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꼴랑 이틀 남았습니다. 우리의 2025년은 어땠을까요? 다들 무사하셨나요?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참 다행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2025년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시작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달력의 날짜가 1월 1일이 되었지만 새해는 맞지 못한 채 2024년을 계속 살았으니까요. 2024년 12월이 길어도 너무 길었습니다. 2024년이라는 연도가 평생토록 선명하게 기억될 만큼 강렬했기에, 그 영향으로 인해 2025라는 숫자는 쉽게 잊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5년이 왠지 불쌍해 보이지만 보통은 특별한 몇 해를 제외하곤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게 정상입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코로나만 해도 시작이 2020년이었던 건 확실하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게 언제였는지 제가 코로나에 걸렸던 게 몇 년인지 벌써 헷갈리는걸요.
사실 2025년보다 훨씬 불쌍한 해는 따로 있습니다. 21세기의 시작을 2000년에 빼앗겨버린 2001년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아시다시피 세기century는 100년을 한 덩어리로 묶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1세기의 시작이 0년이 아니라 1년이므로 20세기는 당연히 1901년부터 2000년까지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백 단위뿐만 아니라 천 단위까지 1에서 2로 바뀌는 상징성, 조금이라도 빨리 21세기, 밀레니엄이라는 키워드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자본주의적 욕망 등이 겹치면서 2001년은 아무런 존재감 없는 연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저는 2001년을 새로운 세기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20세기가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20세기를 살았던 사람이고 싶습니다. 벌써 21세기도 그 1/4인 25년이나 지나가 버려서, 한두 해 안에 비명횡사하지 않는 한 20세기보다 21세기를 더 많이 겪게 되겠지만 심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어쨌거나 인류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편인데도 그렇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거기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혹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놉! 안 간다. 이미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슬펐고 행복했고 괴로웠다.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는 묻지 않고 만약 갈 수 있다면 ‘언제’인가를 묻는 일종의 유도신문 앞에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습니다. 절대 안 간다. 그러니 20세기에 뭔가를 두고 왔어도, 한때 간절히 원했던 것이었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지난 시간, 사라져 버린 것들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곳에 있지 않았요. 그들은 부재중이에요. 사라진 거죠.”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프롤로그 ‘부재자들의 노트’ 中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 바뀌었습니다. 과거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역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겠죠. 다만 어떤 조건으로 돌아갈 것인가에 따라 다릅니다. 과거에 가서 다른 선택을 하고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대답은 여전히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입니다. 평생을 후회해 온 선택을 바꿔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한들,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건 결국 저 자신일 테니 무언가 크게 달라진 인생이 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후회를 지우는 대가로 몇 개의 후회가 더 생길지 가늠할 수 없기에 결국 의미 없는 반복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되 어떤 선택도 바꿀 수 없고 여태 살았던 것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조건이라면, 한 번쯤 돌아가 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들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흔쾌히 시간 여행자가 되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라진 그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본 바로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추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내가 그들을 데리러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한 거죠. 사라진 건 오히려 내가 아닐까? 그들이 아니라. 무섭고 고통스러워서, 혹은 화가 나고 실망하고 상처 받아서 내가 그들에게 가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프롤로그 ‘부재자들의 노트’ 中

2013년 10월 24일의 김삼삼
돌아가고 싶은 때는 2013년 가을의 어느 날입니다. 삼삼이를 처음 만난 날이죠. 길고양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밥을 요구하는 듯했던 눈빛과 열린 현관을 지나 마치 제 안식처인 양 집을 들락거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로부터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죠. 삼색고양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몰랐던 무지렁이에서 이제는 길에서 들리는 희미한 울음소리만으로 아깽이의 월령을 추정할 수 있을 만큼 고양이 친화적인 인간이 되었습니다. 삼삼이 하나뿐이었던 식구도 여섯까지 늘었고요. 그 시절을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카와 처음 눈인사를 나눈 날, 치코를 처음 만난 날, 미노와 오즈와 시월이의 체온을 처음 느낀 날. 대체로 기쁨이 충만한 날들이었지만 완벽하게 행복한 시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마주하기 두려운 커다란 슬픔도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히루를 떠나보냈을 때의 고통과 좌절을 다시 감당해야 할 테지만 그래도 2013년 가을의 어느 날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붙잡을 것입니다. 그 슬픔까지 끌어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삶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요.
“아리아는 고양이들의 천국으로 떠났어. 나도 그곳에 가서 아리아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어. 아리아가 나를 만나면 얼마나 기뻐할지 상상해 봐. 천국은 정확히 어디에 있을까? 하늘? 좋아. 알겠어. 그러니까 어디? 행성들 근처라고? 어느 행성?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로 올라가면 고양이 천국을 보게 될까? 우리에게도 사진을 보내줄 수 있을까? 만약 사진 속에 아리아가 있다면, 아주 작고 흐릿하다고 해도 나는 알아볼 수 있을 텐데.”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아리아ARIA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中에서
고양이와 무관한 인생에서 반려묘가 있는 삶으로 변모할 확률이 1이라고 한다면, 1묘에서 2묘, 2묘에서 3묘가 될 확률은 1보다 훨씬 커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고양이가 고양이를 부른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고양이 숫자의 증식 외에 다른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단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주변에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고? 다들 어디 숨어 있다가 이제서야 나타난 거지? 내가 고양이와 식구가 되기를 기다렸나? 싶을 만큼 반려묘 가정의 네트워크가 빠르게 확장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변 지인들의 고양이와도 친밀함을 쌓게 됩니다. 그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고양이를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니까요.
“하늘색 고릴라가 사라졌어. 맞아. 나머지도 모두 없어졌어.
알아. 우린 모든 것을 두고 급히 떠났어야 했으니까. 부모님은 말했지. “필수품만.”
무슨 뜻이죠. 나는 물었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부모님은 설명했어. 그럼 내 고릴라는 필수품인 거군요.
아니. 부모님은 말했어. 다른 걸 찾으면 돼. 이해를 못 하시네요. 다른 건 그 고릴라가 아니라고요.
어떻게 이런 걸 모를 수가 있지? 항상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말야.
혹시 고릴라를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걸까?”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하늘색 고릴라IL GORILLA CELESTE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어벙이
2025년, 당신에게서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그 자리는 어디인가요?
저는 동네를 하나 잃었습니다.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봉산아랫집’에서 8년을 살았는데 그 동네가 이제는 텅 비어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을 집들을 모두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합니다.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부숴버릴 수 있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떠나온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동네를 좋아한 적은 딱히 없었지만 8년을 살았던 그 집은 정말 사랑했다는 걸요. 불편한 점도 많긴 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었으니까요. 일단 겨울에 많이 추웠습니다. 창틀이 전부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알루미늄 섀시였는데, 안방을 제외하고는 전부 홑겹 창문이라 집에는 늘 바람이 불었습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이중으로 치고 창문을 아무리 꼭꼭 닫아도 소용없었습니다. 항상 코끝으로 잔잔한 바람이 스쳤습니다. 방음이 제대로 안 되는 건 덤이었고요. 거기다 마지막 두 해는 벽을 타고 물이 계속 새는 바람에 고생을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는 하수구가 역류해 난리가 난 적도 있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았던 곳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집이었습니다. 봉산아랫집.
창밖 풍경이 좋았습니다. 섀시는 낡고 유리는 지저분하고 방충망은 허물어지기 직전이었지만 그래도 매일 마주하는 창문 너머의 풍경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언덕배기 중턱에 있는 건물의 3층인 데다 시야를 막는 큰 건물이 없어서, 거실에서는 풍경이 제법 멀리까지 보였습니다. 고층아파트가 아닌 빌라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장면이었죠. 해도 깊이 잘 들었고요. 안방 창문으로는 바로 골목 건너인 앞집의 나무들이 늘 자리를 지켰습니다. 감나무들과 호두나무가 있었죠. 나무가 보여주는 사계절 덕분에 창문을 열어도 답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평온함을 얻곤 했습니다. 살아가는 일에 창밖의 풍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감은 열리지 않았지만, 강모카
봉산아랫집을 사랑했던 제일 큰 이유는 당연히 고양이들입니다. 거기서 얼마나 많은 고양이들과 인연을 맺었는지… 동네에서 직접 구조한 아이들만 다섯입니다. 그중 셋은 식구가 되었고 둘은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습니다. 동네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구조한 아이가 또 둘입니다. 한 녀석은 식구가 되었고 다른 아이는 새 가족을 만났고요. 직접 구조한 건 아니지만 길에서 발견돼 임보 중이던 아이를 입양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봉산아랫집에 8년을 사는 동안 함께 사는 고양이가 다섯 늘었고 셋은 다른 가족에게 입양 보냈습니다. 이게 평균을 낼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1년에 한 번은 식구로 들이거나 구조를 했던 셈이네요. 그 뒤 1년 반은 아직 잠잠하지만.. 아무튼 ‘다묘’다난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거길 떠나온 건 1년 반 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2025년에 동네를 잃었다고 말씀드린 건, 올해 여름이 끝날 즈음까지는 봉산아랫집이 있는 동네를 계속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이사를 하면서 봉산아랫집은 도서관옆집이 되었고 봉산육묘 또한 자연스럽게 도서관육묘가 되었지만, 봉산길냥이들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출입금지 스티커가 늘어나고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도 길냥이들은 그 길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에는 그 동네에 살 때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 두 번씩 찾아가서 밥과 물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재개발구역의 경계에 가깝게 밥 자리를 조금씩 옮기며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 번으로 방문 횟수를 줄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동네에 빈집은 점점 늘어갔습니다. 1년쯤 지났을 땐 불 켜진 집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들 역시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밥을 주러 갈 때마다 매번 얼굴을 비추던 아이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일주일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나중엔 한 달이 넘도록 고양이 그림자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끝날 무렵의 어느 날, 이젠 그만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벙이의 단짝, 꺼벙이
사라진 고양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잘 지내고 있기를, 쓰레기봉투라도 뒤질 수 있는 옆 동네로 안전하게 옮겨 갔기를 바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얼굴들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고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이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마음속에 사라진 것들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뿐입니다. 어벙이, 꺼벙이, 아롱이, 마내, 이쁜이, 반반이, 꼬봉이, 봉산아랫집을 떠나기 전에 이미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던 코코, 퉁퉁이, 대장이, 스리몽카. 그리고 미처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던 많은 아이들의 자리를. 그들이 어디에 있더라도 홀로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방에 있어. 자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잠든 것 같지 않기도 해. 만약 자고 있다 하더라도, 옆에 누워 있는 건 괜찮지 않아? 함께 자면 슬픔이 조금씩 사라져. 발끝을 맞닿을 수도 있고.
사람을 혼자 자게 두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야.
누가 그들을 안아주지? 누가 그들의 발을 어루만져 주지?”
—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갈까>, 엄마MAMMA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시즌 1, Again
• Episode 7.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⑲ 1, 2, 3, 4, 5, 6, 북적북적 | ⑳ 혁명의 선봉 | ㉑ 앙시앵 레짐 | ㉒ 우정과 환대
시즌 2, Again
•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 고양이에게 배운다 • 보이지 않는 존재들 • 고양이 책 #1 총, 균, 쇠 • 다정한 반복 • 치코의 일기 • 선물 같은 시간 • 마지막 겨울 • 길고양이 돌봄 지침(가이드라인) •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① • 특별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② • 만수무강 • 완벽한 하루 • 복잡계 이론: 다묘가정에 관한 수학적 고찰 • 그것도 척추라고 • 노후준비 • 사라진 것들의 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