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란 물과 닮은 것 같아요. 물은 자신을 넉넉히 품어주는 곳에서는 마치 멈춘 것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도 울퉁불퉁하거나 좁은 길을 만나면 갑자기 요동쳐 아껴두었던 에너지를 한껏 발산하곤 해요. 차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은 물이 고요히 흐르는 모습과 닮은 것 같아요. 최대한 힘을 아끼며 멈춘 듯한 시간을 조용히 밀어내며 흘러가죠. 반면에 다양한 환경에 접촉하며 변화가 잦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깊은 곳에 숨겨둔 에너지까지 끌어와야 해요. 마치 격랑의 먼 배후에 태풍의 힘이 있는 것처럼요. 사람마다 어떤 일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느냐는 다를 거예요. 무엇을 더 선호하는가도 차이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물이 마냥 잔잔하게 혹은 늘 요동치며 흐를 수 없듯이 우리의 일상도 대개는 두 상태를 오가며 유지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나에만 치우친다면 아마 부작용이 생기고 말 거예요.

 

지나치게 역동적인 일상의 끝에는 번아웃이라고 하는 절벽이 기다리고 있어요. 말 그대로 전부 연소되어 더는 불꽃을 일으킬 재료가 없는 상태, 한순간에 모든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삶. 때론 존재의 의미까지 말이에요. 그 반대쪽엔 종교적 수행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미동도 없이 멈춘 듯한 시간이 있을 거예요. 분명히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변화의 크기가 너무 작고 속도 역시 한없이 느려서 마치 다른 세계의 시간 속에 있는 듯한 삶일 거예요. 거기선 아무 의미도 솟아나지 못하죠. 어떤 방향이든 간에 그렇게 극단에 다다랐다면 우리 삶의 지속을 위해 일상의 리듬을 깰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Photo by Matt Power on Unsplash

 

번아웃으로 치닫는 일상을 깨는 방법 중 하나는 멈춤일 거예요. 아무런 계획이 없을지라도 단지 멈추는 것만으로 요란했던 흐름이 잦아들고 뭔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날 테니까요. (물론 멈춘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어느 때라도 질주와 멈춤 중 하나를 손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절벽에 이르지도 않았겠죠.) 반대로 모든 에너지가 자취를 감춰버린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선 훌쩍 떠나는 게 유용한 방법이 아닐까 해요. 여행이 대표적인 방법이겠죠. 그렇지만 떠남의 모습은 여러 가지일 수 있어요. 꼭 물리적 공간을 이동하지 않고도 마음이 떠날 수 있는 요령들이 있으니까요. 지루한 회사 생활을 탈출하기 위해 꼭 여행을 다녀올 필요는 없을 수도 있어요. 평소 마음에 안 들었던 상사의 사무실 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가 보란 듯이 책상에 사표를 집어 던지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쏟아낸다면 더욱 짜릿하겠죠!) 유유히 회사를 걸어 나오는 건 여행보다 몇 배는 자극적인 떠남일 거예요. 물론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용기만큼이나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고요.

 

그보다 사소한 떠남도 있을 거예요. 출근하다 말고 느닷없이 휴가를 내고 만화방으로 가서 종일 뒹굴어 본다든지 점심을 먹고 나른할 때 계획에 없던 조퇴를 하고 동네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혼자 낮술에 빠져본다든지 하는 일들이 가능하죠. 아니면 한창 업무가 바쁜 시기에 컴퓨터를 포맷하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몸은 사무실 의자에 붙잡혀 있지만 컴퓨터가 매끈하게 새로 설정되는 동안 마음은 분명히 다른 곳에 가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지루한 일상을 잠깐 떠났다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며 회사 생활을 견뎠던 것 같아요. 때론 떠남이 아니라 (잠깐이긴 하지만) 사라지기도 하면서요. 작정하고 늦잠을 자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뻔뻔한 얼굴로 점심때나 되어서 출근을 한다거나 한참 졸린 오후 2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에 가야겠다, 라고 외치며 가방을 챙겨 나가버린다든가 하는 일들도 있곤 했어요. 그렇게 잠깐 사라져도 대단히 큰일이 생기진 않더라고요. 소소한 뒤탈 혹은 뒷감당이야 있었지만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참 즉흥적이고 막돼먹은 방식으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잦았지만 훌쩍 어디론가 떠나는 방식으로 일탈을 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나는 건 딱 한 번뿐이네요. 학교에 다닐 때, 그러니까 한참 오래전의 일이에요. 학교생활이란 것이 한없이 지루했어요. 재미가 없는 건 당연했고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일상의 전부였어요.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어요. 햇볕은 따스했고 바람은 고왔어요. 갑자기 선운사의 동백꽃을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운사 산자락에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의 붉은 이미지가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선운사를 가본 적이 없었지만 마치 몇 번이나 다녀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무작정 버스터미널로 갔어요. 선운사가 있는 고창으로 향하는 표를 끊고 나서야 생각했어요. 고창이 어디 있는 곳이지?

 

Photo by David Brooke Martin on Unsplash

 

고창으로 가는 버스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어요. 일상을 탈출했다든가 자유를 찾아 떠난다든가 하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저 (실제로는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이었겠지만) 덜컹거리는 기분이었어요. 고창에서 내려 다시 선운사로 가는 버스를 탔고 역시나 (그 길은 어쩌면 실제로) 덜컹거렸어요. 다시 버스에서 내려 선운사로 들어가는 산길을 지나고 절간의 여러 건물을 거쳐 동백꽃이 만발하다고 하는 언덕 앞에 섰어요. 하지만 막상 목적한 곳에 도착하니 아무런 감흥이 없었어요. 내가 왜 이걸 보겠다고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붉은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도 않았고 압도적인 풍광이 펼쳐지지도 않았어요.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붉은 동백꽃의 이미지는 아마 헛것이었나 봐요. 혹은 시기를 잘못 맞춰 갔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무안할 정도로 (적어도 제게는) 밋밋한 풍경이었어요. 돌아 나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하긴 했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작가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긴 하구나.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걸 그렇게 아름답고 거창하게 묘사할 수 있다니.

 

애초에 뭔가 큰 기대를 하고 떠난 여정이 아니었기에 딱히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기분은 아니었어요. 덤덤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고 무심하게 또 일상으로 들어갔어요. 그저 생소한 노선의 버스를 탔던 일로 남았죠. 선운사도 동백꽃도 금세 잊혔어요.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여정이었지만 희한하게 또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어요. 제 뜻밖의 여정은, 아마 그렇게 부를 수 있겠죠, 떠남 그 자체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어요. 비록 딱 한 번이긴 했지만, 훌쩍 떠나본 경험이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르더라고요. 살아가는 일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지만 꽉 막힌 일상에 간간이 숨구멍을 내는 정도로는 충분했어요. 뜬금없이 동백꽃을 보겠다고 낯선 곳을 찾아가기도 했었지, 라는 기억만으로 말이에요. 저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어떤 경우엔 뜻밖의 여정이 한 사람의 일생을 바꾸기도 할 거예요. 여정의 스쳐 가는 인연들에서 우연히 운명적 사랑과 만난다거나 여행으로 떠난 곳이 정착지가 되어버린다거나 다른 공간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직업이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잖아요. 그건 또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Photo by Patrick Tomasso on Unsplash

 

첫 번째 에피소드의 부제마저 ‘뜻밖의 여정’인 영화 <호빗>에 등장하는 주인공 빌보 배긴스 역시 의도하지 않았던 여행에 동참함으로써 그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인물일 거예요. 그런데 빌보 배긴스도 처음에는 다른 호빗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지속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자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었죠. 마법사 간달프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절대 여행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거절해버려요. 호빗답지 않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핏속에 흐르고 있던 가문의 기질 탓인지 결국엔 뜻밖의 여정을 떠나게 되죠. 그런데 빌보 배긴스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뀌는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중간계)의 운명을 결정 짓는 영웅적 활약을 하기도 헤요. 온갖 모험은 당연한 일이고요. 잃어버린 난쟁이(드워프)들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트롤에게 잡혀 죽을 뻔하고 오크에게 쫓기며 고블린 소굴에 혼자 고립되기도 해요. 또한 요정(엘프)의 왕들을 만나기도 하고 난쟁이들과 우정을 쌓기도 하며 용과 싸워 이기고 마지막엔 다섯 군대의 전투를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죠. 주머니에 몰래 꿍쳐둔 작은 반지를 덤으로 간직한 채 말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인생을 바꿀 만큼 빛나는 사건과 만나거나 혹은 세상을 구하거나, 어떤 결말이 되건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뜻밖인 여정의 가능성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실제로 많은 이들이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 일상의 나른함을 깨거나 모험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혹시 동물도 그렇게 훌쩍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있을까요? 글쎄요. 아직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철새들이 주기적으로 먼 길을, 때론 지구를 거의 한 바퀴 돌 만큼 먼 여정을 떠나긴 하지만 그건 뜻밖인 여행이라기보단 본능에 각인된 생활의 리듬일 거예요. 아프리카의 동물들도 물과 풀을 찾아 수백, 수천km를 이동하곤 하지만 그것 역시나 생존의 본능을 따라가는 이동에 불과할 뿐 여행이라고 부를 만한 낯섦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대개의 동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살아갈 뿐이에요. 보통은 영역을 지키며 사는 일이 생존을 도모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곤 하죠. 동물의 세계에서 익숙함과 결별한다는 건 죽음에 다가선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Photo by Shripal Daphtary on Unsplash

 

2017년 10월 어느 날, 제 목숨이 걸린 줄도 모르고 뜻밖의 여정을 떠났던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겁 없는 고양이가 있었어요.

 

그날은 토요일이었어요. 느즈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홍대 근방에 약속이 있어 나서던 길이었어요. 현관을 나와 몇 발짝 가지 않았을 때 어디선가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아파 보이는 소리는 아니었고 아마도 엄마가 자리를 비워 찾는 듯한 소리였어요. 최근에 근처에서 임신한 고양이를 못 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궁금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조금 더 집중해서 소리를 쫓았어요. 그랬더니 어느 빌라 입구에 주차된 자동차에서 울음소리가 나고 있었어요. 아직 10월 중순이라 추울 정도의 날씨는 아니었어도 아깽이라면 (그냥 호기심에) 자동차의 엔진룸에 들어갈 수도 있을 때죠. 아깽이 여럿의 소리가 아니라 한 아이의 울음소리라 걱정이 좀 되긴 했지만 어미가 근처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잠깐 먹이를 구하러 갔거나 다른 아이들을 숨긴 곳에 함께 있다가 곧 와서 데려가겠지 싶어서 약속 장소로 발길을 향했어요.

 

몇 시간 뒤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그 차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어라, 뭔가 좀 이상한데.. 집에 가방을 던져 놓고 내려와 한참을 지켜봤어요. 아기는 계속 울어대는데 어미가 나타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다행인 건 울음소리를 자세히 들어봤을 때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듯했어요. 그래도 차에서 나오게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크게 발소리를 내어 보기도 하고 보닛를 두드려도 봤지만 아이는 엔진룸에서 계속 울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그대로 두고 가자니 마음에 걸려서 주변을 계속 맴돌았어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차가 주차된 곳 맞은편 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왔어요. 그리고 (차에서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더니 제가 있는 곳으로 오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어라, 쟤가 아직도 저기 있네.” 아주머니도 낮부터 고양이 소리가 나는 걸 들었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이어지는 아주머니의 얘기는 황당한 내용이었어요. 충격적이었던 말할 것도 없고요.

 

– 쟤가 어제 의정부에서 온 놈이야.      (네?)

– 그러니까 어젯밤에 의정부 사는 우리 아들이 집에 왔는데, 차에서 내리는데 엔진룸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더라고.      (뭐라고요?)

– 그래, 의정부에서 출발해서 다른 데 안 들르고 바로 여기로 왔다고 했으니까 의정부에서부터 타고 온 거지.      (진짜로요?)

– 아무튼 그래갖고 어젯밤에 119를 불러다가 쟤를 꺼낼라고 했는데, 119 사람들이 꼬챙이 같은 걸로 건드리고 하니까 아들 차에서 나와서 저 차로 쪼로록 가버리더라고. 근데 저 차는 작아서 119도 어떻게 못 해 보고 그냥 가버렸지. 근데 아직까지 저러고 있네.      (저렇게 하루를 있었다고요?)

 

뭔 일 있었냥?

 

저는 의정부 고씨 가문의 문제적 고양이, 미노가 겪었던 뜻밖의 여정이 믿기지 않을 때가 많아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의정부를 떠나 서울시 은평구 봉산 아래까지 가는 자동차에 몸을 실었을까요? 아스팔트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의 엔진룸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차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몇십km 거리를 버텼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몇 번이나 조용히 물어봤지만, 아직은 고미노 씨의 대답을 듣지는 못했어요.

 

To be continued…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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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