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아마도 작가들마다 생각하는 바가 조금씩 달라서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울 거예요.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인간에 대한 탐구처럼 사유와 통찰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들도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글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물리적 실행력(또는 의지)이 작가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은 작품이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그러니까 입금이 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취미로서의 글쓰기와 작가의 글쓰기를 구분하는 이도 존재할 수 있고요.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저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작가란 무엇인가에 관해 비교적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온갖 이야기들이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는 사람, 그 이야기를 자신의 감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하필 그 감각이 음악도 그림도 몸짓도 아니고 단어와 문장인 사람, 그래서 작가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라고요.

 

저는 작가가 되지 못할 게 분명해요. 이야기가 쌓이기는커녕 내면으로 무언가 들어왔나 싶은 순간 벌써 휘발되어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때가 너무나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대체 뭐 하러 쓰나요? 읽는 게 훨씬 좋은데요. 하지만..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무려 3년 동안 매달 한 편씩 꼬박꼬박 쓰고 있어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덕분에 글쓰기의 비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법에 관한 모든 책, 글쓰기에 관해 말하는 모든 작가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비법, 지름길, 마법 등등’은 없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지만, 저는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어요.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환상의 비법은 존재합니다. 심지어 목숨 건 모험이나 수십 년의 수련도 필요 없이 마치 동네 편의점 마실 가듯 뛰어난 접근성을 자랑합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마감에 몸을 맡기세요! 마감이 있으면 쓰게 됩니다. 웬만하면 그렇습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어요. 확실히 쓸 수(는) 있습니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마감의 폭군이 글의 품질엔 관심이 없다는 것이에요. 만약 글을 잘 쓰고 싶으시다면 그 비법은…

 

마감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글 쓰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거예요. 저는 일단 읽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무 책이나 읽지는 않아요. 평소 읽지 않고 아껴두었던 책을 이때 활용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나 훌륭한 책일 것이라 확신하는 책을 샀을 때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책장에 모셔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바로 (당장 마감이 코앞인) 지금과 같은 순간에 써먹기 위해서입니다. 대체 무슨 내용으로 써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 무엇을 쓸지는 정했으나 어떻게 글을 풀어야 할지 막막할 때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책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저를 구원하곤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랬어요.

 

지난달 한쪽가게에서 사 온 <기내식 먹는 기분>을 읽다가 이번 달 ‘이치코의 코스묘스’에서 쓸까 말까 망설이던 주제를, 평소 열혈 팬임을 자처하는 정은 작가님이 비슷하게 쓰신 걸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이 얘기를 써야겠다, 라고 흔쾌히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건 김초엽 작가님의 <책과 우연들> 덕분이에요. SF 작가로서의 읽기와 쓰기, 거기다 스스로의 변화와 성장에 관해 꼼꼼하게 써 내려간 글이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에세이 전반에 흐르는 상큼한 공대(작가님은 이과 전공이시지만) 느낌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요. 아무튼 이렇게 이번 달 원고를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아울러 이미 원고지 9매가량의 분량을 확보해주신 두 분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2022년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판교를 다녀왔어요. 현대어린이책미술관(MOKA)에서 ‘두 개의 시간 :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어워드’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길래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와 함께 구경했어요. 전시는 재미있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도 좋았고 공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올 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어요. 판교의 낯선 풍경 때문이었어요. 전시를 보고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는 내내 미술관이 있는 백화점 건물 안에서만 있었지만, 전철역에서 백화점으로 가는 고작 몇십 미터를 걸으며 보았던 도시의 모습이 너무 생경했습니다.

 

가끔 나들이하는 번화가의 최대치가 합정-망원 정도인 터라 그렇게 높고 커다란 빌딩이(빌딩만!) 줄지어 있는 걸 볼 일이 평소에는 없습니다. 어쩌다 강남대로 한복판에(중앙차로 버스정류장이니까요..) 내던져지는 것만으로 약간의 멀미를 느낄 정도로 말이에요. 그런데 그날은 빌딩 숲에 대한 울렁증에 더해 평소 생각지 않았던 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저런 곳에서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판교라고 해서 길고양이가 없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낯선 방문객의 눈에 띌 만큼 활발하게 지내지는 못하는 것일 테죠. 어딘가에 꼭꼭 숨어서, 아마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어요.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일이라니.

 

“한번은 낯선 길 산책 중에 낯익은 마트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계산대 앞마다 무장한 경찰이 있었고, 고객은 모두 흑인이었다. 상품들의 배치도 달랐다. 똑같은 기성품들이었지만 진열된 상품이 결코 같아 보이지 않았다. […] 그것은 분명히 분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런 곳이 없다고 그런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구별하고 분리하고 잊어버리기 위해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 <기내식 먹는 기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악명 높은 미국의 흑인 분리, 이민자(혹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묵인되는 불법체류자) 분리 시스템과 직접적으로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저 문장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공간이 과연 멀쩡한 장소인가? 거기서 사람이라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라고 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만나는 길고양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것 같으니까요. 길고양이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불가피하게 인간의 시선에 노출된 채 지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고양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길고양이가 얼마나 많은 위험과 위협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잘 아실 거예요. 그리고 해외에 나갔을 때 깜짝 놀란 경험도 있으실 테고요. 한국에서 보았던 길고양이의 겁먹은 표정, 움츠림, 곁눈질 따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한 길 위의 존재로서의 고양이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의 길고양이들 모두가 사실상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봉산길냥: 아롱

 

주변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어디 길고양이뿐이겠어요. 판교의 백화점 건물 안에서 반나절을 보냈을 뿐인데, 은평구에서 한 달 동안 본 것보다 더 많은 유아차(Stroller)를 봤습니다. 물론 동네 불광천에서 산책하는 유아차를 많이 볼 수 있긴 하지만, 거기엔 아주 높은 확률로 아이가 아니라 댕댕이가 타고 있습니다! 사람 아이가 타고 있는 유아차는 정말 보기 힘들어요. 당연한 일이죠. 그렇게 엉망인 골목길이며 인도며 경사로 없는 건물들이며 엘리베이터 없는 전철역이며… 저희 동네의 문제만은 아닐 거예요. 신체 건강한 성인도 도시를 걷는 일이 쉽지 않은데 유아차를 끌고 어딜 편하게 다닐 수 있겠어요. 그러니 일단 건물에 진입하기만 하면 각종 쇼핑에서부터 사교적 만남, 식사, 놀이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백화점(혹은 복합공간들)에 유아차가 많이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도시가 유아차를 몰고 나온 모에게 충분히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면, 점점 더 길에서 유아차를 못 보게 될 거예요. 당연히. 심지어 이제 애를 거의 낳지도 않으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도 등록장애인 현황’ 따르면 국내 등록장애인 수는 264만 5000명이라고 합니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 인구의 약 5.1% 정도예요. 이 수치가 큰 것일까요? 작은 것일까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작은 수치입니다. 2017년 기준 등록장애인과 미등록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출현율이 5.4%인데, 이는 OECD 평균 15.2%에 비해 크게 낮습니다. 국가별로 보면 핀란드 34.2%, 오스트리아 34.1%, 네덜란드 31.2%, 독일 22.3%, 호주 17.7%, 미국 12.7%, 북한 8.2%, 일본 7.6%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보통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북한 포함??)에 비해 장애인으로 보는 대상이나 범위가 협소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생활 경함에 비추어 보면 5.1%는 굉장히 큰 숫자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스무 명에 한 명꼴로 장애인을 만날 수 있다는 건데 실제로는 이백 명, 이천 명에 한 명 정도 되려나 모르겠네요. 왜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그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걸까요? 막막한 질문 앞에 무력한 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장애인들의 지하철 탑승 시도가 불법 시위가 되어 벌금을 내야 하고 서울시장이라는 작자가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써서 혐오를 남발하고 있으니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나서 미치겠네요.

 

이런 식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예요. 한국 사회가 그런 곳이니까요. 탐욕스럽고 매정하고 잔인하고 비열하고.. 절망의 나락 같은 곳, 일명 헬조선. 그래도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희망을 버릴 순 없어요. 존재는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그들이 겪는 고통은 확실하게 우리 마음으로 전해지니까요.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조금이라도 세상이 나아지길 바란다면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서 눈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이 첫 번째일거예요. 쉽고 편한 일은 아니겠죠. 길고양이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만 해도 밥과 물 챙겨주기에서 시작해 TNR, 구조, 치료, 임보, 입양, 길고양이 위협하는 놈들 응징하기, 지자체 예산 확보를 위해 민원 넣기 등등 온갖 상황들을 피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는 일이에요. 장애인의 보이지 않는 삶과 마주하는 건 더 힘들고 험난할 거예요. 해야 할 일도 훨씬 많을 테고요. 그렇다고 피할 순 없지요. 나쁜 놈들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둘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2023년은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서 주변을 똑바로 보고 기왕이면 세상도 한번 구해봅시다! 일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후원(**)부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감당할 수 없는 건 못 본 척하고, 그런 세계는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며 모른 척해왔던 건 아닐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의 소중한 많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이들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 <기내식 먹는 기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봉산길냥: 어벙(좌) 꺼벙(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홈페이지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링크를 관련 기사로 대체했습니다. [본문으로]

 

 

 

‘이치코의 코스묘스’는 [월간소묘 : 레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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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코의 코스묘스]

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pisode 5. 어느 날  갑자기 – 불쑥, 고미노

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pisode 6. D의 의지를 잇는 자, 송오즈

⑯ 소리치는 일   |   ⑰ 총체적 난국   |   ⑱ 엔드게임 and..

시즌 2,

길어질 게 뻔한 변명(1)   |   길어질 게 뻔한 변명(2)   |   길어질게 뻔한 변명(3) 

원래 그런 게 어딨나요?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1)   |   공감과 교감 사이에 어중간하게(2) 

고양이의 버킷리스트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1)   |   떨림이 멈추지 않는 세계에서(2) 

시즌 1, Again

• Episode 7. 고양이, 장소, 환대, 시월이

⑲ 1, 2, 3, 4, 5, 6, 북적북적   |   ⑳ 혁명의 선봉   |   ㉑ 앙시앵 레짐    |   ㉒ 우정과 환대      

시즌 2, Again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고양이에게 배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