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연재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미화리의 영화처방 편지 <엔딩까지 천천히>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망종芒種생이 되었네요 :) 책 소식 요모조모 알차게 전하고요. 이달의 ‘소소한 리-뷰’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요망한 전시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를 다뤘습니다. 글의 엔딩을 미리 스포…해 봅니다. “고양이에 관한 민속 유물 전시일 것이다, 라는 지레짐작은 비록 초장에 박살 났지만, 1부에서 3부까지 차례를 따라 관람하다 보니 전시 기획의 의도가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우리를 홀린 고양이. 고양이가 얼마나 매력적인 동물이며 또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과 관계를 맺어왔는지, 고양이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은 어떤 일인지, (반려나 길고양이 돌봄 등) 만약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때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하면 되는지를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는 지침서 같은 전시였습니다. (…) 세상엔 고양에 이미 홀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기에 아직 고양이한테 홀리지 않은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 전시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야만 합니다.” 부디 이 엔딩까지 처음부터 천천히 관람해 주시길!
아무튼 해피엔딩
<엔딩까지 천천히> 작업하면서 내가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걸 새삼스레 환기했다.(안 그런 사람이 있나?) 올 들어 본 목록을 꼽아보니 서른 편이 넘고, 그중엔 당연하게도 책에서 다룬 작품이 꽤 된다. 첫 꼭지의 <우리가 못 자는 이유>부터 마지막 꼭지의 <요노스케 이야기>까지- 처음엔 일로 ‘사실 확인’ 차 보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몰입해 울고 웃고, 하나같이 그러나 다 다르게 좋았다. 아직 못 본 것도 제법 있지만 아마 한 편 빼고는(공포영화 못 봄…) 결국 다 보게 될 것이다.
미화리 작가님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살면서 결말을 내지 못한 일들이 뒤죽박죽 쌓여 있는데 그에 반해 영화는 두 시간 안에 결말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거뜬하냐고, 중도 하차가 습관인 사람에게(저요?) 영화는 일종의 성취가 될 수 있다고.
“영화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영화의 결말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 도중에 꺼버리지만 않는다면 어떤 주인공이든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결말’에 꽂혀서 제목도 사실 ‘결말까지 천천히 멀리 돌아서 가세요’가 될 뻔했지요… ‘어떤요일’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휴.)
이뿐일까.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것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미화리는 “주인공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즐겁”다고도 썼다. 인간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존재인데 영화 속 주인공은 틀림없이 변하니까. 그게 꼭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심지어 너덜너덜할지라도) 변할 수 있다-라는 명제가 때로는 희망 어렴풋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걸, 나는 미화리의 문장과 그 문장이 속한 영화(<백엔의 사랑>)를 보고야 진실로 알게 된 기분 들었다.
여기에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로 한 가지를 더 붙이고 싶다. 책에서는 잠의 효용(?!)을 이야기한 부분인데 ‘잠’을 ‘영화’로 바꿔 읽으면 꼭 알맞아 보인다.
“잠이 없던 능력을 만들어주지도, 직장을 구해주지도, 월세를 대신 내주지도 않지만, 말끔한 정신은 줄 수 있잖아요. 고민은 여전하고 어제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대도 말끔한 정신을 위해서 우리는 잠에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때는(그리 멀지 않음) 너무 이야기에만 빠져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채 헛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은 고민마저 꽤 진지하게 했는데. 이제는 안다. 삶의 1/3은 잠과 꿈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시간이 다른 2/3를 깨어 있게 한다는 걸. 그러니 내게도 여분 차원 같은 잠의 시간들이 필요했고 또 필요하다고.
차마 다 쓰지 못할 만큼 천천히 멀리 돌아(제목 따라가는 책의 운명… 처음엔 그걸 쓰려고 했는데 끝이 없을 것 같아 단념했다) 마침내 손에 들어온 영롱한 책을 펼쳐보다 앞날개의 저자 소개글 중 한 문장에 눈과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작업 엔딩이 언제인데 뒤늦게야 이 말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으며 천천히 내 것으로 품는 중이다.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
[…]
어느 분야가 되었건 무엇을 많이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는 국가의 테두리가 좁다고 느껴지는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덕후의 존재란 그런 것입니다. 덕질이란 필연적으로 세계화, 그러니까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아름다운 길이지요. 책을 예로 들면, 어떤 주제 혹은 장르를 꾸준히 읽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다른 언어로 쓰인 책까지 관심을 확장하게 됩니다.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 책이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하지만 모든 책이 번역 출판될 수는 없는 터라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외국어라는 벽 앞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세계화 시대에 책을 구하는 거야 일도 아닌데 펼쳐봤자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면…. 그래서 관심 가는 외서를 만났을 때 보통의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번역본은 언제 나올라나?’ 또는 ‘이거 번역되면 좋을 텐데…’
여기서 출판인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좋은 외서를 찾아다니는 게 업무다 보니까요.
‘판권이 아직 살아 있으려나? 선인세는 얼마쯤일까?’
그 책을 자신이 출판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레 포기하게 되거나, 책을 내기 위한 구체적 절차를 준비하곤 합니다. 이때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도 개인의 모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생기곤 하죠.(하루키의 소설 신작이 일본에서 출간되었는데 선인세가 얼마쯤일지 고민하며 판권을 문의하는 1인 출판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만,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위대한 항로에 몸을 던지듯 모험심 강한 1인 출판사가 또 아예 없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자신이 출판할 수 없는 경우라면(대개는 주제나 장르의 제약 때문에) 이때는 대부분의 출판인들이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 ㅇㅇ출판사에서 내줬으면 좋겠다.’
저 역시 얼마 전에 그런 책이 있습니다. <Marx for Cats : A Radical Bestiary> 고양이를 위한 마르크스라니, 제목을 보는 순간 눈이 뿅-하고 튀어 나올 뻔했습니다. 듀크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왔으니 아마 학술서 같은데… 홈페이지에 있는 책 소개글을 번역기로 돌렸더니 궁금증은 더 커져갔습니다.
“『고양이를 위한 마르크스』의 서두에서 Leigh Claire La Berge는 “모든 역사는 고양이 투쟁의 역사”라고 선언합니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에 맞게 중세 설화 형식을 수정한 La Berge는 서양 경제사를 통해 고양이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에 있는 동물성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자본주의의 봉건적 선사시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시대, 자본주의를 지지했던 부르주아 혁명과 이에 반대했던 공산주의 혁명을 아우르는 1,200년의 역사를 통해 고양이가 오랫동안 경제 비판과 해방 가능성의 동물로 이해되어 온 과정을 설명합니다. 사자, 호랑이, 살쾡이, ‘사보태비’의 반복적인 기록적 등장에 주목함으로써 La Berge는 고양이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를 상상하는 방식에 중심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생태 위기의 순간에 인간과 동물이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질문함으로써 생태사회주의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현재의 논쟁에 동참합니다.”
모든 역사는 고양이 투쟁의 역사,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에 있는 동물성, 고양이가 오랫동안 경제 비판과 해방 가능성의 동물로 이해되어 온 과정, ‘사보태비sabo-tabbies’의 반복적인 기록적 등장, 생태 위기의 순간에 인간과 동물이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질문함으로써… 정말 멋진 말들의 향연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오후의 소묘에서 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듀오링고 연속학습기록 504일 차에 접어드는 실력으로 과연 이 책을 영어로 읽을 수 있을까 0.5초 정도 고민도 해봤지만 역시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가 아니라,(이미화 작가님의 신간 <엔딩까지 천천히>를 보셔야 이게 개그가 되는데…)
“ㅇㅇ출판사에서 내줬으면 좋겠다.”
대체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러는 건가 갸웃하실 수도 있는데요. 오늘은 <소소한 리-뷰> 코너지만 고양이 얘기를 하는 날입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절대’라거나 ‘무조건’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건 다수의 이해가 충돌하고 여러 입장이 얽혀 있는 건 물론이고 좋음과 나쁨의 경계마저 뿌옇게 흐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대 그렇다/그렇지 않다, 무조건 맞다/아니다, 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잠깐의 쾌감을 선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웬만하면 몇 배의 곤란함을 동반하게 됩니다. 종교나 왕권이 모든 가치 판단을 독점한 상황이 아니라면, 인간 사회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그런 건 없습니다. 절대 없는데, 무조건 없는 게 맞는데 말입니다. 어떨 땐 또 있기도 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엔 무언가 고양이가 엮이면 그렇습니다. 고양이이라면 무조건 인정이지, 가 되어버리는 상황인 거죠. 평소라면 영어로 408쪽이나 되는 사회 경제학 책을 보고 무턱대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Marx for Cats>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오직 고양이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라면 절대적으로 궁금할 수밖에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그렇게 절대적으로 옳으며 무조건 가봐야 할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 여기도 제목부터 예술입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전시 개요를 한번 보실까요?
“고양이는 일찍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큰 눈, 조그만 코, 통통한 볼과 3.6kg의 평균 체중을 가진 고양이는 사람 아기와 비슷한 외형과 체구로 우리의 보호본능을 일으키며 야생에서 도도하게 살다가도 필요할 때는 인간을 찾아와 애교를 부리며 노련하게 인간을 조종해 왔습니다. 이 뻔뻔하고 귀여운 생명체에게 옛사람들은 자신의 고기반찬을 내어주었고 요즘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을 ‘집사’로 칭하며 지갑을 엽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고양이에게 홀려 온 우리 인간들을 깨우치기 위해 이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고양이들의 무시무시한 세계 정복의 비밀을 파헤칠 것입니다.
[전체 읽기]
❨ _🎬 [엔딩까지 천천히]가 출간되었습니다 🎉_ ❩
⭑ 사적인서점 ‘한 사람을 위한 사적인 사인회’
사적인서점에서 특별한 비대면 사인회를 준비해 주셨어요. 고민 사연을 짤막하게 남겨주시면, 미화리 영화처방사가 쁘띠 영화처방을 해드립니다. 미화리 작가가 건네는 응원의 영화를 처방받아보세요 :)
사적인서점 온오프라인숍에서 <엔딩까지 천천히> 구매 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옵션창에 사인받을 이름과 함께 고민 사연을 남겨주세요. 이미화 작가가 사인과 함께 맞춤 영화 제목을 적어드립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사적인 인사가 담긴 이미화 작가의 친필 사인본을 만나보세요 ✍🏻
💌 신청 및 배송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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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2(수) 구매 건까지 사인회 신청이 가능합니다.
• 6/13(목) 사인을 받은 후 6/14(금)부터 순차적으로 배송될 예정입니다. (현장 픽업은 14일(금)부터 가능합니다)
⭑ 작업책방 씀 ‘작가의 책상전’
6월 한 달간 작업책방 씀에서 <엔딩까지 천천히>로 ‘작가의 책상전’이 열립니다. 이미화 작가가 운영하던 영화서점 ’영화책방 35mm‘의 뭉클한 흔적과, 영화로 우리의 마음을 사려 깊게 어루만지는 영화처방사 미화리의 살뜰한 취향을 만나보세요.
• 전시 일정: 6월 10일(월) ~ 6월 30(일) | 장소: 작업책방 씀(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3길 19-17)
• 전시 미리보기
⭑ 이미화 작가 북토크 ‘당신이라는 영화의 관객이 될게요’
• 일정: 6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 장소: 작업책방 씀
• 진행: 윤혜은 작가
• 신청하기
⭑ 미화리 작가님과 윤혜은 작가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책방로그’에 소개된 책 이야기를 전합니다 :)
⤷“제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하지만, 제가 다 경험해 보지 못한 고민도 있으니까 그 고민을 했던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같이 소개하면서 썼어요. 영화 속 주인공이랑 친구가 되는 느낌으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미화리 작가)
⤷“주변에 고민상담을 한 친구가 있다면, 이 영화가 처방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이에요. 그리고 구성이 독특해요. 처방 편지 이후에 진짜 미화리로서 하고 싶은 말이 PS로 쿠키 영상처럼 메시지가 있는데 그게 또 이 책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거기까지 읽어야 처방편지가 완성되니까 같이 천천히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윤혜은 작가)
❨ _[자기만의 방으로]가 고민 사연에 책을 처방하는 유튜브 ‘읽는약국’에 소개되었어요._ ❩
정영주 배우님이 휘리 작가님의 ‘열린 문, 한 뼘의 틈으로’ 일부를 낭독해 주셨습니다.
❨ _[작가의 방] 6월 예약하기_ ❩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링크 : 네이버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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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소묘 : 레터]는 책과 고양이를 비롯해 일상의 작은 온기를 담은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매달 두 번째, 네 번째 월요일에 만나요.
[월간소묘: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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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첫 편지 ‘얼굴들’ • 2월의 편지 ‘걸음걸음’ • 3월의 편지 ‘Little Forest’ • 4월의 편지 ‘Now or Never’ • 5월의 편지 ‘창으로’ • 유월의 편지 ‘비밀의 무늬’ • 7월의 편지 ‘여름의 클리셰’ • 8월의 편지 ‘파랑’ • 9월의 편지 ‘이름하는 일’ • 시월의 편지 ‘일의 슬픔과 기쁨’ • 11월의 편지 ‘나의 샹그릴라’ • 12월의 편지 ‘연말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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