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올 한 해 여섯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림책, 에세이, 화집, 만화책까지 여느 때보다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는데요. 함께 작업한 국내 저자 다섯 분께 올해의 소회와 새해의 목표를 여쭤보았어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다 보니 앞으로의 계획들도 다채롭고, 내년이 무척 기대됩니다. 반가운 소식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연말정산과 새해 계획도 들려주세요 :)

 

 

 

1. 책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실까요?

얼마 전 북토크의 일환으로 집에서 차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마당에서 차회를 하며 북토크를 진행했었는데요. 그때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구요. 요즘 서점에 가면 거대 담론을 논하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활자중독인데도 책 읽기가 버거웠는데 제 책은 소소한 내용들에 의미가 더해져 읽기도 좋고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았다고요. 딱 제가 바라던 느낌이어서 기분 좋은 얘기였어요.

그리고 하필 제가 안성에 없을 때 어떤 분이 제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수원에서 안성까지 오셨다고 해요. 어느 분이셨는지 왜 자전거로 오신 건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직 만나뵙지 못했어요. 혹시나 이 소식을 접하신다면 꼭 만나 뵙고 싶네요 ㅎㅎ

 

2. 작가님의 올해의 ‘무엇’은 무엇일까요?

올해는 ‘가족’이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딸이 일곱 살이 되며 점점 준비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지는 데다 요구하는 것들도 많아지더군요. 정서적인 교감도 더 깊어졌고요. 여전히 아이와 잠자기 전 나누는 그날의 싫었던 일,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들의 이야기는 제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어른의 눈에는 별 것 아닌 일도 아이에겐 크게 남는 기억일 수 있어서 좀 더 세심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동시에 그걸 얘기하고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 어른의 생각보다 더 견고하게 자라는 아이에게 감동받곤 하죠.

올해 초 목표했던 일들의 대부분은 해냈습니다. 해냈다는 것이 꼭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건강하게 완수해 냈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껴요. 두 건의 전시를 했고 준비하는 일들도 조금씩 결과물을 보이고 있어요. 큰 이벤트 없이 올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남은 목표예요.

 

3.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12월 20일부터 남편과 함께가 아닌 저 혼자 참여하는 그룹전을 합니다. 엄마이자 아내이자 작가인 여성 작가 네 명이 함께 하는 전시예요. 기획자면서 참여 작가로 참가하는 전시인데요. 제게 의미가 큰 만큼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그 전시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12월 20일부터 1월 8일까지 서촌 ‘일상여백’에서 ‘나를 켜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합니다. 여러 역할을 해내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년엔 집과 작업실이 서울로 이사를 갑니다. 아이의 초등학교 진학이 가장 큰 이유인데 10년을 넘게 유지한 삶에 너무나 큰 변화인지라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해요. 안성에서의 삶이 얼마나 절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지라 다시 돌아가는 서울에서의 삶이 지금의 제게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전과는 분명 다르겠지요. 여러모로 변화가 많은 내년이라 매우 떨려요!

 

1. 책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으실까요?

모든 리뷰가 감사했지만 제 그림과 글을 보시고 자신만의 어떤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던 글들이 유독 마음에 남아요. 또 출간과 함께 개인전을 진행했는데요. 책을 품에 안으시고 그림 앞에 서 함께 이야기 나누었던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2. 작가님의 올해의 ‘무엇’은 무엇일까요?
올해는 고양이 도토리와 사계절을 함께한 첫 일 년이었어요. <조용함을 듣는 일> 75쪽*에 나온 고양이들 중 네 마리는 입양을 보냈고 막내는 제 반려묘가 되었거든요. 며칠 뒤에 도토리와 가족이 된 지 일 주년이라 가장 먼저 이야기하게 되네요! 초가을에 태어난 도토리가 첫 봄과 여름을 맞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무척 행복했어요. 가을은 도토리의 갈색 털 빛깔과 가장 어울리는 계절이었고요. 겨울에는 아무 걱정 없이 배를 뒤집고 누워 자는 모습에 웃음이 나요. 제 삶에 커다란 존재가 된 도토리와 함께 찾아온 좋은 소식들도 있어서 연말과 연초에도 열심히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얇고 긴 잠>, 2022.

“머리를 들이밀며 밥을 탐하고 사냥에 성공한 장난감을 입에 물고 그르릉거리다가도 서로의 목덜미를 정성스레 핥아주며 잠에 드는 고 양이들이 있다. 두 눈을 꼭 감고 기분 좋게 들썩이는 몸을 서로 포갠 다. 그 사이에 일부러 얼굴을 파묻으면 부드러운 향기가 난다. 깊은 듯 하다가도 내 작은 인기척에 한쪽 귀를 쫑긋,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를 굴리는, 얇고 긴 잠을 자는. 내게 어느 날 찾아와 준 작은 생명들.”

 

3. 새해 계획을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전시 소식이 가장 궁금하네요 :)

내년 5월에는 부산에서의 첫 개인전이 있어요! 부산에서의 첫 개인전이라 어떤 마음속 풍경들을 보여드릴지 열심히 고민 중입니다. 그 밖에도 그룹 전시 일정들을 정하고 있는데, 제가 워낙 천천히 그림을 그리는 탓에 많은 전시로 인사드리지는 못하지만..

모든 그림을 진심을 다해 작업하고 있으니 꼭 직접 보러 와주시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

 

1. 책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실까요?

책을 읽고 텃밭이 하고 싶어졌다는 소감이 가장 반가웠어요. 한 분이라도 더 책 제목처럼 발은 땅을 디디고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실물(!)이 기억에 남는 분으로는 우리 텃밭으로 책을 들고 직접 싸인 받으러 온 독자분요. 같은 동네 사시는 분이었는데, 그분도 본업 외에 고양시 다른 곳에서 텃밭을 하고 계셨고, 우리 텃밭이 궁금하여 한번 보고 싶다 하셔서 시간 약속을 하고 어느 날 저녁 무렵 어둑한 텃밭에서 ‘접선’하게 되었어요.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서 직접 농사지은 양파 한 꾸러미와 책을 들고 오셨어요. 뭐랄까, 끝내주는 독자와의 만남 아닌가요? 서로 처음 보는 우리는 좀 어색할 수도 있었는데, 도시 텃밭 농부라는 동지 의식이 있어서인지 어색하기보다는 재미있고 풋풋했어요. 나무처럼 자란 우리 밭 아주까리 씨앗이 여물면 나눠 드리기로 했는데, 텅 빈 겨울 텃밭에서 다시 한 번 만날까 봐요.

아차차, 텅 비지 않았네요. 늦게 심은 씨 마늘과 겨울 시금치 씨가 땅속에서 콤콤 숨 쉬고 있어요. 얘네들이 우리 여기 있다고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네요. 겨울 잘 나라고 왕겨와 지푸라기와 비닐로 3중 이불을 덮어주었어요.

또 재미있었던 것은 작물 나눠 먹기요. 북토크가 있는 날은 아침 일찍 텃밭에 가서 작물을 따 가지고 북토크에 오신 분들 나눠 드렸어요. 양은 얼마 안 되죠. 향긋한 바질 한 움큼, 강낭콩, 풋고추 약간, 애호박 한 개, 깻잎 두어 묶음, 이렇게 그날그날 가능한 작물로. 가위바위보 해서 나누기도 하고, 받은 작물을 서로 바꾸기도 하고. 작가가 토크 잘할 생각은 안 하고 작물 무엇무엇 가져갈 수 있나 잿밥에 더 신경 쓰고.

 

2. 작가님의 올해의 ‘무엇’은 무엇일까요?

‘올해의 기쁨’은 텃밭 책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를 내어 텃밭의 기쁨을 함께 나눈 것입니다. 앞으로도 길게 오래도록 공유하고 싶은, 물리지 않는 기쁨요. 흙 엄마가 전하는 막강한 사랑이 수채물감처럼 잔잔히 번져나갔으면 좋겠어요.

‘올해의 책’은 <발땅손흙>을 제외하고 ^ ^,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가 쓴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책이에요. 배우 문소리가 추천사에서 “이 책은 이태원 참사의 핵심에 관한 기록이며 그 참사를 겪은 우리 모두의, 집단의 기록”이라 할 만큼 뛰어난 책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개인의 이야기를 뛰어넘어요. 눈물과 비탄이 아니라 진실에 구체적으로 한 걸음 다가가게 이끄는 단단하고 귀한 기록이에요. 이 책을 써낸 김초롱 작가가 멋지고, 너무너무 자랑스러워요.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합니다. 이태원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일’이니까. 그 진실 규명에 어떻게 함께해야 할지 막연하게 느껴지고 그러잖아요? 이 책을 읽으면 함께하는 것이 됩니다.

순천KBS라디오와 <발땅손흙> 인터뷰했잖아요. 인터뷰 말미에 작가의 추천곡을 틀어주는데, 어떤 노래를 고를지 엄청 고민했어요. 그때가 마침 이태원 참사 1주기 무렵이었거든요. 모르는 척할 수가 없잖아요. 태평하고 좋기만 한 노래를 고를 수는 없었어요. 장고 끝에 참사를 기억하고 함께 추모하는 곡으로 자우림 김윤아의 노래 ‘영원히 영원히’를 골랐어요. 제 인터뷰보다 그 노래를 왜 골랐는지에 대한 설명과 그 노래가 방송에 노랫말 하나하나까지 잘 나오는지 그것에 더 마음을 쓰고 그랬어요. 그 방송을 듣는 청취자는 깜박 잊고 있었다가도 이태원 참사를 새삼 환기하고 함께 아파하겠지, 마음을 모으겠지, 하고요.

‘올해의 작물’로는 올해 처음 심어본 녹두를 꼽아 봅니다. 녹두는 꼬투리가 처음에는 푸른색인데 익으면서 점점 까맣게 변해요. 다 익어서 연탄처럼 새까만 꼬투리가 얼마나 깜찍한지 몰라요. 그런데 새까맣게 되었을 때 바로 따지 않으면 봉숭아 씨처럼 스스로 껍질이 터지면서 콩알들도 흩어져 버려요. 한꺼번에 익는 것이 아니니까 먼저 익은 꼬투리들 제때 따 주러 날마다 살펴봐야 해요. 귀찮은 녀석이에요. 이 귀찮음을 핑계로 가을에도 텃밭에 자주 갔어요. 꼬투리 속에 들어 있는 눅은 풀색 녹두 알은 또 얼마나 예쁘게요. 그런데 털이 부얼부얼 달린 애벌레가 이 작은 녹두 꼬투리와 콩을 파먹어요. 보고만 있을 순 없어서 조물주의 유머 같은 이 털투성이 녀석을 잡아요. 잡아서 죽이지 않고 멀리 풀밭에 던지고. ^ ^ 텃밭 이야기는 끝이 없으므로 여기서 멈출게요. 아, 아주까리 이야기만 더 하고요. 아주까리가 올해 유난히, 놀랄 만큼 크게 자라서 사람들이 텃밭에 웬 나무가 있냐고 묻기도 했어요. 작은 씨 한 알에서 시작하는 것은 작년이나 똑같았을 텐데. 대체 무엇이 올해 우리 아주까리를 산에 푸른 참나무 같은 느낌으로 훤칠하게 키워 주었는지 지금도 이유를 몰라요. 영원한 비밀로 남겠지요. 가을 텃밭 갈무리할 때 단단한 아주까리 줄기를 톱으로 베어내야만 했는데 그때 좀 안타깝고 아깝고 미안하고 그랬어요. 나무를 베어내는 것 같아서.

진짜 끝.

 

3. 새해 계획 여쭤보아요. 내년 텃밭에 새로운 도전이 있으실까요?

언제부턴가 계획 없는 인생을 살고 있어요. 계획대로 되지도 않고 가만 보니 맨날 무모한 계획을 세우더라고요. (ㅋㅋ) 오늘 하루 살아내기가 목표라면 목표예요. ‘하루살이’가 제 정체성이랍니다. 작다란 계획 하나. 내년 텃밭에는 아주까리 자리를 좀 넉넉히 잡으려고요. 올해 보니까 아주까리가 나무처럼 커지니까 그 아래 자라던 작물은 제대로 못 크더라고요. 내년에는 아주까리를 전략적으로 심어서 그 둘레에는 아무것도 심지 않고 비워두려고요. 그니까 여태는 텃밭에 작물을 빈 공간 없이 가득가득 심었다면 처음으로 텅 빈 공간이 생기는 거예요. 멍때리며 노는 한 뼘 텃밭 작업실. 아주까리가 쑥쑥 자라 그늘을 드리우면 더 근사하겠지요? 열무를 다듬거나 땀을 식히거나. 가뭄에 콩 나듯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요. 텃밭에 사는 사마귀나 참개구리, 구멍 숭숭 뚫린 배춧잎 드로잉. 아주까리 그늘 아래 흙 놀이터로 지우 샘도 놀러 오세요!

 

1. 올해 출간한 책에 대해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으실까요?

제주에서 만난 친구의 두 딸 은하 은서. <대봉이의 일기>를 세 번 네 번 읽었다고 하면서 소봉이의 제주어 대사 부분을 줄줄 외우는데 너무 귀엽게 잘하는 거예요. 올해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제주어에 관심이 생겨서 제주어 교실도 다닌대요.

 

2. 작가님의 올해의 ‘무엇’은 무엇일까요?

올해의 산책길.

저희 집에서 벌랑포구라는 곳까지 이어지는 2.5킬로미터 정도의 길인데요. 초반에는 옥수수, 고추, 콩이 사이사이 심어져 있고 옹기종기 옛집들이 이어져요. 고양이들과 인사하면서 흥얼흥얼 걷다 보면 바다가 나와요. 바다가 이렇게 매일 다르다는 걸 저는 처음 알았어요. 걸으며 나눈 많은 이야기는 거센 바닷바람이 듣고 멀리 가져갔을 거예요. 피로와 슬픔도요. 이렇게 걷고 나서 아프고 시원한 다리로 집에 돌아오면 조금 개운하게 잠이 들 수 있었어요.

 

 

3. 내년 작업 계획 여쭤보아요.

그림책이 일단은 머릿속에만 한 권 들어 있어요. 부지런하고 집요한 작업자로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1. 책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으실까요?

독자님들의 자녀, 조카처럼 어린이 독자층이 꽤 많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약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3편 이야기를 잊지 않고 기다려주었던 것이 참 고맙기도 했고요. 나중에 이 친구들이 어른이 됐을 때도 호찌냥찌 시리즈가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책이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찾고 싶고, 볼 때마다 새로운 그런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도 생겼어요. 지금 어른 독자분들이 호찌냥찌 이야기를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요.

 

2. 작가님의 올해의 ‘무엇’은 무엇일까요?

최근 일이긴 하지만 아침의 의미가 달라진 점을 꼽고 싶어요. 지난 10월 허피스로 상태가 좋지 않은 아기 고양이 ‘감자’를 냥줍하게 되었는데요, (자세한 사연이 있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언젠가 냥줍썰을 풀어볼게요…!) 새벽마다 감자 재채기 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졸지에 아침형 인간이 됐어요.

근 8년을 프리랜서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면서 저에게 ‘아침’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거든요. 새벽 감성에 취해서 밤샘 작업하고 아침에 보통 잠에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침 일찍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일은 피해야 할 일 1순위거나, 피할 수 없다면 정말 많은 체력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어요. 그렇게 단단히 닫혀 있던 아침의 문이 아기 고양이 재채기 소리로 활짝 열릴 줄이야…!

감자 허피스가 다 나은 후로 다시 올빼미족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이전 생활에 대한 거부감, 저항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왜냐면 아침에 일어나야만 느낄 수 있는 묘한 보람(하루를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에 이미 중독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된 지 세 달이 넘었는데 이 정도면 작심삼일은 아니겠죠(?)

저에게 아침은 숨은 보석을 찾은 것과 같아요. 오늘 하루를 보람 있게 보냈다는 작은 성취감들이 쌓이다 보니 정신도 이전보다 더 건강해졌고요. 고양이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앵두, 감자와 함께 아침 있는 삶을 최대한 많이 누리고 싶어요. 다시 또 연재 작업 시작하면 올빼미족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니까요. ㅎㅎ

 

3. 내년 계획 여쭤보아요. 물론 시즌4 연재 일정이 가장 궁금합니다…!

우선 연재 일정은 아직 미정이지만 내년 봄에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호롱이와 헤어졌던 가족들의 재회, 호찌와 호롱이의 이야기, 오랜만에 등장할 반가운 캐릭터들과 고양이들의 유쾌, 발랄, 따수운 이야기들로 또 하나하나 채워갈 예정이니 찬찬히 기다려주세요 :)

 

 

 

 

오후의 소묘는 2023년 그림책으로 파니 뒤카세가 그림을 그리고 세실 엘마 로제가 글을 쓴 <세상 모든 밤에>를 선보였지요. 그림, 문장, 이야기 모두 펼칠수록 좋아지는, 단연 제 마음속 올해의 그림책이고요. 함께 보면 좋을 그림책들을 추리고 추려 열 권을 꼽아보았습니다.(책 제목 기준 가나다 순.)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리베카 솔닛 글, 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반비.

“아이다는 아주아주 긴 꿈을 꿨어. 꿈속에서 아이다는 라일락 숲에 홀로 사는 유니콘이 되어 유니콘이 아는 모든 걸 배웠어. 아이다는 새가 되어 칼날처럼 날카로운 날개로 여름인 곳으로 날아갔어. 아이다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물레를 돌리면서 그들 모두의 사람의 이야기를 자아냈어.”

수동적인 공주 서사라는 오래된 옷감을 실 삼아, 낡은 것을 깨뜨리고 지금의 우리를 깨어 있게 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자아낼 때. 그리움과 해방감이 뒤섞이는 그 아득한 쾌감은 동시대의 이야기가 제공하는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 옛이야기를 다시 고쳐 쓴다고 모두 새롭거나 재밌거나 의미 있지는 않을 텐데- (고백하자면,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는 큰 감흥이 없었고… 두 번째 물레에서 이런 아름다운 직물이!)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고양이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과 함께 보면 좋을 책.

 

<그린다는 것> 이세 히데코 지음, 황진희 옮김, 천개의 바람.

“스케치북을 두고 내렸다. 오늘은 온종일, 바람이 실어나르는 구름 이야기를 본다.”

그린다는 것, 그러니까 산다는 것.

올해 에세이 화집 <조용함을 듣는 일>을 펴낸 영향인지 그림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는데(어쩌면 이 인과는 거꾸로일까), 김혜영 작가님이 책에 써 내려간 순간과 기억을 직조하며 캔버스에 펼쳐내는 화가의 일이 이 그림책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이세 히데코의 문장은 단단한 고독으로 만들어진 시 같고, 연필선이 고스란히 비쳐 보이는 여린 안료의 그림에서는 물맛이 느껴진다.

 

<그해 여름, 에스더 앤더슨> 티모테 드 퐁벨 글, 이렌 보나시나 그림, 최혜진 옮김, 길벗어린이.

“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질 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안젤로 삼촌은 마치 내가 여전히 그대로인 것처럼 나를 곧장 알아보았다.”

그림책은 그림이 끌고 가는 장르라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 책처럼 글이 압도적인 경우도 있다. 원래의 문장도 좋았겠지만, 번역도 좋고요. 그림처럼 다가오는 문장들에 빠져 있다 여백 많은 그림에서 예상치 못하게 치이는 순간도. 성장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유년과 이별하게 되는 어떤 순간, 그 처음에 관하여.

 

<나의 그늘> 조오 지음, 웅진주니어.

“괜찮아?”

믿고 보는 조오 작가님의 신작. <나의 구석>에서 보여준 특별한 구석이 <나의 그늘>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얼마나 새로워지는지! 한구석에 드리운 그늘이 단지 어두움이 아니라 이런 다정함일 수 있다면.

 

<나는 흐른다> 송미경 글, 장선환 그림, 창비.

“모든 것이 어제와 같았습니다.

나와 내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다는 것 말고는.”

역시 믿고 보는 송미경 작가님이 글을 쓴 책. 올해 나온 작가님의 여러 책 중 쓰고 그린 <토끼가 되었어>도 좋았다. <토끼가 되었어>가 ‘내일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 이야기라면, <나는 흐른다>는 ‘마침내 내가 무수한 나를 만나는’ 이야기라 할까. 한 권의 그림책에서 한 장면만 마음에 남아도 좋은데, 이 책은 여러 장면이 오래 남아 있다.

 

<백 살이 되면> 황인찬 글, 서수연 그림, 사계절.

“빛을 받고 뿌리를 뻗으며 오래 평화롭게 잠들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책을 제외하고 한 권의 그림책만 꼽으라면 단연 이 책. 말없이 시작되는 두 장의 그림에서부터 이미 왈칵하고 말았다. 태어나는 것일까, 사라지는 것일까. 평화로운 잠의 세계일까. 신비와 몽환으로 시작된 그림은 “백살이 되면 좋겠다”라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귀여움과 청량함으로 가득한 초록과 형광 주황의 세계를 유영하며 잘 쉬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검정에게 말한다.

 

<시, 그게 뭐야?> 토마 비노 글, 마르크 마예프스키 그림, 이경혜 옮김, 북극곰.

“시는 질문이 될 수 있을까? 함께 나누어야만 진정으로 지킬 수 있는 비밀 같은 것”

시와 그림책은 묘하게 닮은꼴이고, 내게는 자꾸자꾸 궁금하고 계속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엇이다. 그래서 시를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편.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도 좋지만, 글과 닮은 듯 또 다른 자유분방하고 위트 있는 그림도 즐겁다. 시의 마음과 시인을 찾아 떠났던 나나의 모험을 그린 <새의 심장> 함께 보면 좋지요. 두 책이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있다. 비밀과 편지, 그리고….

 

<오늘을 축하해> 박혜미 지음, 유어마인드.

“그날 우리가 바다에 두고 온 말들이 지금쯤 파도가 되어 돌아오진 않을까 생각했어.

(…)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고 낯익은 곳에서 만나, 각자의 오늘을 축하하자.”

<빛이 사라지기 전에>의 박혜미 작가님 신작. 혜미 작가님의 섬세한 아름다움에는 늘 조금의 슬픔이 묻어 있다. ‘그럼에도’ 오늘을 축하하는 마음 같은 것. 올해 가장 자주 펼쳐본 그림책일 것. 순간과 기억, 비밀과 편지, 그늘과 다정, 빛과 ….

 

<우리는 공원에 간다> 사라 스트리스베리 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안미란 옮김, 롭.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언제고 한순간에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 갑자기 사라졌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돌아오는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팬데믹 속에서 절박함으로 빚어낸 두 작가의 협업 그림책. 전에 없이 단단한 판면으로부터 나지막한 절망과 강렬한 희망이 뿜어져 나오고 공원이라는 장소는 새로운 우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가 닿아야 할 곳. 원서와 같은 사양으로 제작한 한정판의 만듦새는 단연 독보적이고, 제작자의 입장에서 박수가 나왔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

 

<해변과 바다> 베르나르두 카르발류, 그림책공작소.

글 없는 그림책. 베르나르두 카르발류의 멋진 그림을 즐겁게 넘기다가 마지막 두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을 맞닥뜨리게 된다. 밀려오는 먹먹함이 만조처럼.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아무래도 봄을 손에 꼽는 분들이 제일 많으시려나요. 인간이 생명체로서 가진 본성을 고려하면 그게 맞을 것도 같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끝없이 탄생하고 성장하며 번성하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니까요. 땅속에 잠들어 있던 씨앗들부터 새로 돋아나는 나뭇잎까지,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따뜻한 햇살 아래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하는 동물들까지 폭발하듯 뿜어내는 거대한 생명 에너지에 인간이 감응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계절의 변화에 대한 의식의 자각과 판단 이전에 신체가 먼저 반응하는 걸 무슨 수로 막나요. 사계절 중 하나를 고르자면 봄이 가장 좋을 수밖에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우리에겐 정서적 차원이란 것도 있습니다. 심장의 우렁찬 박동부터 모세혈관의 미세한 떨림까지 모든 신체 기관이 봄을 맞아 환호성을 지른다 해도 그 신호를 냉정하게 차단하고 겨울이 끝나감을 아쉬워하며 세상이 무너진 듯한 우울에 빠져들기도 하는 게 인간이란 존재입니다.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어느 계절이 싫으신가요? 계절의 선호를 묻는 말에 답하는 건 이러한 정서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엇이라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느 계절이라도 싫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철저하게 몸의 관점에서 신체가 감각하는 대로 계절을 판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고 있다면 그렇습니다.

 

길고양이가 한번 눈에 들어오고 나면 겨울을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추울 일인가.. 바람은 또 얼마나 매서운지.. 너무 추워, 춥다고! 수시로 미워하며 원망하게 됩니다. 장마철 앞뒤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도시에서 길고양이가 안정적으로 마실 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얼마 안 되는 물마저 꽁꽁 얼어버립니다. 고양이의 신체 기관 중 유독 예민하고 약한 곳이 신장입니다. 신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을 잘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늘 물 부족에 시달리는 길고양이에게 겨울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아이들이 사람이 남긴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엔 고양이의 기준으로 지나치게 많은 염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물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할 경우 그대로 신장에 무리를 주게 됩니다. 길 가다가 만난 고양이가 뚱뚱하다고요? 잘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애석하게도 신장이 안 좋아 부었을 확률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대책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인 고양이도 야생의 짐승인지라, 털이라는 훌륭한 보호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털갈이를 하면서 여름을 시원하게 나고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몸으로 변신을 하죠. 하지만 아무리 따뜻한 털로 단단히 무장을 했다고 해도 한겨울 찬바람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죠. 하지만 도시엔 풀숲도 없고 덤불도 없고 소복이 쌓인 나뭇잎도 없습니다. 어딜 가도 시멘트와 콘크리트 구조물뿐이라 포근한 공간을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아파트 보일러실이나 주차장 때로는 주차된 차의 엔진 공간으로 숨어들어 몸을 녹여보지만 따뜻함과 안전을 동시에 보장해 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저 겨울이 얼른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저희 집까지는 대략 280m를 걸어가야 하는데 그 사이에 고양이 밥자리가 네 군데 정도 있습니다. 한 곳은 제가 이사 오기 전부터 시장 골목 끄트머리의 반찬가게 사장님이 밥을 챙겨주시던 곳이고 한 곳은 올해 초부터인가 어느 빌라의 주차장 입구에 밥통과 물통이 놓이기 시작한 곳입니다. 다른 한 곳은 지속적이진 않지만 간간이 사료와 간식 등을 담벼락에 주차된 차 아래에 놓아주는 정도이고 마지막 한 곳은 제가 아이들을 챙기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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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할머니의 팡도르] 낭독 다과회 X 강릉 댄싱터틀_

 – 일시: 12월 13일(수) 저녁 7시

 – 장소: 댄싱터틀(강원 강릉시 노암길 42)

 – 신청하기

 

_‘작가의 방’ 예약하기_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링크 : 네이버 예약

 

 

잘 지내시죠 :) 오늘 아침 저는 덕분에 마음의 창을 열었어요. 얼마 만인지.. 가까이서 장작을 때는 냄새가 나고 갓 구운 온기가 몸 구석구석을 따듯하게 데워주네요. 차갑고 따듯하게 환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덕분이에요. 많은 문장을 썼었지만 모두 지웠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어서요, 그러면서도 답장은 꼭 하고 싶었고요.메일 보내기, 정말 오랜만이네요. 알고서도 모른 척했던 제 정신적인 게으름을 이제야 조금씩 덜어내보려 합니다. 찡한 코끝이 참 마음이 들어요. 손을 내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가득 그렇지만 오늘은 한움큼 더.

같이 확장하고 싶어요. 제 삶의 문장들을,

지금처럼 오래오래 :) _ moajium_

 

기별 반갑고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이곳은 지금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어요. 한동안 미세먼지가 극성이라 환기조차 두려웠는데 오늘은 기쁘게 창을 열어봅니다. 때로는 게으름이 귀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시간 끝에 또 새로운 마음과 힘이 생기는 것이겠죠? (저는 지금 그런 시간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실은 이 답장도 누워서 씁니다.)

한껏 열리는 몸 구석구석 삶의 문장들 샘솟기를 함께 바라요. 내밀어주신 손 덕분에 저도 숨 크게 내쉬고 마시며 머리 끝까지 찡하게 환기합니다. 또 언제고 소식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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