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한 해였습니다. 이사를 했는데요.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뭐 그리 많은지, 8년을 한 곳에 살다 옮기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사 나온) 봉산아랫집은 태어나서 가장 오래 머문 공간이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도 그렇게 오래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여섯 살까지의 기억이 흐릿한 시절을 제외하면)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5년 정도 한 집에서 살았던 게 가장 길었던 것 같은데 그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었습니다. 8년이 긴 시간이긴 하지만 고작 그걸로 엄청난 한 해라고 할 수 있는가?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몇십 년씩 살던 집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에요. 하지만 2024년은 명백하게 이사 때문에 엄청났습니다. 고양이 여섯과 함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의 일이었습니다. 돌이켜봐도 아찔하네요.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참고)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뤘으니 올해는 더 이상 큰일 없이 무난히 지나가겠구나 싶었으나.. 12월 3일, 이 빌어먹을 XX들이! 아직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얘길 시작하면 끝도 없을 테니, 2주 밀린 레터의 마감이나 차분하게 해볼까 합니다. 앞으로 있을 집회도 (반성은커녕 온갖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저 괴뢰도당 역적들을 심판하기 위해) 열심히 나가겠다는 다짐과 함께요!

 

한 해가 또 갔습니다. 새해 결심을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라고 하기에는 딱히 결심한 것도 없고 노화된 두뇌 탓에 지난 1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복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아무튼 시간은 번개처럼 지나갔습니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의 더 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이 저 말을 읊조렸을 때의 심정에 감히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저 역시 비슷한 물음 앞에서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쇠락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몇 번의 ㅇㅇㅇ’은 계산이 금방 끝나고 숫자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보름달이라면 [(예상 생존연수-현재 나이)×12]가 될 텐데, 이 수치가 조금 초라합니다. 저도 한때는 결괏값이 500~600은 너끈한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깟 보름달 많이 보는 게 뭐 좋다고… 좋을라나… 좋을 것 같기도… 어느 정도는 부럽기도 합니다. 좋겠다! 젊은이들. 참, 앞의 수식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나이를 세는 태양력과 보름달이 돌아오는 태음력 사이에는 대략 2년 9개월마다 30일의 오차가 있기 때문에, 해당 기간의 윤달 수를 더해야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계산이 됩니다. 봤나? 젊은이들. 쭈그러들고 있지만 아직 이 정도의 또렷함은 있다고! 에헴.

 

사진: UnsplashAvery Cocozziello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2019년 2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6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뭘 먹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를 꾸준히 적고 있습니다. 하루치 일기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분에서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습니다. 감정이나 감상은 거의 없습니다. 똑같이 한 문장을 쓰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길가의 은행나무들까지 모두 나를 위로하는 것 같은 날이었다’를 적는 것과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저녁은 칼국수를 먹었다’를 적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기록일 텐데, 저는 후자처럼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기가 아니라 일지라고 해야 하려나요. 이 별것 아닌 걸 기록하는 일도 처음엔 1~2주씩 밀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완전히 습관이 되어서 일기 혹은 일지를 안 쓰면 잠을 못 자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성찰하고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고, 그런 일기가 아니다 보니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이라면 쓰나 안 쓰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쓰임새가 있긴 합니다. 누군가 과거에 관해 아리송해할 경우, 이를테면 우리 언제 만났더라? 그날 뭐 했지? 등의 질문에 명쾌한 대답(과 근거)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기 쓰는 일의 보람인지,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외장 메모리의 도움으로) 정확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에 사건적 기억의 정확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어떤 일의 실제 전개보다는 기분이나 감정 같은 심상적 기억이 인간관계의 유지에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조금씩 다르게 기억해도 똑같이 기뻤거나 행복했거나 슬펐다면 별로 문제 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사건의 앞뒤를 똑같이 기억한다고 해도 기쁨과 슬픔과 연민과 분노의 감정을 각자 다르게 느꼈다면 그 관계는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기억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서로의 관계가 문서를 매개로 할 때 그렇습니다. 회사에 보고서를 낼 때 ‘예상 인원 :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가 또렷이 들릴 만큼 밀집된 사람들’이라고 쓰면 안 되겠죠. 업무 계획을 세우며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 것 같은 매출’을 목표로 삼으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집니다. 이러한 상황도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맞긴 하나 그건 인간관계보다 사회적 관계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사회적 관계?

 

하지만 사람과 고양이의 관계에 있어서는 사건의 정확한 기억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 병원 가는 일이 잦아지고 약물과 치료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처럼 고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고양이는 자기 질병과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는, 언어로서의 말뿐만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야생의 성향 때문에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 동물이므로 건강 상태를 꼼꼼히 챙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나이와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동물병원을 갔을 때 진찰을 받는 건 고양이지만 의료적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진술하는 것은 반려인입니다. 바로 이때가 사건적 기억의 정확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 오후에 이제 10살이 된 사랑이가 병원에 왔다. 최근 식욕이 조금 줄었고 활력도 약간 줄었다고 하였다.

“사랑이 식욕과 활력이 ‘조금’ 줄어든 것이 맞나요?”

“네, 최근에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식욕도 그렇고 활력도 ‘조금’ 줄었어요.”

고백하건대, 수의사들은 보호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대부분은 동물들의 증상이나 상태에 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시지만, 경우에 따라서 사실과 다르거나, 믿고 싶은 방향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상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입력된 ‘조금’이라는 단어 뒤에 괄호를 치고, 그 안에 물음표를 그려 넣었다.

– <수의사가 되고 싶은 수의사입니다> p.237

 

제가 8년째 다니고 있는 동물병원의 ‘김야옹’ 원장님이 쓴 에세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는 중성화하지 않은 푸들 종의 강아지였는데,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 결과 자궁축농증이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병원의 수술 일정을 기다릴 만큼 여유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사랑이의 반려인이 저자의 권고대로 다른 병원에 가서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고는 하나, 그 ‘조금’이란 말에 물음표를 그려 넣고 엑스레이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진행할 만큼 사려 깊은 수의사가 아니었다면 사랑이는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보통 식욕과 활력이 ‘조금’ 줄어든 정도로는 그렇게까지 검사를 안 하기도 하니까요.

 

12월의 일지, 아직은 굉장히 평온한 편

 

고양이가 한둘이라면,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어느 정도는 기억에 의존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셋, 넷, 다섯을 거쳐 여섯에 이르면 기억으로만 아이들의 상태를 복기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지금까지는 애들도 젋고(!) 병원 갈 일이 잘 없어서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 상태를 비교적 정확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그래서 매일 쓰는 (사람) 일기와는 별개로 고양이들의 하루를 기록하는 일지를 만들었습니다.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벽에 붙여놓고 특정한 사건(헤어볼, 공복에/식후에 토하기, 화장실에서 똥 달고 나오기 등등)이 발생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적고 있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시작했으니 이것도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시각적 기록으로 바꾸고 나니 그동안 짐작으로만 알았던 사실들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삼삼이는 자주 토하는 편입니다. 이건 기록하지 않아도, 비교 대상인 고양이가 다섯이나 있으니 감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병원을 가도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진 못해서 소화 기능을 도와주는 처방식 정도만 먹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삼이는 자주 토한다, 라는 것과 삼삼이가 1일-2일-8일-13일-16일-20일-23일-25일-30일에 토했다, 라는 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전보다 훨씬 세밀하게 삼삼이를 챙길 수 있게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치코의 코스묘스> 이번 화는 바로 그 일지 이야기입니다. [월간소묘: 레터]의 연말정산 특집에 맞춰 도서관육묘의 1년을 돌아볼까 하는데요. 일지 속에 과연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지, 웃기고 놀라고 걱정되고 흐뭇했던 일들이 잔뜩일 텐데 저도 궁금하네요. 과연 2024년 한 해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일지에 가장 많이 기록된 건 애들이 구토한 기록입니다. 고양이가 자신의 몸과 털을 다듬는 행위를 그루밍이라고 하는데 보통 혀로 핥아서 몸에 붙은 먼지나 기생충 그리고 냄새를 제거한다고 합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털을 먹게 되고 변으로 배설되지 못한 털 뭉치가 위장에 남아 있다가 구토를 통해 배출됩니다. 헤어볼을 토하는 건 고양이에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너무 자주 토하거나 식욕, 활력의 변화를 동반할 경우에는 상담을 받으라고 전문가들은 권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이 한 달에 두 번이란 말도 있고 연속 3일 이상이란 말도 있고 그런데요. 헤어볼이라고 해서 꼭 털 뭉치를 토하는 건 아닙니다. 밥을 먹은 직후라면 소화되지 않은 사료 알갱이들이 그대로 함께 나올 테고, 털이 많지 않을 경우 위액 또는 물만 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도서관옆집의 일지를 분석해 보면 한 달에 3~4회 정도는 (다른 특이 증상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인 현상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구토가 원래 많았던 삼삼이를 제외하면 모카 34회, 치코 39회, 미노 38회, 오즈 16회, 시월이 13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인지 모른 채 흔적으로만 확인된 작자 미상의 구토 36회를 여섯으로 나눠 더한 후 월평균을 구해 보면 모카 3.64, 치코 4.09, 미노 4, 오즈 1.91, 시월이 1.55가 됩니다. (꼬맹이들이 확실히 덜 토하긴 하네요.)

 

토토토!

 

일지에 기록된 횟수가 구토만큼은 아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몸무게입니다. 일지를 작성하기 전에도 몸무게는 간단한 메모로 남겼는데요. 2022년 1월부터 시작합니다. 도서관육묘의 기록을 보자면 고양이는 계절에 따라 몸무게 변화를 겪는 듯합니다. 여름에는 몸무게가 줄고 겨울에는 늘어납니다. 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실내에서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야생의 유전자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2024년에 삼삼이는 3.12~3.35kg, 모카는 4.25~4.65kg, 치코는 6.3~7.0kg, 미노는 7.25~7.65kg, 오즈는 4.4~5.05kg, 시월이는 5.82~6.3kg 사이의 몸무게 변화를 보였습니다. 6월에 이사를 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던지 아이들 모두 단기간에 살이 쏙 빠졌는데요. 2~3주 만에 (삼삼이는 워낙 작아서 그만큼 빠질 수 없고 모카는 몸무게를 잴 수가 없기에..) 치코부터 시월이까지 모두 200~500g가 빠졌을 정도입니다. 자기 체중의 10%나 되는 몸무게 변화는 건강의 위험 신호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사 전후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정상적인 범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중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일지에 몸무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삼이가 삼삼한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3.5kg, 4kg 같은 몸무게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워낙 쪼꼬매서 체중이 조금만 변해도 가슴이 출렁하는데, 적어도 자기 이름처럼 3.3kg만 꾸준히 찍어주기를.

 

구토와 몸무게의 기록 말고는 가급적 일지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 외의 상황이란 똥, 오줌, 통증 같은 것들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고양이가 여섯인데 그럴 리가…. 이사를 마치고 7월부터 10월까지 넉 달 동안 거의 매일 미노가 어질러놓은 똥을 치워야 했습니다. 화장실 근처에 똥이 튀어 있다, 그 정도만 되었어도 가볍게 웃어 넘겼을 텐데요. 화장실에 가서 똥을 누기 시작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덮는 건 고사하고) 똥이 다 나오기도 전에, 그러니까 똥을 누다 말고 갑자기 무언가에 쫓기듯이 우다다다 화장실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온 집안에 똥이 뒹굴었습니다. 화장실 바닥에, 거실에, 심지어 (고양이) 화장실방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사람) 침실에서도. 가장 심했던 9월달은 30일 중 21일간 그랬습니다. 화장실 뚜껑을 덮었다가 치웠다가, 위치를 옮기고 방향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원에 상담을 하고 식이섬유가 포함된 처방식을 통해 똥의 성질을 바꿔보려 했으나 그 사료는 입에 대지도 않아 또 애를 먹였습니다. 건강상 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지만 병원에 데려가서 제대로 검진을 받아야 하나 매일 고민했습니다. 똥 때문에 이게 참 무슨 일인지.. 그러다 10월 29일을 마지막으로 갑자기! 똥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갑자기. 그 이후 아직까지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 평온한 일상이 쭉 지속되면 좋겠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거니? 미노야!

 

처절했던 기록

 

하반기가 미노의 독무대였다면 상반기는 치코 몫이었습니다. 이번엔 똥 말고 오줌..! 3월에 두 번, 4월에 세 번, 5월에 세 번, 6월에 한 번, (사람) 침대, 소파, 쿠션 가리지 않고 오줌을 누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똥과 달리 오줌은 한 번의 임팩트가 훨씬 강합니다. 천으로 된 무언가에 실례를 하면 무조건 세척해야(혹은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액체적 사건이다 보니 빨래가 하나씩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침대에다 쉬를 했다 치면 이불, 패드, 매트리스커버, 방수커버까지 전부 다 빨아야 합니다. 침대와 소파는 진작에 방수커버를 씌워 놓긴 했지만 행여 그 밑으로 오줌이 스며들면 초대형 사고가 됩니다. 매트리스는 세탁기에 안 들어가니까요.. 그래도 이사를 하고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치코는 아마 새집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미노랑 둘이 왜 반댄데?!). 이것 말고도 일지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치코 : 눈에 피” 실제로 피가 난 건 아니고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살이 짓물러 피처럼 보였던 사건입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안약을 넣고 괜찮아졌습니다. “오즈 : 똥꼬 까매” 그루밍을 제대로 안 했는지 똥꼬가 새까맣더라고요. 금세 분홍분홍해지긴 했지만요. “시월 : 토 먹음” 누가 토해놓은 밥을 시월이가 가끔 먹습니다. 현행범으로 걸리는 경우도 있고, 구토 자국의 수사를 통해 범인으로 지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서관옆집에서는 위에 나열한 사건들 외에도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섯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은 정말 시끌벅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해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하더라고요.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도 어디서 본 듯한데요.. 아무튼 1년이 점점 더 금방 가버립니다. 며칠 전 물끄러미 삼삼이를 보고 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삼이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인데, 혹시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느낄까? 집고양이와 사람의 평균 수명을 대략적으로 비교해서 고양이의 1년이 사람의 5년에 해당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게 시간의 속도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삼삼이(12세 추정)의 시간과 시월이(4세)의 시간은 각각 어떤 속도로 흘러가고 있을까요? 저(앞으로 보름달을 그렇게 많이는 못 볼 것으로 예상)랑 비교하면 어떨까요? 알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의 시간이 더디게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삼삼이와 모카와 치코와 미노와 오즈와 시월이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까요. 위에서 소개드린 고양이 일지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도서관육묘 만수무강표” 모두가 오래도록 무탈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육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무병장수하기를, 만수무강하기를.

 

해피 뉴 이어!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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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시즌 1, Again

• Episode 7.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⑲ 1, 2, 3, 4, 5, 6, 북적북적   |   ⑳ 혁명의 선봉   |   ㉑ 앙시앵 레짐    |   ㉒ 우정과 환대      

시즌 2, Again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고양이에게 배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 고양이 책 #1 총, 균, 쇠 다정한 반복 치코의 일기 선물 같은 시간 마지막 겨울길고양이 돌봄 지침(가이드라인)  •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①  •  특별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②  •  만수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