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가을일까요? 이실장은 단호하게 9월부터라고 합니다. 저는 첫째 고양이 삼삼이 이불 속 제 품으로 파고들 때예요. 그게 참 신기하게도 거의 매년 9월 첫날이었는데요. 올해는 아직입니다. 늘 곁에 붙어 자긴 하지만 아직 이불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거든요. 가을 어서 와…. 그렇다고 지금이 여름이라는 건 아닙니다. 제 여름의 끝은 마지막 복숭아 한 입이에요. 그 일은 엊그제 벌어졌고요. 그러니 제게 이날들은 여름과 가을 사이, 여기서 저기로 넘어가는 언덕의 계절. 지금 여러분의 계절은 무엇인가요?

이 모호한 계절의 ‘소소한 리-뷰’는 ‘복숭아’입니다. 복숭아 리뷰라니… 이실장이 듣도 보도 못한 것을 해내는군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포도임에도 어쨌든 여름은 복숭아로 기억된다는 구구절절한 연유 재밌게 봐주셔요. (tmi지만, 제 최애 과일은 복숭아입니다. 복숭아라도 없었으면 이 여름 어쩔 뻔했죠?)

‘소묘 일지’는 언제나 다음 책을 향하게 되네요. <여전히 나는>이 막 나온 마당에 말예요. 그러나 사랑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발견해 주실 거라 굳게 믿어봅니다(?).

 

 

 

팔월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두고 기다리던 소식이 날아들었다. 레터로 연재했던 신유진 작가님의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완전원고가. 연재글 분량만큼 새로운 원고가 추가됐고, 기존의 연재글도 새 모양을 한 꼭지들이 있었다. 한 편의 글이 세 편으로 변신하기까지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졌던 것일까. 내내 놀라워하며, 절반은 연재했던 글이니 수월히 볼 수 있겠지 싶던 내심을 멀리 밀어내고 생경히 또 열띠게 마주했다.

연재글 원고 중 새로 쓰인 글줄에 눈이 머무른다. ‘그해 여름은 기록적 무더위가 이어졌으나….’ 유진 작가님 인생에서 가장 무더웠던 여름의 기억. 그 글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그해 무더위는 엄마가 돌아가면서 끝났다. 엄마가 떠난 자리에는 전혜린의 책 두 권과 고추장과 엄마가 여름 동안 뜨개질로 만든 하얀 러그가 남았다. 우리는 종종 파리에서 함께 보냈던 여름을 떠올리며 얼마나 지독한 더위였는지를 말하지만, 열대야에 함께 피운 담배나 전혜린의 이야기를 다시 꺼낸 적은 없었다. 그 장소에서 그 시기에만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쓴다. 다시는 없을, 돌아갈 수 없는 삶의 한 장면을 이곳에 남겨두기 위해. 엄마가 무엇을 갈망했는지, 무엇을 작게 외쳤는지 잊지 않기 위해. 쓰고 나면 더 선명해지는 것들을 위해.”

 

좋은 글이 늘 그렇듯, 마지막 마침표 뒤 여백 위로 내 인생에서 가장 무더웠던 여름의 기억이 왈칵 흐른다. 동시에 미래의 여름엔 이 여름의 기억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을 예감하고. 그렇다면 내가 남겨두고 싶은, 선명히 보고 싶은 장면은 무엇일까. … 이 질문이 떠오른 순간엔 그것을 내가 선택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지독함과 지난함은 보내고 좋은 것만 남기겠다고, 기특한 결심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단 며칠도 지나지 않아 이 일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어떤 장면이 스스로 기억되기를 갈망하고 외친다는 것을 알겠다. 그래서 내 여름의 기억은….

 

*

연재글 한 편의 제목이었던 것을 유진 작가님이 완전원고의 파일명으로 달아 주셨고, 그것을 책 제목으로 삼기로 했다. 소문 내고 싶은 마음과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줄다리기를 하다 후자가 이겼다. 너무 좋은 것은 아껴두게 된다니까.

 

*

디자인 의뢰서에는 책 소개글 한 줄을 이렇게 적어 보냈다. ‘한 여자를 버티게 한 책들이 다른 한 여자를 통과하며 그로써 두 여자의 삶이 모두 새롭게 쓰이는 이야기.’

 

 

 

가을입니다.

아직 더우시다고요? 전국적으로 30도를 웃도는 날씨를 어떻게 가을이라 부를 수 있냐고요? 9월이니까요. 계절을 나누는 기준이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옷장을 정리하는 일로 한 계절을 떠나보내는 이들도 있을 테고, 잠자리의 이불을 바꾸는 것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아침 최저기온이나 한낮의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봄과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개나리가 필 때를 봄이라 부르는 이들, 벚꽃이 만발해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인정하는 이들, 거리의 은행잎이 다 떨어진 걸 보고 가을이 끝났음을 실감하는 이들, 첫눈 소식을 듣기 전엔 겨울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들…. 저는 날짜를 기준으로 계절을 나눕니다. 3월부터 5월은 봄, 6월에서 8월은 여름, 가을은 9월에, 겨울은 12월에 시작합니다. 기후 위기가 아무리 지구적 차원에서 날씨를 뒤흔들어도 매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확하게 각각의 계절이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9월은 가을입니다. 상당히 더운 가을이긴 하지만요.

 

여름이 끝났습니다.

여름의 기억으로 무엇을 남기셨나요? 저는 몇 년째 똑같은 기억뿐입니다. 복숭아, 여름이라고 하면 복숭아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복숭아 가득한 택배 박스를 열어 냉장고에 넣으며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마지막 복숭아 한 입을 오물거리며 8월의, 그러니까 여름의 마지막 밤을 보냅니다.

— 아, 복숭아를 엄청 좋아하시나 보네요?

— 아뇨. 포도를 제일 좋아하는데요.

— 그런데 왜 여름 내내 복숭아를..?

 

부모님은 제가 여섯 살 되던 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왔습니다. 팍팍했던 시골의 삶에 질렸을 수도 있고, (당시로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보였을 도시의 삶을 선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직접 여쭤본 적이 없으니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추측건대 시골구석에서 농사 짓기가 싫어서 도망(?)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에게 얘길 듣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각색되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농사 못 짓겠다’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30년 넘게 도시에서 살다가 십여 년 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귀향인지 돌발적인 선택이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역시 따로 여쭤보질 않아서.. 굳이 여쭤볼 만큼 중요한 일이란 생각도 안 들었고.. 마산이나 창녕이나, 어차피 서울에서 내려가려면 똑같이 3~4시간 거리인데 무슨 변화가 있을까, 저랑은 아무 상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부모님의 고향은 조부모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증조부님 때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으니 한 집안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죠.(제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고요. ‘[이치코의 코스묘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참고) 당연히 농사로 살림을 꾸렸던 논이며 밭이며 있었을 테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모두 정리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농사지을 사람도 없는데 그 외진 시골에 빈 땅을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분명 논밭을 다 판 줄 알았는데, 동네 야산 기슭에 있는 밭 한 뙈기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밭 하나는 왜 남겼지? 그걸 보면 귀향을 오래전부터 계획하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부모님 역시 한국인 유전자의 소유자인지라 귀향 후에 그 밭이 노는 꼴을 보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간혹 고구마나 단감(은 밭에서 나는 건 아니지만 창녕 특산품 중 하나라..)이 택배로 도착하곤 했습니다. 박스 단위로 온다는 게 좀 곤란하긴 했지만, 농작물이 원래 조금만 심어도 수확량이 엄청나다 보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밭에는 고구마 말고도 분명 뭔가 더 있었을 테지만, 집에서 밥을 거의 해 먹지 않는다는 걸 부모님도 알고 있어서 밭작물을 무리해서 보내지도 않으셨고요.

 

밭의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크게 신경 쓸 일 없는 상태로 그렇게 몇 년을 지내던 어느 해 여름, 드디어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보낸 택배 박스를 열었는데 복숭아가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보내면 보낸다고 말이라고 하시지..) 어머나 이게 뭐야. 맨날 보던 녀석들이 아니어서 얼마나 놀랐던지. 여기 복숭아가 왜 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알고 보니 밭이 조금씩 과수원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복숭아나무 몇 그루를 시작으로 매년 과수를 심어 왔던 것이죠. 먼저 심은 나무들이 자라서 첫 수확을 하게 됐던 것이고요. 나중에 과수원으로 변모한 밭을 직접 가봤더니 자두, 복숭아, 사과 나무들이 스물대여섯 그루 가까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넝쿨로 자라는 포도와 키위도 보였고요. 아니 노인네 둘이서 언제 이렇게.. 100평 남짓한 땅이었으니 망정이지 더 넓었다면 아예 기업형 과수원을 운영할 태세였습니다. 과수 중엔 복숭아가 제일 많았고, 나중에 심은 나무도 커가면서 초반에 한두 박스 오던 택배가 어느 해부턴가 (특별히 흉년만 아니라면) 네 박스씩 꼬박꼬박 도착하고 있습니다.

 

[계속 읽기]

 

 

 

_📔 [여전히 나는] 출간되었습니다🤎_

⭑ 리뷰어 모집에 만 이틀 동안 88분 신청해 주신 것 무슨 일인지! 모니카 바렌고와 다비드 칼리 두 작가님에 대한 애정, 정림 번역가님과 리브레리아Q에 대한 믿음, 오후의 소묘를 향한 응원과 관심 모두 감사했습니다. 신청 시 남겨주신 글들 다 주옥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짧게 공유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 집에서 1시간을 차로 달려 용인의 한적한 숲에 위치한 독립서점을 찾아간 날이었습니다. [구름의 나날]이라는 묘한 색감의 책을 처음 만난 날, 제 눈은 온통 모니카 바렌고란 이름에 집중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선과 색감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림책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그림책의 장면을 색연필로 그리는 취미가 있는 저는 그때부터 당장 모니카 바렌고의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가항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 다비드 칼리의 글을 이번에는 어떤 분위기와 색감으로 표현해냈을지 기대에 벅차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쩌면 ‘오후의 소묘’의 정체성을 개인적으로 저는 모니카 바렌고의 책에서 느낍니다. 몽환적이지만 뜬구름스럽지 않고 오묘한 매력을 지닌 오후의 소묘의 책들. ‘여전히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오후의 소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출간을 기다립니다. _@drawing_lily_

• 소묘에서 출간한 세 권의 그림책, 『구름의 나날』, 『사랑의 모양』 그리고 『마녀의 매듭』을 책장에서 자주 꺼내어 봅니다. 쉽게 잠들지 않는 밤의 다음을 믿고 싶을 때, 아이와 나 모두의 마음에 잔뜩생채기를 낸 오늘이 우리의 끝이 아님을 믿어보고 싶을 때, 내가 나를 가두고 있는 듯한 시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믿어야만 할 때. 어지러운 마음을 잠재우고 토닥이는 한 곡의 노래, 한 편의 시, 한 순간의 위로가 되어주는 모니카 바렌고의 그림 속에 잠잠히 고개를 파묻곤 해요. 아직은 마음껏 그리워할 자신이 없는 누군가들과 함께 자라오고 살아왔던 저일지라도, 『여전히 나는』이 들려주는 이야기, 보여주는 장면, 퍼트리는 감정이 저와 하등 상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진 않아요. 사랑과 추억, 상실과 그리움이라는 단어와 그안에 고여 있는 기억, 그리고 그곳에서 퍼져나온 시간은 지금의 저를 이루는 일부이기도 하니까요. 동시에 앞으로의 저를 더 많이, 깊이 차지하게 될테니까요. 기쁘게도. 슬프게도. 그러니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여전히 나는』 또한 어느 때의 마음을 알아주고 안아주는 순간이 제게도 분명 찾아오겠죠. 어쩌면… 이 그림책을 처음 펼치자마자 덜컥, 울컥할지도 모르겠고요. _@thine.moon

• 며칠 전, 리브레리아Q의 한샘님 스토리에서 우연히 이 그림책의 한 장면을 보았어요. 다른 설명 없이 그림만 올려져 있던 그 화면이 순식간에 넘어가버리지 않도록 한참동안 엄지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출간된 그림책일까? 하고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제목을 알 수 없었어요. (…) 저는 늘 상실에 대처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살고 있어요. 눈앞에 커다란 일이 생겨도 누군가는 여전히 생을 살아야 합니다. 슬픔 지나간 자리에 남은 납작한 마음 알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신청합니다. _@readiiit

 

⭑ 책 깊이 읽는 시간 마련했어요. [여전히 나는]을 비롯해 모니카 바렌고와 다비드 칼리의 여러 작품을 두루 살펴볼 거예요. 특히 모니카 바렌고 작가가 그려내는 감정의 모양을 촘촘히 들여다봅니다. 그의 아련하고 낭만적인 세계에 함께해요. 오후의 소묘 이웃 ‘책방 시나브로’에서 진행합니다. 공지 및 신청은 시나브로 인스타그램을 참고해 주세요 :)

• 일정: 9월 28일 토요일 오후 5시 | 장소: 책방 시나브로(은평구 응암로25길 11-1)

책방 시나브로 인스타그램

 

_[작가의 방] 9월 예약하기_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신청 : 네이버 예약

 

 

9월의 편지, 어떠셨나요?

답장을 남겨주세요.

 

[월간소묘: 레터] 구독하기

 

 

 

[월간소묘 : 레터]는 책과 고양이를 비롯해 일상의 작은 온기를 담은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에 만나요.

구독하기

 

[월간소묘: 레터]

2020년   첫 편지 ‘생기’   •  3월의 편지 ‘질문의 자리’  •  4월의 편지 ‘장소라는 몸’  •  5월의 편지 ‘낭만’  •  유월의 편지 ‘어느 틈에’  •  7월 ‘편지하는 마음’  •  8월의 편지 ‘빨강’  •  9월의 편지 ‘어스름’  •  시월의 편지 ‘herbarium’  •  11월의 편지 ‘그 속에는’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1년   첫 편지 ‘얼굴들’  •  2월의 편지 ‘걸음걸음’  •  3월의 편지 ‘Little Forest’  •  4월의 편지 ‘Now or Never’  •  5월의 편지 ‘창으로’  • 유월의 편지 ‘비밀의 무늬’  •  7월의 편지 ‘여름의 클리셰’  •  8월의 편지 ‘파랑’  •  9월의 편지 ‘이름하는 일’  •  시월의 편지 ‘일의 슬픔과 기쁨’  •  11월의 편지 ‘나의 샹그릴라’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2년  1월의 편지, 새해 첫 책  •  2월의 편지, 어려움에 대하여  •  3월의 편지, 구름의 나날  •  4월의 편지, 사랑의 모양  •  5월의 편지, 비화  •  6월의 편지, 사라진다는 것  •  7월의 편지, 환대  •  8월의 편지, 정원 너머 어렴풋이  •  9월의 편지, 함께 해피엔딩  •  10월의 편지, 마음을 쓰고 계신가요?  •  11월의 편지, 작가의 발견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3년 1월의 편지, 하얀 꽃들이 피어나  •  2월의 편지, 차를 듣는 시간  •  3월의 편지, 조용히 다가오는 것들  •  4월의 편지, 꿈을 꾼다는 건  •  5월의 편지, 다정한 반복으로  •  6월의 편지, 다시 태어나기를  •  7월의 편지, 촛불을 켜는 밤  •  8월의 편지, 치코의 일기  •  9월의 편지, 아름다움과 함께  •  10월의 편지, 언제 나와요?  •  11월의 편지, 오늘의 주인공은 너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4년 1월의 편지, 새삼 새 마음  •  2월의 편지, 일상 맞춤형 실감 블록  •  3월의 편지, 사랑과 우정의 세리머니  •  4월의 편지, 길고양이 돌봄 지침  •  5월의 편지, 절기 좋아하세요?  •  6월의 편지, 우리를 홀린 OOO  •  7월의 편지, 이 모든 일이 다 영화 같아요  •  8월의 편지, Sometimes, again  •  9월의 편지, 여름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