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편지에서 ‘폭풍 같은 날들이 흘렀습니다’라고 적었는데, 그 문장을 또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방금 무루 작가님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개정판 마감을 했거든요.(레터 발송 시간이 늦어진 이유…) 책 마감과 예약판매 런칭과 레터 발송과 또 작은 전시 준비(작업책방씀에서 열린 무루의 책상전 ;)를 하는 하루라니, 신이 나네요! 여러분께 반가운 소식들 가득 전하게 되었으니까요.(아니, 저, 울고 있나요…?)
폭풍 같은 날들에도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오늘 전해드릴 요안나 카르포비치 작가와의 인터뷰예요. <우리가 모르는 낙원>에 그림으로 함께해 준 요안나는 폴란드 화가로 2012년부터 ‘아누비스’ 시리즈를 작업해 오고 있습니다. <우모낙>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가장 고대하며, 책이 나왔을 때 열렬히 기뻐해 준 사람이기도 해요.(어쩌면 저자보다, 편집자보다 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에게 다정한 얼굴이 되어준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 조각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길 바라요.
때는 2024년 2월의 어느 날, 무루 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 작가 너무 좋아서 소개하고 싶어 보내드려 본다. 화집 나오면 좋겠어. 소묘에서…” 보내주신 자료를 살피며 몸과 뇌에 전류가 흐르는 듯했는데, 무루 님 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잖아! 판타지와 서사가 흘러넘치는 작품들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 비밀과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화집이 아니라 우리 준비하는 책에 실어야겠다고 의기투합을 했다. 진짜로 그 일이 이루어질지는, 또 그게 일 년을 훌쩍 더 넘어서 이루어질지는 아마 그때도 몰랐을 것이다. 그해 11월, 나는 요안나 카르포비치 작가에게 메일을 쓰고 있었다. 이후로 그와 주고받은 모든 메일과 소소한 대화들 하나하나가 다 기쁨이고 우정이고 사랑이었다. 이제 우리는 작은 낙원을 이루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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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얽힌 사연을 전혀 몰랐는데도, 이 그림을 표지로 골랐다는 게 정말 마법 같았어요.”
우리 책에 참여해 달라고 제안드렸을 때 흔쾌히 수락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었을지도 궁금합니다.
어릴 적 그곳에서 개암나무를 찾아 활을 만들며 놀곤 했어요. 할머니와 함께 허브를 따러 가기도 했죠. 할머니는 “허브는 약보다 더 강하니까 조심해야 해”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제가 아는 누구보다도 식물과 꽃을 잘 아는 분이었죠.
(*미국의 유명한 미스터리 호러 드라마 〈Twin Peaks〉(트윈 픽스)에서 가져온 비유 같다. 어딘가 비밀스럽고, 신비로우며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특별한 추억의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닐까.)
That Silk Shawl of Grandma Stasia, 29.7x42cm, 2022 ©Joanna Karpowicz
크리샤 할머니는 스타시아 할머니와 정반대였어요. 스포츠를 사랑했고, 스키와 카약 강사였죠. 야생 자연이 할머니의 왕국이었어요. 외향적이고 모험심이 강했으며, 늘 제게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보렴”이라고 하셨죠.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늘 이야기와 웃음이 넘쳐 흘렀어요. 크리샤 할머니는 제게 강인함과 책임감을 선물해 줬어요.
책(그리고 피크닉 매트^^)에 나오는 식물원은 제 고향인 크라쿠프에 실제로 있는 장소예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유서 깊은 식물원인데,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는 식물과 대화하고 싶을 때마다 그곳에 가요.
모든 그림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독자/감상자의 해석입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강요하기보다, 언제나 듣는 걸 좋아해요.
Anubis in Kyiv, 23x29cm, 2022 ©Joanna Karpowicz
결국 미술을 전공했고, 크라쿠프 미술 아카데미에서 회화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부모님 바람대로 ‘평범한 직업’도 가졌어요. 12년 동안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주말과 휴일에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요. 점점 불행해졌고, 마치 사람에게 공기가 필요하듯 제게 예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도요. 안정적인 직업에서 예술가로 전향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저는 선택했어요. 처음에는 낮에 그림을 그리고 밤에 바텐더로 일했죠. 그렇게 천천히 미술 시장에 진입했고, 인내심과 노력을 쏟아 지금은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진짜 나 자신을 찾았어요.
(한국 독자들에게 아누비스는 낯선 존재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해 아누비스 캐릭터를 저마다 다르게 보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저와 디자이너는 고양이 인간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무루 작가와 함께 팀으로 그림책 번역을 하는 동료 작가 기린은 검은 토끼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비잔하운드일지도 모르고요.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집트 사신이라는 원래 의미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워하고 있습니다.)
아누비스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우리 손을 잡아줄 다정한 동반자이자 친구예요. 그날이 아직 오늘이 아닐 뿐이죠. 아누비스는 인간의 삶을 이해해 보고자, 우리 곁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날을 즐기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누비스를 현재 우리 삶 속에 등장시킵니다. 도시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그려요. 누구나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고, 굳이 고대 이집트의 문화적 코드로 볼 필요도 없어요. 아이들은 아누비스를 종종 ‘토끼 아저씨’라고 부르곤 해요.

Fresh, 29.7x42cm, 2023 ©Joanna Karpowicz
[ 계속 읽기 ]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개정판 예약판매 소식을 전합니다!
어른들에게 그림책 세계의 문을 열어주었던 무루 작가의 첫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개정증보판이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됩니다. 새로운 글 세 편을 추가했고, 이번에도 서수연 작가님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새옷을 입었어요. 정식 출간에 앞서 6월 10일부터 예약판매로 이벤트 함께 진행될 예정이니 반갑게 만나주세요.
⭑ 개정판 1쇄 한정 무루 작가 서명 메시지+탄이 도장 인쇄본!
⭑ 서점별 굿즈 이벤트 진행!
(교보문고: 실제본 무지 노트, 알라딘: 아크릴 티코스터, 예스24: 패브릭 핀버튼 2종)
🌳 [우리가 모르는 낙원] 작업책방씀 ‘작가의 책상전’
작업책방씀에서 <우리가 모르는 낙원>으로 ‘작가의 책상전’이 열립니다. 무루 작가의 집필 노트와 드로잉, <우모낙> 속 그림책들, 반려묘 탄이 사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어요. 전시 마지막 날에는 무루 작가가 일일지기로 책방에 상주합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
• 기간: 6월 12일(목) ~ 6월 29(일) | 생일책방으로 전시가 쉬어가는 날도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해 주세요.
• 장소: 작업책방 씀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3길 19-17)
• 무루 작가 일일지기: 6월 29(일)
✏️ [작가의 방] 6월 예약하기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신청하기 : [네이버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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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소묘 : 레터]는 책과 고양이를 비롯해 일상의 작은 온기를 담은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에 만나요.
[월간소묘: 레터]
2020년 첫 편지 ‘생기’ • 3월의 편지 ‘질문의 자리’ • 4월의 편지 ‘장소라는 몸’ • 5월의 편지 ‘낭만’ • 유월의 편지 ‘어느 틈에’ • 7월 ‘편지하는 마음’ • 8월의 편지 ‘빨강’ • 9월의 편지 ‘어스름’ • 시월의 편지 ‘herbarium’ • 11월의 편지 ‘그 속에는’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1년 첫 편지 ‘얼굴들’ • 2월의 편지 ‘걸음걸음’ • 3월의 편지 ‘Little Forest’ • 4월의 편지 ‘Now or Never’ • 5월의 편지 ‘창으로’ • 유월의 편지 ‘비밀의 무늬’ • 7월의 편지 ‘여름의 클리셰’ • 8월의 편지 ‘파랑’ • 9월의 편지 ‘이름하는 일’ • 시월의 편지 ‘일의 슬픔과 기쁨’ • 11월의 편지 ‘나의 샹그릴라’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2년 1월의 편지, 새해 첫 책 • 2월의 편지, 어려움에 대하여 • 3월의 편지, 구름의 나날 • 4월의 편지, 사랑의 모양 • 5월의 편지, 비화 • 6월의 편지, 사라진다는 것 • 7월의 편지, 환대 • 8월의 편지, 정원 너머 어렴풋이 • 9월의 편지, 함께 해피엔딩 • 10월의 편지, 마음을 쓰고 계신가요? • 11월의 편지, 작가의 발견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3년 1월의 편지, 하얀 꽃들이 피어나 • 2월의 편지, 차를 듣는 시간 • 3월의 편지, 조용히 다가오는 것들 • 4월의 편지, 꿈을 꾼다는 건 • 5월의 편지, 다정한 반복으로 • 6월의 편지, 다시 태어나기를 • 7월의 편지, 촛불을 켜는 밤 • 8월의 편지, 치코의 일기 • 9월의 편지, 아름다움과 함께 • 10월의 편지, 언제 나와요? • 11월의 편지, 오늘의 주인공은 너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4년 1월의 편지, 새삼 새 마음 • 2월의 편지, 일상 맞춤형 실감 블록 • 3월의 편지, 사랑과 우정의 세리머니 • 4월의 편지, 길고양이 돌봄 지침 • 5월의 편지, 절기 좋아하세요? • 6월의 편지, 우리를 홀린 OOO • 7월의 편지, 이 모든 일이 다 영화 같아요 • 8월의 편지, Sometimes, again • 9월의 편지, 여름의 기억 • 10월의 편지, 힙hip하지는 못해도 • 11월의 편지, 작은 도망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2025년 1월의 편지, 숨 고르기 • 2월의 편지, 이상한 용기 • 3월의 편지, 충분한 사랑 • 4월의 편지, 계속 그리고 싶은 것들 • 5월의 편지, 무루가 사랑한 여자들 • 6월의 편지,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