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Q 당신에게 극적인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_A1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니 그냥 여기까지 왔습니다.
_A2 인생이 온통 드라마인걸요. 삶 전체가 극적인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A1과 A2 모두 곤란한 답변입니다. 무기력할 정도로 재미없거나 지나치게 피곤한 인생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대부분 A1과 A2 사이에서 삶의 궤적을 만들어갑니다. 둘 사이라고 해도 그 중앙을 기준으로 정규분포를 이루는 건 아닙니다. A1쪽으로 상당히 치우친 그래프일 가능성이 큽니다. 극적인 순간은 드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극적劇的이라 부르지도 않았겠죠.
극적인 사건이라고 하면 긴박한 상황을 연상하게 됩니다. 사전의 뜻을 봐도 그렇습니다. “극을 보는 것처럼 큰 긴장이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 얼마 전 시즌이 끝난 여자배구가 그렇게 극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은 김연경 선수였습니다. 배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름을 모를 수 없는 배구의 황제, 김연경 선수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20년을 한국 배구의 최고 선수로, 세계 무대에 진출한 뒤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린 영웅다운 마무리였습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우승으로 장식했습니다. 거기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휩쓸며,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물러난다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쪼매 더 하셔도 되는데..ㅠㅠ)
우승의 과정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속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정규리그 때 워낙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서 금세 승부가 날 줄 알았습니다. 흥국생명이 1, 2차전을 연달아 이길 때만 해도 5차전까지 갈 줄은 몰랐습니다. 상대였던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의 반격이 매서웠습니다. 5차전마저 마지막 5세트까지 가는 초접전 끝에 승부가 났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이었던 5세트 경기를 지켜보며 얼마나 긴장되고 조마조마했는지.. 올해 봄배구는, 누가 그러더군요, 드라마도 이렇게 쓰면 욕 먹는다고, 정말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없을 만큼 극적인 순간들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만약 내가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세트에 코트 위에 있었다면 그 엄청난 압박을 견딜 수 있을까? 어림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TV로 구경만 해도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쭈뼛거리고 심장이 요동치는데 코트에 선다고? 택도 없는 소리를..
박혜미 작가님의 <사적인 계절>은 풍경 같은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섬세한 시선과 세밀한 묘사로 아름답게 그려낸 일 년 사계의 장면과 함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마치 그림처럼 독자의 시선을 머무르게 합니다. 오늘의 계절은 어땠냐고 묻는 듯한, 그리운 친구의 안부 편지나 선물 같은 책입니다. 전혀 극적일 것 같지 않은 이 다정하고 세심한 책에 (적어도 저에게는) 아주 극적인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63쪽부터 시작되는 2011년 여름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적인 계절>
어느 날 비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식하려는 듯 퍼부었”습니다. 걱정에 잠 못 이루다가 비가 잠잠해진 틈에 방문한 반지하 작업실은 이미 물이 무릎까지 차 있습니다. 수압으로 인해 열리지 않는 문을 간신히 열었을 때 멀리서 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책들이 둥둥 떠다니는 작업실 책장 꼭대기에 잔뜩 움츠려 있던 고양이는 반항 한번 없이 작가님 품에 안깁니다. 온몸을 떨며 울어대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작가님은 몇 번이고 말합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작가님의 고양이 오레오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언덕 위에 있어서 비에 잠길 일 없다는 주인의 말을 믿고 오레오를 작업실에 두고 왔던 작가님은 얼마나 걱정스러웠을까요. 그러다 찾아간 작업실 입구에 물이 차 있는 걸 봤을 때는 또 얼마나 놀랐을까요. 오레오가 작가님 품에 안기는 순간은 (고양이라면 일단 감동할 준비가 된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순간입니다.
도서관옆집의 육묘들도 제각각 극적인 순간들 있습니다. 막둥이 시월이는 입양과 파양이라는 드라마적 사건을 겪었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 시월이를 데리고 내려가 입양자의 집에 아이를 내려놓은 뒤 빈 캐리어만 들고 다시 서울로 올라올 때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시월이를 입양해줘서 고맙다는 생각, 시월이가 잘 지낼까 하는 걱정, 이제 시월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뒤섞여 혼란스러웠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안도의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이어지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었죠. 하지만 딱 100일 만에 그 마음은 후회와 분노로 가득 차게 됩니다. 입양자가 시월이를 못 키우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세상의 모든 욕을 간신히 참고 뱉어낸 한마디는 지금 당장 시월이를 데리고 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집에 시월이가 하루라도 더 있는 게 싫었습니다. 시월이를 데리고 온 입양자에게 파양에 이유가 어디 있어, 니가 나쁜 사람이야! 라는 말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시월이를 다시 보았을 때는 역시나 안도의 마음이 제일 컸습니다. 시월아, 이렇게 다시 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귀요미 시월이
치코와 미노는 길에서 구조되는 과정이 드라마였습니다. 시내 어느 골목길에서 눈두덩이와 코가 다 짓무른 채 가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벽에다 얼굴을 비비고 있던 치코를 보자마자 큰일 났다 싶어서, 옆에 있던 치코의 엄마한테는 미안했지만 바로 둘러업고 병원을 달려간 일은, 다급한 상황이긴 했어도 극적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위태롭게 살아가는 길냥이들한테는 종종 있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병원에서 5박 6일 머무르며 말끔하게 치료받는 동안 완전 개냥이가 되어버려 다시 엄마 곁으로 돌려보내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운명의 데스티니인가? ‘comoedia’적 요소가 잔뜩 강조된 운명이긴 했지만요. 치코가 도서관옆집에서 개그 캐릭터를 담당하게 된 건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만남부터 그렇게 희극적이었으니까요.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노를 구조할 때는 마치 재난영화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우주를 떠도는 돌덩이와 지구의 충돌을 다룬 두 편의 재난영화가 있습니다. 1998년에 개봉한 <아마겟돈>은 주인공의 용감한 희생으로 지구와 행성의 충돌을 막아냅니다.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재난영화는 이러한 해피엔딩스러운 결말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핵심적인 극적 요소가 바로 재난의 극복일 테니까요. 반면 2021년에 개봉한 <돈 룩 업>은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며 지구를 박살 내는 것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고양이 구조라는 장르적 관점에서는 <아마겟돈>처럼 미노를 성공적으로 구조하는 것이 마땅하나, 당시 상황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돈 룩 업>의 혼돈이었습니다.
치코, 미노 덩치 형제들
미노는 자동차 엔진룸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울음만으로도 아깽이인 건 단번에 알았지만, 고양이들에겐 흔히 있는 일이라 구조를 해야 할지는 확실치 않았습니다. 미노의 고향을 알기 전까지는요. 미노가 옆에 있던 다른 차에 몸을 실어 의정부에서 서울시 은평구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깽이가 완전히 낯선 동네에 혼자 내던져져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조건 구조해야 하는 미션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는 것. 머릿속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운석 충돌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는 상황실의 시계처럼 말이에요. 밤이 깊어지기 전에 미노를 구조해야 했기에 마음은 급한데 미노는 그 좁은 엔진룸을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좀처럼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씨름하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미노의 뒷다리를 겨우 붙잡았는데 그 감촉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길냥이 구조 경험이 많진 않지만 아무튼 최고로 극적이었던 구조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때로는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는 한가로운 순간이 극적인 장면으로 변신하는 일도 있습니다. 긴박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강렬한 감동이 있기에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습니다. 삼삼이의 극적인 순간은 CCTV에 우연히 찍힌 일상처럼 배경음악도 없는 흑백의 화면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밥을 주는 사람과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의 관계였을 뿐입니다. 조금 더 친밀하긴 했습니다. 밥을 주는 자리가 보통과 달랐거든요. 중학교 옆 주택가의 빌라 3층에 제가 살았고 거기서 반 층 위 계단참이 삼삼이의 밥자리였습니다.(다시 반 층 더 올라가면 옥상이었고요.) 사람이 사는 건물 내부인데도 삼삼이는 용케도 3.5층까지 올라와서 밥을 챙겨 먹었습니다. 여차하면 거기 눌러앉아 제 거처로 삼을 만도 했지만 밥을 다 먹고 나면 또 어딘가로 총총 사라졌고요.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전부였는데 어느 날, 밥 먹는 걸 지켜보느라 열어 놓은 현관문으로 삼삼이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사뿐사뿐 조용히. 마치 원래부터 제집이었던 것처럼. 이 평온한 장면이 얼마나 극적인 순간이었는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이놈 봐라?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대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모카, 삼삼 다정한 자매님들
시월이, 치코, 미노, 삼삼이는 모두 함께 살기 시작했을 즈음에 극적인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반면에 모카는 가족이 된 후 3년도 더 지나고 나서야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모카는 손을 댈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집에 처음 왔을 때 소파 밑에 숨어서 사흘을 꼬박 꼼짝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겁이 많거나 경계심이 많거나 둘 다이거나, 어쨌거나 참 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1년이 지나도록 그대로였습니다. 2년이 지나도록 3년이 지나도록 계속… 모카야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니. 식구가 된 지 3년인데 한 번 쓰다듬지도 못하다니, 너무 한 것 같지 않니. 그렇게 손도 못 대며 지내다 보니까 한편으로 적당히 포기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 이렇게 플라토닉(?)한 관계도 있는 거지. 하지만 곁에는 종종 왔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슬그머니 옆에 와서 자리를 잡곤 했죠. 물론 만지려고 손만 뻗으면 귀신같이 알고 후다닥 도망쳤고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모카가 옆에 오길래 습관처럼 무심히 손을 뻗었는데.. 보드라운 털뭉치가 손에 닿았습니다. 쿠션 솜이 터졌나? 아니요. 모카였습니다. 어라, 모카야 웬일이니!!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평생 멀리서 바라보며 애간장만 태울 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육체적인(?!) 사랑을 느끼다니. 지금은 뭐 쓰다듬는 정도를 넘어 궁디팡팡도 하고 배도 만지고 하면서 아주 돈독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품에 안을 수는 없지만요.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슬슬 글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인데요. 여기쯤에서 두 가지 정도 궁금하실 것 같아요. 일단 글의 제목이 대체 왜 ‘완벽한 하루’인가? 완벽도 하루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이치코의 코스묘스>를 오래 읽어 오신 분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우리의 도른자 오즈, 송오즈는?? 오즈는 별명이 여러 개입니다. 도르니, 송보들, 오슬렁.. 맨날 돌아 있고 털이 무척이나 보들보들하고 혼자 맥락 없이 아무 공간이나 산보하는 걸 좋아하는 전직 막둥이입니다. 오즈는 그냥 평범(?)하게 구조되었습니다. 밤늦은 귀갓길에 차 밑에서 울고 있는 걸 덥석 집어서 구조했습니다. 어미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허피스 상태가 좋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구조된 뒤에는 기생충과 설사 등으로 병원 방문 최다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금세 말짱해져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이미 사묘가정이었을 때라 입양을 보내려고 했지만 인연이 나타나지 않아 그냥 눌러앉아 오묘의 막내가 되었습니다. 집에서 가장 호기심 많고 활발하고 기상천외한 (왜냐? 도른자니까!) 캐릭터인 오즈는 의외로 가장 평범무난한 묘생을 살아왔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이상합니다. 돌아 있을 때의 번뜩이는 눈빛만 보면 삶 자체가 드라마일 것 같은 송오즈인데 말이에요. 오즈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딱히 극적인 순간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도르니, 송보들, 오슬렁
극적인 순간은 일종의 경계선입니다. 긴박한 상황이든 감동의 절정이든 필연적으로 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클라이맥스를 넘고 나면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갈등이 해소되면 이야기는 힘을 잃습니다. 작은 중얼거림이 남을 뿐입니다. 이미화 작가는 <엔딩까지 천천히>에서 영화 <백엔의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치코(오호, 저와 동명이군요!)가 원하던 새로운 인생, 복싱으로 되찾고 싶었던 인생은 영화처럼 극적인 사건이 난무하는 인생이 아니라 남들만큼만 괴롭고 남들만큼만 행복한, 지루하리만치 무탈하게 흘러가는 보통의 인생이겠구나.”
곧 이 영화도 끝이 나니 시시한 내 얘기는 잊어주세요.
지금부터 시작될 매일매일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평범한 날들이라도 괜찮아요.
– <백엔의 사랑> 엔딩곡, <엔딩까지 천천히> 65쪽
사람의 인생이라면, 마치 영화 같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날이 완벽한 하루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극적인 순간은 힘이 세기 때문이죠. 때론 극적으로 강렬한 몇 장면이 인생 전체와 맞먹는 의미를 지니곤 합니다. 어떨 땐 삶을 버티는 이유가 되기도 할 테고요.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조금 다릅니다. 영화가 끝난 다음이 훨씬 중요합니다. ‘지루하리만치 무탈하게 흘러가는 보통’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완벽해집니다.
완벽한 하루!
고양이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주변에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일이 전염되는 것인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끌리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전부 고양이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변에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 아픈 일들도 자주 있습니다. 절대 마주하기 싫은 소식을 종종 듣게 됩니다. 사람과 고양이가 살아가는 속도가 다르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이겠죠.
반려인에게 간절히 필요한 건 아무 일도 없는 하루입니다. 극적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니 극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어제도 그랬고 그저께도 그랬던 것처럼 한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날들. 하지만 언젠가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므로 무엇보다 소중한 날들. 그날들을 완벽한 하루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모두의 완벽한 하루가 오래 이어지기를, 누구도 아프지 않기를.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시즌 1, Again
• Episode 7.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⑲ 1, 2, 3, 4, 5, 6, 북적북적 | ⑳ 혁명의 선봉 | ㉑ 앙시앵 레짐 | ㉒ 우정과 환대
시즌 2, Again
•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 고양이에게 배운다 • 보이지 않는 존재들 • 고양이 책 #1 총, 균, 쇠 • 다정한 반복 • 치코의 일기 • 선물 같은 시간 • 마지막 겨울 • 길고양이 돌봄 지침(가이드라인) •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① • 특별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② • 만수무강 • 완벽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