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 해를 돌아보니 종횡으로 무진 다녔더라고요. 대구, 부산, 대전, 전주, 목포, 수원, 청주, 경주, 군산, 익산, 순천, 광주, 용인, 태안, 평창, 성남, 파주, 정동진, 그리고 오늘은 어쩌다 양주까지. 이 중 여러 번 방문한 지역도 꽤 되고요. 여행이나 임장(?!)으로 간 곳도 있지만 무엇보다 소묘 행사 덕분이었지요. 올해 총 스물다섯 번의 북토크! 거의 격주로 열린 셈인데… 아아… 아득해지네요.

연초에는 <사랑을 연습한 시간>의 신유진 작가님, 봄에는 <사적인 계절> 박혜미 작가님, 한여름에는 <우리가 모르는 낙원>과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개정판을 낸 무루 작가님, 가을겨울에는 <고르는 마음>의 정한샘 작가님과 함께였어요. 소묘살롱으로 소묘가 독자님들과 직접 만나기도 했고요. 종종 구독자분들께서 “레터 잘 보고 있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면 그게 그렇게 반갑고 기쁠 수가 없었답니다.

이렇게 열심으로 독자님들과 만나는 동안 제게 차곡차곡 쌓인 장면은 여러분의 얼굴보다는 둥근 어깨, 경청하는 귀, 끄덕이는 고개, 책을 꼭 쥔 손 같은 것입니다. 진짜 이야기는 옆모습이나 뒷모습에 있다는, 문이영 작가님의 <우울이라 쓰지 않고>의 한 구절을 자주 떠올렸어요.

“진짜 이야기는 관자놀이에, 귓바퀴에, 머리칼 끝에 있다. 호흡에 따라 오르내리는 등의 움직임에, 불편감에 못 이겨 자꾸만 고쳐 앉는 자세 속에 있다. 진짜 이야기는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다. 경험상 그것은 옆이나 뒤에서 비스듬히 볼 때 다가온다.”(119-120쪽)

한 시간, 두 시간, 마음 놓고 여러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앉기까지의 여정을, 책의 접은 귀에 겹친 마음을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어요. 그 하나하나가, 소묘가 지나온 그리고 나아갈 날들을 밝혀주는 촛불 같았어요.

이치코 실장은 이번 레터에서 ‘올해 당신에게서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그 자리는 어디인가요?’라고 물었는데요. 제게는 북토크가 끝나고 여러분이 머물렀던 의자들이 떠올랐답니다. 어디서든 언제든 어떤 모양으로든 다시 만날 것을 믿어요.

2025년은 ‘애틋한 뒷면’으로 오래 기억할게요.

 

 

2026년은 오후의 소묘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매달 보내는 ‘이달의 편지’가 아니라 문득 안부를 묻는 오랜 친구처럼 비정기·비정형의 모습으로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가려 해요. ‘소묘의 편지’와 ‘이치코의 편지’로 찾아뵐게요. [월간소묘: 레터]를 구독해 주시는 1591분 모두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작고 짙은 온기 늘 함께하시기를 바라요.

 

 

 

한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꼴랑 이틀 남았습니다. 우리의 2025년은 어땠을까요? 다들 무사하셨나요?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참 다행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2025년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시작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달력의 날짜가 1월 1일이 되었지만 새해는 맞지 못한 채 2024년을 계속 살았으니까요. 2024년 12월이 길어도 너무 길었습니다. 2024년이라는 연도가 평생토록 선명하게 기억될 만큼 강렬했기에, 그 영향으로 인해 2025라는 숫자는 쉽게 잊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5년이 왠지 불쌍해 보이지만 보통은 특별한 몇 해를 제외하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코로나만 해도 시작이 2020년이었던 건 확실하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게 언제였는지 제가 코로나에 걸렸던 게 몇 년인지 벌써 헷갈리는걸요.

 

사실 2025년보다 훨씬 불쌍한 해는 따로 있습니다. 21세기의 시작을 2000년에 빼앗겨버린 2001년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아시다시피 세기century는 100년을 한 덩어리로 묶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1세기의 시작이 0년이 아니라 1년이므로 20세기는 당연히 1901년부터 2000년까지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백 단위뿐만 아니라 천 단위까지 1에서 2로 바뀌는 상징성, 조금이라도 빨리 21세기, 밀레니엄이라는 키워드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자본주의적 욕망 등이 겹치면서 2001년은 아무런 존재감 없는 연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저는 2001년을 새로운 세기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20세기가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20세기를 살았던 사람이고 싶습니다. 벌써 21세기도 그 1/4인 25년이나 지나가 버려서, 한두 해 안에 비명횡사하지 않는 한 20세기보다 21세기를 더 많이 겪게 되겠지만 심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어쨌거나 인류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편인데도 그렇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거기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혹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놉! 안 간다. 이미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슬펐고 행복했고 괴로웠다.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는 묻지 않고 만약 갈 수 있다면 ‘언제’인가를 묻는 일종의 유도신문 앞에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습니다. 절대 안 간다. 그러니 20세기에 뭔가를 두고 왔어도, 한때 간절히 원했던 것이었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지난 시간, 사라져 버린 것들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곳에 있지 않았요. 그들은 부재중이에요. 사라진 거죠.”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프롤로그 ‘부재자들의 노트’ 中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 바뀌었습니다. 과거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역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겠죠. 다만 어떤 조건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따라 다릅니다. 과거에 가서 다른 선택을 하고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대답은 여전히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입니다. 평생을 후회해 온 선택을 바꿔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한들,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건 결국 저 자신일 테니 무언가 크게 달라진 인생이 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후회를 지우는 대가로 몇 개의 후회가 더 생길지 가늠할 수 없기에 결국 의미 없는 반복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되 어떤 선택도 바꿀 수 없고 여태 살았던 것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조건이라면, 한 번쯤 돌아가 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들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흔쾌히 시간 여행자가 되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라진 그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본 바로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추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내가 그들을 데리러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한 거죠. 사라진 건 오히려 내가 아닐까? 그들이 아니라. 무섭고 고통스러워서, 혹은 화가 나고 실망하고 상처 받아서 내가 그들에게 가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프롤로그 ‘부재자들의 노트’ 中

 

2013년 10월 24일의 김삼삼

 

돌아가고 싶은 때는 2013년 가을의 어느 날입니다. 삼삼이를 처음 만난 날이죠. 길고양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밥을 요구하는 듯했던 눈빛과 열린 현관을 지나 마치 제 안식처인 양 집을 들락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로부터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죠. 삼색고양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몰랐던 무지렁이에서 이제는 길에서 들리는 희미한 울음소리만으로 아깽이의 월령을 추정할 수 있을 만큼 고양이 친화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삼삼이 하나뿐이었던 식구도 여섯까지 늘었고요. 그 시절을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카와 처음 눈인사를 나눈 날, 치코를 처음 만난 날, 미노와 오즈와 시월이의 체온을 처음 느낀 날. 대체로 기쁨이 충만한 날들이었지만 완벽하게 행복한 시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마주하기 두려운 커다란 슬픔도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히루를 떠나보냈을 때의 고통과 좌절을 다시 감당해야 할 테지만 그래도 2013년 가을의 어느 날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붙잡을 것입니다. 그 슬픔까지 끌어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삶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요.

 

“아리아는 고양이들의 천국으로 떠났어. 나도 그곳에 가서 아리아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어. 아리아가 나를 만나면 얼마나 기뻐할지 상상해 봐. 천국은 정확히 어디에 있을까? 하늘? 좋아. 알겠어. 그러니까 어디? 행성들 근처라고? 어느 행성?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로 올라가면 고양이 천국을 보게 될까? 우리에게도 사진을 보내줄 수 있을까? 만약 사진 속에 아리아가 있다면, 아주 작고 흐릿하다고 해도 나는 알아볼 수 있을 텐데.”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아리아ARIA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中에서

 

고양이와 무관한 인생에서 반려묘가 있는 삶으로 변모할 확률이 1이라고 한다면, 1묘에서 2묘, 2묘에서 3묘가 될 확률은 1보다 훨씬 커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고양이가 고양이를 부른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고양이 숫자의 증식 외에 다른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단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주변에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고? 다들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서야 나타난 거지? 내가 고양이와 식구가 되기를 기다렸나? 싶을 만큼 반려묘 가정의 네트워크가 빠르게 확장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변 지인들의 고양이와도 친밀함을 쌓게 됩니다. 그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고양이를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니까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슬픔의 자리 역시 정해져 있는 법, 고양이와 함께 사는 주변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상실의 소식 또한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됩니다. 사진과 이름으로만 알던 아이일 때도 있고 직접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쓰다듬고 궁디 팡팡!을 하며 알게 된 아이일 때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더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면 가누기 힘든 슬픔이 찾아옵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반려인의 슬픔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매번 마음이 무너지는 듯합니다. 가끔은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눈앞에 또렷하게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 마음 어딘가에 그들의 자리가 있다고, 언제든 그 자리로 찾아가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사라진 것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것까지 포함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읽기]

 

 

 

2025년의 월간소묘는 [소묘의 여자들]로 찾아뵈었지요. 총 열 번을 계획했는데 아홉 번을 전했고요.(그래도 함께한 여자는 열 분!) 혹여나 놓친 여자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꼭 만나주세요. 선뜻 이야기 들려주신 여자들, 모두 감사했어요.

 

✲ 2월 박혜미(feat. 정선정) | “만들고 전하는 것들이 내 온기고 용기”

✲ 3월 신유진 | “쓰고, 살고, 모든 것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 4월 이미나 | “계속, 자꾸, 늘 그리고 싶은 세계”

✲ 6월 요안나 카르포비치 | “그냥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이면 됩니다”

✲ 8월 정한샘 | “굳이, 단단한 마음으로, 구태여 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 9월 무루 | “이야기는 어떤 것의 이면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

✲ 10월 이경란 | “아주 작지만 분명한 이정표를 남기는 것”

✲ 11월 이미화 |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

✲ 12월 윤혜은 | “새로운 정성을 향해 허리를 펴고 넓은 보폭으로”

 

 

 

✧ 1올해 가장 아꼈던 단어는 ‘다정한‘이였어요. 다정한이란 단어를 모든 사물 앞에 붙이며 그 의미를 되새겼죠. 사실 다정하다는 말이 식상하고 별 매력이 없었는데 정말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나서 그 의미가 싹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삶에서는 다정한 마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아요. 다정한 사람은 더더욱 어렵구요. 저는 2026년도 다정한 사람, 다정한 엄마, 다정한 아내, 다정한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_크렘벨

 

✧ 제 올해의 무엇은 복싱입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복싱을 도전해봤어요. 우연히 접하면 막연하게 ‘멋있다’, ‘해보고 싶다’ 생각만 했는데 친구와 충동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3달 차가 되어가는데 확실히 체력도 늘고, 샌드백 때리면서 스트레스도 풀려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방영한 <무쇠소녀단>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 클립으로만 봤지만 더 많은 여성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 ‘무섭다’고 느껴지는 스포츠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도전해보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복서의 재능을 타고 났을지도 모릅니다… 쨉쨉 카운터 훅! _정연

 

✧ 일기떨기 애청자라서 혜은님과의 인터뷰가 더 반갑네요:) 운은 결국 노력의 결과라는 말에 괜히 울컥했어요. 올해는 저에게 “변화” 그 자체였어요. 갑작스러운 해외출장, 회사 내 직무(와 부서) 변경, 돌보던 임보고양이가 다른 임보처로 이동하고 연말엔 새로이 보호소에서 고양이를 정식 입양하게 됐고 이사도 했네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여전히 나는 나로 남아있다는 게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에요. 연말이면 꼭 무료운세들을 찾아보고 저장했다가 일년 내내 그걸 살펴봤는데 올해는 보고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왤까요? :) _solleap

 

✧ 올해 최고의 책은 <페른베>이다. ‘먼 곳에 가닿고 싶은 마음’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가 마음을 쳤다. 늘 뭔가를 갈망하고 찾아다니며 또 다른 나의 만남에 왜 나는 천착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현실과 현실 너머의 다른 곳을 찾아 계속 그리워하면서 걸어가는 것이 어쩌면 내 삶이자 표현이 될 것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올해의 단어는 ‘이음짓다’ 바느질이라는 일로 표현의 수단을 삼은 것에 대한 나의 이유. 너와 나, 자연과 인간, 사물과 사람이 모두 연결된 존재이다. 이어서 연결 짓는 행위에 가장 쉬운 것이 바로 실과 바늘 아닐까! 그래서 이음 짓는 바느질장이라고 나를 정의할 수 있었다. _강하08

 

다정한 크렘벨 님, 멋진 복서 정연 님, 집사가 되신(격하게 축하드립니다!!) solleap 님, 가닿고 이어지는 강하08 님, [연말정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 받아보실 주소, 연락처와 성함을 참여하신 닉네임과 함께 [답장하기]로 보내주세요 :)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알라딘 북펀드 & 1월 15일 출간 예정

책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작업하는 내내 이 아름다운 책에 사로잡혀 있어요. 부재하는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이야기,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그려낸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을 전합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 책의 글 작가, 콘치타 데 그레고리오 역시 오랫동안 알레마냐의 그림책과 그림을 애정해 왔다고 해요. 데 그레고리오는 한 인터뷰에서 알레마냐를 두고 이렇게 말했어요. “서로를 알지 못했을 때조차 우리는 같은 것을 보기 위해 멈춰 서고, 같은 방식으로 감동했어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제가 그들을 만나면 알아본다는 점입니다. 베아트리체처럼요. 우리는 같은 음을 연주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콘치타 작가는 부재와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베아트리체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있는 파리에서 만나 함께 책을 만들기로 하죠. 콘치타는 베아트리체의 오래된 드로잉 노트를 보면서 그 위로 자신의 이야기 노트를 포개어 이 글들을 써내려갔다고 해요. 사라진 사람들, 지나간 시간, 끝나버린 사랑, 잃어버린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이 아름다운 책은 그렇게 완성됐답니다. 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빈자리를 바라보고, 그곳에 우정과 사랑을 포개고, 마침내 서로에게 울림이 되는 이야기를 말이에요. 우리가 알아볼 것을 믿어요. 이 책이 같은 음을 연주하는 당신에게 닿기를요.

알라딘 북펀드는 2026년 1월 4일(일)까지 열려 있습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새해 첫 책으로 함께해요.

﹅ 자세히 보기 & 펀딩 참여하기

 

💝 [마지막 소묘살롱 X 한쪽가게 테이블] 연말정산

⟡ 찾아가는 오후의 소묘 시즌1의 마지막 장소는 사랑해마지 않는 대전의 한쪽가게였어요. 12월에 모인 만큼 ‘연말정산’을 함께하고 싶었답니다. 365일의 어떤 페이지를 접어둘지 밑줄 그을지 찬찬히 돌아보고, 열두 달에 이름을 붙여 목차를 삼고, 그렇게 나의 한 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어요. 뜻밖에 서로의 책을 들어주는 시간이 ‘나’를 너그럽게 봐주는 자리가 되어 뭉클했습니다. 여러분도 해의 남은 날들 동안 2025년의 나를 너그럽게 마주해 보시길 바라요.

한쪽가게에서 남겨주신 다정하고 촘촘한 후기

 

📚 [고르는 마음: 리브레리아Q 서점원 노트] 북토크 풍경들

🤎 전주 책방토닥토닥에서

북토크를 진행한 서점들 중 리브레리아Q와 큐레이션이나 책방의 지향이 가장 닮은 곳이 바로 책방토닥토닥일 거예요. 토닥토닥의 2호기님은 책방의 롤모델 중 한 곳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지금은 사라졌으나 대를 이어 180년간 운영되었던 독일의 H. 바이헤 서점으로, 마지막 서점원인 헬가 바이헤는 2021년 1월 4일 98세의 일기로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책방을 지켰다고 하죠. 책방토닥토닥에는 그분의 사진이 걸려 있고, 1월 4일을 책방의 날로 지키신다고 하셨어요.(곧이네요!) 후에 찾아보니 헬가 바이헤 선생님(!)은 자신이 다 읽거나 혹은 훑어본 뒤 꼭 함께 읽고 싶은 책만 들여놓으셨다고 해요.(서점원Q가 할머니가 된 모습을 상상하게 됐어요.) … [더 보기]

🤎 영등포 신길도서관에서

12월의 한복판에는 영등포의 신길도서관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고르는 마음> 저자 북토크와 더불어 리브레리아Q의 큐레이션으로 이용자 분들께 연말 선물을 드리는 이벤트를 기획해 주셨거든요. 와아 🎁🎉 도서관 강연에는 책이나 저자를 잘 알지 못한 채로 참석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게 참 귀하고 소중한 자리예요. 참석자 분들께도 저희 책과 리브레리아Q라는 책방을 알아가는 그 시간이 반가웠기를 바라요. 주변의 동네책방에 발걸음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 뜻깊겠습니다. 우리, 책방에서 만나요 ;) … [더 보기]

🤎 정동진 이스트씨네에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 <고르는 마음>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으로 정동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엔 가장 낭만적인 책방, 문을 열면 한 편의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책방 이스트씨네가 자리하고 있지요. 참석해 주신 분들이 모두 서점원이거나 관계자여서 여느 곳에서보다 책방일의 슬픔과 기쁨에 관해 더욱 깊이 이야기 나눴답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고 해내는 일, 잦은 슬픔에도 더 크게 다가오는 기쁨들, 지키고 버티는 힘-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든든한 동료들의 연결과 응원에 저 역시 책을 낸 기쁨을 크게 느낄 수 있었어요. … [더 보기]

🤎 괴산 숲속작은책방 북토크는 소묘가 참석하지 못해 한샘 작가님의 후기를 전합니다.

작가님의 후기 보기

 

 

12월의 두 번째 편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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