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묘] 시즌 2 레터는 소묘가 고른 커피와 책을 소개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글, 그리고 출판사 오후의 소묘 소식을 전합니다.

 

4월의 편지는 ‘장소라는 몸’입니다. 지난달 진정 봄은 오는지 물었던 우문이 멋쩍게 꽃들이 제 몸을 한껏 피워냈어요. 불안과 환멸과 지리멸렬 속에서도 우리의 몸은 갖가지 색과 모양을 보고 냄새를 맡고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저마다의 장소에서 조금씩 펼쳐지고 있겠지요.

 

 

 

 

2월에 전한 첫 편지에서 ‘나무사이로’를 소개하며 이런 표현을 썼어요. “국내에 스페셜티 커피를 소개하고 그 문화를 이끌어온 곳.” 커피리브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써야겠네요. 최근, 정말 며칠 전!에 국내 최초로 스페셜티 인스턴트 커피를 선보였고 금세 품절되었죠. 새로운 싱글오리진으로 또 선보인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기다려보아도 좋겠어요.

 

리브레에서 판매하는 싱글오리진 커피는 일주일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이달의 커피로 소개한들 여러분이 이 편지를 열어볼 시점엔 사라져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커피가 있지요.

 

바로 커피리브레 대표 블렌딩인데요. 중약배전의 ‘배드 블러드’, 중배전의 ‘노 서프라이즈’, 중강배전의 ‘버티고’, 강배전의 ‘다크리브레’, 이렇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패키지의 아름다움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서수 작가님이 패키지의 그림을 그렸어요. “얼굴 있는 커피” 컨셉의 싱글오리진과 골드문트도 좋으나, 제가 사랑하는 건 블렌딩 패키지예요. 몸이라는 장소와 그 장소에 놓인 커피잔이 얼마나 위트 있게 그려졌는지 자꾸만 쳐다보게 됩니다. 작가님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코로나 시대의 운동법이라 해도 좋겠네요. ‘배드 블러드’는 가볍게 모닝커피로, ‘노 서프라이즈’는 한낮의 라떼로 추천해요.

 

커피리브레 ‘배드 블러드’

커피리브레 ‘노 서프라이즈’

 

 

P.S. 혹시 발송 후 일주일 내(정확히는 6일~12일에) 열어보신다면 볼리비아 타이피플라야, 르완다 코코 함께 맛보아요. 리브레에서 소개하는 볼리비아와 온두라스 커피는 믿고 마시는 편이며, 르완다 코코는 여성 농부가 중심이 되는 협동조합에서 생산한 커피라 하여 꼭 구입하려 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마성이 있다. 바로 그 무렵 나는 우즈 강변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모든 것을 말끔히 ‘정리하고’ 싶던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강으로 가야 한다는 느낌이 솟구쳐 올랐다. …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일상 세계의 표면 아래에 이르고 싶었다.”

 

어느 해 봄 ‘삶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사소한 위기’가 닥쳐 ‘유난히 싱그럽던 그해 4월의 사랑스러움 때문에 어쩐지 더 끔찍한 기분’이 되어버린 올리비아 랭은 우즈강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우즈강은 버지니아 울프가 그의 반려자 레너드 울프와 함께 살았고, 제 몸을 던진 장소이기도 하죠. 지난 연말 독서모임에서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를 읽고 책장에 꽂혀만 있던 <강으로>를 꺼냈어요. 부제가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한 가장 지적인 여행’이에요.

 

랭은 우즈강의 발원지인 슬라팜에서 시작해 플레칭, 바컴 밀스, 루이스, 로드멜, 마지막으로 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피딩호까지 일주일 남짓 걷고 또 걸으며 그 장소들에 관해 이야기해요. 단순히 풍광만이 아닌, 그곳에 얽힌 자신의 기억과 괴로움과 상념에 대해서만이 아닌, 그 장소에 내려앉은 다른 이들의 몸과 역사와 신화와 문학과 과학을 엮어냅니다. 그 모든 텍스트는 강이 바다로 흘러들듯 울프에게로 가닿아요.

 

“풍경의 곳곳에 과거가 내려앉아 있다. … 버지니아 울프는 미완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과거는 현재가 마치 깊은 강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흘러갈 때만 돌아온다. 바로 그런 순간에야 수면 아래의 심연이 들여다보인다.’ 나는 그 강물 역시 그 깊은 곳에 과거를 붙잡아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랭은 <외로운 도시>에서도 그랬듯 자신의 위기에서 잘 미끄러지기 위해 수면 아래 잠든 모든 위기들 속으로 하강하는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더 잘 보고 더 잘 들으며 답을 구하고자 하죠. 하지만 수면 아래 심연보다도 진실로 제 마음을 끌어당긴 문장은 이런 대목이에요.

 

“나는 꽃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잔개자리, 미나리아재비, 쇠뜨기, 창질경이, … 매끈한 뽀리뱅이, 보랏빛 화관의 수레국화. 그 꽃들 사이사이로 더 작고 섬세한 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쥐손이풀, 벌노랑이, 가녀린 꼬리풀, … 다른 것에 뒤엉켜 자라며 분홍색과 흰색의 줄무늬로 컵 모양 꽃을 피우는 서양메꽃이었다. 자세히 보니 수레국화의 줄기에는 진디등에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정 12면체 모양의 거미줄이 갈퀴나물의 연보랏빛 꽃에 걸쳐져 있었다.”

 

“도랑에는 시원하고 푸른 물이 반쯤 차 있었고 골무꽃, 워터민트, 습지 갈퀴덩굴, 동자꽃이 잎은 물속에 잠긴 채로 아기자기하고 풍성하게 자라 수면 위로 꽃을 피웠다. 꽃 사이에서 꿀벌 한 쌍이 이리저리 다니며 내는 소리가 고양이의 그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무성한 화초 사이를 걷다 보니 마음이 들떴다. 나는 비탈길을 오르면서 그 화초들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질경이, 짚신나물, 민눈양지꽃, 양지꽃, 노박덩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비탈길 위쪽의 하늘은 종달새의 세상이었다. 종달새가 사방에서 날아올라 쉴 새 없이 지저귀고 있었다.”

 

강가를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꽃의 향연과 꽃들 사이의 거미줄과 꿀벌과 그 위를 날아오르는 새들. 바로 눈앞에 있는 것들을 섬세히 바라보고 온몸으로 감각하며 제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의 문장에서 아름다움과 힘을 느껴요. 우리가 묻히고 폐허가 된 장소에서도 꽃은 피어날 것이라고, “별꽃아재비, 옥스퍼드 금방망이, 아틀라스 양귀비는 태곳적부터 쭉 우리 도시를 찾아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찾아올 것”이라고도 씁니다. 사적인 위기와 버지니아 울프라는 강의 시원에서 시작된 여정은, 인간사의 몰락과 회생이라는 숙명의 바다에서 끝을 맺어요. 그것은 체념과는 다를 테죠.

 

“레너드가 믿었던 지속성은 지상에서의 지속성이었다. 전쟁이 임박했던 1939년에 버지니아는 라디오에서 히틀러의 연설이 나온다며 정원에 있는 그를 불렀다. 그러자 레너드는 싫다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못 가요. 지금 아이리스를 심고 있어요.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오래오래 꽃을 피울 식물이라고요.’ 레너드가 옳았다.”

 

우리는 그 작은 기적을 지금 목격하고 있어요, 봄이라는 계절의 장소 한복판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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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엔 조금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까 했는데 아직 조심해야 할 때네요. 부러 찾기보다 겸사겸사의 산책으로 가능한 적은 발걸음을 옮겼어요. 2월의 산책과 겹치기도 합니다. 지난달에 독립서점 1세대로 새로운 장소에 자리한 두 책방을 소개했는데, 이번엔 신촌에서 망원으로 거처를 옮긴 책방을 소개해요. 제가 무척 아끼는 장소랍니다. 짐작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

 

[소묘의 산-책] 3월

 

정원사 정기린의 네 컷 만화. 오후의 소묘 그림책들을 옮긴 정원정 번역가가 그의 정원생활을 귀엽고 유쾌한 그림과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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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에게 봄이란 어떤 계절일까요? 그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제가 감각하는 봄과 정원사가 감각하는 봄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니! 설렘과 신남이 한껏 묻어나는 이야기를 보며 몸이 들썩입니다. 당장 그 정원으로 달려가고 싶어져요. 새로 시작한 연재, 즐겁게 봐주세요. :)

 

 

 

 

[일상백서]

3. 언제 오나 봄

4. 씨앗 심는 날

 

[마음의 지도]는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한 그림책 제목이지만, 앞으로 펴낼 ‘마음/감정’에 관한 에세이 시리즈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쓰기살롱 멤버 문이영은 <슬픔 빼고 다>라는 제목(가제)으로 한 권을 맡게 되었어요. 월간 소묘 레터로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그리움의 형상]

 

“몸으로 익힌 장소라서 그렇다. 하도 많이 걸어 다녀서 알게 된 구체적인 사실들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다’는 말은 나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진실로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마음속으로 만지작거리는’ 장소가 있겠지요. 우리의 몸이 담기는 외부적 요소가 공간이라면 장소는 몸과 붙어 있는 하나의 존재 같아요. 공간은 사라져도 장소는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저에게 진실로 다가옵니다. 사회지리학자인 앨러스테어 보네트는 <장소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장소에 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요. “장소는 우리 삶의 직조물이다. 기억과 정체성이 그 안에 엮여 들어간다.”

 

지난 글에서 버스를 타고 경복궁을 맴돌았던 문이영이 이번엔 서울 북동쪽으로 마음을 데려가네요. 제 몸 안에 직조된 어떤 장소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그 장소에 엮인 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끄집어내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납작하게 만나고 있는지 깨닫게 돼요. 장소라는 입체적이고 정교한 몸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면면을 굴려보며 여러 무늬와 그 무늬를 이룬 씨실과 날실을 사소하게 발견하고 구체적으로 기뻐하는,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를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⑦ 빈 책상]

 

오후의 소묘의 봄은 행사의 계절이에요. 지난달 소개했던 삼삼절(첫째 고양이 김삼삼의 탄신일 3.3)을 비롯해 사월이날(둘째 고양이 강모카의 생일 4.2)을 거쳐 오월이면 바로 이 이치코의 어린이날(셋째 고양이 이치코의 생일 5.5)이 연달아 있지요. 오늘은 며칠 전 사월이날을 지낸 둘째 고양이 강모카의 등장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시 오히루 이야기인 것을) 들려드려요. 저는 좀 울었어요.

 

“드라마에서 핀란드 속담을 빌려서 ‘후회란 한때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데 그걸 ‘빈자리란 한때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3월의 편지에서 전했던 김삼삼 이야기는 에피소드 2의 세 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의 글을 따라가 주세요.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⑤ 굴러온 돌

⑥ 잃어버린 시간

 

👏 <섬 위의 주먹> 중판출래!

 

👏 ‘오묘한 독서+쓰기살롱’ 읽고 쓰기 모임 멤버를 모집합니다.

 

👏 1/4분기에 새 책으로 인사드리진 못 했지만, 분주히 움직이고 있답니다. 늦봄과 여름엔 선보일 수 있을 거예요. 레터로 소식할게요.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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