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묘: 레터]는 소묘가 고른 커피와 책을 소개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글, 그리고 출판사 오후의 소묘 소식을 전합니다.

 

오월의 편지는 ‘낭만’입니다. 오후의 소묘 작업실 위로는 주택들이 즐비해요. 오월이면 담장을 따라 장미가 흐드러집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산이 있고요. 그곳엔 아까시나무가 가득이지요. 위로부터 바람이 불어올 때면 열린 창으로 장미와 아까시 꽃과 숲의 내음이 타고 듭니다. 바람이 한껏 부푼 몸을 스치고 가는 동안 조금 아찔해지고 아주 아득해져요. 그러니까 나는 머나먼 곳으로부터 왔고, 이미 얼마쯤 할머니가 되어서, 오래전 어느 화양연화의 시절을 지금 떠올리고 있구나, 하는 기분. 이 장소에 거주하며 만끽하는 낭만 중 하나랍니다. 그 순간들이 오월에 문득 자주 찾아들길 조금 설레며 기다리고 있어요. 이 순간에도 그런 기분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오월은 커피가 아닌 차로 전합니다. 낭만은 어쩐지 차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저만 그런 것일까요?) 아무려나 이 차는 낭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해요. 이름도 낭만적인 ‘물랭 루즈’, 부제는 ‘장미와 와인의 나날들’이네요. 우선 찻잎에 반해요. 오월의 선홍빛 장미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말린 장미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맑고 생생해요. 두 가지 백차는 푸르름과 은빛을 더해줍니다. 직선의 레몬그라스가 사이사이 리듬을 만들어내고요. 향은- 어느 향수가 이 장미향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숲과 장미의 바람. 찻잎의 아름다움과 향을 충분히 만끽한 후엔 90도의 물로 우려냅니다. 뜻밖의 푸른 수색에 깜짝 놀라고요. 오월의 푸르름 위로 장미 꽃잎과 레몬그라스가 은은하게 제 몫의 향과 맛을 더합니다. 그러곤 마치 목련처럼 희게 되어요.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한 모금 입에 담으면 그제야 아, 이것의 이름이 ‘물랭 루즈’였지, 떠올리겠죠.

 

이 차를 블렌딩한 사루비아다방의 김인 대표님은 오후의 소묘에서 준비하는 ‘ði Inspiration’(일상의 영감) 시리즈의 한 권을 맡고 있어요. 내년 봄에 소개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집필 중인 원고에 마침 ‘물랭 루즈’ 이야기가 있어, 아직 초고지만 한쪽 옮겨봅니다.

 

“몽마르트의 잿빛 거리와 빗물에 풀어진 붉은 네온빛이 감도는 프렌치 백차를 상상했다.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캬바레 풍경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가 그려서 한층 유명해진 물랭루주라는 캬바레가.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 두 예술가를 한 시공간에 옮겨놓는다 (…) 백차의 단맛은 회상의 달콤함처럼 여운이 길다. 등급이 다른 백차를 섞는다. 백모란은 장미향을 품게 될 것이다. 품고서 장미향이 단번에 발산되는 것을 경계할 것이다. 이제 장미를 뿌릴 순서다. 좋은 장미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신선하고 색이 곱고 향이 좋아야 했다 (…) 마지막으로 레몬향이 은은하면서 빗물과 같은 질감을 풀어주는 레몬그라스가 선택되었다. 찻잎이 완성되었다. 축배의 노래, 보잘것없는 인생에 축배를! 차의 이름을 ‘물랭루즈’라 지었다.”-김인 티블렌더/사루비아다방 대표 <우연한 순간들>(가제)

 

사루비아다방 ‘물랭 루즈’

 

또 빠뜨릴 수 없는 차가 있어 소개합니다. 티에리스의 ‘할머니의 차: 뮬드티’예요. 지난 1월 소한小寒의 밤에 <할머니의 팡도르> 낭독차회가 티에리스 티룸에서 열렸어요. 무루 님이 책을 낭독해주시고, 정다형 대표님이 이 차를 내어주셨죠. 할머니의 부엌에 있을 법한 재료인 말린 자두와 계피, 감초를 넣은 과일차로, 아름다운 루비빛 수색을 지녔어요.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고 한껏 기운이 난답니다. 이달의 책과도 꼭 어울려요.

다형 대표님은 제가 아는 가장 낭만적인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해요. 그런 다형 대표님이 전해준 특별한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커피랑 섞거나 우린 차로 커피를 핸드드립해도 맛나요. 뮬드티로 시럽을 만들어서 카페라테를 만들어 마셔도 좋지요.”

 

일러준 대로 다 해보았는데, 정말이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에 가까워진 기분이에요. 자기만의 레시피를 한아름 안고 있는 멋진 분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저도 조금은 현실에 매이지 않는 얼굴이 되었을까요.

*아쉽지만, 이 차는 현재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아요. 합정의 티에리스 티룸을 이용하시거나 아래 링크의 계정으로 문의하시면 구매 가능합니다.

 

티에리스의 <할머니의 팡도르> 낭독차회 후기

티에리스 블로그

 

 

“아흔 살의 할머니가 그림책을 만든다. 재료는 오래된 천들이다. 할머니는 서랍장 깊숙이 차곡차곡 접어두었던 낡은 옷과 쓸모를 다한 직물을 꺼내 가위로 정성스레 오린다. 그러고 나서 흰 천 위에 색색의 천 조각들을 잇고 겹치고 꿰맨다. 그렇게 완성된 서른네 장의 천이 묶여 한 권의 아름다운 그림책이 된다. 제목은 ‘망각에 부치는 노래Ode à l’Oubli’.

남서울미술관 1층 전시실에서 낱장으로 해체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책을 보던 날 내 옆에는 편집자 O 씨가 있었다. 그의 가방 속에는 1년 안에 출간하고자 했으나 2년도 넘게 걸릴 어떤 책의 출판계약서 한 부가 들어 있었다. 계약서 상단에 적힌 가제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내 일의 이름이다. (…)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림책은 한 여인이 어른으로 살아온 긴 시간의 흔적들을 재료 삼아 만들어졌다. 해진 천을 자르고 꿰매며 작가는 자신의 지난날들을 오래 매만졌을 것이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그림책을 보고 난 뒤로 나는 바느질하는 할머니의 손을 자주 상상했다. 그 손은 오래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않는 손이고, 때로는 그것들을 모두 꺼내 과감히 자르는 손이며, 끝내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손이다. 나이 든 어느 날의 내 손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손이기도 하다.

오래 품고 있던 생각들을 천 삼고 아끼는 그림책들을 실 삼아 썼다. 쓰는 동안 나의 쓰기가 할머니의 바느질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솜씨에도 아름다운 실들이 많아서 힘을 냈다. 읽을 때도 쓸 때도 한결같이 기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프롤로그’

 

책의 프롤로그는 저자가 독자에게 띄우는 편지라고 생각해요. 이토록 낭만적인 편지를 띄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저자 무루는, 오후의 소묘에서 펴낸 로피즈의 그림책들을 옮긴 박서영 작가이기도 합니다. 어크로스에서 출간되었으나, 책을 만든 이는 이 편지를 띄우는 오후의 소묘 에디터 소묘기도 하고요. 출간일에 맞춰 소개할 수 있어 얼마나 설레는지, 들뜬 마음 눌러담아 한 자 한 자 쓰고 있습니다.

 

“지난날들을 오래 매만”지며 “오래 품고 있던 생각들을 천 삼고 아끼는 그림책들을 실 삼아” 그것들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완성한, 스물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야기. 이 책을 만들면서, 완벽한 삶이 아닌 오롯한 자기만의 삶을 완성해 나가는 어떤 이상하고 아름다운 어른의 영혼을 보았어요. 단독자지만 누구보다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할머니가 되는 일을 설레며 기다리는, 판타지를 사랑하는, 세계의 가장자리를 살아가는 이가 어제보다 내일 그림책 한 권만큼 더 나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에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그 목소리에 실린 그림책들의 이야기는 또 어떻고요.

 

무루의 천 중에는 ‘모험’이라는 직물이 있어요. 유난히 커다란 그 천에는 색색의 실이 수놓여 있고, 모두 하나같이 아름다워요. 그 가운데, 책을 덮고 오래 매만지게 된 실 한 가닥은 <몬테로소의 분홍 벽>입니다. 주인공인 연갈색 고양이 하스카프는 “꿈에서 본 분홍 벽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모험을 떠나요.

 

“언젠가 나도 내가 스며들고 싶은 그런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 (…) 마지막 두 페이지의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분홍 벽에 만족스럽게 안착한 연갈색 고양이의 희미한 실루엣을 볼 때마다, 삶의 완성이 소멸이라면 이보다 더 아름답고 낭만적인 소멸이 있을까 생각한다.”

 

낭만에는 어딘가 슬픈 구석이 있습니다. 인용한 문장 다음의 마지막 문단에는 그런 저자의 음성이 더 짙게 배어 있어요. 그 목소리는 인용하지 않으려 해요. 이 책도, 이 그림책도, 직접 읽고 들어보셨으면. 분명 어떤 몇몇 실과 천들이 제 몸을 휘감는 듯 여운 길게 이어질 것을 믿어요.

 

모험가보다 우물을 파는 아름다운 이들과 더 많이 연결되어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저마다의 본성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으로”, “더 넓은 지도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이 작은 책의 지도가, 우리의 세계와 얼마쯤 겹치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모서리 한 칸쯤, 혹은 여러 칸쯤 더 넓혀줄 수도 있겠지요. 책이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일일 거예요.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저자 M과 편집자 O가 각자 자신의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한 인터뷰입니다. 책 출간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이상하고 자유롭게 나누어보았어요. 즐겁게 읽어주시길. 인터뷰를 통해 책에, 저자에게, 한발 더 가까워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인터뷰 보기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작은 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눕니다. 책방에서 산 책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 ‘소묘의 산-책’이 이달부터 ‘소소한 산-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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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걸음했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서점. 네, 합정에 자리한 아트북 전문서점 ‘B플랫폼’을 산책했어요. 이달의 책의 저자, 무루 님이 애정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

 

이명애 작가의 <내일은 맑겠습니다> 전시를 놓쳐 무척 아쉬웠는데, 이번엔 최도은 작가의 <무용한 오후> 원화전이 열리고 있어 아주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전해요.

 

[소소한 산-책] 4월

 

정기린 네 컷 만화. 오후의 소묘 그림책들을 옮긴 정원정 번역가가 그의 정원생활을 귀엽고 유쾌한 그림과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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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식물 생활을 어떻게 즐기실까요? 절화를 본다, 화분을 산다, 모종을 데려온다, 씨앗을 심는다. 여러 선택의 가능성들 중 저는 창밖으로 자란 나무를 보는 일을 택했어요. 오묘 집사가 베란다도 없는 집에 살면 다른 선택지는 꿈과 같다..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로망’일 정원생활자 기린은 이렇게 말하네요. “더디지만 씨앗부터 식물 키우는 것이 좋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 씨앗이 모종이 되고 모종을 식재하고 그들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하는 마음, 때로는 그사이 다른 이들(nooru, sinda)의 식물에 눈을 뺏기기도 하는 마음, 귀엽게 보아주세요.

 

 

 

 

[일상백서]

7. 플러그 모종

8. 기우제

 

[마음의 지도]는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한 그림책 제목이지만, 앞으로 펴낼 ‘마음/감정’에 관한 에세이 시리즈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쓰기살롱 멤버 문이영은 <슬픔 빼고 다>라는 제목(가제)으로 한 권을 맡게 되었어요. 월간 소묘 레터로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나무로]

 

“나무를 보며 계절을 센다. (…) 나보다 커다란 존재를 보고, 그가 내는 소리를 듣고, 그가 떨구는 존재의 일부를 밟거나 혹은 주워서 책 사이에 끼우며 네 번의 계절을 보낸다.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무가 그토록 오래 산다는 게 위안이 된다.”

 

고백할 게 있어요. 이 연재의 시작은 실은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였습니다. <슬픔 빼고 다>라는 제목의 귀여운 모순이 마음을 멀리 내달리게 하는 걸까. 이번 글에서 저는 ‘나무로’ 향하는 마음, 그러니까 아득함, 신비, 잊는다는 것, 차갑고 고요한 기쁨을 봅니다.

 

더불어 편집자의 즐거움 또한 고백해야겠어요. 작가들이 어떤 마음에 관하여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을 봐요.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신비롭고 아득합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마음’으로 문이영과 무루의 지도는 얼마쯤 포개지네요. 세상에 내놓기 전 그 발견에 조용한 기쁨을 누리고,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전해요. 여러분의 세계와는 또 얼마나 겹칠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세계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 온다. 내가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결코 다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이 위안과 기쁨이 된다. 신비하고 낯선 무언가, 경외할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

 

소묘는 아시다시피 ‘작은 고양이’고요. 오후의 소묘에서 고양이 실장을 맡고 있는 이치코의 글을 전합니다. 고양이 얘기만 합니다.

 

[⑩ 화려한 시절]

 

4월에 편지에서 전했듯 생일 이야기를 또 한 번 해야겠군요. 5월 5일은 바로 이 연재의 타이틀인 ‘이치코’의 묘린이날이었어요. 그리고 이 글에서 드디어! 이치코가 등장(할랑 말랑)합니다.

 

“자신이 지금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아는 건 좋은 일 같아요.” 지금이 자신의 세 번째 화려한 시절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이치코, 그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군요. 여러분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요? 혹 지금은 아닐지, 이치코의 글을 읽으며 낭만적으로 오늘을 살아봐요.

 

4월의 편지에서 전했던 강모카 이야기는 에피소드 3의 세 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의 글을 따라가 주세요.

 

Episode 3. 미래에서 온 카오스, 강모카

⑦ 빈 책상

⑧ 혼돈의 카오스

⑨ 오래된 미래

 

👏 <노래하는 꼬리> 출간예고

 

👏 [쓰기살롱] 읽고 쓰기 멤버 모집(마감되었습니다)

 

👏 1년 전 이맘때 첫 그림책 <섬 위의 주먹>이 출간되었어요. 오후의 소묘 1주년 기념 이벤트 준비하고 있답니다. 인스타그램으로 가장 빠르게 소식 드리고 있으니, 팔로우 후 알림 신청해두시면 놓치지 않으실 거예요. :)

https://www.instagram.com/sewm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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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소묘 : 레터]는 책과 고양이를 비롯해 일상의 작은 온기를 담은 다양한 연재글을 전합니다. 매달 첫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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