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한 비올레타 로피즈의 그림책 <노래하는 꼬리>를 선보이며 빨강에 대해 생각한 날들이에요. 로피즈가 사랑하는 팬톤 컬러 ‘warm red’가 쨍하게 인쇄된 그림을 보면서 왜 빨강일까, 묻고 답하고 또 물어요.

빨간색은 가시광선 중 파장이 가장 긴 빛의 색이죠. 파장波長. 물결의 길이. 그러니까 빨강은 멀리 가는 파도, 천천히 치는 파도. ‘노래하는 꼬리’마냥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는 파도. 또한 모험, 저항, 정열, 열정, 금지, 경고, 신성, 고귀, 장미, 퇴폐, 피, 헌신, 혁명, 삶, 죽음, 입술, 볼, 불, 불온, 용암, 용기, 개방, 자유, 심장, 사랑, 여름, 성장, 사춘기, 딸기, 영광, 광기, 관능, 이완, 공휴일, 태양, 토마토, 빨간 모자, 빨강머리 앤, 코카콜라… 어떤 빨강이 마음에 닿았을까요?

 

 

입안에서 빨강이 퍼집니다. 빨간 사과, 잘 익은 자두, 라즈베리잼. 2월에 소개한 나무사이로의 ‘봄의 제전’과도 비슷하지만 그보다 여름에 가까운 명도 높은 빨강이에요.

2012년 8월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소개해온 레드플랜트 커피로스터스는 빨강이 지닌 여러 이미지 중에서 ‘열정’에 주목했어요. 불타는 공장의 로고가 인상적이죠. ‘즐거운 일을 즐겁게 하자’라는 모토로 커피를 만드는 곳. 그래서 저는 미팅 장소로 자주 찾는답니다. 좀처럼 열정 없는 마음에 불씨가 되어주기도 하거든요. 이 빨간 맛의 커피를 놓고 조금 붉게 상기된 얼굴로 빨간 도장을 찍곤 해요.(상반기를 책 한 권 내지 않고 보냈지만 계약서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니 앞으로는 좀 더 촘촘히 만나요, 부디.) 이 커피가 긴 장마로 축축 쳐지는 몸-마음에 빨강 더해주기를.

 

레드오리진

 

*이달의 커피 코너는 다음 달부터 ‘이달의 썸띵’으로 바뀝니다. 일상의 작고 짙은 온기가 되어줄 무언가를 소개할게요.

 

 

나는 당신이 빨강을 어떻게 보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고 당신도 내가 빨강을 어떻게 보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빨강이 자신에 대해서 자서전(혹은 시나 소설)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편지의 서두에서 빨강에 관해 나열한 어떤 명사도 오해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기분이 듭니다. <빨강의 자서전>의 주인공인 빨강의 게리온을 헤라클레스는 노랑이라고 여긴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실패하면서도 다가가려 애쓰는 마음을 빨강이라 해도 될까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존재에 대한 인식은 아마도 붉은빛 형용사일 거예요.

 

‘형용사란 무엇인가? 명사는 세상을 이름 짓는다. 동사는 이름을 움직이게 한다. 형용사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다. 형용사(adjective)는 그 자체가 ‘위에 놓인’, ‘덧붙여진’, ‘부가된’, ‘수입된’, ‘이질적인’이라는 형용적 의미이다. 형용사는 그저 부가물에 지나지 않는 듯하지만 다시 잘 보라. 이 수입된 작은 메커니즘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특정성 속에서 제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형용사는 존재의 걸쇠다.’

 

어떤 형용은 관용形容이 되어 존재의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그겠지만, 어떤 형용은 ‘그 걸쇠들을 벗기’고 ‘존재를 풀어’헤칩니다. 후자라면 고대 그리스의 시인 스테시코로스가 그랬지요. 게리온은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의 12개 과업 중 열 번째로 등장해 죽임을 당하는 괴물이에요. 스테시코로스는 헤라클레스가 아닌 게리온, 그러니까 빨강 섬에서 빨강 소떼를 돌보는 이상한 날개가 달린 빨강 괴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경험하는 장면들을 노래했어요. 앤 카슨은 바로 이 스테시코로스의 게리온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캐나다의 한 소년으로 데려옵니다. 날개가 덧붙여진 채로 말이죠.

 

‘그의 날개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날개들은 그의 어깨에서 아무 생각 없는 작고 빨간 동물들처럼 서로 상처를 주었다.’

 

게리온에게 덧붙여진 존재, 그 날개가 형용하는 것은 ‘괴물성’일 거예요. 민승남 번역가에 따르면 앤 카슨은 한 인터뷰에서 ‘게리온의 괴물성에 매료되어 그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우리 모두 거의 항상 자신이 괴물이라고 느끼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 이야기에 매료된 것은,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또 스스로 부정하던 괴물성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듣게 해주는 순간.

 

“네가 그 날개를 사용하는 걸 보고 싶어.”

 

그 빨강 날개의 비밀에 붙여준 형용사들.

 

‘나쁜, 착하다, 작고 빛나는, 우월한, 놀라웠다, 자유롭고 빛나는, 뜨거운, 초조한, 심란한, 어두운, 처량한, 가녀린, 아팠다, 모멸스러워, 격렬하고, 아름답다, 경이로운.’

 

나쁜과 착하다의 형용모순에서 아름답다와 경이로운으로 나아가는 눈부신 로맨스(영웅담)에서 빨강을 다시 읽어요. 자, 이제 게리온에서 나에게로. 여러분은 무슨 색인가요? 당신의 아름답고 경이로운 괴물성은 어떤 형용사를 품고 있나요?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편지 / 이지나]

 

이달엔 서수연 작가와 월간소묘가 함께한 ‘편지하는 마음展’을 찾아주신 독자분의 소중한 투고글을 소개합니다. 전시를 보러 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들췄고, 거기서 ‘편지’에 관한 문장을 발견하셨다고요. 이런 수상한 우연을 무척 사랑해요. 소개해주신 문장도 좋아서 월간소묘 독자분들과 나누어봅니다.

 

* ‘소소한 산-책’ 코너에서 독자 투고를 받습니다. 제 걸음이 미처 닿지 못한 곳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어요.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요. 자유롭게 여러분의 산-책 이야기 들려주세요. 해당 메일(letter@sewmew.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된 분께는 오후의 소묘에서 1주년 기념 굿즈로 제작한 노트 세트와 책을 보내드립니다. 소중한 원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기린 네 컷 만화. 오후의 소묘 그림책들을 옮긴 정원정 번역가가 그의 정원생활을 귀엽고 유쾌한 그림과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더위, 벌레와 사투하는 여름의 정원 이야기. 그럼에도 (이름이 다소 갸우뚱하지만) 아름다운 꽃들 만발하고요. 등장한 식물들 찾아보고 저는 홍자색의 노루오줌꽃에 마음을 뺏겼어요. 또 이상한 이름을 가진 식물들이 궁금해지네요.(봄 편엔 ‘노루귀꽃’이 있었죠?) 묵은 겨울털 그러모아 어떤 일 벌이실지도 너무너무 기대되고, 벌써 농한기 이야기가 기다려지잖아요! <일상백서> 재밌다고 “소문이 얼른 퍼졌으면-”.

 

 

 

 

[일상백서]

17. 왜 더울까

19. 물 건너온 벌레

‘마음/감정’에 관한 에세이 시리즈. 문이영 작가의 글로 미리 만나보세요.

 

[노래하는 마음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아주 작게라도 떨리게 되어 있다. 스스로 떨리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말, 모든 노래는 한 존재를 울리고서야 나온다.” 글쓴이를 얼마만큼 울리고서 나온 글일까. 단어와 문장이 일으키는 진동에 감응되어 더 크게 떨리고 마는 것, 읽을 때마다 애틋하고 동그랗게 붉어지는 것, 저만일까요? ‘노래하는 마음’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동안 바다 앞에서 모음을 길게 내보내는 몸이 더없이 그리워지네요. 바다를 걷고 노래와 이름을 부르고 긴 숨을 고르면서 그 파동에 자주 떨리는 8월이 되었으면 해요.

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⑱ 엔드게임 and…]

 

“고양이와 어울려 사는 일 역시, 영화만큼 극적일 순 없다 하더라도,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번 편은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의 최종장입니다. 그러니까 시즌 1이 무엇이었냐면 ‘이치코의 코스묘스’의 주축인 봉산아랫집 五묘(삼삼, 모카, 치코, 미노, 오즈)와 히루의 소개, 네 지금까지 소개..였다고요. 이 글에서 MCU 세계관에 빗대어 오묘의 캐릭터를 묘사한 부분도 눈여겨봐주세요. 막내 오즈의 캐릭터가 압권이네요. 다음 달 편지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니, 시즌 2도 기대해주시어요!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⑰ 총체적 난국

오후의 소묘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쓰기살롱’ 멤버들의 글을 소개합니다.

 

[파도 10퍼센트 / 이민정]

[결국 나도 말하고 싶어졌다 / 지혜]

 

5월부터 7월까지 세 달에 걸쳐 진행된 ‘여성 서사 읽고 쓰기’ 시즌이 막을 내렸습니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아니 에르노 <한 여자>, 안미선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를 차례로 읽고 썼어요. 자신을 조금 먼 발치에서 조망하기, 타인을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기,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 이 과정을 통해 고유하고도 보편적인 나라는 존재의 서사를 편집할 초석을 품기를 바랐어요. 이번 편지에서는 <한 여자>와 박세미 시인의 <내가 나일 확률>을 함께 읽으며 나의 함량에 관해 쓴 민정 님의 에세이와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를 읽고 쓴 지혜 님의 서평을 싣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같이 읽고 써요.

 

👏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책 시리즈 마지막 권 <노래하는 꼬리> 출간

 

👏 <노래하는 꼬리> 출간기념 첫 이벤트 예고! ‘노래하는 꼬리’의 빨강은 어떤 형용사를 품고 있을까요? 인스타그램 계정 소식 잘 살펴주세요.

 

👏 편지하는 마음展 전시 후기 이벤트 당첨자 발표

 

👏 7월의 편지 후기, 고맙습니다. 리뷰 남겨주신 분들 중 매달 한 분을 선정해 오후의 소묘 노트 세트 보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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