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삶이라고 특별한 건 아닐 거예요. 꼬맹이 아이나 천방지축 어린이, 질풍노도 청소년의 삶이 어른의 삶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누구나 기쁠 때면 웃고 슬플 땐 울어요. 고민하고 방황하고 환희를 만끽하는 일들이 환경에 맞게 주어질 뿐인 거죠. 각자 겪어야 하는 삶의 모양새가 다르더라도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항상 최대치일 수밖에 없어요.

 

Photo by Zoltan Tasi on Unsplash

 

그렇지만 어른의 삶을 규정짓는 고유한 특징이 하나 있어요. 아이들과 달리 어른에겐 다음 단계란 것이 존재하지 않아요. 내일도 모레도 심지어 몇십 년 후에도 오늘처럼 그저 어른일 뿐이에요. 물들어간다고, 때가 묻는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현실에 조금씩 적응하다가 어느 순간엔 세상과 나의 간격이 사라져버려, 그저 세계의 일부로 전락하는 신세인 거예요. 산다는 것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식당한 터널을 하염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이 되어버렸어요. 처음엔 환하게 빛나는 출구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차츰 멀어지고 작아져 이젠 밤하늘의 별보다 아득하게 느껴지는 빛의 흔적만이 발걸음을 이끌어줄 뿐이죠.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일, 안타깝지만 그게 어른의 삶인 것 같아요.

 

빛나게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해서 빛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인간이란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미래의 어두운 공포에 압도당한 채 그저 견디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발걸음을 이끌어주던 빛이 흔적만 남아 사그라들고 있다면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라도 빛을 만들어내는 존재, 고난과 절망을 무릎이 꺾이더라도 어떻게든 삶의 의지를 만들고야 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닐까요. 우리는 각자, 어떤 식으로든 빛나는 시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Photo by Jenny Huang on Unsplash

 

신을 믿으시나요? 저는 무신론자예요. 인간의 문제는 합리적 이성과 논리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합리적 해결이 아니라 합리적 설명에 그쳤던 건 아닐까? 인생의 터널이 얼마나 어둡고 얼마나 깊은지 알아낸다고 해서 출구의 빛이 밝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어른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유신론에 가까워져가는 것 같아요.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누군가에게 빛나는 삶을 선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빛이 꼭 바깥에서만 비추란 법은 없으니까 어떨 땐 존재의 내면에서 빛을 발산하는 삶도 있을 텐데, 그걸 신의 존재에 기대지 않고 설명할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반짝이는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에요.

 

돈이 많으신가요? 저는 없어요. 참 당당하게도 말해버렸네요. 어른의 삶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는 돈이에요. 우리에게 익숙한 월급, 연봉, 적금, 대출 이런 거 말고 아주 큰돈 말이에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존재 바깥에서 오는 가장 커다란 빛은 누가 뭐래도 일확천금이라 생각해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들은 하지만, 압도적인 크기의 돈 앞에선 무의미한 말이 되어버리죠.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그 삶도 분명 반짝이는 삶이긴 할 거예요. 다만, 거기엔 인간의 존엄을 잃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들 하니 조심하셔야 해요. 아, 조심할 일이 먼저 생겨야 하지 않냐는 지적이 있을 수….

 

Photo by Artem Sapegin on Unsplash

 

많은 이들이 종교를 믿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벌며 살고는 있지만, 우리가 신에게 영감을 받아 빛나는 삶을 살거나 일확천금에 올라타 반짝이는 인생을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불가능하다고 해야겠네요. 그렇지만 누구라도 어둡고 축축한 인생의 터널에서 빛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어요. 생명의 탄생이라는 빛나는 순간 말이에요. 이제 갓 울음을 터트린 생명의 존재는 언제나 경이를 불러일으키죠. 하물며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존재가 탄생할 땐 얼마나 벅찬 기쁨을 느끼게 될까요. 그 순간의 강렬한 빛은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삶의 여정에 함께할 거예요.(육아의 고통과 양육의 곤란함를 논하는 건 별개로 하고요)

 

Photo by Jill Heyer on Unsplash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을 느껴보셨나요? 저에겐 늘 남의 일이었어요. 친구의 아기나 조카들이 태어난 걸 많이 보긴 했지만 온전히 경험한 건 아니었죠. 제가 태어날 때도 누군가의 세상이 빛나긴 했겠으나 그땐 기쁨 제공자의 역할이었죠. 앞으로도 아마 아기의 탄생을 직접 경험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삶은, 신에게 다가가지 못했으며 돈으로 세상을 가져보지도 못한 데다 생명을 이어가는 기쁨마저 경험하지 못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내던져진 길 잃은 존재였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이런, 스스로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아요. 제 인생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럭저럭 보통의 존재로 적당한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며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딱히 빛나는 삶이 아니었던 건 분명해요. 적어도 2014년 10월 5일까지는 그랬어요.

 

그날, 히루가 태어났어요.
한낮의 짙은 온기를 닮은, 우리의 둘째, 조그만 고양이 오히루.
저의 반짝이는 삶이 시작되었어요.

 

 

to be continued…….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구독하기

 

[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