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위에 펼쳐진 저물녘 별들의 그물. / 이것이 나를 집으로, 야생의 새들의 집으로 끌어간다. … / 경험의 가장자리, 영혼의 경계 …” -뮤리얼 루카이저, ‘ 아우터 뱅크스’ 중에서, <어둠의 속도>

 

해가 조금씩 짧아지더니 어둠이 빠르게 찾아옵니다. 이제 7시만 되어도 어슴푸레하지요. 24절기 중 9월의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그날을 기점으로 밤이 더 길어질 것을 실감하게 해요. 어슬녘은 경계의 시간, 경계 너머 밤은 고양이의 시간. 땅거미가 지면 집 밖 고양이들의 식사를 준비합니다. 낮 동안 어디선가 몸을 숨기고 잠을 청했던 고양이들이 하나둘 깨어 모여들기 시작해요. 구월의 책 <아홉 번째 여행>은 어느 저녁 어스름과 새벽 어스름 사이, 하룻밤 고양이들의 축제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 인터뷰와, 새롭게 준비한 코너 ‘이달의 썸띵’, 그리고 새 연재 ‘틈새인간 표류기’까지 축제처럼 읽어주셨으면- 바라봅니다.

 

 

구월의 책은 오후의 소묘 첫 국내 그림책 <아홉 번째 여행>입니다. 2014년 독립출판물로 출간된 적이 있고, 이번이 재출간이에요. 저는 이 책을 2017년 무루 님의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첫 시간에 만났어요. 고양이를 주제로 한 하루 수업이었는데, 그날 만난 책들 중 저의 마음을 가장 크게 울렸답니다. 후로는 조금 잊은 듯 지내다 오월의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엉엉 우는 아이의 얼굴보다 텅 빈 할아버지의 의자를 가만히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에서(존 버닝햄, <우리 할아버지>),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보다 아홉 번의 고단한 여행이 모두 끝났으니 이제 기쁘게 가라고 흔들어주는 손길에서(신현아, <아홉 번째 여행>) 더 깊은 슬픔을 발견하게 된다.”-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그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신현아 작가님은 인터뷰에서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를 자주 보게 된 시기가 있었고, 그 장면이 두고두고 남았다. 인간이 인간의 방식대로 꾸민 곳에서 동물로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이 겪는 부당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고 이야기하셨어요. 하지만 <아홉 번째 여행>에 로드킬 장면이 등장한다거나 인간 중심의 세계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판타지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또 우리의 마음에 말을 겁니다. ‘차가운 길 위에서 쓸쓸히 떠나간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친구가 많은 고양이였고 아홉 번이나 산 대단한 고양이라면 어떨까’라고요.

 

언뜻 무채색처럼 보이는 그림은 어쩐지 오래된 사진 같기도 하고 꿈에서 본 장면 같기도 해요. 그 속에 그려진 수많은 고양이들의 눈짓, 몸짓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책장을 넘기며 미소 짓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다 끝내는 눈물 고이고 말아요.

 

그림은 떠나보내는 고양이들의 축제를 그리지만 글은 떠나는 고양이의 목소리로 말합니다. “나는 그곳에 없어” 하지만 아홉 번이나 산 대단한 고양이는 실은 “아침을 가르는 새의 날갯짓”, “오래된 나무”이며 “수없이 지나는 오솔길”, 또 “저 달의 뒷면”, “새벽하늘 총총한 별빛”이에요.

 

작은 존재들이 내 안에서 커져가는 일은 반대로 나의 가까이에서 멀리로 나아가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 이야기도 하나의 골목에서 시작해 하나의 별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와 나와 우리의 우주는 모두 변해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홉 번째 여행>을 쓰고 그린 신현아 작가님이 직접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림책을 만들게 된 이유, 작업 과정, 책 속 고양이들의 사연, 초기 그림과 자료들까지 알차게 전해요. 책을 만나기 전에 먼저 읽어보셔도 좋겠어요.

 

[인터뷰] 신현아 〈아홉 번째 여행〉

 

이달의 커피는 이전 편지에서 예고했듯 8월을 끝으로 잠시 쉬어갑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예요. 레터 시즌 2는 이달의 썸띵입니다. 물건, 사건, 브랜드 무엇이든. 구월엔 페이퍼 인센스를 소개해요. ‘편지하는 마음展’을 다녀간 눈 밝은 분이라면 전시에서 만나보셨을 거예요. 오픈 시간에 꼭 태웠고, 책마다 갈피해두기도 했지요.

 

프랑스의 ‘파피에르 다르메니’는 1885년부터 페이퍼 인센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액화한 벤조인(교목의 줄기에 상처를 내어 채취한 천연 향료)에 종이를 담근 후 건조시키고 한 권의 책처럼 묶었어요.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이 과정에 반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해요. 하지만 태우는 데에는 오 분도 안 걸리지요. 그 짧은 시간이 농밀해지는 이유는 이전의 오랜 과정 덕분일 거예요. 벤조인은 고대로부터 악령을 쫓는다고 알려져 왔고, 마음에 안정을 준다고 합니다. 벤조인이 스며든 종이를 태운 연기는 공기 정화와 탈취를 돕는다고 하고요.

 

책에서 뜯어낸 납작한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접어 깨진 도자기 위에 올리고, 그 끝에 불을 붙여 끄면 묵직한 향이 공간을 채웁니다. 한 칸 한 칸 연기가 되는 모습을, 다 타고서 소복히 쌓인 재를 바라보는 일. 이달의 책 <아홉 번째 여행>과 함께하면 더욱 특별한 경험일 거예요. 책 속 만장(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행렬, 그 한바탕 축제에 동참한 기분이 향과 더불어 오래 남습니다.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소소한 산-책] 9월

 

외출 어려운 날들이지만 잠시 서촌을 다녀왔습니다. 꼭 소개하고 싶은 구월의 전시와 팔월의 책과도 관련 있는 책방 이야기 짧게 전합니다.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1주년 기념 굿즈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책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기린 네 컷 만화. 오후의 소묘 그림책들을 옮긴 정원정 번역가가 그의 정원생활을 귀엽고 유쾌한 그림과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여름] 편은 시작과 동시에 끝난 것 같아요.(물론 그리는 분은 아니겠지..) 여름이 송두리째 사라진 기분이어서 더욱 그렇겠지요. 그럼에도 식물들은 여름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있었나 봅니다. 정기린 작가의 시선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식물의 여름의 일, 그리고 여름의 맛이란! ‘22 성토대회’와 ‘23 나뿐이었네’는 꼭 이어서 보시어요. 시골살이에 대해 도시인들이 갖는 편견 하나를 작게 깨뜨리고 그 자리에 뭉클함 채워요.

 

 

 

 

[일상백서]

22. 성토대회

23. 나뿐이었네

마음/감정’에 관한 에세이 시리즈. 문이영 작가의 글로 미리 만나보세요.

 

﹅ [어둠으로 올라가는 길]

 

어떤 표정은 어둠이 내린 후에야 또렷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어스름 속에서 언덕을 오르는 마음. 미움, 수치심, 환멸의 끄트머리에 섰을 때 우리는 그리움을 향해 다시 내려가야 하겠지요. 한 해의 삶을 아홉 번 반복한 인생과 스물아홉, 혹은 서른아홉 거듭한 생의 차이는 어둠을 오르내린 경험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올라가는 일에는 어떤 공통된 기대가 담겨 있다. 그 기대란 오르는 방향에 따라, 높이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질 풍경을 마주하는 일이다. 뒤로 돌아볼 때마다 달라지고 또 넓어지는 풍경 속에서 지나온 것들이 작아져 간다. …적막한 우주에 홀로 떨어져 나와 지구를 보는 게 이런 느낌일까. 내가 아는 도시가 멀리서 소리 없이 반짝였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만들어낸 적막 가운데 피아노 뚱땅이는 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울립니다.

틈새만 찾아 살아왔는데 계속 표류 중인 인간의 기록. 지금은 강릉에서 문화공간 슈뢰딩거를 운영하고 있다. 일명 슈사장.

 

﹅ [여행하는 고양이 책]

 

9월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입니다. 매달 전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어요. 필자의 특기가 자타공인 ‘하다 말기’여서 말이죠. 그래도 첫 문을 열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지금은 강릉에 표류 중인 슈사장은 얼마 전까지 대학로에서 고양이책방을 운영했고, 그보다 전에는 한옥 에어비앤비의 슈퍼호스트기도 했어요. 에어비앤비의 소개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를 적어두었죠.

 

‘당신 나라의 고양이 책을 가져다주세요. 그러면 저희가 준비한 작은 선물을 드립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게스트와 게스트 유형별 고양이 책 이야기.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글을 즐겁게 소개합니다. 그러나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이 태풍 하이선이 강릉을 지난다는데, 슈사장이 쓴 문장이 누구보다 그곳에 필요할 것 같네요.

 

다시 내린 어스름 뒤에 선명한 밝음 올 것을 믿으며, “모두들, Stay safe, stay healthy.”

 

*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시즌 2를 앞두고 한 달 쉬어갑니다. 연재글은 아니지만 이치코 실장이 쓴 <노래하는 꼬리> 이야기를 전해요. ‘낯선 것’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 된다면 좋겠어요.

 

﹅ [우리의 꼬리는 어디로 갔을까?]

 

👏  이달의 책 <아홉 번째 여행>은 9월 9일 출간됩니다. 온라인서점 및 오프라인, 독립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  비올레타 로피즈 주간

1. <노래하는 꼬리> 역자 무루의 온라인 북토크: 9월 7일 월요일 밤 10시, 인스타그램 무루 계정(@mooru)에서 만나요.

2. #비올레타로피즈에디션 리그램 이벤트

3. #내가사랑하는로피즈 후기 이벤트

4. 아노말스튜디오 X 오후의 소묘 콜라보 비올레타 로피즈 에디션 하바리움 제작기

 

👏  8월의 편지 후기, 고맙습니다. 리뷰 남겨주신 분들 중 매달 한 분을 선정해 오후의 소묘 노트 세트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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