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빈자리가 생길 때가 있어요. 사소하게는 물건의 빈자리가 있겠죠. 한 번도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테니까 다들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갑자기 물건이 고장 나 못 쓰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죠. 물건의 빈자리는 대개 금세 채워지기 마련이에요. 똑같은 것 혹은 비슷한 물건을 다시 구하면 되니까요. 손에 익은 물건일수록 허전함이 크긴 하겠지만 곧 새 물건에 익숙해지게 돼요. 잃어버린 것과 새로 얻은 것이 순환하며 일상의 바퀴가 멈추지 않도록 자기 역할을 이어가곤 해요.

 

사람의 빈자리도 보통은 그래요. 명절 때 친척들이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다가 한 명이 갑자기 빠진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옆에서 뒹굴고 있던 사촌동생이나 이모나 삼촌이나 조카나, 아무나 불러서 자리에 앉히면 판은 또 굴러가게 되어 있어요. 불같이 뜨겁던 연애가 산산조각 나서 연인의 빈자리에 빠져 죽을 것만 같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며칠(이 될 수도 있고 몇 년이 될 수도 있긴 하겠지만) 밤만 자고 나면 또 다른 화산이 불을 뿜으면서 새 사람을 만나고 헌(?) 사람은 까맣게 잊게 되는 게 연애라는 우주에 작용하는 보편적인 법칙이니까요.

 

Photo by davide ragusa on Unsplash

 

그렇다고 모든 빈자리가 쉽게 메꿔지는 건 아니에요. 소중한 사연이 담긴 물건을 단지 기능이 똑같다고 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겠죠. 기능만으로 가치가 결정되진 않으니까요. 마음을 담아 쌓아온 물건의 가치는 저절로 복원되지 않아요. 생명의 죽음이 파놓은 빈자리도 그래요. 헤어진 연인의 빈자리나 갑자기 전학간 짝꿍의 빈자리처럼 기능적인 역할은 적당한 회복의 시간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죽음으로 생긴 빈자리는 대체할 수도 복원할 수도 없어요. 존재의 가치는 하나하나가 모두 고유하기 때문에 다른 가치로 대신하지 못하고 영원한 소멸을 맞을 뿐이에요.

 

영화 <타이타닉>에서, 세상에 이 영화가 벌써 22년 전 영화라니요! 아무튼, 타이타닉호에 올랐다가 난파된 뒤 극적으로 구조된 로즈(케이트 윈슬렛)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손주까지 보며 살았다고 해서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빈자리가 메꿔졌을 것 같지는 않아요. 영화의 마지막에 할머니가 된 로즈가 잭과의 추억이 담긴 유일한 물건인 다이아 목걸이를 바다로 던지는 장면은 어쩌면 그때까지 잭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로즈의 선언이 아닐까요.(그런 의미에서 저는 목걸이를 바다에 던지는 그 장면이 마지막이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영화에서는 젊은 로즈와 잭이 꿈 혹은 상상 속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굳이 보여주죠.)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 20th Century Fox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고잉 마이 홈>은 어느 가족이 ‘쿠나’라고 하는 작고 신비한 생명체(요정)를 찾기 위해 벌이는 소동을 보여주며 가족의 의미에 관해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예요.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딸 사이에 작동하는 미세한 관계의 역학을 감독 특유의 정서로 표현하고 있어요. 일본 가족 드라마답게 전형적인 해피 엔딩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유독 마음이 쓰였던 에피소드는 주인공의 딸인 모에와 친구 메구미의 이야기였어요. 모에는 여름에 갑자기 죽은 메구미와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하필 죽기 전날 싸우는 바람에 빌린 책을 돌려주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서 메구미의 빈 책상이 사라진 걸 발견한 모에가 혼자서 창고에 있는 책상을 끙끙대며 다시 가져다 놓는 장면이 나와요. 모에한테 메구미의 책상은 반드시 비어 있어야만 하는, 다른 걸로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자리였던 거예요. 드라마에서 핀란드 속담을 빌려서 ‘후회란 한때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데 그걸 ‘빈자리란 한때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죽음의 빈자리를 그대로 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무릎이 꺾여 고꾸라지길 한없이 반복해야 할 수도 있고 상실의 고통에 가위눌린 채 옴짝달싹 못 하며 버텨야 하는 밤을 끝없이 맞닥뜨려야 할 수도 있어요. 시간이 흘러 조금이나마 쓰라림에 무뎌지길 바라는 것이 유일한 희망인, 가망 없는 삶을 견디고 견딘 후에야 겨우 밥 한 그릇 온전히 먹을 힘이 나게 될지도 몰라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빈자리와 대면해야만 하는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존재의 일상이 차츰차츰 복원되는 것일 수도 있겠죠. 드라마의 중간에 모에가 혼자만의 사당을 만들어놓고 열심히 빌었던 소원은 메구미와 화해하고 빌린 책을 다시 돌려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매번 고통스럽기만 할 뿐 실현은 불가능한 소원일지라도 나중에 모에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를 잃고 표류하는 것보단 상실의 고통과 싸우며 견디는 것이 적어도 방향은 더 뚜렷한 일니까요.

 

<고잉 마이 홈>에 나오는 모에(와 엄마, 아빠)

 

어떻게 시간이 흐르건, 언젠가는 책상을 치워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에요. 책상이 없어진다고 빈자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물리적 빈자리를 떠나보내더라도 마음의 빈자리, ‘한때 거기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는 사라지지 않아요. 빈자리는 슬픔의 표상하는 자리에서 존재를 기억하는 자리로 바뀌게 돼요. 비어 있기 때문에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한때 소중했던 존재의 자리. 그리고 물리적 공간은 살아 있는 다른 소중한 존재들로 다시 가득 차게 될 거예요. 삶이란 그렇게 순환하며 지속되는 법이니까요. 제가 히루의 빈 책상을 치울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언젠가부터 이사를 갈 때마다 현관문의 안쪽을 상징적인 색깔로 칠해왔어요. 삼삼이를 만났던 집은 빨간색 페인트를 칠했기 때문에 이름이 ‘빨간집’이었어요. 히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던 집은 파란색 현관문이 있는 ‘파란집’이었고요. 히루는 파란집에서만 살았어요. 2014년 10월에 태어나서 11월에 집에 왔고 2016년 3월 21일에 제 곁을 떠났죠. 태어나서 고작 15개월 남짓 살다가 허망하게 사라져버렸어요. 파란집은 저에게 히루의 빈 책상과 같았어요. 거기에 항상 빈자리로나마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빈 책상을 매일 보고 견디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집안 구석구석 히루의 흔적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기에 아무 데서나 예고 없이 눈물이 쏟아졌어요. 삼삼이가 히루와 같이 놀던 자리를 맴돌며 히루를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면 삼삼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매일을 그렇게 견디는 삶이었어요.

 

히루와 파란집의 파란색 현관

 

히루가 떠나고 두어 달 뒤 파란집의 전세계약이 끝났을 때 이사를 가기로 했어요. 전세보증금을 터무니없이 올려달라고 했어요. 그 집에 계속 살려고 했으면 돈이야 어떻게든 구할 수는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히루의 빈 책상을 한쪽으로 치워야 할 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며 어느 정도 원래의 일상을 되찾기도 했고, 삼삼이와 더 나은 생활을 하려면 집을 옮기는 게 나아 보였거든요. 그렇게 이사 준비를 한창 하고 있을 때였어요. 평소 자주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고 SNS로 서로의 안부 정도를 지켜보는 사이였던 지인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지금 임보 중인 아이가 있는데 혹시 들이지 않으실래요?” 모카와는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모카한텐 미안한 게 하나 있어요. 삼삼이, 히루와 (나중에 등장하게 될) 치코, 미노, 오즈는 식구가 되기로 결정했을 때 제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새로운 아이에 대한 기대가 어땠는지 가족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걱정으로 어떻게 망설였는지 그때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해요. 하지만 모카는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제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아요. 아직은 히루의 빈자리가 컸던 시기라 그랬던 것 같아요. 대단한 기대를 한 것도 아니고 큰 결심을 한 것도 아닌 모호한 상황에서 모카를 들이기로 결정했어요. 모카를 볼 때면 아직도 그게 마음에 걸려요.

 

모카가 처음 온 날

 

새로 이사를 간 집은 녹색빛을 띄는 옅은 민트색으로 현관을 칠했어요. 하지만 이름이 ‘녹색빛의옅은민트색집’은 아니었어요. 집 뒤에 있는 나즈막한 산의 이름을 따서 ‘봉산아랫집’이 되었죠. 모카는 봉산아랫집으로 이사한 지 4일째 되는 날 집으로 왔어요. 그리고 삼삼이와 히루한테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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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코스묘스의 오묘한 시작

Episode 1. 한낮의 작고 짙은 온기를 닮은 고양이, 오히루

① 반짝이는 삶   |   ② 막연한 기다림   |   ③ 기쁨의 크기

Episode 2. 잃어버린 시간에 관하여, 김삼삼

④ 각자의 자리   |   ⑤ 굴러온 돌   |   ⑥ 잃어버린 시간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   ⑧ 혼돈의 카오스   |   ⑨ 오래된 미래

Episode 4. 이치코,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   ⑪ 보내는 마음   |   ⑫ 이치코의 코스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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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뜻밖의 여정   |   ⑭ 회색의 미궁   |  ⑮ 약자의 마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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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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