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코는 말이에요.

 

떡잎부터 남달랐던 왕발 이치코 선생

 

#왕발

 

꼬맹이 치코는 덩치에 비해 커다란 발이 인상적이었어요. 집에 데려왔을 때, 병원에서 말끔히 치료를 받고 살이 좀 올랐다고는 해도 길에서 아픈 동안 말랐던 흔적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었어요. 얼굴은 여전히 갸름했고 이등신 몸매의 아랫쪽 역시 매끈한 편이었어요. 조금은 왜소해 보일 만큼요. 그런데 유독 발이 눈에 띄었어요. 마치 코끼리 발이라도 갖다 붙인 듯 낯설고 비현실적이었어요. 어릴 때 발이 크면 나중에 크게 자란다는 데… 진짜로 크게 자랐어요. 몸무게가 8kg에도 못 미치니 거묘라고 할 순 없겠지만, 몸의 길이에 비해 둘레가 아주 넉넉한 고양이가 되었죠. 출렁거리는 뱃살이 매력적이에요.

 

[2016년 7월 16일] 모카 : 쪼그만 게 계속 따라다니네

 

[2016년 10월 8일] 모카 : 아휴 피곤하구만..

 

사실 놀랐던 건 치코의 성장 속도였어요. 집에 있던 삼삼이, 모카와 너무 비교되었으니까요. 치코가 처음 왔을 때 모카에 비하면 조그만 아이였어요. 태어난 시기가 한 달이나 차이가 났으니까요. 하지만 곧 모카를 따라잡았죠. 모카가 중성화 수술을 하기도 전에 이미 치코가 더 커져버렸어요. 삼삼이는 덩치가 작은 편이에요. 처음 집에 들였을 땐 4kg을 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조금씩 살이 빠져서 3.6~3.8kg 사이를 오가고 있어요. 털이 약간 긴 편이라 몸무게에 비해 덩치가 작아 보이진 않지만 실제로는 완전 쪼꼬미인 셈이죠. 치코는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삼이보다도 커졌어요. 태어난 지 6개월 남짓 된, 집에서 덩치가 제일 큰 녀석이 천방지축 막내짓, 아깽이짓을 하며 뛰어다니는 걸 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삼삼이와 모카가 덩치 큰 동생 때문에 고생을 좀 했을 거예요.

 

그리고 치코는 지금도 여전히 왕발이에요.

 

다리 사이에 뭔가.. 있는데

 

#땅콩

 

치코는 삼삼이, 히루, 모카에 이어 네 번째 맞은 고양이이자 첫 번째 수컷이었어요. 사람들이 아기를 키울 때 남자애와 여자애의 차이가 있다고 말하곤 하잖아요. 사회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획득하기 전이라도 타고난 행동 양식이 다르긴 하다고 말이에요. 고양이도 어느 정도는 암컷과 수컷이 다를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요란할 줄은 몰랐어요. 물론 아깽이란 존재가 호기심 대마왕이기는 해요. 모든 새로운 것에 달려들어 깨물고 붙잡아 가며 제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에 있는 존재들이죠. 하지만 암컷 아깽이였던 히루나 모카의 호기심에는 일종의 두려움이 공존했던 것 같아요. 와락 달려들어 할퀴고 깨물다가도 스스로 ‘그런데 이게 대체 뭐지?’라는 자각이 들면, 이를테면 제 발가락 같은 것을요, 혼자서 또 화들짝 놀라서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줄행랑을 치곤 했으니까요. 궁금해 죽겠는데 무섭기도 한, 그런 망설임이 히루와 모카에게는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수컷인 치코는 어떤 상황에서도 거침이 없었어요. 무서움은커녕 경계심마저 모르는 듯했어요.

 

먹는 건가?

 

그 바람에 삼삼이의 고생이 시작되었어요. 모카는 차라리 덤덤했어요. 거칠게 행동하는 치코에게 자기가 금방 적응했어요. 고양이들 세계에 서열이란 게 있다면, 치코가 자기보다 힘세고 강한 녀석이란 걸 인정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삼삼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자기 서열을 지키려고 그랬다기보단 유독 까칠한 성격 때문일 거예요. 삼삼이는 서열 같은 관계 맺기가 없어도 홀로 도도한 고양이예요. 자기 맘에 안 드는 건 참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를 방해하는 걸 용서하지 못하죠. 그러니 갈수록 덩치가 우람해져 가는 치코가 무턱대고 달려드는 걸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치코 녀석도 삼삼이를 좀 가만두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치코의 기력이 너무 왕성했어요. 삼삼이가 모카와는 잘 지내는 걸 봤을 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길 귀찮게 하지만 않았으면 치코와도 무난하게 잘 지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삼삼이의 짜증은 점점 늘어갔어요. 치코의 아깽이 시절과 캣초딩 시절이 지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둘의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삼삼이의 ‘찾아가는 짜증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했죠. 가만있는 치코에게 슬금슬금 다가가 엉덩이 냄새를 맡거나 어떨 땐 살짝 그루밍을 해주기도 하다가 문득 ‘이 녀석은 치코잖아!’라는 걸 깨달으면 여지없이 하악거리며 짜증을 부리거나 펀치를 날리고, 후다닥 자리를 피해 자기가 도망가버려요. 마치 치코가 먼저 해코지를 한 것처럼 말이에요. 보고 있으면 참 우습긴 한데… 치코와 삼삼이 사이는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관계 같아요.

 

삼삼 : 좋은 말로 할 때 비키시지..

 

치코의 행동이 과하고 거칠긴 해도 공격적인 성격은 아니에요. 오히려 약간 천진난만한 성격에 가까워요. 자기 서열을 확인하고 상대를 제압하려는 행동이라기보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행동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 난폭함(?)에도 불구하고 삼삼이, 모카와 합사를 할 때나 나중에 미노와 오즈가 들어왔을 때 별문제가 없었어요. 오묘와 함께 살다 보니 치코의 그 해맑음(혹은 무신경함)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란 생각이 들곤 해요. 그렇지만 치코 때문에 땅콩 달린 애들에 대한 경계가 생긴 것도 사실이에요. 수컷 특유의 몸짓과 행동은 중성화 수술을 한 뒤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껍질만 남았어도, 땅콩은 땅콩이더라고요.

 

웃으면서 자는 건지, 웃기면서 자는 건지

 

#몸개그

 

우람한 덩치, 천진난만함, 무신경하고 투박함. 치코는 몸으로 웃길 만반의 준비가 된 고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즐거움을 선사하죠. 치코는 참 조심성이 없어요. 뭐든 대충 해치우는 느낌이에요. 조금은 살금살금 다니고 사뿐히 움직이면 좋을 텐데 언제나 터벅터벅, 우당탕탕 요란해요. 그러다 보니 자주 뒤뚱거리거나 미끄러지곤 해요. 떨어지거나 부딪쳐 다치는 걸 걱정할 만큼은 아니지만 화들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가끔은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저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러고 보면 본인의 장점을 제대로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그냥 웃긴 이치코

 

그리고 치코는 어떤 자세를 취해도 그냥 웃길 때가 많아요. 삼삼이나 모카가 했을 땐 아주 예쁜 자세들, 이를테면 다소곳하게 식빵을 굽는다거나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잔다거나 비스듬하게 옆으로 누워 뒷다리를 X자로 꼰 채 멀뚱히 있다거나 하는 자세를 치코가 하면 웃겨요. 몸이 짧뚱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그걸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묘한 웃김이 있어요. 거북선 자세만 해도 그래요. 나즈막한 상자에 들어가 목만 쭉 빼서 테두리에 걸치고 있는 모습이 거북선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데요, 모카가 거북선 자세를 하고 있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얼굴만 쏙 내놓은 모습 하며 박스 테두리에 살짝 눌린 턱선과 멍하게 응시하는 눈빛까지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게 없어요. 그런데 똑같은 자세를 치코가 하면 마치 그림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에요. 거북선은 분명 거북선이지만 초등학생이 방학숙제로 그린 것 같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볼살이 눌려 삐죽 튀어나와 있기라도 하면… 어떻게 이렇게 웃기고 귀여울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일부러 웃기려고 한 게 확실해 보이는데..

 

치코가 몸으로 웃기는 아이가 된 (것처럼 보이는) 건 행동반경하고도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치코는 높은 곳에 잘 올라가지 않아요. 어릴 땐 책장을 타고 천장 높이까지도 올라가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적당한 높이까지만 오르고 좀 높다 싶은 곳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책상, 의자, 소파, 4단 서랍장 정도가 치코가 올라가는 공간이에요. 현관 옆에 높게 설치해 준 선반이나 책장 꼭대기는 물론이고 테이블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냉장고 위도 거의 올라가지 않아요. 치코가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서 적어도 고개를 들 필요는 없어요. 바닥에 있거나 기껏해야 제 허리쯤 닿는 위치에 늘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선이 쉽게 닿는 곳에만 있으니까 웃긴 행동이 더 자주 눈에 띄는 게 아닐까 해요. 어쩌면 이것 역시 본인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전략인 것 같기도 하고..

 

사진은 아직 3묘만 :)

 

#이치코

 

저희 집 오묘(와 히루)는 모두 성이 있어요. 그런데 각자 달라요. (오히루) 김삼삼, 강모카, 이치코, 고미노, 송오즈. 특별한 기원이 있는 건 아니에요. 이름을 먼저 짓고 나서 가장 잘 어울리는 성을 고르는 거예요. 모카(강하게 자라거라)나 미노(고등어니까) 같은 경우엔 의미를 조금 담긴 했지만 그래도 풀네임을 불렀을 때 유연하게 들리는 음성학이 제일 중요한 기준이에요. 치코는, 발음만 들으면 일본어 같기도 하고 스페인어(<치코와 리타Chico & Rita>) 같기도 하지만 아시다시피 한국어(?), 치즈에 코찔찔이에서 온 이름이에요. 그렇지만 만화 <블리치>의 주인공인 ‘쿠로사키 이치고’의 영향(그러고 보니 이치고의 머리색이 치즈네요!)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한때 <블리치>의 팬이었던 제게는 아무래도 익숙한 이름이니까요. 게다가 ‘이치고’가 일본어로 딸기란 뜻도 있으니까 여러 면에서 입에 잘 붙는 발음이라 자연스럽게 이치코가 되었어요. 그런데 하필 제가 또 이 씨, 이실장이지 뭐예요. 이 무슨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데스티니인가요!

 

눈빛으로, 심쿵!

 

치코는 저를 아주 좋아해요. 제대로 발동이 걸리면 몇 시간이고 제 손에 박치기를 하며 놀곤 해요. 다른 이들에게는 그러지 않아요. 타고난 개냥이라 사람을 안 가리고 붙임성 있게 구는 편이지만, 애절하게 누군가를 갈구하는 눈빛은 오직 저만을 향할 따름이에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딱히 치코만 편애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아마 제가 쓰는 화장품 냄새가 치코의 취향에 잘 맞았거나, 혹은 자기가 대장이라고 생각해서 집에서 덩치가 제일 큰 저와 특별한 관계로 지내려는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같은 이 씨라서? 이치코❤️이실장? 아무튼 고양이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하고 이름을 정해야 할 때 자연스럽게 치코가 떠올랐어요. 고양이 얘기만 하는 척하면서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원대한 취지로 ‘코스묘스’라는 제목을 정한 다음에 그 앞에 붙일 필명은 왠지 치코 이름을 써야 하겠더라고요. ‘이치코의 코스묘스’ , 막상 정하고 나니 그럴듯해 보여서 치코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

 

언제까지나 이치코답기를..

 

#약자

 

치코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를 잔뜩 늘어놓았지만 사실 치코는 집에서 제일 약자예요. 건강에 관해선 말이에요. 엿새나 입원을 하며 치료를 했지만 허피스가 단번에 나은 건 아니었어요. 당장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호흡이 가빠지는 바람에 급하게 일요일에 문을 연 병원을 찾아다녀야 했고, 그 뒤로도 허피스 증상이 다시 나타나 접종을 하는 내내 허피스 약을 먹어야 했어요. 몸에 만성적으로 남은 콧물 때문에 병원에 가기도 했고요. 허피스가 면역력에 관련된 병이다 보니 몸이 약해지면 재발할 수도 있다는 말에 두 살까지는 마음을 졸이며 돌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 네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여러 군데가 말썽을 부리고 있어요. 정수리에 뾰루지가 만져져서 병원에 갔더니 혹시 종양일지 모르니 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다행히 악성종양은 아니었지만 치료 과정에서 소변 검사를 했더니 방광염이 발견되어 또 몇 번이나 병원에 가야 했고, 입 냄새가 심해지는 것 같아 병원에 데려갔더니 선천적으로 구강이 취약해서 어쩌면 전체 발치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그나마 이후에 양치를 열심히 해서 발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6개월에 한 번씩 스케일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게, 불과 최근 반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면역력이 약하다는 건 함께하는 이에게 두려움을 주는 일인 것 같아요.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언제라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아픔의 준비 상태를 뜻하는 거니까요. 게다가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건 눈에 보이는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도 하고요. 그저 아무 일 없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죠. 밖으로 보이는 치코의 모습은 누구보다 활발해요. 거침없고 씩씩하면서 실수투성이에 웃긴 아이에요. 그런 치코를 보고 있으면 늘 즐겁고 행복해요. 하지만 가끔은 저도 모르게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곤 해요. 그럴 때면 깜짝 놀라게 돼요. 겉으로는 어딜 봐도 강한 아이지만 제 잠재의식 속의 치코는 한없이 약한 아이인가 봐요. 그렇다고 제 속내를 치코에게 드러내지는 않아요. 치코까지 함께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지금처럼 예쁘고 귀여운 이치코의 모습이면 충분하니까요. 그렇고 말고요.

 

_

네 번째 에피소드, 마침.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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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