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묘] 시즌 2 레터는 소묘가 고른 커피와 책을 소개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글, 그리고 출판사 오후의 소묘 소식을 전합니다.

 

3월의 편지는 ‘질문의 자리’입니다. 지난달 ‘생기’를 띄웠지요. 3월이면 여기저기 생기가 움트고 우리는 안온하게 봄을 이야기하고 있을 거라고, 쉬이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자리에 자라난 것은 질문들이네요. 진정 봄은 오는지, 안녕은 언제 가능할지, 신념은 무엇인지, 이해는 왜 불가능한지, 우리는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좁아지는 마음을 어떻게 펴내야 할지, 커지는 것은 염려뿐인데. 그럼에도 서로를 염려하는, 바로 그 마음에 기대봅니다. “염려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오종우 <예술적 상상력>)라고요.

 

 

 

 

 

계절마다 떠올리게 되는 커피의 산지가 있어요. 봄엔 단연 코스타리카예요. 저의 작은 편견이랄까요. 코스타리카 하면 프릳츠고요. 이것은 편견보다 사실에 가까울 거예요.

 

페를라 델 카페는 프릳츠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농장이라고 합니다. 농장주 카를로스는 늘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커피를 만들 수 있지? 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다고요. “매년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해 다양한 가공 방식을 시도하며 시설을 개선하고 풀륭한 품질의 커피를 생산해내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프릳츠 소개글)기에 늘 다양한 품종과 가공법을 선보입니다. 지난달엔 비야 사르치 품종의 골든 허니 커피였고, 이달엔 산 로케 품종의 워시드 가공 커피예요. (금세 바뀌곤 하니 궁금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구입을!)

 

산 로케 품종의 본래 자리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랍니다. 탄자니아에서 생산되던 티피카가 코스타리카의 산 로케San Roque 지역에 자리 잡으면서 산 로케 품종이 된 것이죠. 티피카는 최초의 커피 중 하나예요. 생산량이 적고 병충해에 약하지만 과일의 풍부한 향미를 지닌 품종으로, 수많은 변종이 탄생했어요(그러니 탄자니아 티피카도 다른 산지에서 비롯된 것이겠죠). 산 로케는 티피카의 좋은 특징을 이어받아 최근 코스타리카 CoE(Cup of Excellence)에도 자주 랭크된다고 해요.

 

‘진주 가공소’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페를라 델 카페의 산 로케 워시드는 열대과일의 풍미가 가득합니다. 패션푸르트(백향과) 차 같기도, 주스 같기도 해요. 커피 한 잔에 봄이 들어설 자리를 정돈하게 됩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아시아로, 유럽으로, 중앙아메리카로, 또 탄자니아로, 탄자니아에서 코스타리카로, 코스타리카에서 우리에게로 도착한 그 머나먼 여정도 상상해봐요.

 

﹅ 프릳츠 ‘페를라 델 카페: 산 로케 워시드’

*기간 한정 상품으로 지금은 판매가 종료되었습니다*

 

 

“이제까지 100년 이상이나 올바르다고 믿고 있었던 것도 의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긍심 따위 재킷처럼 가볍게 벗어던지고 가벼운 옷차림이 되어야 한다.”

 

2018년 3월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다와다 요코의 <헌등사>를 다시 펼쳐봅니다. 작가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이후 이를 화두로 삼은 작품을 이어서 발표했고 <헌등사>는 다섯 작품을 엮은 소설집이에요. 그중 표제작인 <헌등사>의 한 구절로 3월을 열었습니다.

 

다와다 요코의 이력은 조금 독특한데요. 20대 초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독일로 건너가 독일어와 일본어, 두 언어로 작품을 써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어를 그림처럼 사용하곤 해요.(그리고 저는 이런 작가들에게 마음이 동합니다.) 3.11은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님에도 작가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고 작품 활동에도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한 인터뷰에서 ‘일본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오염된 장소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며 목소리를 높인 작가는 그 분노에 촉발되어 집필을 시작했다고 하지요. 제가 이 책을 재독할 마음이 들었던 것도 어쩌면 이 지점이었을는지. 하지만 표제작 <헌등사>에서는 어떠한 분노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마지막 작품 <동물들의 바벨>로 가면 이야기가 다릅니다만. 고양이, 여우, 토끼, 다람쥐, 곰이 나누는 대화, 꼭 읽어보셔요.)

 

원전 사고 이후 죽지도 병들지도 않는 노인과 날 때부터 죽음이 붙어 있는 아이들. 다른 종족이라 해도 무방할 두 존재가 어떻게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지. 작가는 108번째 생일을 맞은 노인 요시로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메이는 ‘괴롭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기침이 나오면 기침을 하고 먹을 것이 식도를 역류하면 토할 뿐이었다. 물론 아픔은 있지만 그것은 요시로가 알고 있는 ‘어째서 나만이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가’라는 억울함을 동반하지 않는 순수한 아픔이었다. 그것이 무메이 세대가 전수받은 보물인지도 모른다. 무메이는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모른다.”

 

요시로는 자신이 100년간 켜켜이 쌓아온 경험이 다음 세대에게 전부 쓸모없는 것이 된 세계, 그곳에서 자신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할 것이 뻔한 증손자 무메이와 삶을 처음부터 새롭게 배워갑니다.

 

“추위와 더위만이 아니라 어둠과 밝음의 대립 관계도 애매해져갔다. 어두운 날이라 생각되어도 회색 하늘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으면 하늘이 전구처럼 안쪽에서 빛을 뿜고 있는 것이 느껴져, 결국은 눈이 부셔 눈을 돌리게 된다. 바람이 강한 날이라고 생각되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자니 공기가 얼어붙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감에 따라 지붕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 가로등도 집의 전등도 모두 사라져, 밤은 밤을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밤이 가장 깊어진 듯 보이는 시점이 동시에 여명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것은 어떤 영문인가.”

 

일상이, 관습이 뒤집히고 옳고 그름이 뒤집히고 서로의 자리가 뒤집히는 날들이지요. 불가해한 존재와 현상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타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을 가만가만 짚어봅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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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산책했어요. 집에서 가까운 곳을 찾았는데, 그러고 보니 공통점이 많은 두 곳이네요. 동네서점 혹은 독립서점 1세대이기도 하고, 각각 한 번의 이사를 거쳐 새로운 장소에 소담히 자리하고 있죠. 눈치채신 분도 있을 텐데요. 네, 땡스북스와 유어마인드입니다 ;)

이야기는 아래 링크의 글에서 전할게요.

 

[소묘의 산-책] 2월

 

[마음의 지도]는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한 그림책 제목이지만, 앞으로 펴낼 ‘마음/감정’에 관한 에세이 시리즈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쓰기살롱 멤버 문이영은 <슬픔 빼고 다>라는 제목(가제)으로 한 권을 맡게 되었어요. 월간 소묘 레터로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질문이 자라나는 각도]

 

어떤 배치 속에서 우리는 불편을 느끼고, 그 배치를 바꿀 수 없거나 나를 그 배치에 맞게 바꿀 수 없다면 다른 배치를 택하게 되죠. 물론 불편을 견디는 선택도 있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저의 여정은 언제나 다른 배치로의 도망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여러분은 어떠실까요?

 

문이영은 유난히 ‘마주 봄’의 배치를 어려워하는군요. 그래서 지하철이 어려운 사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는 사람. ‘나란함’의 배치 속에서 안온함을 느끼는 사람이네요. 내가 안온함을 느끼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가능한 모험이 있을 거예요. 그것은 도망과는 다르겠지요.

 

“마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궁궐 담장을 따라 줄지어 선 은행나무를 보며 대화하곤 했다. 이야기는 창밖을 향해 던져지고 그 이야기가 궁궐 담장에 맞아 튕겨 나올 동안 내 안에서 질문이 자라났다. 그 안온한 각도 속에서 내 생각은 더 적게 하고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나란히 앉아 서로를 향해 떠나는 모험 같다.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위해 떠나는 모험이다.”

 

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④ 각자의 자리]

 

3월은 오후의 소묘의 각별한 달입니다. “합정 김 씨에 이름은 삼삼, 멋진 선글라스를 쓴 얼굴과 삼색 무늬 몸통의 저희 집 첫째 김삼삼.”의 탄신, 삼삼절(3.3)이 있으니까요. 이실장은 고양이 얘기만 한다더니 고양이 얘기만 빼고 다 할 셈인지 먼 길을 돌아 가네요. 굽이굽이 부끄러워지는 마음을 따라 김삼삼에 이르기까지 자리 없는 자리들을 함께 챙겨요.

 

2월의 편지에서 전했던 오히루 이야기는 에피소드 1의 세 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또 먼 길을 돌아 다시 이야기하게 될 테지요.

 

 

👏 <할머니의 팡도르> 역자 북토크 라이브 후기

 

👏 오후의 소묘 2020 타이틀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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