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지만, 올 사월의 날씨는 유난히도 종잡을 수가 없네요. 그제 밤 이불 속에 있을 친구에게 눈 오는 사진을 보냈더니 ‘벚꽃잎이 눈처럼 나리네’라는 답이 왔습니다. 눈이 맞아, 창밖을 봐.
전날엔 여름인 양 덥더니 거짓말처럼 눈이 오고 천둥번개에 우박까지, 바람은 태풍 전야처럼 불어옵니다. 며칠 뒤엔 또 여름이 벌써 오냐고 하겠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봄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그 이상과도 같은 봄날이 분명 있었고, 그 아름다운 날 이달의 편지 주인공인 이미나 작가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나의 동네>, <조용한 세계> 를 비롯해 여러 그림책을 펴내고, 매일 그림을 그리며 전시도 활발히 하고 계시죠. 2021년에는 저희 레터에서 <고양이 화가>를 연재하기도 했어요. 소묘 스튜디오에는 작가님의 그림과 조각 작품도 한 점씩 자리하고 있답니다.
소묘가 사랑하는 우리의 고양이 화가, 이미나 작가님과 에세이 화집을 준비 중이에요. 이 만남은 그 책을 위한 미팅이기도 했어요. 여느 인터뷰와는 조금 다른, 책 한 권을 함께 만들기 위해 작가와 편집자가 머리를 맞대고 갈팡질팡 나아가는 풍경을 전합니다.
이미나 작가님은 그림책 <나의 동네>(2018)로 처음 만났다. 제주도의 한 소담한 마을에 자리한 책방에서 책을 펼치자마자, 첫 두어 장 만에 이 그림책에 홀려버렸다. 나비들이 화면을 한가득 채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책 속 동네는 건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나비와 새, 개와 고양이,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그리고 색색의 꽃과 무성한 초록의 식물들이 주인이었다. 나비처럼 연약한 존재들을 강건하고 대담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낸 이 작가가 몹시 궁금해졌다. 이후로 미나 작가님의 작업을 애정과 응원으로 따라왔다. 그림책뿐만 아니라 <고양이와 친구들>(2019), <100개의 네모들>(2022), <그림 탐험 신비의 세계>(2023), <종이를 나온 그림>(2024) 전시까지 느슨하지만 촘촘히. 그사이 미나 작가님과 그림에 관한 에세이를 내기로 했고, 올초에 드디어 원고를 받았다. A4 22장 분량의 글에는 전시마다 그림마다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이 책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수원에 있는 미나 작가님의 작업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환한 창가에는 식물들이 푸르게 손을 뻗고 있었고, 그보다 해가 덜 드는 반대편에는 손바닥만 한 그림부터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화폭까지 캔버스 안에서 온갖 동물들의 눈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 대화는 이 그림들과, 그림에 대한 글 원고를 앞에 두고 우리가 만들 책에 관해 함께 고민하며 나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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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확실히 하고 싶은 건, 미나 작가님이 이 책으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예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구체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런 얘기를 해야겠다라고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상상도 쓰고 그림을 그리다 든 생각도 쓰고 또 그림을 왜 그리게 됐는지,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을 쓴 거죠. 그 와중에도 나는 그리는 게 참으로 좋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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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나의 동네> 시절부터 동물을 그렸다. 그 이전에는 터널과 동네를 그렸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공간과 장소가 사람에게 주는 힘이 크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나의 동네>를 만들며 시선의 방향이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에게로 옮겨 갔다. 동물은 영역에 비해 급변하고 감정적이고 불타올랐다가 금세 사그라들기도 하는 생명을 가져서 철과 돌로 만든 구조물과 대비됐다.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라고 먹고 자고 죽어버리는 존재가 마음에 들어왔고 그 뒤로 동네에서 자주 보는 고양이, 개, 맹수들을 그렸다. 나와 사는 동물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읽히다가도 그들의 야생성과 본능을 발견할 때 같은 곳에 있지만 서로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영원히 그곳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 세계를 더 그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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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세계를 딱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림 작업을 꽤 오래하셨잖아요. 얼마나 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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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싶은 세계가 캔버스와 종이에서 나와 흙으로 이어진다. 재료의 물성이 바뀌며 겪어보지 못했던 과정을 겪기도 하고 만들자마자 내려놓는 마음을 배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종이를 나온 ‘그림’이라는 제목을 붙인 건 내가 그동안 그림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평한 종이도 구기면 둥근 공이 되고, 하늘 아래 흔들리는 나무도 납작한 잎사귀 한 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생의 모양으로 그림과 삶을 가득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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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읽기]
🌿 [사적인 계절] 원화전과 북토크 X 사슴갤러리
• 우리의 계절이 책이 되는 과정
지난 4월 4일 뜻깊은 날의 저녁에 박혜미 작가님 북토크가 있었습니다. 계절의 결을 따라가며 써 내려간 한 문장, 그려낸 한 장면마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간, 마음이 담겼는지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던 시간. ‘경이롭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와주신 모든 분들이 분명히 느끼셨을 거예요. 그 안에는 ‘좋아하는 걸 계속해서 좋아하는 마음’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야기 들려드릴 기회가 있기를 바라요.
﹅ 북토크 풍경
• 전시는 15일 화요일까지입니다. 그동안 찾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마지막 날까지 활짝 열어놓을게요 :)
▫︎ 일정: 4. 1. – 15. | 12:00 – 18:00 (목 휴무)
▫︎ 장소: 사슴갤러리(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3길 110)
✏️ [작가의 방] 4월 예약하기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링크 : 네이버 예약
노안을 설명하는 글에 ‘비가역적’이라는 말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저는 올해 44세입니다. 나이 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니 당당하게 나이를 공개합니다 ^^;; 저 역시 노안이 찾아와 글을 읽을 때에는 안경이 필요합니다. 노안이 비교적 빨리 찾아와 한 3년 전부터 사용했던 것 같네요. 처음에는 작은 글씨를 볼 때 손에 들려 있는 사물을 점점 멀리 하는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경을 맞추고 광명을 찾으니 개안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흐릿하던 글자들이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나 이 안경은 책이든, 신문이든 무언가를 읽기 위한 용도이기에 늘 착용하는 것은 아니지요. 여기 벗어두고 저기 벗어두고 외출할 때 깜박하여 챙기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노안 안경은 한 개로는 부족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안경에 줄을 달아 목에 걸고 필요하실 때마다 쓰시던 모습이 생각나더군요. 어른들의 생활의 지혜를 다시금 느끼고 있습니다. 노안에 지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오래도록 읽고 싶은 저는 요즘 힙하고 귀여운 안경줄을 찾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비가역적이라면 장비에 힘을 줘 기꺼이 즐기려고요! _inyoung0408
안경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이치코 실장은 봄가을겨울용, 여름용, 비상용이 있고요. 저는 사무용, 가정용이 있어요. 요즘 노안 안경을 리딩 글라스라스라고 한다죠? 목에 걸 수 있게 나온 예쁜 것도 있더라고요. 리딩 글라스로 연결된 우리의 시선- 왠지 더 애틋하고요. 계속 좋아하는 책들 함께 읽고 나누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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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소묘 : 레터]는 책과 고양이를 비롯해 일상의 작은 온기를 담은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에 만나요.
[월간소묘: 레터]
2020년 첫 편지 ‘생기’ • 3월의 편지 ‘질문의 자리’ • 4월의 편지 ‘장소라는 몸’ • 5월의 편지 ‘낭만’ • 유월의 편지 ‘어느 틈에’ • 7월 ‘편지하는 마음’ • 8월의 편지 ‘빨강’ • 9월의 편지 ‘어스름’ • 시월의 편지 ‘herbarium’ • 11월의 편지 ‘그 속에는’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1년 첫 편지 ‘얼굴들’ • 2월의 편지 ‘걸음걸음’ • 3월의 편지 ‘Little Forest’ • 4월의 편지 ‘Now or Never’ • 5월의 편지 ‘창으로’ • 유월의 편지 ‘비밀의 무늬’ • 7월의 편지 ‘여름의 클리셰’ • 8월의 편지 ‘파랑’ • 9월의 편지 ‘이름하는 일’ • 시월의 편지 ‘일의 슬픔과 기쁨’ • 11월의 편지 ‘나의 샹그릴라’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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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의 편지, 하얀 꽃들이 피어나 • 2월의 편지, 차를 듣는 시간 • 3월의 편지, 조용히 다가오는 것들 • 4월의 편지, 꿈을 꾼다는 건 • 5월의 편지, 다정한 반복으로 • 6월의 편지, 다시 태어나기를 • 7월의 편지, 촛불을 켜는 밤 • 8월의 편지, 치코의 일기 • 9월의 편지, 아름다움과 함께 • 10월의 편지, 언제 나와요? • 11월의 편지, 오늘의 주인공은 너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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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의 편지, 숨 고르기 • 2월의 편지, 이상한 용기 • 3월의 편지, 충분한 사랑 • 4월의 편지, 계속 그리고 싶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