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크기는 어떻게 정해질까요?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순간에 크기가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저는 제대로 알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기쁨의 에너지는 휘발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거든요. 기쁨은 내 안에서 출발해 세상으로 향하는 에너지 발산의 과정이에요. 물질적으로 축적되지 않아요. 다만 에너지가 흘러 넘쳤던 시간의 지속에 대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의 풍경에 대한 기억으로만 남을 뿐이죠. 우리의 행복한 추억들은 기쁨의 크기에 관한 기억이 아니에요. 기쁨으로 충만했던 나와 세계의 관계, 그러니까 시간이나 풍경에 관한 기억일 뿐이에요.

 

그렇지만 슬픔을 겪는 순간엔 그것이 얼만큼의 크기인지 알 수 있어요. 슬픔의 고통은 물리적 형태로 차곡차곡 쌓이니까요. 눈물이 지나쳐 눈이 따까워지기도 하고 두들겨 맞은 듯 근육이 아프기도 하고 누군가 심장을 꽉 쥐고 있는 듯 숨 쉬기가 힘들어지기도 하죠. 몸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이 커지면 세포 하나하나가 슬픔에 반응을 하기도 해요. 그럴 때, 무너져내린다고 말하곤 하죠.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힘없이 무너져 분해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슬픔은 기억으로 남는 게 아니라 몸에 새겨진 물리적 흔적으로 남아요. 그 크기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아요. 기쁨의 불꽃이 꺼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슬픔의 재들이 사라지기 위해선 생의 길이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해요.

 

Photo by Zoltan Tasi on Unsplash

 

슬픔엔 세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존재의 상실로 인해 겪게 되는 슬픔이고 두 번째는 기쁨이 사라진 뒤에 깨닫게 되는 슬픔이고 세 번째는 존재의 상실과 기쁨의 사라짐이 동시에 생겼을 때 닥치는 슬픔이에요.

 

존재의 상실로 인한 슬픔은 즉각적이에요. 사건의 발생과 동시에 슬픔이 밀려들어와요. 미리 준비하거나 지연지킬 수 없어요.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슬픔의 형태죠. 반면에 기쁨이 사라져 깨닫게 되는 슬픔은 지연되어서 나타나요. 슬픔이란 걸 인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죠. 한때 삶을 충만한 것으로 이끌어주던 대상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되지 못할 때, 그러니까 기쁨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릴 때 그건 일종의 슬픔이에요. 어렸을 때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던 인형이나 장난감이 창고에 들어가게 될 때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던 연인의 손길이 무덤덤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가 그런 슬픔이에요. 당시에는 무심히 지나버리고 한참 후에야 슬픔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들이죠.

 

Photo by Kerri Shaver on Unsplash

 

일상생활에서나 미디어를 통해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 모셔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접할 수 있어요. 엄마의 유언대로 강가에 무덤을 쓰고 여름에 비만 내리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애타게 울어대는 청개구리 우화의 교훈도 결국은 살아 계실 때 제대로 못한 후회에 관한 것이에요. 그렇지만 생전에 잘 모시는 일, 효도는 사실 슬픔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를 하건 그렇지 않건, 상실의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똑같은 크기의 즉각적 슬픔을 느끼게 될 거예요. 존재의 상실로 인한 슬픔은, 인간의 본성에 고정된 크기로 이미 존재하고 있거든요. 사람에 따라 크기가 달라질 순 있어요. 하지만 어떤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해서 슬픔의 크기가 달라지진 않아요. 의무에는 슬픔의 크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요소가 전혀 없거든요.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은 부재의 순간에 감당해야 할 아쉬움이나 슬픔을 얘기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겪게 될 심리적 부채를 볼모로 지금 이 순간의 어떤 행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오히려 현재의 기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존재로 인한 기쁨이 크다면 그 존재를 상실했을 때 느끼는 슬픔의 크기도 함께 커질 거예요. 어쩌면 후회도 더 커질지 몰라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의무적 슬픔보다 몇십 배, 몇백 배 더 커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슬픔과 후회는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살면서 많은 존재의 상실을 겪게 될 텐데, 본성으로 인해 표출되는 슬픔만 나열되는 삶보다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후회를 안겨주는 존재가 하나라도 있는 삶이 더 기쁘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Photo by Dawid Zawiła on Unsplash

 

존재 상실과 기쁨의 사라짐을 동시에 겪게 되는 세 번째 슬픔은, 슬픔의 사건인 동시에 기쁨의 크기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에요. 그리고 비가역적 사건이에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큰 슬픔은 그 존재를 전혀 다른 무엇로 바꿀 만큼 위력적이에요. 때론 정신의 일부가 상실될 만큼, 때론 육체의 일부가 불능 상태에 빠질 만큼 말이에요. 이미 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돌아갈 곳마저 없어요. 바뀌기 전의 원래 존재 역시 세계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에 변화를 돌이킬 순 없어요. 세 번째 슬픔은 아주 드문 사건이에요. 그런 슬픔을 몇십 번이고 겪어낼 만큼 강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한두 번만으로도 이미 삶은 부서지기 시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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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컴퓨터에 있는 사진들에 태그를 달아서 정리하고 있는데 거기엔 원칙이 있어요. 사람이 등장하는 사진은 장소와 이벤트를 기준으로 태그를 달고 고양이가 등장하는 사진은 이름으로 태그를 달아요. 사람 이름 그거, 태그를 달아봤자 어디 쓸 데도 없잖아요. 고양이 이름이나 중요한 거지 말이에요. 비교적 열심히 태그를 달기 때문에 저희집 고양이들 이름에 연결된 사진은 마치 봄날 산책길에 벚꽃잎이 떨어지듯이 뒤돌아서면 깜짝 놀랄 만큼 늘어가고 있죠.

 

 

그렇지만 히루의 이름이 붙은 사진은 숫자가 언제나 그대로예요. 1,848장의 사진과 44개의 영상. 기쁨의 크기가 오직 슬픔의 크기에 기대서 정해질 수 있다는 건 히루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에요. 히루와 함께 지냈던 17개월 내내 그보다 더 기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날들이었어요. 제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나중에 감당했던 슬픔의 크기로 인해, 히루에게 받았던 기쁨의 크기가 제가 안다고 여겼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히루를 만난 건 제 삶에서 가장 찬란하고 극적인 세계가 구축된 사건이었어요. 이제는 무너져버린 세계지만요.

 

히루의 얘기는 나중에 다시 들려드릴게요.

겨우 이름만 등장한 삼삼이뿐만 아니라 아직 소개도 못한 四猫가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에요. 이제 김삼삼, 강모카, 이치코, 고미노, 송오즈의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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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피소드, 마침.

 

P.S. 혹시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고 생전에 조금이라도 더 잘 해드리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식의 의무를 거창하고 요란하게 실행하는 데 정신을 빼앗기면 안 돼요. 내가 정성 들여 하는 행동이 부모님의 기쁨이자 곧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서로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해요. 필요하다면 의무를 이탈하더라도 말이에요. 물론 ‘서로 각자의 삶을 살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신다면, 굳이 에너지를 쏟아가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필요 없이 느슨한 의무로 거리를 지키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요 :)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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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