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첫 인사를 드립니다. 해가 바뀐 지 벌써 열흘이나 넘게 지났다니요. 여러분은 새해 계획이나 다짐을 실천해 가고 계실까요? 저는 이제야 지난해를 갈무리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나의 새해는 구정부터지!라면서요.

그간 레터로 전해온 월간소묘 시즌2가 어느덧 만 5년이 되었는데요. 작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 정비의 시간을 가지며 소소한 개편 후에 다시 찾아뵈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번 레터는 나누고 싶은 글과 문장을 빌려 숨 고르기의 편지로 띄웁니다.

 

 

대구 책방 ‘하나의 시선’에서 있었던 <사랑을 연습한 시간> 북토크 중 서점지기님이 새해 첫 책은 무엇인지 물어보셨어요. 유진 작가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기셨는데요. 언제부터가 새해였는지, 그사이 읽은 수많은 책들 중 어느 것이 새해 첫 책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의 경계와 책들의 미로 사이를 잠시 거닐다 오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카뮈라는 답을 하셨어요. 유진 작가님은 지난 연말부터 한겨레 신문에 ‘신유진의 프랑스 문학 식탁’ 연재를 시작했고 두 번째 글이자 새해 첫 글로 ‘카뮈의 태양’에 관해 쓰셨거든요.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무한 반복의 무의미한 노동, 한낮의 태양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과 조건”이라는 부조리 속에서 어떻게 이 삶을 긍정하며 살 수 있을까. 새해에 함께 읽으면 좋을 거예요. [글 보기]

 

 

저는 읽었다기보다 해의 경계에서 떠올린 책과 문장이 있어요. 연말엔 미화리 작가님의 <엔딩까지 천천히> 마지막 꼭지들을, 연초엔 윤혜은 작가님의 <매일을 쌓는 마음> 처음 꼭지들의 문장을 곱씹었습니다.

 

어떤 풍경의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욕심 부리지 않고 가진 것 안에서 행복한 풍경을 이루고 싶어요. 과하게 흘러넘치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것이 물질적 풍요든, 감정이든. 부족한 부분이 모여 제법 괜찮은 전체를 이루고 싶어요.

삶의 큰 의미 같은 것 없이도 살고 싶어지는, 더 잘 살아내고 싶어지는 순간은 언제든 어디에든 있었습니다. <체리향기>도 그런 영화입니다. 삶의 의지를 상실해 버린 주인공이 죽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불현듯 살고 싶어지는 순간을 만나는. (…) 부디 사소한 이유로 살아주세요. 삶의 의미 같은 건 없어도, 당신만의 체리 한 알을 떠올려 주세요.

제게 ‘잘’ 산다는 건 나를 만나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는 삶이에요.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나도. 나를 만나 다행이었던 삶.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나랑 만난 게 득을 본 것 같은 삶. 사는 동안 그런 기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이미화, <엔딩까지 천천히: 미화리의 영화처방 편지>

 

무수한 오늘이 양옆으로, 또 위아래로 짜여 있는 10년 일기장의 구조나 규모의 특성상 나는 하루하루를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것보다 빼곡하게 쌓이는 것으로 감각한다. 그렇게 쌓여 있는 ‘오늘들’로부터 뒤늦게 나를 비춰보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

오늘은 어제로서의 결과도, 오늘만을 위한 단독적인 하루도 아니고, 내일을 있게 하는 가장 최근의 현재다. 그런 인식에는 묘한 책임감이 따라온다. 하루를 감각하는 삶의 거리가 오늘에서 내일까지로 늘어난 만큼 얼마나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냈는지는 이 시간이 쌓여 또 하나의 시절이 된 그때에 일기장이 말해주겠지. 이런 변화를 나는 세월이 부린 마법이 아닌 ‘일기를 쓰면서 달라진 점’이라고 느낀다.

윤혜은, <매일을 쌓는 마음>

 

2025년 들어 10년 일기장의 두 번째 줄을 채워가고 있어요. <매일을 쌓는 마음>을 만들며 2024년 1월에 처음 쓰기 시작한 10년 일기장은 8월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빼곡한데 9월부터 10월까지는 부끄럽게도 말갛고 11월부터 다시 드문드문 쓰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본래 일기인간이 아닌 인간이 일기인간으로 거듭나는 일은 쉽지 않네요. 그래도 두 번째 줄을 쌓아가는 마음이 제법 뿌듯하고 <매일을 쌓는 마음>을 만들던 때보다 지금 더 이 문장들에 가닿은 기분이 들어요. 10년 일기장의 양옆과 위아래 칸칸이 ‘체리 한 알’이 쌓아가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맞이할 내일을요.

 

 

마지막으로 신년 특집으로 꾸려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623호에 실은 글의 일부를 전합니다. 소묘의 2025년 계획 하나가 이 글 속에 들어 있어요. 소묘의 책들이 2025년에도 여러분의 체리가 되어준다면 좋겠고요. 반가운 소식이길 바랍니다 :)

우리의 새해는 설부터잖아요? 1월 조금 느슨히 숨 고르며 보낸 뒤 다시 환하게 만나요!

 

 

 

 

누군가의 내일을 이루는 이로운 무늬

 

‘지금의 나를 만든’이라니, 어쩐지 거창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읽고 만든 모든 책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을 테다. 그 어떤 비유도 아닌 투명한 사실로, 내가 만든 책들이 다시 나를 만든다. 그리고 ‘만들다’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변화의 속성을 지닌다.

지금의 나는 변화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불과 5년∼6년 전만 하더라도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르는 과도기를 통과하고 있었고, 그때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이하 『이로운 할머니』) 를 만들었다. 출판사 ‘오후의 소묘’의 시작에 이 책이 있다는 것을 그간 여기저기에서 (<기획회의> 529호에서도!) 밝혀온 터라 이 이야기를 또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오롯이 이 책만을 다룬 적은 없었기에 오래 담아둔 편집자 후기를 뒤늦게나마 풀어본다.

2017년의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나는 가방에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라는 가제가 붙은 책의 출판계약서를 넣고서 무루 작가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만났다. 이것은 우리의 세 번째 만남으로, 첫 만남은 그의 그림책 수업에서였다. 나는 그를 조용히 오래 좋아해 왔다. 단정한 글과 사진으로 꾸려가는 블로그를 탐독했고 그가 2012년에 홍차에 관해 쓴 첫 책의 독자였으며, 어느 날 그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모임을 꾸린다는 공지를 올렸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하루 수업을 듣고는 단번에 그의 조용한 독자에서 열렬한 편집자로 변신해, 바로 전 직장인 어크로스 출판사에 출간을 타진했다(당시 나는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고양이책방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친구와 내가 운영하던 책방으로 무루 작가가 찾아와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이 모종의 기획을 그에게 전한 후, 마침내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2017년 12월 26일 남서울미술관, 그곳에선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책 전시 <망각에 부치는 노래 (Ode l’Oubli)>가 열리고 있었고, 이 전시에 관한 이야기는 훗날 『이로운 할머니』의 서문이 된다.

“아흔 살의 할머니가 그림책을 만든다. (중략)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책은 한 여인이 어른으로 살아온 긴 시간의 흔적들을 재료 삼아 만들어졌다. 해진 천을 자르고 꿰매며 작가는 자신의 지난날들을 오래 매만졌을 것이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그림책을 보고 난 뒤로 나는 바느질하는 할머니의 손을 자주 상상했다. 그 손은 오래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않는 손이고, 때로는 그것들을 모두 꺼내 과감히 자르는 손이며, 끝내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손이다.”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서문 중에서)

『이로운 할머니』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책이 그렇듯, 무루 작가가 자신이 오래 매만져 온 이야기를 천 삼고 아끼는 그림책들을 실 삼아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만들어졌다.

(중략)

그와 함께 그림책들을 읽고 그의 글을 매만지며 나는 비로소 내가 나이 들어 무사히 도착할 어떤 미래를 그려보게 됐다. 앞날에 대한 계획도 희망도 없이 현재마저 비관하며 살던 나 자신이 이제는 까마득하다. 쇠락해 가는 내일이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삶을 완성해 가는 모습을, 이제는 조금 설레며 기다린다. 이 책에 스미어 전에 없던 하나의 문장이 내 안에 생겨난 것이다.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것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놓인 가장 큰 변화다.

그 책을 만드는 사이 ‘오후의 소묘’가 태어난 것은 그보다 작은 변화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필요한 재료들을 만들고 있다. 우리 그림책들은 모두 내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몇 번이고 펼쳐보고 싶은 그림과 이야기가 담겼다. 오후의 소묘의 출간 기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데 이렇듯 몹시 명확하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펼쳐볼 그림책. 한편 오후의 소묘의 에세이들은 할머니가 될 미래를 위한 징검다리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내일을 향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길을 만드는 일, 혹은 나를 새로이 이끌어 줄 곳으로 발을 딛게 해주는 것.

그 걸음걸음에 여전히 무루 작가가 있다. 우리는 번역 그림책 작업, 여성 창작자 독서 모임, 일상생활기술워크숍 등 이것저것을 도모하며 나란히 삶의 방향을 같이하고 있다. 실은 내가 그의 뒤를 좇아가고 있는 것이겠지만. 지금 나는 『이로운 할머니』 계약서를 쓰던 때, 자신은 한창 자라는 중이라던 무루 작가의 나이가 됐다. 이제 변화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나도 어쩌면 자라는 중일까. 무루 작가는 자신이 바라는 미래의 편으로 갈 때 그림책으로부터 힌트를 길어 올리고 나는 그런 그의 삶과 글에 기댄다.

실은 지금도 그의 글 속을 살아가고 있다. 2025년 상반기에 책으로 선보이게 될 것이다. 장장 5년 만의 신작이라니. 여전히 잊지 않고 기다려 준 독자가 있으리라 믿는다.

가제는 ‘우리가 모르는 낙원: 무루의 이로운 그림책 읽기’이고 하 수상한 시절을 겪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만드는 두 번째 책이 우리도 모르는 낙원의 힌트가 되어준다 면 좋겠다. 그의 책이 내게 그랬듯, 누군가의 내일을 이루는 이로운 무늬가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_🌿 [사적인 계절: 박혜미 에세이 화집] 출간 예고 & 리뷰어 이벤트_

그림책 <빛이 사라지기 전에>로 한여름 빛과 바다를 온몸으로 느끼해 주었던 박혜미 작가님의 사계절 그림과 글을 묶어 에세이 화집으로 선보입니다. 1월 20일경 출간 예정이에요. 반가이 만나주세요.

• 리뷰어 신청하기

– 신청 기간 1.13 – 1.16

– 리뷰어 발표 1.17

– 신청 시 남겨주신 이메일로 개별 연락드리니 메일함 꼭 살펴주세요.

 

_💖 [사랑을 연습한 시간] 저자 북토크 소식들_

★ 다섯 번째 북토크 X 미우서재(부산)

✓ 일정: 1. 18(토) 오후 2시

✓ 장소: 미우서재 (남구 용호로 268-5)

•신청하기

★ 여섯 번째 북토크 X 잘익은언어들(전주)

✓ 일정: 1. 23(목) 저녁 7시

✓ 장소: 잘익은언어들 (전주시 거북바우로 68-1)

•신청하기 : 잘익은언어들 인스타그램

🎁 북토크 참석자 특전 굿즈 : 틴케이스+이안이 포토카드 6종 세트, 포스터(전면 표지 그림, 후면 엄마의 편지와 저자의 메시지 서명)

🔔 2월에는 대전 버찌책방전주 토닥토닥으로 갑니다. 찬찬히 소식할게요.

 

_[작가의 방] 1월 예약하기_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링크 : 네이버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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