻤고 내내 따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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