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옆집에는 여섯 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현실의 카오스적 복작거림과 난리스러움에 비해 참으로 건조한 문장이네요. 숫자 여섯은 큰 수가 아닙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금방이잖아요. 하지만 고양이가 여섯이란 표현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고양이 하나, 고양이 둘, 고양이 셋… 이런 선형적인 느낌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무언가 숫자의 비밀이 숨겨진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1, 3, 2, 5, 4의 순서로 숫자를 세는 것도 아니고 1+1은 명백히 2임을 알고 있지만 왠지 1 다음에 올 숫자가 2가 아닌 것 같고 1+3은 4보다 클 것 같은 , 고양이 여섯으로 이루어진 세계에는 그러한 혼란스러운 감각이 있습니다.

 

자본Capital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돈은 가만히 있는 법을 몰랐습니다. 제 몸집을 불릴 줄 아는 마치 생물 같은 존재였죠. 역사의 기록이 희미한 시대에도 벌써 이자의 개념은 존재했고, 화폐가 발명된 이후로 이자는 돈을 증식하는 데 필요한 가장 핵심적이고 표준적인 절차가 되었습니다. 복리의 마법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원금에 붙은 이자에 다시 이자를 적용하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로 돈이 불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10만 원을 연 10%의 이자로 20년간 굴렸을 때, 단리일 경우는 1년에 1만 원씩 생기는 20만 원의 이자를 더해 총 30만 원이 됩니다. 하지만 복리라면 20년 후에 총 672,750원이 되는데 단리와의 차이를 고려하면 372,750원은 순전히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생긴 돈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원금 이자의 1.8배가 넘으니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리로 돈을 투자하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워런 버핏이라는 사람이 복리 효과를 장기적으로 활용해 큰 부를 축적했다고 알려져 있죠. 워런 버핏, 저도 압니다. 유명한 사람이니 이름은 들어봤죠. 근데 당장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책 살 돈도 쪼들리는데 복리는 무슨 복리.. 제가 그를 보며 놀라는 지점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개인이 그렇게 많은 부를 소유해도 되는가.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그것이 과연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유익한 일인가? 갑자기 경제정의를 외치게 되어 뻘쭘합니다만 아무튼 복리라는 개념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고양이도 복리의 마법이?

 

종이를 여덟 번 이상 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 번 접을 때마다 종이가 겹치면서 두께가 두 배씩 되니까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금세 물리적으로 접을 수 없는 높이에 도달하게 되며 그 한계가 일곱 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덟 번 이상 접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접히면서 두꺼워지는 종이의 높이를 상쇄할(접을 수 있을) 만큼의 넓이를 확보해주면 됩니다.(물론 그 두께를 접을 힘도 있어야겠지요!) 기네스북에 등재된 종이접기 기록은 열두 번입니다. 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보다 다섯 번을 더 접었네요! 그렇다면 나는 열세 번을 시도해볼까? 라고 생각하셨다면, 어.. 그러지 마세요.

 

2002년에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종이를 접는 데 필요한 두께와 폭의 상관관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방정식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열두 번 접기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때 사용된 종이는 화장지처럼 아주 얇고 긴 종이였으며 그 길이는 무려 1,219미터(4,000피트)였다고 합니다. 이론상으로 42회 정도 접으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먼 높이가 된다고 합니다. 종이를 꼴랑 마흔두 번을 접었을 뿐인데 갑자기 달이 튀어나올 줄이야!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바로 2^n(2의 거듭제곱)이라는 수식입니다. n의 숫자만큼 2를 계속 곱해주는 단순한 방식이지만 n이 조금만 증가해도 결괏값이 통제할 수 없이 커집니다. 종이를 접어서 달까지 닿을 수 있는 이유도 2^42가 4,398,046,511,104(4조 3천9백8십억..) 이렇게나 무식하게 큰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거듭제곱 앞에서는 복리의 마법도 그저 귀여울(?) 따름이네요.

 

고양이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합니다. 임신기간과 발정주기 모두 짧은 데다 평균적으로 4~6마리가 태어나기 때문에 적절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2가 아니라 4나 6의 거듭제곱이 되기 때문에 이론적 계산으로만 본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죠. 하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듭제곱의 무지막지함에도 대항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마법이 있으니까요. 제아무리 큰 숫자라고 해도 0을 곱하면 0이 되는 법, 우리에겐 땅콩 제거술, 아니 중성화수술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보호소에서 입양하든 길고양이를 구조하든 간에 기울기 1의 일차함수로 고양이의 수가 증가합니다. 하나 다음엔 둘, 1 더하기 1은 2, 의심할 여지 없는 산수의 규칙이 적용됩니다. 적어도 둘까지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셋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집니다. 하나, 둘, 셋에 더해 뭔가 더 있는 것 같고 2+1이 3보다 큰 것처럼 느껴집니다. 넷, 다섯, 여섯일 때는 그 차이가 점점 더 커져가고요. 보통 고양이가 셋 이상일 때 다묘가정이라고 부르는 게 괜한 표현이 아닙니다. ‘다묘’라는 말에는 고양이가 많다는 뜻 외에도 산수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계의 의미가 더해져 있습니다.

다묘의 복잡계

 

다묘가정이 복잡계가 되는 이유는 고양이끼리 맺는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양이가 하나일 때는 관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부터 관계가 생성되는데 그 수는 1입니다. A 고양이와 B 고양이 사이의 관계만 있죠. 고양이 A, B, C 셋이 있다면 두 고양이끼리 각각 관계 맺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관계의 수가 3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란 그런 존재들이 아닙니다. 셋 전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관계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둘이 한편이 되어 나머지 하나와 경쟁하거나 적대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때 한 편이 되는 둘 사이의 관계는 그 둘만 있을 때 맺는 관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결과적으로 고양이가 셋일 때 가능한 관계의 수는 A-B, B-C, C-A, A-B-C, A&B-C, A-B&C, A&C-B 이렇게 일곱 개가 됩니다. 둘일 때 비해 세 배 이상 복잡해집니다. 만약 고양이가 여섯이라면? 계산하기조차 부담스럽네요. 이쯤에서 질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고양이가 사람하고도 관계를 맺을 텐데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 의아해하실 만도 하죠. 하지만 위의 도식이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수가 아무리 많아져도 고양이한테는 0을 곱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무의미한 존재라서 관계라고 부를 만큼의 긴장감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집사나 캔따개 등으로 낮춰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도서관옆집 육묘의 실제 사례를 한번 살펴보실까요.

 

─ 1:5

여섯 고양이를 1:5로 나눈다고 하면 1의 자리에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5와 대치하면서 1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면 관계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도서관옆집에서 1:5의 긴장감을 만들 수 있는 고양이는 삼삼이와 치코뿐입니다. 자존감으로 따지자면 삼삼이가 탑 오브 탑입니다. 다섯 동생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고양이의 수가 몇이라도 상관없이 마치 자기 혼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반려하는 인간의 존재는 인정합니다. 삼삼이에게 도서관옆집은 (❪자신+인간❫ … 떨거지 동생들)의 공간입니다. 현실의 실제적 경계는 바깥 괄호지만 삼삼이에게는 오직 안쪽의 두꺼운 괄호만이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치코는 자기가 도서관옆집의 대장인 줄 아는 녀석입니다. 삼삼이가 존재론적인 고독을 통해 1의 자리를 유지한다면 치코는 야생에서 서열을 따지듯 자신을 1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마음먹고 싸우면 치코가 미노를 이기지는 못하니까요. 미노가 덩치도 더 크고 힘도 더 셉니다. 다만 서열 경쟁에 관심이 없을 뿐이죠. 아무튼 치코의 (이 집의 대장은 나라는) 자기주장은 특정 장소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공간이 대장의 자리라고 생각하면 질릴 때까지 거기에만 머무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주방의 식탁 위입니다. 식탁이라고 했지만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빈 테이블 하나를 매일 같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잠잘 때만 자기가 좋아하는 박스나 의자로 옮겨갈 뿐 밥 먹을 때나 놀아달라고 할 때나 혼자 시간을 보낼 때나 언제나 식탁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오묘가 딱히 대장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한 놈입니다.

 

궁금하지만 절대 식탁(대장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음

 

— 2:2:2

여섯이 제각각인 것 같아도 희한하게 둘씩 영혼의 단짝이 되어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삼삼이와 모카는 범접할 수 없는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커플입니다. 둘 사이의 특별한 무엇 때문이라기보다 삼삼이가 접근을 허용하는 존재가 오직 모카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카 이외의 동생들이 자기 옆에 오면 얼마나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는지 모릅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제가 다 민망할 정도로요. 그리고 치코랑 오즈가 종종 절친남매의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오즈가 아깽이나 캣초딩이었을 때는 미노를 그렇게 쫓아다녔는데 어느 때부턴가 치코랑 잘 지내더라고요. 치코가 식탁 위에서 대장 놀이를 할 때 다가가주는 아이가 오즈뿐이기도 하고…. 미노랑 시월이도 같이 잘 놉니다. 베프 느낌은 아닌데 아무튼 둘이 뭔가 맞는 느낌이 있습니다. 둘의 관계가 유지되는 데는 시월이의 그 투박하고 저돌적인 응석을 받아줄 만한 덩치가 미노(팔천그램!) 말고는 없다는 현실적인 원인도 있는 것 같습니다.

 

2:2:2

 

— (1:1):4

모카의 접근만을 허용하는 삼삼이 말고도 괄호 안의 1:1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가 있습니다. (모카:시월) 두 자매님이 그렇습니다. 모카는 시월이를 많이 싫어합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요. 비극은 시월이가 모카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모카 언니랑 친해지려고 얼마나 눈치를 보는지 모릅니다. 옆에 나란히 누워보려고 슬금슬금 다가가서 엉덩이를 걸쳐보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모카의 냉정한 냥펀치, 팍팍. 간혹 모카 기분이 좋으면 성공하기도 하지만 뚜까맞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 시월이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사실 많음. 골격이 좋고 몸무게도 든든함. 가끔 여자아이란 게 안 믿길 때가 있음.)

 

가끔은 성공🩷

 

— 3:3

시월이 얘기가 나왔으니 성별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육묘의 암수 비율을 4:2입니다. 신체적 특징으로는 그렇습니다. 땅콩이 있었다가 없어진 애들 둘에 원래 없었던 애들 넷. 그런데 행동으로 나타나는 성향을 보면 3:3처럼 느껴집니다. 시월이는 아무래도 언니들보다 오빠들의 행동을 더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시월이에게선 삼삼이의 새침함, 모카의 우아함, 오즈의 날렵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미노의 단단함과 치코의 뭉툭함입니다. 그래서 다른 자매님들이 시월이를 좀 부담스러워하는 편입니다. 앞서 모카를 언급했지만 오즈도 시월이가 사냥놀이를 하자고 달려들기 시작하면 화들짝 놀라며 기겁합니다. 재밌는 건 시월이가 삼삼이한테는 그렇게 무턱대고 달려들거나 친하게 지내려고 들이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행동적 특성 말고는 육묘가 3:3으로 나뉘는 관계가 딱히 없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무릎에 올라오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4:2, 밥 먹자고 부르면 오는 아이가 있고 앉은 자리까지 배달해줘야 먹는 아이가 있는데 그 비율도 4:2, 습식사료와 츄르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비율은 5:1, 배 만지는 걸 싫어하는 녀석은 0. 뭐라도 3:3이 하나는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이것도 참 희한한 일이긴 하네요.

 

앗, 3색묘가 3이다!

 

이것 말고도 도서관옆집의 육묘 사이에는 수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관계는 한 번 고정된 채로 계속 유지되는가 하면 어떤 관계는 시시각각 변하기도 합니다. 그 다양한 관계를 관찰하고 느끼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관계가 변화무쌍하고 다양해질수록 고양이의 삶에 역동적 순간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즉 묘생의 의미가 풍성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과 고양이가 아무리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해도, 사람과 개 사이에 맺어지는 유대에는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합니다. 고양이니까요. 고양이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흔히들 고양이는 독립적인 존재라서 혼자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위적인 관계가 강제되지 않는 길고양이도 둘이 꼭 붙어 다니며 우애 혹은 우정을 자랑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유로운 환경(그만큼 위험하기는 하지만)에서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길고양이의 독립성과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과 생활 반경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반려묘의 독립성을 똑같이 볼 수 있을까? 육묘의 옥신각신, 티격태격, 아웅다웅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고양이라도 적절한 관계 맺음에서 더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고양이가 여섯이라고 하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양이끼리 잘 지내느냐고. 애들 챙기기 힘들지는 않냐고. 이 자리를 빌려 전혀 걱정하실 것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서관육묘는 너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챙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자기들끼리 아주 신나게 살고 있습니다. 가끔 질투가 날 정도입니다. 내가 고양이였으면 좋을 텐데… 나도 저 사이에 끼고 싶은데… (모카 : 저리 가 팍팍!!)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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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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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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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Again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고양이에게 배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 고양이 책 #1 총, 균, 쇠 다정한 반복 치코의 일기 선물 같은 시간 마지막 겨울길고양이 돌봄 지침(가이드라인)  •  특별 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①  •  특별임무: 고양이 여섯을 데리고 이사하기 ②  •  만수무강  •  완벽한 하루  •  복잡계 이론: 다묘가정에 관한 수학적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