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첫 목요일에 있었던 <자기만의 방으로> 북토크가 끝난 밤, 서로를 찍은 사진과 영상이 가득 들어왔습니다. 너무 그 안에 있던 터라 미처 보지 못했던 너른 풍경 속 동료들, 여러 시선과 각도로 담긴 우리의 옆과 뒤와 앞, 그리고 목소리와 몸짓과 표정을 보며 좀 과하게 벅찼는데요. 사랑과 우정이 그렇게 선명히 보이는 것이라니! 아, 이것은 평소 애틋해하며 동경하는 여자배구의 장면들과 같았어요. 이번 ‘소소한 리-뷰’에서 이치코 실장은 사랑과 우정의 스포츠, 여자배구의 매력을 촘촘히 전합니다. ‘소묘 일지’는 어쩌다 보니 일지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으로 점철된 일기가 되었는데요. 절반쯤 날리고 다시 성실한 노동의 이야기를 써보자 생각하다 잠이 든 바람에^^ 울면서 띄웁니다. 사랑과 우정을 담아-

 

 

 

마감과 휴일의 세리머니

<매일을 쌓는 마음> 드디어 하판! 이튿날 <자기만의 방으로> 두 번째 북토크를 치른 뒤 그다음 날은 인쇄 감리. 언제나처럼 파주를 배경으로 시쇄지 사진을 찍고, 작가님과 디자인 실장님께 감리 사진을 보내며 마음으로 하이파이브했다. 휘몰아치는 한 주를 보냈으니 토요일엔 내내 벼르던 일을 벌였다. 사무실의 혹독한 겨울을 버티지 못한 분들을 비우고 기특하게 살아남(았다고 믿고 싶)은 식물들 중 여섯의 집을 옮겨주는 일. 봄맞이 세리머니이기도 하지. 아이들마다 어울릴 만한 화분을 골라 깔망을 놓고, 배수층이 넉넉히 필요한 큰 분에는 화산사와 자갈을, 그보다 작은 분에는 자갈과 마사토를 깐 뒤 그 위에 배양토를 넣는다. 집주인이 될 식물의 자리를 잡고서 빈 공간에도 마사토와 배양토를 차례차례 채운다. 복토를 하고 몇몇 분에는 미립 마사토까지 한 겹 올려주기. 분마다 마침표처럼 조약돌 하나씩 얹기. 마지막으로 물이 필요한 분들에게 물도 듬뿍 드리기. 혜은 작가님은 이런 문장을 썼다. “쌓는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과 닮아 있다”라고. 이들의 새 줄기와 잎과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층층이 쌓은 돌과 흙과 물에 담겼을 것이다. 실은 새 잎과 꽃을 보여주지 않는데도 괜찮다. 다만 살아주기를, 큰 몸살 없이 새집에 뿌리 내리기를, 그저 저 자신으로 단단히 자라나기를. 그것을 바라며 나는 볕과 바람과 물을 부지런히 날라야지. 봄을 기쁘게 지낸 후 여름이 되면 또 버티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 테고, 지난여름처럼 절반은 빈 화분이 될지 모른다. 그래도 들이고 떠나보내며 해마다 계절마다 조금씩이나마 쌓이는 무언가가 있다. 과습과 물마름과 더위와 추위에 대처하는 법이라든가(병충해는 아직 절레절레다…) 이 환경에 맞지 않는 식물은 애초에 들이지 않는 자제력이라든가, 죽은 듯하지만 아직 살아 있음을 감지하는 눈 혹은 깔끔하게 두 손 드는 마음 같은 것.

 

어제 저녁엔 이실장이 내게 그렇게 할 거면 출판사 접어야지,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푹 고꾸라졌다. 만 5년 동안 분갈이를 한 번이라도 했으려나 싶은 식물의 모양이다. 흙의 양분을 다 빨아들인 지 오래되어 시들시들하다. 꺾이는 건 한순간이지. 이 화분 안에서 너무나 외로워 그만 밤새 말라버릴 뻔했다. 외롭다니. 흥-! 어제 풀이 죽어 있던 라벤더 꽃대 셋이 오늘은 꼿꼿하다. <매일을 쓰는 마음> 사전 서평단의 교정지 도착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자기만의 방으로> 북토크 후기도 전해져 온다. 그날 참석한 한 지인은 내게 책과 북토크 모두 ‘오후의 소묘 보석함’을 보는 듯했다고 말해주었다. 오후의 소묘 보석함. 우리 보석 선생님들. 그날은 정말 특별했는데 북토크를 진행하는 세 저자뿐 아니라 오래 같이 작업해 온 역자님, 다음 책의 작가님들, 디자인 실장님까지 함께해 주셨다.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작고 깊은 연결고리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어제의 책 마감자를 온몸으로 (그러니까 일종의 춤으로?!) 축하하고 곧 혹은 머지않아 닥칠 서로의 원고 마감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애틋하게 펼쳐졌던 풍경이 몇 번이고 재생된다. 돌아보니 마치 사랑과 우정의 팀소묘- 왁자하고 뭉클한 여자배구 세리머니 같았네.(*이실장의 소소한 리-뷰 참고.)

 

내 마음에 우정의 작가로 자리 잡은 혜은 작가님의 문장 하나를 또 떠올린다. “외로움은 함정일 뿐, 쓰고 있다면 결코 혼자일 수 없다는 단순한 비밀 하나를 풀고 이다음으로 간다.” 꼿꼿해진 라벤더 옆에서 한껏 늘어진 보리싸리가 먼저 꽃을 피웠다. 오늘의 보라꽃 곁에 내일은 연보라꽃 나란하겠구나. 이번엔 고운 작가님의 말. “우리는 사랑 안에 있어. 우리는 함께 자라고 있어.” 지난겨울 떠나보낸 식물 두어 종도 다시 들였다. 이다음은 다를 것이라 믿으며, 아니, 다르게 만들 수 있을걸 용기 내보면서. 아끼는 분들이 있고 우리는 함께 자랄 것이고 신간도 봄배구도(!?) 이제 시작이다.

 

 

 

[…]

 

이렇듯 오묘하고 낯선 움직임이 자연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스포츠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운동경기란 인간의 신체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경쟁하는 활동이기에 감탄을 자아내는 움직임이 당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론 사람 자체의 몸놀림에 놀라기도 하고 때론 운동의 매개체가 되는 물건의 움직임에 시선을 뺏기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동그랗고 커다란 공을 매개물로 승부를 다투는 어느 스포츠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손을 사용하지만 공을 잡으면 안 되는, 한 사람에 닿아서 출발한 공은 반드시 다음 사람에게 가야만 하는, 공이 바닥에 닿지 않는 걸 목표로 움직이는 운동인 배구, 그중에서도 여자배구입니다. 배구공의 움직임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매 경기 감탄하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경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배구의 아름다움을 말하기에 앞서 간단한 규칙 정도는 설명을 하는 게 낫겠지요. 아무래도 배구에 관해 전혀 모르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배구의 기본 규칙은 공이 바닥에 닿으면 점수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구나 농구처럼 골대가 있는 건 아니고 서로의 코트를 구분하는 네트가 경기장 중앙에 높다랗게 장벽처럼 세워져 있죠. 공격하는 팀은 상대방 코트 안에 공이 떨어지도록 해야 하며 수비하는 팀은 공격자가 네트를 넘겨 보내온 공이 자기 코트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배구는 공이 공중에 계속 떠 있는 스포츠입니다. 이 때문에 배구공의 아름답고 불규칙한 운동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 축구, 농구, 야구와 구별되는 배구의 독특한 점은 규칙 위반이 곧바로 점수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아무리 심한 반칙이나 규칙 위반이 있어도 점수를 직접 주지는 않습니다. 아주 쉽게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페널티킥, 자유투 등)을 제공할 뿐이죠. 하지만 배구는 네트를 살짝 건드리는 행위만으로도 상대방에게 1점을 헌납하게 됩니다. 이렇게나 예민한 스포츠라니..!

 

배구공의 움직임은 아름답습니다. 우아합니다. 그러면서 매섭고 날렵합니다. 만약 경기가 중계되는 화면에서 공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검게 처리한다면, 배구공의 움직임은 마치 깜깜한 우주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UFO의 모습과 같을 겁니다.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유연하게 날아가다가 갑자기 빛의 속도로 맹렬하게 돌진하기도 하고, 그러다 마치 벽에라도 부딪힌 듯 날아오던 방향으로 강렬하게 튕겨 나왔다가 또 매끄러운 동그라미의 궤적으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어딘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UFO의 비행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UFO를 본 적은 없지만 말이에요. 저는 배구공의 이 불규칙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에 매료되어 스포츠 관람 역사상 처음으로 응원하는 팀 없이 한 시즌의 전 경기(2023-2024시즌 기준 총 126경기)를 보고 있습니다.(행사나 약속 때문에 시간을 못 맞추면 하이라이트라도!) 특정 국가/팀/선수를 응원하지 않은 채 TV 중계를 보거나 경기장을 찾는 게 가능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배구란 스포츠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아니, 여자배구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남자배구는.. 그것도 배구가 분명하긴 하지만, 저랑은 좀 안 맞더라고요. 이 글에서 말하는 모든 배구는 여자배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배구의 기본 규칙으로 인한 특징입니다. 정교한 토스와 강력한 스파이크, 철벽같은 블로킹 등 손으로 공을 다루는 기술을 떠올리게 되지만, 의외로 배구는 신체 모든 부위를 사용해도 되는 스포츠입니다. 실제로 발을 이용해 바닥에 떨어져 가는 공을 살리는 기술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을 잡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규칙은 아주 강력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토스의 경우에는 공이 손바닥에 닿는 것만으로도 ‘캐치Catch’ 반칙에 해당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세 번의 터치 기회 안에 상대방 코트로 공을 넘겨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배구공은 잠시의 멈춤도 없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끝없이 움직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연결입니다. 이 연결은 축구와 농구의 패스와는 전혀 다릅니다. 패스는 공이 상대방 진영의 목표 지점(골대)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전략 중 일부에 해당할 뿐이지만 배구에는 오직 연결만 있습니다. 혼자 적진을 휘젓고 다니는 드리블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에 주어진 세 번의 연결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상대방이 넘겨주는 공을 잘 받는 일, 두 번째는 공격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공을 잘 보내는 일, 세 번째는 상대방이 받기 힘들도록 코트 위로 공을 넘기는 일입니다. 순서대로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가 대표적인 액션입니다. 경기장에 있는 6명의 선수는 이 세 번의 연결을 매끄럽고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혼자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구에서 투수 혼자 압도적인 피칭으로 경기를 지배하거나 축구에서 손흥민 같은 선수가 수십 미터를 혼자 달려서 골을 터트리는 것 같은 원맨쇼가 배구에는 없습니다. 물론 김연경 선수처럼 아예 다른 차원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혼자 배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정도가 다른 종목에 덜한 편입니다. 4대 구기종목 모두 팀 스포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팀이 중요한 운동이 바로 배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잘 받고 잘 올리고 잘 때리는 환상의 연결,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스포츠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구의 첫 번째 매력입니다.

 

[전체 읽기]

 

 

 

_[매일을 쌓는 마음] 18일 월요일 출간 예정!_

 사전 서평단에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 감사합니다. 아쉽게 선정하지 못한 분들도 다음에 또 다른 기회로 만나뵙길 바랄게요. 오는 18일 월요일 출간 예정이며, 이어지는 행사와 이벤트 소식들 속속 전하겠습니다. :)

 

_[자기만의 방으로] 북토크_

 • 무루X박세미 북토크: <자기만의 방으로> 세 번째 북토크가 3월 28일 목요일 저녁, 리브레리아Q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차 공지하겠습니다.

 • 송은정X신예희X무루 북토크: 땡스북스에서 담아주신 풍경

 

_[작가의 방] 3월 예약하기_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링크 : 네이버 예약

 

 

월간 소묘 레터는 늘 고요한 시간에 차분한 마음으로 읽고 싶어요. 그래서 보내주시는 날에 바로 읽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월요일에 보내주신 레터를 아껴 두었다가 금요일 늦은 밤 읽고 혼자서 ‘좋다, 참 좋다’ 했지요. 윤혜은 작가님의 신간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 레터에 늘 담아 보내주시는 다정한 마음을 아껴요. 감사해요! _:)

 

아- 아끼는 마음 알지요.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오롯하게 만나기 위한 기다림. 그 대상이 저희 레터라니 더없이 기쁘고 감사합니다.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에 아깝지 않을 새 책으로 또 소식할게요. 고요히 반갑게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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