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에게
마지막으로 편지지를 산 날이 전생처럼 까마득할 무렵 편지 한 통이 도착했지요. 얇은 듯 도톰한, 속 것의 두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봉투의 삼각 모양 문을 열자 반으로 몸을 접은 마음이 어서 펼쳐보라며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나로만 파고들던 마음을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로 띄우는 일, 도착한 마음을 펼쳐내는 일, 모두 손끝에서 시작되네요. 이것을 작은 기적이라 할밖에요.
7월에, 소묘

 

 

 

 

“향안에게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핑크빛 포도 한 송이가 남아 있어요.

참, 포도를 보면 포도를 먹으면,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1963년 환기”(정현주,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B에게

1년 전 편지에 포도 맛 커피를 실어보냈지. 기억할까요? 같은 맛을 전할까 하다 1년 사이 우리에겐 또 다른 맛과 향이 켜켜이 쌓였으니까. 나는 귤을 보면 귤을 먹으면, 이제 서로의 제주와 모험이 생각나요. 여름이면 하귤청을 커피에 넣어 마시곤 해요. 이 커피는 그냥 마셔도 하귤청 맛이 나지. 나란히 ‘페루 넬리다 주리타’도 함께할까. 여성들로 이루어진 48개 유기농 농장을 이끄는 넬리다가 만든 커피라고요. 지칠지 모를 여름에 힘 보태주겠죠.

 

콜롬비아 핀카 캘리포니아

페루 넬리다 주리타

 

 

“향안에게

…이 여름은 어떻게 무난히 지내야겠는데 내 혼자는 생각이 안 나.

그럼 또. 수화”

 

C에게

안녕? 작은고양이 이모야. 네가 다녀가고 세 밤이 지났단다. 너는 해가 뜨겁게 내리쬐던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모는 그사이 고양이와 별과 하트가 그려진 너의 편지를 보고 또 보았어. 그러다 이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가 생각났지. 김환기라는 화가가 있단다. 그분이 자신의 아내이자 소울메이트인 김향안에게 쓴 편지와 그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야.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편지하는 마음’을 점점이 담아낸 그림이고.

편지하는 마음이란 무얼까,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고민할 때 네 편지와 이 책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구나 알았어. 김환기, 김향안 두 분에게 사랑하는 마음이란 곧 ‘지성’이었대.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 그렇다면 편지를 쓴다는 건 너를 알고 싶은 마음을 손으로 실천하는 일일 거야. 수화(김환기)는 향안에게 50통이 훌쩍 넘는 편지를 썼다잖아. 이모는 아직 실천이 한참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묻게 되지. 어제는 어떤 작고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는지, 오늘은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좋아하는 친구와 새로 사귄 친구의 이름은 무언지, 내일은 뭘 할 건지, 보낸 것은 마음에 드는지. 그런데 너의 마음이 훨씬 더 크구나. 이모가 궁금해서 하루 꼬박 걸리는 모험을 떠나 왔다고. 사랑하는 마음을 탐구하려 향안과 수화가 거주했던 파리로 떠난 정현주 작가님은 책에서 이렇게 썼네.

“용기를 내어 떠나기를 잘했다. 아름다운 길 위에 아름다운 우연들이 하나씩 보태져 더욱 아름다운 곳에 이르고 있다.”

편지처럼 도착한 너를 안으며 “인생이 울컥울컥 아름다워지는 곳”이 바로 여기구나, 벅찼어. 못 본 사이 훌쩍 자란 네가 또박또박 편지를 쓰던 모습 오래 기억할 거야. 그리고 네 편지가 곳곳에서 ‘사랑과 행복의 작은 씨앗’으로 심기는 아름다운 광경을 지금 목격하고 있단다. 이모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이만 하면 됐다 멈추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려 해.

“…자주 질문해 볼 일이에요. ‘지금 잘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사랑을 잘 키워가는 사람인가.’ 그리고 또 하나를 보태야겠습니다. ‘사랑하며 우리는 성장하고 있는가.’ 오직 살아 있는 것들만 성장을 합니다. 성장은 그 사랑이 살아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됩니다.”

네가 사랑하며 자라는 만큼 이모도 이 씨앗을 잘 키워볼게. 사랑해. 그리고 진짜진짜 사랑해. 그럼 또 편지할게. 고양이 이모가.

 

“사랑해요. 그리고 진짜진짜 사랑해요.”- C의 편지

 

사진 @a_little_more__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서점 산책과 서점에서 산 책을 소개하는 코너지만, 이번에는 이 코너를 빌려 ‘편지하는 마음展’을 소개해요.(다음 달 편지에 이달에 다닌 통의동 보안책방, 그림책서점 썸북스 이야기 실어볼게요.) 오후의 소묘 디자인을 총괄해주시는 소요 디자인에서 ‘북스터프’라는 이름으로 책과 관련된 이벤트를 벌이는 쇼룸을 오픈했어요. 첫 전시로 월간소묘 5월의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 실린 서수연 작가님의 일러스트 원화와 그간의 ‘월간소묘’ 레터 열 통을 선보입니다. 7월 11일 토요일까지 문 열어둘게요. 반갑게 만나요.

 

편지하는 마음展

서수연 X 월간소묘

 

6.30-7.11 TUE-SAT pm1-7

BookStuff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8길 49-4 1층)

 

[자세히 보기]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거나 길거나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1주년 기념 굿즈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책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기린 네 컷 만화. 오후의 소묘 그림책들을 옮긴 정원정 번역가가 그의 정원생활을 귀엽고 유쾌한 그림과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기다리던 [여름] 편이 시작되었어요. 잡초와 벌레와 사투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지렁이 덕분에(?) 무성하고 아름다워질 여름의 정원 풍경 궁금해져요. ‘떼알구조를 아시나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두 편의 네 컷 만화가 무척 사랑스럽고요. 아주 조그맣고 징그러운 존재가 내 안에서 커다랗고 싱그러운 존재가 되는 과정. 재밌게 보셨다면 후기도 ‘아주 조금’ 남겨주세요(소곤소곤).

 

 

 

 

[일상백서]

15. 잡초 뽑기

16. 헐벗은 자의 최후

 

‘마음/감정’에 관한 에세이 시리즈. 문이영 작가의 글로 미리 만나보세요.

 

[화이트 노이즈]

 

이영에게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요. 보내준 글을 읽으며 귓속의 먹먹함에 눈을 자주 감았어요. 그러고 이영 씨와 함께한 지난여름들을 떠올렸어요.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밀려오던 문장들. 다름 아닌 여름이라 그 속에 깊이 잠겨보기도 했지요.(그 기분은 이영이 쓴 “물속 깊이 잠긴 느낌”과는 다를 테죠.) 꺼지는 법 없을 것만 같은 라디오에서 제가 수신한 주파수에는 회한과 체념 뒤에 희망과 기대가 화이트 노이즈처럼 깔려 있었던 것 같아요. 고요하지만 미세하게 진동하던 이영 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날이에요.

“삶의 많은 것들이 발각”될 여름 앞에서, 지우

 

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⑯ 소리치는 일]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때 “몸짓이나 표정 같은 시각 정보가 55%, 목소리나 억양 같은 청각 정보가 38%, 말의 내용은 7%”를 차지한다고 하죠. 고양이는 어떨까요? 고양이들끼리는 몸짓이나 냄새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해요. 소리를 내는 경우는 아직 고양이의 언어를 모두 습득하기 이전인 아깽이거나 다른 종에게 의사를 표현해야 때라고요. 그래서 어떤 울음소리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는 없”어요. 이치코도 오즈를 그렇게 만났다고 하네요.

 

6월의 편지에서 전했던 고미노 이야기는 에피소드 5의 세 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의 글을 따라가 주세요.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⑭ 회색의 미궁

⑮ 약자의 마음 (1)

 

오후의 소묘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쓰기살롱’ 멤버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그녀의 꿈]

 

지난 쓰기살롱 시간, 멤버인 지혜 씨가 책상 위로 천에 곱게 싸인 물건 하나를 꺼내 놓았어요. 편지봉투처럼 문이 달린 천을 열자 그 안에 코바늘로 뜬 푸른색 코스터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 ‘미자’ 씨의 작품이라고요. “장래희망 같은 건 가져본 적 없던 소녀였는데 그런 엄마에게 꿈이 생겼다”라는 문장에서 미소가 묻어납니다.

2년 전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함께 읽고 이번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읽었어요. 두 책 모두 작가들의 어머니 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이 글처럼 “내가 모르는 그녀의 역사에, 그녀의 행복과 불행에” 다가갈 준비가 되었을 때 저도 어머니를 인터뷰해보고 싶네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저는 “받아들일 마음의 자리가 내 안에 생겼다”라고 말하는 지혜 씨가 용감해 보여요. 마침 쓰기살롱 다음 시간 테마는 인터뷰하는 마음이고요. 또 좋은 이야기 전할게요.

 

 

👏 편지하는 마음展 후기 이벤트 중입니다. 10분 추첨하여 오후의 소묘 1주년 노트 세트를 보내드려요. 그중 5분께는 어크로스에서 제작한 이로운 할머니 굿즈 틴케이스 함께 넣어드립니다.

 

[전시 후기 함께 보기]

 

👏 비올레타 로피즈의 네 번째 그림책 <노래하는 꼬리> 출간 작업이 한창입니다. 책 출간과 함께 로피즈 그림책 역자 북토크가 8월 4일 땡스북스에서 있을 예정이에요. 7월 중순 공지 예정이니,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소식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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