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꼭 한 번 그런 저녁이 찾아온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올 때나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고개를 돌릴 때, 문득 ‘아,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왔구나’ 깨닫는 그해의 첫 저녁이.
-김신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종일 창을 열어두어도 좋은 달이 되었어요. 오월은 언제나 창으로 옵니다. 부드러운 구름, 잎이 초록으로 무성해진 감나무와 호두나무, 다디단 내음, 오가는 이들의 소란, 노래 부르고 춤 추듯 한껏 경쾌해진 새들의 소리와 몸짓, 이르게 도착하는 여명. 그것을 고양이가 먼저 알아요.

 

 

내가 가진 순간을 다시 한 번 더 원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거나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삶을 그저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매일에 작은 기쁨들이 숨어 있다는 것. 삶에는 아직 우리가 발견할 구석이 많다는 것.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꼭 한참 앓고 난 뒤처럼 좀 더 잘 살고 싶어졌다.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긴 인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물건이 아니라 작은 행복(‘ㅎ’)을 모으는 사람. 흔히 스쳐갈 가벼운 순간을 해상도 높게 바라보고 밀도 높게 겪는 사람. 이런 사람의 문장을 읽다 보면 행복은 없다거나 사라지는 것들에 미련 없다 단정하던 제 냉소의 벽이 뚫리고 창 하나가 내어집니다. 그리고 그 창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런 순간들이에요.
회사 옥상에 올라 담아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단 하루’, 소박하게 가꾼 정원에 호스로 물을 주는 동네 할머니의 옆모습, 여행지에서 마주친 나부끼는 빨래들, 짙어진 초록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적당히를 모르고’ 맥주를 마시던 테라스, ‘친구 이름을 부르며 골목길을 달려 내려가는 아이들 소리’,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을 보며 내게 당도할 ‘미지의 즐거움’을 그려보는 일, 수북이 쌓인 눈 더미 위로 누인 몸, ‘나도 모르게 가만가만 노래를 따라 부르던 순간’… 그러니까 ‘아 좋다’라고 내뱉은 모든 단 한 번의 찰나. 그렇지만 분명 차곡차곡 쌓여 나의 창 안쪽 풍경을 이루게 될 ‘행복의 ㅎ’들.

작가의 순간들 위로 저의 순간을 겹치며 기억하는 줄도 몰랐던 기억의 창들이 오월처럼 한껏 열립니다. 저마다의 모양, 매순간 다른 풍경. 창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활짝 열린 창 사이를 자주 거닐고 싶어요. 그리고 이 책을 제게 건네준 아름다운 창을 지닌 친구의 갈피처럼, ‘길을 잘못 들어 헤매더라도 오래 걸어 다리가 아파와도, 저기까지만 더 가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작은 기쁨들을 촘촘히 주우며 우리에게로 밀려오는 미지의 ㅎ 쪽으로.

 

 

Collect moments not things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삶을 실제로 이루고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무수한 순간들이다. …어쩌면 저 문장은 그것을 알려주려고 먼 곳을 돌아 내게 도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모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순간뿐이라는 것.

_에필로그 중에서

 

이달의 책에서 김신지 작가가 이름 붙인 ‘순간 수집’을 이달의 썸띵으로 꼽았습니다. 이달의 모먼츠라 해야 할까요. 책에서 아홉 번째 수집이 바로 ‘창’이에요. 작가는 ‘서울에 올라와 셋방을 옮겨 다니며 방을 고르는 일이 창을 고르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고 썼어요. 저는 그것을 열 몇 번을 옮기고 나서야 깨달았답니다. 그나마도 고양이 덕분이었어요. 제게 집(방)이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 잠을 자는 곳일 뿐이었는데, 첫 고양이 삼삼을 맞게 되면서 고양이 뷰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죠.

지금의 집은 창을 보고 그 자리에서 결정했어요. 삼삼이 좋아하겠다, 하고요. 오 년 전 오월 이사를 한 다음 날, 삼삼이 창가에 올라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침실이던 방을 오후의 소묘 작업 공간으로 바꾼 지 한 해가 지났네요. 지난 오월부터 일 년간 수집한 ‘소묘의 창’을 전합니다.

계절에 충실한 풍경과, 지금을 온전히 만끽하는 고양이들을 담을 때마다 매번 생각했어요. 분명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되리라고. 그리운 것은 모두 창밖에만 있는 줄 알던 한 시절이 가고, 이제 고양이를 닮아가는 것일지도요.
여러분은 어떤 순간을 수집하고 계실까요.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책방 모도

 

완벽한 창을 가진 책방엘 다녀왔어요. 동인천으로 함께 가요.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남는 것은 언제나 일상이다’ 프로젝트. 회화 작가 김혜영이 동명의 타인을 인터뷰하고 매달 한 폭의 그림과 짧은 글로 풀어냅니다.

 

빛추이

 

김혜영 작가가 그려내는 창을 좋아합니다. 창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요. 어쩌면 대부분 제 안에 있는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번엔 두 혜영을 그려봅니다. 해 지는 풍경에 젖어드는 혜영과 동틀 무렵 힘을 내는 혜영. 어둠과 빛이 안팎으로 함께한다는 것을 잘 아는 이들이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또 다독이는 모습은 환하기 그지없고요.

덧. 김혜영 작가님의 건강을 기원해요. 다음 달은 쉬어갑니다.

 

빛추이_50x73cm(2ea)_광목에 채색,유화_2021

 

지난 2월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시간 차를 두고 통지받았다. 당신은 여기가 안 좋으니 큰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따라왔다. 당장의 통증이 없는 내 몸에 대해 생각하다가 금방 잊고 당장의 해야 할 일들을 했다. 금방 전화가 다시 울렸다. 마지막으로 나온 검사 결과지에 문제가 있다고, 의뢰서를 써줄 테니 역시나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말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이번에는 없었다. 핸드폰 화면에 두 건의 병원 예약 메시지가 미리보기로 떠 있었다.

 

며칠 뒤 처음 가본 병원에서 접수를 하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깨진 핸드폰 뒷면을 보고 긴장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도 이대로 두면 안 된다며 다음 진료 예약을 했다. 작은 수술을 앞두고 사전검사를 하기 위해 커다란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증상 없이 아픈 곳들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 울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무 속상해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도 미리 알아서 다행이라고 엄마도 달래고 나 자신도 달랬다.

 

그렇게 미뤄진 약속으로 겨우 만난 이번 달의 혜영은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 내가 그림으로 그릴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그를 잦아들게 만드는 풍경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어떤 장면을 그릴지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는 빛, 그 무렵을 우리는 여명黎明이라 부른다. 지난 2019년에는 여명이라는 단어의 한자 ‘검을 여黎’를 ‘남을 여餘’로 바꾸어 제목을 붙인 그림을 그렸고 밝음이 남았다는 단순한 의미를 담았다. 어둡고 고요한 밤을 좋아하지만 안정되지 않는 아득한 밤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런 날도 어떻게든 밝아지곤 했다. 칠흑 같은 어둠의 순간이 나를 잡아 삼킬 것만 같은 이 밤들을 견디면 어딘가엔 반드시 남아 있을 빛이, 실낱같은 희망이 나를 맞아줄 것이라고. 턱을 괴고 이제 막 다 그린 그림을 보던 날도 그렇게 나를 달랬다.

 

그가 이유 없이 울던 날도 같을 것이다. 증상 없이 아픈 곳들은 사물함 속 썩은 우유 혹은 난데없이 시드는 식물과도 같아서 외면할 수가 없다.

 

*인터뷰이가 되어줄 혜영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mhaengm@naver.com

제주 고양이 웹툰. <아홉 번째 여행>을 쓰고 그린 신현아 작가가 전지적 대봉 시점으로 동생 소봉을 관찰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개 누나들도 빠질 수 없고요.

 

이달로 시즌1을 마칩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촐랑이 소봉이는 이르게 ‘아홉 번째 여행’을 마치고 창 너머 세계로 나아갔어요. 함께 기억해요. 다음 시즌에서는 창밖의 존재 금봉이를 비롯해 또 다른 봉봉 식구가 등장하게 될 거예요.

 

 

* * *

 

 

대봉이의 일기 시즌1 보기

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지금은 뿌옇게 때가 낀 유리창 밖으로 세상을 보는 기분이에요. 유리창도 일종의 벽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세상과 직접 연결될 수는 없지만, 벽만큼 견고하진 않아서 바깥에서 부는 바람에 유리창이 흔들리기도 하고 창틈으로 세상의 냄새가 전해지기도 해요. 선명하진 않아도 세상의 모습을 응시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 불완전함 속에서 바깥의 존재와 공명하는 걸 배워가는 중이에요.”

 

세상을 몸으로 부딪치며 다 바꾸겠노라 열정으로 불탔던 ‘어릴 때’를 지나, 견고하게 벽을 세우고 냉소하던 ‘젊을 때’와도 작별한 이치코의 고백. 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제 코코를 만나러 갑니다.

월간소묘의 느슨한 온라인 독서 모임. 함께 읽고 써요.

 

◇ 4월의 책 <죽음연습>

지난 목요일, 엄마 손을 꼭 잡고 병원에 다녀왔다. 영상으로는 아직 큰 변화가 없지만 천천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다른 증상이 없다면 이대로 지내도 좋다고 했다. 아주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시름을 덜었다. 엄마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엄마랑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걸었다. 카페 음료는 거의 사지 않는 엄마가 찬 것 좀 마시자, 해서 딸기 스무디를 하나씩 사 마셨다. 맑은 하늘에 큰 구름들이 떠다니고, 시원한 바람에 스카프가 휘날렸다.

어쩌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다시 ‘지금은 말고 내일’이라고 말하고 나는 그러지 뭐, 하고 건조하게 말할지도. 그러나 ‘이 순간을 함께 잘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우리 안에 있음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에너지도 줄어들고, 따라서 삶을 살아내는 속도도 점차적으로 떨어질 때, 따분할 정도로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미세한 것,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처럼 보인다. (중략) ‘지금, 이곳’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마음, 현재 주어진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를 정말로 기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노년이 한 인간의 인생에 주어지는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다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죽음 연습>의 문장처럼 엄마의 노년도, 나의 남은 날들도 작고 작은 기적들로 가득한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금, 이곳’을 함께 살다 보면 언젠가 ‘스르르 사라지’는 일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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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어주어 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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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 모임 멤버가 되어주세요. 인스타그램에서 #월간소묘_이달의책 #오묘한독서 태그를 걸어 이달의 책에 관한 리뷰 남겨주시거나 본 메일(letter@sewmew.co.kr)로 글을 보내주시면 레터에서 소개하고, 한 분을 선정해 다음 편지의 책과 오후의 소묘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  [마감] 2주년 이벤트

SNS를 통해 월간소묘를 공유하고 본 메일로 링크를 보내주시면 세 분을 추첨해 오후의 소묘 2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브라스카드홀더와 감사메모카드, 오후의 소묘 5월 출간 예정 그림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브라스카드홀더는 그림엽서를 꽂기에도 좋고, 크기는 작지만 제법 묵직해 문진으로 쓰셔도 좋습니다.(~5.30)

 

🌷  장프랑수아 샤바가 쓴 세 단편동화에 요안나 콘세이요가 삽화를 그린 <꽃들의 말>이 5월 말 출간 예정입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소식 전할게요.

 

🌷  [마감] 인생은 지금이니까 전시 후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당첨되신 분들은 커피 기프티콘 받아보실 연락처를 메일로 보내주세요. 전시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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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지금> 시크릿 이벤트 참여자 분들께는 개별 연락 드렸습니다. 다시 한 번 참여 감사합니다.

 

🌷  책의 기분에서 열린 심야책방 ‘오후의 소묘 편집자가 만든 그림책, 아끼는 그림책’ 행사 잘 마쳤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근사한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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