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어줘.”

어느 날 메시지로 아기 사진이 날아왔습니다. 친구가 아이를 낳은 것이에요. 아가 얼굴을 보자 이 존재는 뭐라고 불러줘야 하는지 궁금해졌어요. 이름 뭐야? 물었더니 이름을 지어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노트를 펼쳐 친구가 말한 돌림자 하나를 적어놓고 며칠 꼬박 떠오르는 온갖 글자를 앞뒤로 붙여보았어요.

이름하는 일은 어쩐지 영혼에 관여하는 일 같습니다. 제가 낳은 것도 아닌데 믿을 수 없이 애틋해진 아기의 얼굴을 몇 번이고 들여다봐요. 맑고 높은 이마. 마침내 가을하늘 ‘민’이라는 한 자를 선물했습니다. 이름의 부름과 울림 안에서 지금, 구월의 하늘만 같기를. 언젠가는 주어진 이름의 바깥으로도 나아가기를 바라면서요.

 

 

 

책의 첫 장에서 첫 수어 수업을 이야기하며 수어로 이름 짓는 일에 관해 들려줍니다. 수어이름은 얼굴이름이라고요. 이름이 존재의 본질을 담아내는 무엇이라고 믿는다면, 표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언어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얼굴만큼 고유한 특질은 또 없을 테죠. 이 얼굴이름은 ‘농인에게 선물을 받는 것’이라고 해요. 그것은 ‘농사회에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언젠가 농인이 지어줄 내 얼굴이름을 기대해보며’ 스스로 수어이름을 짓는데요.

이즈음에서 독자도 자신의 얼굴이름을 떠올려 보게 될 거예요. 저 역시 진한 팔자주름, 각진 턱선, 졸린 눈, 화살표 코, 축 처진 입꼬리 같은 것을 떠올려 보다가 어쩐지 가치 판단이 깊게 들어간 듯한 나열에 처진 입꼬리가 더 처지고 말았습니다. 저자 또한 그런 과정을 겪었으리라 짐작이 되어요. 그는 작은 눈, 동그란 얼굴, 진한 팔자주름이 평가의 대상이 아닌 그저 이름으로 기능할 자신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자기를 소개해요.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입 앞에서 스마일을’ 그리면서. ‘나, 이름, 스마일+여자’.

스페인 시인 마르 베네가스가 글을 쓴 그림책 <새의 심장>에도 주인공 소녀가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랑의 주름이 가득 새겨진 호두 같은 얼굴로’ 자장가 <물의 소녀 나나>를 불러주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소녀는 이렇게 노래해요. ‘이제 당신은 떠났고 / 나는 나나가 될게요 / 모래와 물의 나나.’ 시가 탄생하고 시인이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이미화 작가가 ‘모든 이에게 꽃처럼 공평한 얼굴로 웃어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담아 수어로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 역시 시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어요. 어떤 씨앗이 뿌려지고 그 씨앗에서 태어날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게 되는 일을 시적이라 할까요. 그렇다면 모든 이름하는 일은 시적일 것이에요. 이달의 책 <수어>에는 미지의 땅에 발을 내딛고 서로를 향해 이름하는, 그러니까 ‘손뼉을 치는 대신 양손을 올려 별처럼 반짝이는 동작’으로 박수하게 되는 시적인 순간들로 빼곡합니다.

 

소녀는 나무가 들려주는 숲의 목소리를 들었어. 양귀비에서는 약간의 밀가루를 얻었지. 나이팅게일의 씨앗도 찾았어. 소녀는 그것들을 모두 시로 만들어 노트에 담았어.

소녀가 도시로 돌아왔을 때, 펼쳐진 노트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밀가루에서 숲의 목소리가 튀어나왔고, 노래하는 새의 씨앗과 뒤섞이더니, 오븐에 구운 반죽처럼 부풀어 올랐어. … 그러자 무언가가 노트에서 날아올랐어. …

‘아, 이게 바로 시의 마음이야!’

나나는 깨달았어. 자신이 노트 안에 숲을 담아왔다는 것을. 이제 도시는 숲이 되었어.

—<새의 심장> 중에서

 

나나의 노트를 상상해 보았어요. 단단한 콘크리트조차 진흙으로 만들고 가지와 뿌리를 내리게 하는 노트. 아이러니하게도 나무를 베지 않고 만든 비목재 노트가 나나의 노트에 가까울 것 같아요. 폐지와 섬유질로 만들어 종이와 천 사이 어디쯤의 질감에 젖은 흙 내음이 나는 록빠의 노트들이요. 꽁꽁 둘러맨 실을 풀어내면 쓰이지 않은 페이지에서도 낱말들이 부풀어 오르는 듯합니다. 록빠Rogpa는 ‘친구’라는 의미의 티베트어라고 해요. ‘돕는 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티베트 난민의 자립을 돕는 단체의 이름이에요. 록빠 여성작업장의 수공예품인 이 노트는 언젠가 ‘소소한 산-책’에서 소개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서점 ‘지혜의 서재’에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티베트 난민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모두 시의 마음으로 하는 일일 테죠.

 

록빠의 노트와 책보자기: 지혜의 서재 x록빠

록빠의 다른 수공예품: 슬기로운 생활 x록빠

사직동, 그 가게(록빠샵)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강릉, 한낮의 바다

 

이름도 아름다운 서점 ‘한낮의 바다’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3월의 레터에서 독자 투고로 모야 씨의 산책을 소개한 적이 있죠. 그래서였을까요. 오랜 친구를 만난 듯했습니다. 고대했던 것보다 한 뼘 더 좋은 만남이었어요.

 

그곳으로부터

: 박혜미 <빛이 사라지기 전에> X 한요 <어떤 날, 수목원> 원화전

 

 

숲에 스민 빛이 바다의 윤슬로 이어지는 두 작가의 전시를 소개합니다. 시의 마음을 찾아 바다로부터 숲으로 떠났던 나나가 다시 숲에서 바다로 돌아온다면, 그 여정이 꼭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러분은 어떤 풍경과 마음을 마주하게 될까요.

제주 고양이 웹툰 시즌 2. <아홉 번째 여행>을 쓰고 그린 신현아 작가가 전지적 대봉 시점으로 봉봉 식구들 이야기를 담박히 담았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가 하루 중 가장 많이 발화하는 단어가 무얼까 생각해 봤어요. 답을 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단연 똥이니까요. 똥 마려? 똥 쌌어? 똥꼬 닦자. 똥꼬 냄새. 어유 저 똥쟁이. 똥간에서 그만 놀아라. 똥간 금방 치워줄게. 그리고.. 고똥!! 밤똥!!! 고똥은 똥을 달고 나오는 저희 넷째 별명이고요. 밤똥은 여전히 똥간에서 뛰놀며 똥을 꺼내놓는 막내의 별명입니다. 저는 깔깔 웃기보다 가끔은 헛웃음이 나요. 껄껄.

 

 

[대봉이의 일기]

대봉호

아니야!

초대장

소묘가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이미나의 그림 에세이. 그림과 그리는 생활에 대해 씁니다. 아니 오리고 붙여서 새로운 모양을 만든 이것은, 고양이 화가의 이야기.

 

침대 위 정원사

 

밤마다 정원사라는 이름을 전복하는 새로운 정원사, “거름을 주고 나무를 심는 정원사가 아니고 가위를 들고 무지막지하게 가지를 잘라내기만 하는 정원사”가 되는 우리의 고양이 화가를 만나러 가요.

 

‘남는 것은 언제나 일상이다’ 프로젝트. 회화 작가 김혜영이 동명의 타인을 인터뷰하고 매달 한 폭의 그림과 짧은 글로 풀어냅니다.

 

마음과 몸의 모양

 

얼마 전 서핑을 경험했습니다. 양팔을 저으며 애써 바다로 나갔다가 파도를 탈 적에는 몸을 돌려 일어나 떠나온 곳을 향해 멀리 바라보아야 했어요. 해변에서 바다를 보는 것도 좋지만, 바다에 서서 해변을 보는 기분은 아직 이름하기 어려운 무엇이었습니다. 이번 그림을 보면서 그 무엇을 공유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믿음이 떠올랐어요. 그러나 그 기분이라는 것도 분명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겠죠. 모양마다 어떤 이름들 붙게 될까요?

 

<마음과 몸의 모양>, 리넨에 채색, 유화, 42cmx29.7cm, 2021

 

사파리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인터뷰 약속에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죄송하다는 문자를 여러 개 보내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정말로 에버랜드행 버스를 타러 강남역으로 향했다. 꿈속과 달리 에버랜드역을 지나쳐 용인의 어느 마을에서 인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났다. 인어공주가 되는 건 실패했지만 스스로를 편하게 만드는 모습을 찾았고 못 하던 수영을 하게 되었단다. 금발은 아니지만 검고 길게 뽀글거리는 머리를 가진 그가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시간. 몸과 마음이 한군데에 있는 순간. 기분 좋은 소진과 그만큼을 채워내는 활기. 나 또한 새벽 수영을 다니는 어린이였는데 왜 지금은 물에 뜨지도 못하게 되었는가. 숨 쉴 곳 없이 빼곡한 머릿속 생각들을 비우고 호흡에만 신경 쓰며 물속에서 유영하는 먼 미래의 내 모습도 즐겁게 상상해본다. …

우리가 가진 공통의 이상적 모습은 다른 이의 다른 모양을 이해해 보자는 것이었다.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다시 한 번 말했다.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곧 나의 다름도 이해받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올 테니까.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거쳐 계속해서 호흡하는 이는 자연스레 확장되는 심폐 지구력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될 테다. 우리는 그런 단계를 훈련 중이다. 헤엄치던 물 밖으로 걸어 나오면 그 후에는 여러 개의 모양들을 바라보자고.

월간소묘의 느슨한 온라인 독서 모임. 함께 읽고 써요.

 

◇ 8월의 책 <예술의 주름들>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층층의 물결이 바다의 주름 같다는 소묘의 편지를 받을 것이란 것을 예감했었던 것일까.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은 초여름의 장소 역시 바로 바다의 주름 앞에서였다. “주름” 이라는 단어는 뭔지 모르게 서글프게 만드는 단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술의 주름이라니! 골짜기 같은 그 주름을 펼쳐들면 시와 음악이, 그림과 사진, 영화가 쏟아져나와 나의 한 생애에 아름다움과 온기를 전해준다면… 사라져가는 것들을, 버려진 존재들을 극진하게 그 주름들 사이에 켜켜이 쌓을 수 있다면 그런 주름은 충분히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과 바다가 몹시도 파랐던 올 여름날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케테 콜비츠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글렌굴드가 고독과 싸우며 음악 속으로 들어간 궤적을 더듬어볼 수 있다는 말년의 연주는 8월 내내 오래도록 들었다.

@miran_bookshelf instagram.com/p/CTFMmUClAtt/

 

두 명의 잠수부가 깊은 바닷속에 매료되어 산소통을 버리고 더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는 영화에 대해 들었다. 깊은 바다와 그 아래로 기꺼이 내려가길 선택한 의지에 대해 골몰했다. 파랑의 심연은 어떤 색일까. 빛이 닿지 못한 자리는 밤하늘 같을까. 어쩌면 주름의 제일 깊은 곳도 그러할까. 그곳에는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선 진정한 평화가 있을까. <예술의 주름들>은 읽는 내내 질문을 품고 있었다.

30여 년 정도의 간격이 있는 글렌 굴드에 두 개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자주 들었다. 젊은 시절 패기가 느껴지는 연주와 온 힘을 다 뺀 나중의 연주. ‘아직까지는 옷을 입은 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을 그린 (존 버거 표현)’ 궁정화가로서의 고야의 그림을 보고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다시 본다. 그들은 스스로 심연까지 내려가는 일을 선택한 것 같아 보였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 들여다보기가 거의 불가능한 세계까지.

나희덕 시인은 이 책에서 ‘쾌’가 아닌 ‘불쾌’의 거북함, 진실, 깊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산호와 열대어가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 표면이 아니라 빛이 닿지 않는 바다에 대해. 예술의 마음에 대해. 생의 주름에 대해. 심연이 하나의 그림으로, 사진으로, 영화로, 음악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다. 주름을 펼치면 바다가 되었고 접으면 벽이 되었다.

@moya instagram.com/p/CTGgee6J4Tb/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주름은 영혼의 모습이라고 했던 철학자 들뢰즈의 말을 기억한다. 나를 통과한 것들이 내게 새긴 무늬와 깊이. 그것은 내가 나를 볼 때보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볼 때 ‘서로의 시선 앞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나희덕 시인은 예술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 바라봄으로써 예술의 주름들 속에 숨겨진 것들을 발견해낸다. ‘하나의 대상 앞에서 그 불가해한 어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맨몸의 궤적’이란 바로 이 책을 묘사하는 말이 아닐지.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인의 시처럼, 어쩌면 예술은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주한 얼굴에서 숨겨진 주름을 발견할 때,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침내 보게 될 때, 그때 한편의 시가 피어나는 것일지도.

@littlestitches__ instagram.com/p/CTL-IqUJLrB/

 

🕊  <새의 심장> 출간

—역자 후기 1 무루 instagram.com/p/CTJVAcXpB7V/

“시인의 마음을 알아야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는데요. 평소 좋아하던 시에 관한 문장들이 자주 든든한 지도가 되어주었어요. 마치 자석처럼 저를 끌어당겼달까요. …
허공을 떠다니던 이야기가 어떤 목소리들에 이끌려 비로소 무사히 착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고도 남이 있던 희미한 불안은 안희연 시인님의 추천사 첫 문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요.”

*링크에서 무루 작가가 옮긴 문장과 시의 문장들 꼭 확인해 보세요 :)

 

—역자 후기 2 기린 instagram.com/p/CTY4Lq9pm4h/

“…책 출간 후 ‘시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던 어린 자신이 떠올라 뭉클했다’는 리뷰를 많이 접했습니다. 작업하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곳으로 모아지는 감상이라니. 책을 통해 세상을 한 번 더 이해하게 됩니다. 그림책만이 가지고 있는 깊고 자유로운 세계관이 있습니다. 번역을 계속 해나갈수록 그림책이 더 좋아져요. … 새의 심장 출간 기념으로 새 모양 버터쿠키를 구웠습니다. 이 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과 나누어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혼자 맛있게 먹고 있어요.”

*링크에서 기린님이 구운 새 모양 버터쿠키를 확인해 보세요 :)

 

—소중한 첫 독자 후기

“‘시의 비밀’을 살짝 엿보고 ‘시의 마음’을 선뜻 받았다. 그 비밀에 마음을 포갤 수 있어서, 다시 시를 바라볼 수 있어서 잠시 큰 숨을 쉰다.” @hatsalhwangbo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과 엮어서 후기를 올려주셨는데요. 시의 기분이 스며드는 이 조합 매우 옳고, 꼭 함께 읽어보세요.

 

🐈  <아홉 번째 여행> 원화전 : 9.9 ~ 9.30 제주 라바북스

 

 

오는 9월 9일은 한국 고양이의 날로 ‘대봉이의 일기’를 연재하는 신현아 작가님의 그림책 <아홉 번째 여행> 출간 1주년이기도 합니다. 작은 전시를 준비 중이며 자세한 내용은 추후 SNS를 통해 공지할 예정입니다.

 

• <김혜영의 혜영들>이 마음에 큰 파랑을 일으켰어요.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뭍의 가장 안쪽까지 흠뻑 적시는 긴 파도인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일을 반드시 계속하라”는 김혜영 작가님의 문장이 파도가 밀려간 후의 모래알처럼 반짝이네요.

 

• 소묘의 추천으로 <새의 심장>과 함께 읽으려고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쓰는 기분>을 샀어요. 저는 오독 전문인이므로 언제나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펼쳤어요.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네요. “시를 쓰는 삶은 고착된 세계를 거부하며, 세상에 새 별명을 지어주는 일입니다.” 또 이런 문장도 있어요. “그러니까 시를 쓰는 삶은 이런 거예요. 달을 (단순히) 달이라 부르지 않는 것. 슬픔을 (단순히) 슬픔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새로이 짓고 세상 모든 것들에 꼭 맞는 말들을 떠올려 시를 쓴 나나의 이야기와 겹치네요. 두 책 덕분에 시를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 팔월의 책에는 반가운 이름들이 많았어요. 일월의 편지에서 소개했던 아녜스 바르다의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이제서야 보았고, 오래도록 아끼다가 친구에게 선물했던 <글렌굴드, 피아노 솔로>를 다시 만났어요. 미뤄두었던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와 존 버거의 새 책들도 펼치고 말았네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예술의 주름들이 파도가 되어 일렁여요.

 

• “편지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야. 하나의 편지는 하나의 이야기야. 편지는 영혼에 닿을 거야.” <새의 심장>에서 이 문장을 만나고 월간소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달마다 본 적 없는 숲으로 데려가는 소묘에 큰 우정을 담아 답장을 씁니다.

 

<새의 심장>의 한 구절을 답장들의 답장으로 옮겨요. “…병은 어느 해안가에 닿는다. 누군가 병을 찾아내 열어줄 텐데, 이름을 물으면 그가 시인의 이름으로 답할 것이다.” 유리병 편지에 시인의 이름으로 답해준 깊은 우정의 문장들, 고맙습니다.

 

9월의 편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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